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바뀌어도 60년 전 거리 그대로 길따라 삶따라

  [영주 도심걷기]
 허가번호 1번, 문화재 감인 풍국정미소엔 먼지만 잔뜩
   33년간 오직 쫄면 한 가지만…꼬마도 아줌마도 줄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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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주 도심 서쪽으로, 소백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낙동강 상류 물길이 지난다. 서천이다. 서천 물길은 영주 시내에서 두 차례 자리를 옮겼다. 한 번은 “용이 옮기고”, 한 번은 사람이 옮겼다. 영주 도심은 물길이 옮겨간 자리를 따라 발달해 왔다. 영주의 주산인 철탄산 자락과 시내 한복판의 구성산 주변에 영주 옛 거리와 물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영주초등학교 옆 영주시의회(옛 영주 관아 터)에서 걷기 시작해, 낡아가는 영주동 옛 거리를 거쳐 옛 물길, 새 물길 둘러보며 시계 반대방향으로 시내를 한바퀴 돈다.
 
 인민군과 국방군이 번갈아 주민들 끌고가 총살시켰다는 곳
 
 영주시의회 앞 주차장(옛 등기소 자리)에 차를 대고 커다란 회나무 그늘로 든다. 영주초등학교 강당 뒤쪽이다. 영주초등학교 주변은 조선시대 관아 터다. 일제강점기 초까지 여러 관아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일본인들이 학교를 짓는다며 다 헐어내버려 옛 모습을 찾기 어렵다. 회나무도 관아 마당에 있던 나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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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시의회 옆 영훈정이 있다. 15세기 중반 처음 관아 남쪽에 건립돼 중앙의 관리들을 맞고 배웅하던 정자로, 관아 주변에 남은 유일한 옛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영주의회 옆 현위치로 옮겼다. 관아 문루였던 가학루는 1922년 구성산으로 옮겨지었다.
 일제가 신사를 설치하고 주민 거주를 제한했던 골짜기, 신사골 쪽으로 오른다. 영주시 문화유산 해설사 송재승(65)씨가 길 옆 낡은 한옥의 지붕을 가리켰다. “내 조부께 들으이께네, 일제가 관아 건물을 헐어뿔 때 기왓장과 목재들을 함부로 갖다 쓰게 한 기라. 우리 문화와 정신을 다 말살할라칸 긴데, 우쨌든지 내 보이 저 기왓장도 맹 그때 나온 기요.”
 철탄산(276m) 자락 신사골 들머리, 선계동이란 빗돌을 만난다. 작고 낡은 집들이 이어지는 서민 동네다.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어린이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은 벽그림이 눈부시다. 2010년 가을 시민·대학생들로 꾸려진 자원봉사자들이 ‘동네방네 희망그리기 작업’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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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골은 광복 뒤 사람이 살지 않는 후미진 골짜기였다고 한다. 육이오 때 인민군과 국방군이 번갈아 들이닥쳐 주민들을 끌고가 총살시켰다는 곳이다. 역시 낡고 좁은 집들 즐비한 숫골 들머리 거쳐 1958년 지은 석조건물 영주제일교회를 보고 50~60년대 거리 모습이 남은 큰길로 내려선다.
 “돈이 없으니께네 집도 옳게 몬 짓고”(제일슈퍼 주인), “개발이 안돼노이 옛날 그 모냥 그대로래서”(협동이발관 주인), “영화 찍는다꼬 고마 온 데서 다 찾아오는”(송재승 해설사) 낡은 거리다.
 미륵암·의류매장·동백분식 간판을 단, 옛날식 입원실 모습이 그대로 남은 옛 영주기독병원 건물로 들어서자 한 아주머니가 반겼다. “사글세 방 얻으실라꼬예. 방 두 칸이 보증금 없이 열 달에 백오십만원이라예.”
 
