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풀, 꽃과 새들의 자연언어 통역사 길따라 삶따라

  [여행길 도우미] ② 숲해설가
  초록향 은은하게…둘러멘 가방은 이야기 보따리
  끝없이 공부하고 체력에 유머까지 바쁘다 바뻐
 
z1.jpg

 숲에서 한나절 지내기 좋은 철. 숲 그늘에 들어 흙내음·풀향기 맡으며, 새소리·바람이야기 귀담아 들어볼 만한 때다. “그저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메마르고 강퍅해진 심신이 촉촉하게 초록빛으로 물든다”는 숲. 여기에도 ‘일 삼아’ 숲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들이 기다린다. 숲에서 지내며 ‘숲을 보면서도 나무도 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된, 피톤치드 향기를 품은 이들이다. “숲에 온 분들 표정을 숲처럼 밝고 환해지도록 돕는 게 우리 일이죠.”(숲해설가 연호진·61)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국립수목원, 이른바 ‘광릉 숲’을 찾아 숲해설가들의 하루를 들여다 봤다.
 
z5.jpg
 
 
 “뻐꾸기·검은등뻐꾸기 소리가 부쩍 늘었네요.” “까막딱따구리 둥지는 안전합니다. 저번에 나타났던 구렁이는 보이지 않고요.”
 지난 4일(토) 아침 9시, 국립수목원 방문객안내센터 안 숲해설가 대기실. 10여명 해설사들이 ‘아침 스터디’를 하는 중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나와 숲을 돌며 살펴본 2명이 그날 숲의 상황을 보고하고 공유하는 자리다. “매일 아침 숲의 변화나 특이상황을 챙겨 봅니다. 그래야 풍성한 숲 해설을 할 수 있지요.”(박용식 팀장·63)
 국립수목원에 근무하는 숲해설가는 15명(남8·여7). 남자는 기업이나 학교에서 퇴직한 50~60대, 여자는 40~50대 주부가 많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숲에서 일한다. 숲을 찾은 이들이 해설을 신청하면, 순번대로 나가 숲길을 돌며 “쉽고도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숲의 순환과정, 나무와 꽃, 새와 곤충 등의 생태를 설명해 주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매일 아침 숲의 변화나 특이상황 챙겨 해설사끼리 스터디
 
z6.jpg 이날 예약 방문객 중 단체 예약객은 13~105명 규모의 17팀. 숲해설가들은 단체 방문객 말고도 현장에서 수시로 개인·가족단위 방문객의 해설 신청을 받는다. 1인당 보통 하루에 2~3건, 많을 땐 4건의 숲 해설을 진행한다. 주5일 근무, 하루 활동비는 4만6000원이다. 한번 해설 시간은 코스에 따라 1시간~2시간30분. 해설 접수 당번(오전·오후)과 산림박물관 근무도 돌아가며 맡는다.
 “내 차례네.” 컴퓨터로, 개화를 앞둔 야생화를 살펴보던 김재옥(50·전 전업주부)씨가 모자와 가방, 마이크가 달린 기가폰을 챙겨들고 서둘러 해설센터 앞으로로 나갔다. 대전에서 온 9명의 단체 방문객이 기다린다. 김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멀리서 오시느라 힘드셨죠? 흔히 광릉숲이라 부르는 국립수목원은 1468년 조선 7대 왕 세조의 능(광릉) 부속림으로 정해지면서 540여년 동안 보전·관리돼 온 숲입니다.”
 ‘광릉숲 현황도’ 앞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숲 해설을 시작한 김씨는 일행을 이끌고 ‘육림호수’ 쪽으로 코스를 잡아 떠났다.
 “준비물요? 이 가방에 다 들어 있어요.” 연호진(전직 중학교 생물 교사)씨가 보물단지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깨에 멨던 작은 가방을 열었다. 각종 나무와 꽃 사진을 담은 두꺼운 비닐책, 호두·가래 열매, 복자기단풍 씨앗 봉지, 편백나무 피톤지드 원액병, 메타세콰이어 열매로 만든 팔찌 10여개, 솔방울이 든 작은 물통, 도토리 봉지 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숲길을 안내하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때그때 나무와 꽃 앞에서 꺼내 보여주며 설명을 곁들이는 해설 보조자료다.
 연씨는 충주에서 올라온 고교생들을 이끌고 산림박물관 쪽으로 떠나고, 올해 처음 해설을 시작한 김용환(59·전 대기업 임원)씨는 몽골에서 우리나라 산림보전·관리 방식을 취재하러 온 몽골 국영방송(UBS) 부사장 일행 7명을 맞아 해설을 시작했다.
 
