양조장 구경하고 맥주 시음···이거 재밌네 레저

주세법 개정 소규모 맥주 양조장 늘어 
제조 과정 투어 프로그램도 인기
맥아 분쇄 공정 등 눈으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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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의 양조장 투어 모습.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 제공

맥주 맛의 다양성은 양조장마다 다른 시설과 재료, 제조 공정의 미세한 차이에서 나온다. ‘맥덕’(맥주 덕후)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는 국내 소규모 맥주 양조장(크래프트 비어 브어리·수제맥주 양조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개성이 강한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제조 방식을 알아보며 현장에서 맥주를 즐기고, 취향에 맞는 맥주를 사 가는 이들이 많다. 정기적인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양조장과 특색 있는 양조장들을 정리했다. 수제맥주 시장의 현황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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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1시, 충북 음성군 원남면 원남산업단지. 박물관·전시관을 떠올리게 하는 현대식 붉은 벽돌 건물 앞으로 젊은 남녀 여남은 명이 모여들었다. 수제맥주 양조장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의 주말 ‘양조장 투어’ 참가자들이다.

다양한 주말 양조장 견학 투어 진행

“투어 예약하신 분들 모이세요.” 투어 가이드가 시음권을 나눠주며 예약자를 확인했다. 대부분 30대, 부부나 친구 사이 참가자가 많았다. 참가자들은 양조장 오염 방지를 위해 나눠주는 비닐 발싸개를 신발에 덧신고 양조장 안으로 들어섰다. 1·2층이 트인 양조 공간에는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들로 연결된 커다란 철제 탱크들이 들어서 있다.

“여기는 한번에 1000ℓ 정도씩, 연간 약 150㎘의 맥주를 생산하는 소규모 양조장입니다. 맛과 향기가 다른 8종을 생산하고 있지만, 고객들 취향을 반영해 언제든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낼 수 있지요.”

가이드는 “양조 공간은 드라이 존, 핫 존, 콜드 존 등 세 곳으로 나뉜다”며 먼저 맥아 분쇄 공정이 이뤄지는 ‘드라이 존’으로 안내했다. 참가자들은 컵에 든 맥아(몰트·보리싹)와 홉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홉의 맛을 체험했다. 홉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니 강한 쓴맛 속에서 어렴풋이 쌉쌀한 맥주의 맛도 느껴지는 듯했다. 국내에서는 거의 생산이 안 되는 홉과 맥아는 유럽·미국의 검증된 제조사에서 직수입해 사용한다고 한다.

“맥주의 4가지 재료, 아시는 분?” 한 참가자가 알아맞혔다. “맞아요. 물, 맥아, 홉, 효모죠. 홉은 일종의 향신료로, 강한 맛을 내는 ‘아이피에이’(IPA·인디아 페일 에일) 맥주에 가장 많이 들어갑니다.”

‘핫 존’으로 이동해, 물과 맥아를 섞은 맥아죽에서 맥즙이 추출되는 과정, 끓여 살균하는 과정, 홉 및 부재료(유자·생강·오렌지껍질 등) 투여 과정을 설명 들은 뒤 발효·숙성실인 ‘콜드 존’으로 들어섰다. 한달 정도의 발효(1~2주)·숙성(2~3주) 과정을 거쳐 맥주가 완성되는데, 발효는 섭씨 20도, 숙성은 0~5도 사이 온도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다음은 숙성된 맥주 시음 시간. 가이드가 한 탱크에 달린 꼭지를 틀어 잔에 따르며 말했다. “지난 6월20일부터 발효·숙성이 진행돼 숙성이 거의 끝나 가는 ‘아크, 허그 미’ 생맥주입니다.” ‘허그 미’는 생강을 첨가해 만든 알코올 도수 5.5도의 밀맥주(바이젠)다. 가이드는 먼저 거품의 맛과 향기를 느껴본 뒤 맥주 맛을 보라고 권했다. 짙은 향기와 진한 맛이 코와 혀를 감싼다.

실험실과 사무실이 자리한 2층으로 올라가 1·2층이 트인 공장 내부를 내려다보며, 전체 공정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들은 다음 40여분에 걸친 투어는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1층 매장 겸 탭룸(펍)으로 이동해 맥주를 구입하거나, 눌러앉아 본격적인 맥주 파티를 벌였다. 일부 참가자는 서너 가지를 주문해 비교해가며 맛을 음미하기도 했다.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 양조사 김우진 팀장은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은 개장 당시부터 주말마다 진행하고 있는 인기 프로그램”이라며 “맥주가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맛과 향기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곳 양조장 투어(클래식 투어 2만원, 마스터 투어 3만원)는 토요일에만 예약제로 운영된다.

공주 바이젠하우스 브루어리 외관.  이병학 기자
공주 바이젠하우스 브루어리 외관. 이병학 기자

제주 ‘맥파이 브루잉컴퍼니’나 충남 공주의 ‘바이젠하우스 브루어리’도 정기적으로 ‘양조장 투어’를 진행하는 곳이다. 맥파이에선 매주 토·일요일 오후 1시, 3시, 5시에 가이드의 안내로 시음을 곁들인 양조장 투어(1만원)를 진행한다. 바이젠은 매달 둘째 토요일 1시에 시음이 포함된 투어(2만원)를 벌인다. 예약 필수. 이밖에 예약을 받아 부정기적인 시음·투어를 진행하는 수제맥주 양조장들도 있다.

해마다 수제맥주 양조장 6~7곳씩 생겨

(사)한국수제맥주협회(전 대한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현재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은 71개다. 이 중 대부분이 최근 3~4년 사이에 문을 연 곳들이다.

국내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역사는 짧다. 대기업이 제조한 획일적인 라거류 맥주에 길들여져 있다가, 유럽·미국 등에서 다양한 맥주 맛에 충격을 받고 돌아온 이들이 직접 맥주 만들기에 나서면서 수제맥주 양조장의 토양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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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소규모 맥주 양조업이 허용되자 양조장 설립이 확산돼, 한때 전국 소규모 맥주 양조장 수는 130여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양조장 현장에서만 판매가 허용되는 구조여서 유통의 한계에 봉착한 양조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2013년엔 30여곳 정도만 남아 있었다. 한때 ‘하우스맥주’라 불린 곳들의 얘기다.

2014년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양조장의 일반 유통이 허용됨에 따라 수제맥주 양조장은 다시 도약기를 맞고 있다. ‘맥덕’이 늘고 수제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몇년 사이 해마다 6~7곳씩 새 브루어리가 생겨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국내 생산 수제맥주의 슈퍼·편의점 판매를 허가하겠다고 밝힌 만큼 소규모 맥주 양조장 설립 바람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맥주시장에서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0.1~0.2%(2015년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1년 전보다 수제맥주 비중이 갑절 이상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의 경우는 수제맥주가 전체 맥주시장의 18%, 일본은 5%를 차지한다.


소규모 양조장 관계자들은 최근 일반의 수제맥주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임성빈 협회장은 “수제맥주에 대한 주세 경감, 소규모 맥주 양조시설 기준(75㎘ 이하) 완화 등이 필요하다”며 “대기업과 달리 노동집약적 구조인 소규모 양조장이 늘어나면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음성 공주/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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