 명성 높던 고추시장 골목엔 폐허가 되다시피한 상가만
 
 50~60년대 사람살이의 ‘형식과 내용’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풍국정미소다. 건물과 시설, 사무실 책상·의자들이 하나같이 고색창연한 문화재 감이다. “왜정 때부터 안정뜰(영주 옛 곡창지대)서 나온 곡식을 찧어온 기라. 영주 정미소 허가번호 1번이라예.” 45년 전 큰아버지로부터 정미소를 물려받았다는 우길언(73)씨는 “2년 전까지도 기계를 돌렸지만, 물량이 줄어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리방아도, 밀방아도 그대로여서 “지금도 고마 스위찌 딱 여문 기계 하난 지대로 짜알 돌아가는” 정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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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씨가 큼직한 주판을 꺼내 옛 일본인 상점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뒷면을 보여줬다. “이기 왜정 때부터 쓰던 주판이라예. 내가 콤푸터 이런 걸 모리니, 아직 이걸 써요.” 풍국정미소 간판은 육이오 직후 써서 내건 것이다.
 관사골로 오르며 “억수로 오래된 한옥”인 옛 조광양조장(현 무궁화제분소) 주인 집이라는 낡은 한옥을 보고 일제강점기 영주역 역무원 관사들을 만난다. ‘두서길’ 좌우로 배치된, 관사 건물은 대부분 외관을 바꿔 주민이 살고 있지만, 서너채 가량은 잡풀로 덮인 채 그대로 방치돼 있다.
 고려말 세워진 효자비를 보러 간다. 부친을 극진히 봉양하는 한편, 왜적까지 토벌한 문재도 선생에게 공민왕이 하사(1374년)했다는 ‘평해군사 효자 재도 비각’이다.
 영주 중앙시장은 옛 영주역사(1941~1973년)가 있던 곳이다. 시장 입구 팔각정(역마정) 앞에 ‘옛 영주역 터’ 표석을 세웠다. ‘쓰리세븐 열쇠점’ 옆길이 역으로 드는 대로였고, 시장 안 ‘의류1번가’ 자리가 역앞 광장이었다. ‘구역다방’ 등 간판이 옛 역사가 있던 곳임을 알려준다. 수정마트 네거리에서 송재승씨가 정의상실 뒷골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옛날 홍등가 자리요. 역이 있을 때 저 골목 끝까지 집창촌이 형성돼 있었지요.”
 옛 고추시장 앞길로 간다. 역전유리·주연컴퓨터·기린꽃방 등 크고작은 간판 뒤로 낡고낡은 옛 건물들이 빼곡하게 이어진다. 골목 안쪽엔 폐허가 되다시피한 옛 상가건물들이 가득차 있다. 10여년 전까지 경북 북부 지역 고추 집산지로 이름을 날렸던 고추시장이다. 어두운 골목길에 몇 안 남은 고추상회, 방앗간, 여인숙 간판들이 쓸쓸하다.
 