 어느덧 듣는 가족이 다섯으로 늘어나자 신이 올라
 
 “지금 숲 해설 될까요?” 부산 용호동과 경기 파주에서 온, 어린이 셋을 동반한 두 가족이 해설을 신청했다. 해설은 숲해설 경력 2년의 이경한(57·전 중소기업 근무)씨가 맡았다. 이 팀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어린이 여러분, 공룡시대부터 있던 나무가 뭔지 알아요? 은행·소철·메타세콰이어 나무예요.” 멈춰서도 해설하고, 걸어가면서도 설명한다. 어느새 따라다니며 해설 듣는 가족이 다섯 가족으로 늘었다. 어린이만 7~8명에 이르자, 이씨는 신이 났다. “딱따그르르르…, 이게 무슨 소리죠? 자, 딱따구리가 1초에 몇 번이나 나무를 쪼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 “…” “무려 열 아홉번이에요.” “우와, 짱 빠르다.”
 
z2.jpg


 농약을 치지 않아 애벌레들이 나뭇잎을 다 갉아먹어버린 층층나무를 보고, 아름드리 졸참나무의 둘레를 재본 뒤 길이 462m의 나무판자 탐방로인 숲생태관찰로로 들어섰다. 햇살 받은 나뭇잎은 가볍게 살랑대고, 뻐꾸기 소리는 깊고 맑게 울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비틀고,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와 벌레다.” 한 아이의 외침에 어린이들이 길바닥에 둘러앉았다. 김씨가 해설을 멈추고 아이들 곁에 함께 앉았다. “요게 ‘숲속의 측량사’라는 자벌레예요. 길이를 재듯이 기어가지요? 저기 기어가는 뿔 달린 건 사슴풍뎅입니다.”
 구렁이가 타고 오르지 못하게 밑둥에 비닐을 감아 둔 나무 줄기 중간의 까막딱따구리 구멍을 설명한 뒤 김씨는 해설을 마쳤다. “이제 자유롭게 둘러보시고 도시락도 드세요.” 해설가들은 수목원 구내식당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방문객은 도시락을 싸오거나, 밖으로 나가 주변의 식당을 이용한다.
 오후 1시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해설 신청이 몰렸다. 박용식 팀장(전 수락산 숲해설가)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팀 안내에 나섰고, 김희순(전 송파구 근무)씨는 고등학생들을 맡아 이날 두번째 해설을 시작했다.
 
z4.jpg

 
 “듣는 사람 표정 보면 1시간에 끝낼지 2시간에 끝낼지 답이 나와”
 
 어느새 순번이 돌아 두번째 해설로 들어섰지만, 해설가들 표정은 이른아침처럼 해맑다. “늘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객을 맞으려 노력합니다. 우리가 피곤해하면 따라다니는 분들은 더 피곤해하겠죠?”(김재옥씨)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해설가들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도감을 왼다고 되는 건 아니고, 자연의 생태·순환 논리로 이해해야죠.” “동식물의 진화과정, 생태, 얽힌 이야기 등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떻게 삶의 지혜를 얻을 것인가 하는 걸 얘기해야 해요.” “듣는 분들의 나이·직업·취향과 경청 분위기에 따라 이야기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요.” “듣는 사람 표정을 보면 1시간에 끝낼지 2시간에 끝낼지 답이 나와요.”
 
z3.jpg


 연호진씨를 따라 숲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연씨가 어린이들에게 복자기단풍나무 씨앗을 하늘에 날리며 어떻게 날아 이동하는지 시범을 보였다. “헬리콥터 날개처럼 돌아가며 떨어지죠? 바람이 불때 떨어져 나와 멀리 날아가게 됩니다. 나무 밑에 바로 떨어져 자라면 같은 종끼리 경쟁하게 되기 때문이죠.”
 4시가 넘어 다시 해설센터 쪽으로 내려오니, 2년차 해설가 송원혁(61·토목회사 퇴직)씨가 사진기를 들고 올라오고 있다. “이제 ‘저녁 스터디’를 위해 숲을 다시 살펴보러 가는 길입니다.” 송씨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숲의 변화상을 사진 찍어 회의 자료를 만드는 ‘스터디 담당’이다.
 교회에서 온 단체 방문객 40여명이 해설을 신청했다. 인원이 많아 두 팀으로 나눠, 김재옥씨와 연호진씨가 안내를 맡아 나섰다. 탐방객 입장 마감은 오후 5시. 이날 전원이 2~3회씩의 숲해설에 참여했다.  저녁 스터디를 마치고 하루를 업무를 마무리하며 박용식 팀장이 말했다.
 “숲해설가 다 좋은 줄 알지만, 실제론 쉬운 일이 아녜요. 공부하고 경쟁해야 하고, 지식·체력에 유머도 갖춰야 하고 아주 바쁘죠.” 옆에서 연호진씨가 반박했다. “그래도 바쁘게 사는 게 낫지. 운동도 되고, 난 정말 좋아! 행복해!”
 국립수목원은, 인파 혼잡을 막고 숲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방문 인원을 평일 5000명, 토요일 3000명으로 제한한다(일·월요일 쉼). 이것도 철저한 예약제(1주일전 예약)로만 운영한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65살 이상 무료. 주차료 하루 3000원.
      