 수많은 전란 겪으며 선인들의 피와 땀이 밴 고난의 산성
 
 삼각지 분수대 보고 ‘선비골 전통시장’으로 들어간다. 문어·생선·건어물을 파는 어물전과 채소전 거쳐, 순대골목이 이어진다. ‘문화의 거리’ 옆으로 나가 구성공원(구성산성) 쪽으로 향한다.
 구성산은 시민들에게 산책로이자 휴식처로 사랑받는 아담한 산이지만, 수많은 전란을 겪으며 선인들의 피와 땀이 밴 고난의 산성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성을 지키던 수많은 주민과 관군이 희생돼 산 전체가 무덤으로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성 둘레엔 조선 초기에 쌓은 석성 일부가 남아 있다.
 청과물상회가 몰린 골목 거쳐 조계종 포교당 지나 산 쪽으로 오르면 6개의 선정비가 기다린다. 이 중엔 조선말 이곳 군수를 지낸 민치록(명성황후의 친부)을 기리는 비(고 군수 여성부원군 민공위치록 유애비)도 있다. ‘부원군’이란 호칭으로 보아, 구한말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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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창한 숲길 지나 잠시 오르면, 1922년 옮겨세운 옛 관아 문루 ‘가학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2층 누를 받친 12개의 굽고 휜 자연목 기둥들이 춤추는 듯 아름답다. 앞쪽 ‘가학루’ 현판은 구한말·일제강점기의 명필이자 화가·사진가인 해강 김규진(1868~1933)의 글씨다. 뒤쪽 현판은 영주 출신 서예가 소우 강벽원(1859~1941)이 썼다고 한다. 2층 누에 오르니 사면으로 돌아가며 무수한 시판들이 걸렸는데, 마루 바닥엔 술병들과 담배꽁초들이 무수하게 깔려 있다.
 거북을 닮은 구성산 둘레엔 조선초 쌓은 석성이 일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주민·관군이 성을 지켰으나, 왜적의 공격에 함락돼  희생됐다고 전해온다.  
 국민교육헌장 빗돌을 지나 나무계단 따라 산을 내려와 반구정(伴鷗亭)을 만난다. 고려말 김해군수를 지낸 권정이 고려 멸망 소식을 듣고 고향 안동 임하에 세웠던 정자를, 후손들이 18세기에 옮겨지은 것이라고 한다. ‘고려를 회복한다’는 뜻의 ‘반구정(返舊亭)’이라 쓰기도 한다. 반구정 자리엔 본디 권정 등을 기리는 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구성산 밑 절벽을 따라 봉송대 정자가 있는 동구대 쪽으로 걷는다. 바위엔 ‘봉송대’ 등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해설사 송씨는 “봉송대도 고려 수도인 송도를 받든다는 뜻”이라며 화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새 봉’ 자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불사이군’ 등은 최근에 새긴 것이다.
 
 사라호 태풍 때 영주시내가 물에 휩쓸린 뒤 새 물길 뚫어
 
 서천 물길 이야기를 해보자. 서천은 50년 전까지 이곳, 구성산 서쪽으로 흘렀다. 1961년 7월 사라호 태풍 때 대홍수가 나 영주시내가 물에 휩쓸린 뒤, 물길을 지금 위치로 새로 뚫었다. 당시 국가재건위원회 부의장이던 박정희 소장이 이곳을 찾아 서천 직강공사(1961~1962년) 착공식에 참석하는 등 작업을 독려했다고 한다.
 더 오래 전엔 서천 물길이 구성산 동쪽으로 흘렀다고 전해온다. ‘휴천동’이란 지명이 이를 드러낸다. 구성산 동쪽으로 흐르던 물길이 서쪽으로 몸을 틀었고, 이 물길이 다시 인위적인 힘으로 현재 위치로 옮겨지게 것이다. 구성산 동쪽 오래된 물길 자리를 따라 일제 때 중앙선 철로가 놓였는데, 서쪽 물길이 지금 위치로 옮겨간 뒤엔, 철로도 서쪽 물길 자리로 옮겼다(1973년).
z4.jpg 봉송대(동구대) 옆 ‘권씨 부실 강씨 정려각’과 최근 세운 ‘사복재 권정 신도비’ 거쳐, 여말선초에 3판서가 났다는 ‘삼판서 고택’ 옛 터를 어림해 본다. 구성로 48-3, 48-4 주택 부근이다. 영주문화원 박찬극 원장이 말했다. “구성산과 고택 터를 보믄 거북이가 알 씰는(낳는) 형국이라. 정도전의 부친 정운경과 운경의 사위 황유정, 유정의 외손자 김담 등 세 명의 판서가 나온기라.” 고택은 대홍수 당시 크게 훼손돼 철거하고, 2008년 서천 새 물길 옆에 복원했다.
 ‘계심대’ 등 조선시대 각석들이 있다는 절벽 밑은 메워져 텃밭이 되고 토끼장이 들어서 있다. 메워진 절벽 앞에서 토끼에게 풀을 뜯어먹이는 어린이들 모습이 정겹다. 옛날 서천 물이 절벽을 치고 흐를 때 이곳 동구대는 강 건너편 서구대와 함께 절경을 이뤘다고 한다.
 철길 지나 서천 둔치로 간다. 커다란 미루나무 2그루가 거센 강바람에 물소리를 쏟아낸다. 식당 겸 카페 가람솔 옆 언덕으로 오르니, ‘반듯하게 직선으로 정비된’ 서천 물줄기가 내려다 보인다. 관아 건물의 하나였던 제민루, 삼판서 고택 등 복원된 건물과 ‘서천 직강공사 준공기념 박정희 기념식수’(처음 심은 나무가 죽어 후에 다시 전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진다) 보고 영주공공도서관 마당으로 들어선다.
 
 넥타이 깨나 매고, 구두 깨나 신는다카는 멋쟁이들이 노상 죽치던 곳
 
 아름다운 통일신라 중기의 ‘영주리 석불입상’(보물 60호)과 일부 탑재가 사라졌지만 들여다볼 만한 오층석탑이 기다린다. 모두 일제강점기 휴천동 논가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옆엔 일제강점기에 233명에 이르는 항일의병들의 투쟁 실적을, 전국을 돌며 수집해 기록한 <기려수필>을 지은 ‘기려자’ 송상도 추모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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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철길 지나 다시 시내로 들어선다. 전선을 땅에 묻고, 분수대·물길까지 조성해 깔끔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문화의 거리’를 걷는다. ‘영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번화가다. 여기서부터 출발점인 영주의회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맛집 탐방 코스다.
 송씨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돈가스집” 명동돈가스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옛날 삼화다방 자리요. 넥타이 깨나 매고, 구두 깨나 신는다카는 멋쟁이들이 노상 죽치던 다방이요. 새 양복 한벌 마쿠모 입고는 먼저 저 다방으로들 갔지.” 31년 됐다는 빵집 태극당과자점과 50년 된 함흥면옥 지나, 25년째 소백산 한우 갈빗살을 다뤄온다는 중앙식육식당으로 간다. “우린 딴 거 없어요. 갈빗살 숯불구이 하나만 해요.”
 흥미로운 곳은 33년간 오직 쫄면 한 가지만 해온다는 중앙분식 집이다. 어떤 집인가 하면, 여학생부터 아주머니들까지 “한달에 한두번 안 가곤 못배긴다”는 쫄면을 내는 집이다. 어떤 쫄면인가 하면, “타지로 유학 간 처녀도, 시집 간 새댁도, 배가 남산만해진 임신부도, 고향에 오면 가장 먼저 달려가 먹는다”는 매운 쫄면이다. 송씨는 “명절 때만 되면 고향 찾아온 처자들이 몰려들어, 번호표를 들고 줄을 서야 하는 집”이라고 말했다. 매운 것을 못먹는 이들은 ‘간쫄’(간장쫄면)을 먹는다.
 시의회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막바지 거리는 참기름·들기름 냄새가 고소한 길이다. ‘기름방’ 간판을 단 가게들이 모여 있다. 약 7㎞를 걸었다. 출발점에서 가까운 곳에 고려말 이곳 군수를 지낸 하륜이 세웠다는 영주향교도 있다.
영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영주 여행쪽지>
 
⊙ 가는길/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풍기나들목~5번 국도~영주시내. 대구 쪽에서 중앙고속도로~영주나들목~28번 국도~영주시내. 영주시의회 앞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 먹을곳/중앙식육식당(054-631-3649) 한우갈비살 숯불구이(150g 2만원), 함흥면옥(054-631-2287) 메밀냉면(6000원), 중앙분식(054-635-7367) 쫄면, 간장쫄면(5000원).
⊙ 주변 볼거리/시내권에서 가흥동 마애삼존불과 선사시대 암각화, 영주향교 등에 들러볼 만하다. 문수면 수도리 전통마을인 무섬마을, 죽계구곡 숲길·물길 탐방로, 작지만 아름다운 절 초암사·성혈사,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한옥마을 선비촌, 고찰 부석사 등 보고 느낄 거리가 많다. 소백산 자락엔 수질이 좋기로 이름난 풍기온천이 있다.
⊙ 여행문의/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639-6062, 영주문화원 (054)856-8400.
 
♣H6s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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