 국립수목원(포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문답으로 알아보는 숲해설가
 
 ▶숲해설가는 얼마나 있나?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과 국립산림과학원, 휴양림 등에서 580여명의 숲해설가가 일하고 있다. 각 지자체와 민간 휴양림에서 일하는 분들까지 포함하면 10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모두 엄격한 심사와 교육과정을 거쳐 1년(활동기간은 10개월) 단위로 임용된 분들이다. 40~60대가 70%쯤 되고 여성이 60%를 웃돈다.
 ▶활동비는? 숲에 대기장소가 있나?
 숲해설가도 활동비를 받는다.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쳐 임용된 계약직이다. 산림청에서 하루 활동비로 4만6000원을 지원한다. 주 5일 근무에 한달 115만원이다. 숲에서 노닐 시간은 없다. 재임용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대기시간에 책을 읽고, 퇴근 뒤엔 강습·세미나에도 참석한다.
 숲에서 대기해야 하므로 일정한 시설이 필요한데, 일부 지역 숲엔 해설가 대기소가 없는 곳도 있다. 이들은 나무처럼 숲길에 서고 바위처럼 앉아 탐방객들을 기다린다. 탐방객이 많은 국립수목원의 경우 숲해설가가 15명에 이르러, 별도 사무실을 마련해 두고 있다.
 ▶종일 숲에서 일하는데 행복한가?
 숲에서 지내다 보면 세상 사는 일이 즐거워진다. 이 즐거움과 행복을 탐방객과 함께 깊고 넓게 나눠주는 게 숲해설가들의 일이다. 퇴직 뒤 노후생활로 숲해설가를 선택한 사람들은 거의 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건강도 챙기고 자연을 공부하고 방문객들과 대화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탐방객에게 무엇을 말해주나?
 탐방객들이 해설을 들으며 숲과 숲을 이루는 동식물의 세계를 알아보길 권한다. 그리고 걷고 쉬고 대화하면서 오랫동안 숲에 머물면 좋다. 머물러 있기만 해도 숲은 탐방객들의 지친 몸과 찌든 마음을 치유해 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숲을 가르치는 데만 신경쓰지 말고, 그냥 둘러보며 놀게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숲을 자주 찾는다면 숲의 힘과 대자연의 섭리와 함께 사는 구성원들의 생태를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 나도 해볼까?
 
 산림청에서 인정하는 숲해설가가 되려면 우선 산림청이 인증하는 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전국에 한국숲해설가협회, 숲연구소, 숲생태지도자협회, 생명의숲국민운동 각 지부 등 22개의 기관에서 산림청 인증 숲해설가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교육은 5개월간 140시간 이상의 강의와 현장학습, 실습 등으로 이뤄진다. 숲해설가 교육은 초급·고급으로 나뉜다. 초급이 일반 숲해설가 과정이고, 고급은 유아생태숲교육 지도자와 숲치유과정 활동가 과정이다.
 이 과정을 이수한 이들은 산림청 지청별 휴양림과 지정 숲, 국립수목원(광릉숲), 국립산림과학원(홍릉수목원), 지자체 등에서 매년 모집하는 숲해설가 공모를 통해 해설가로 활동할 수 있다. 숲해설가 모집공고는 해마다 12~1월에 나온다. 응모하면 1차 서류·테마해설 작성 심사로 2배수를 뽑고, 2차 면접과 시연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숲해설가 임용 계약은 1년 단위다. 해마다 기존 인원까지 재응모를 받아 다시 뽑는다.
 이병학 기자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