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도 사람에도 전통이 숨을 쉰다 마을을 찾아서

   전북 고창 신림면 두 마을
 유점, 갓·상투 차림으로 인간 본성 닦는 도인마을
 가평, 집도 담도 거목도 옛 것 그대로인 박사마을
 
 
 “아무리 문명이란 것이 발달히어도 인간 본성을 지켜야 안 쓰것소. 말하자믄 요것이 전통이랑게.”(유점마을 배태진씨·61) “그랑게 하늘당산나무 없으면 우린 쓰러져부러야. 당산나무를 섬기는 것이 우리 마을 전통이지라.”(가평마을 고복상씨·71)
 과거와 오늘, 내일을 이어주는 것이 전통이다. 잘 이어받아도 어쩔 수 없이 바뀌고 소멸해가는 경우가 많다. 케케묵고 고루해서 더 반짝이는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살아가는 두 마을을 찾아간다. 전북 고창군 신림면, 상투 틀고 갓 쓰고 사는 유점마을과, 옛 돌담과 집들이 고색창연한 가평마을이다.
  
 ◇ 가평리 가평마을
 
 신림면 방장산(743m) 자락이다. 우선 마을에 오래된 돌담 골목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담쟁이 덮이고 이끼 낀 돌담이 이리 돌고 저리 꺾이며 이어진다. 전체 돌담 골목은 약 1.5㎞. 이 돌담이 끌어안고 있는 집들은 대부분 고색창연한 흙벽집들이다. 거친 황토벽에 낡은 나무기둥, 반질반질한 대청마루에서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난다. “골격만큼은 한 100년씩들 된 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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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전통테마마을 추진위원장 고복상씨는 “마을길 전부가 돌담이었는디, 새마을사업 함시로 일부를 쎄멘으로 발라 개조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 상징물이 마을 당산나무다. 가평리엔 수령 400~500년을 헤아린다는 커다란 팽나무가 세 그루 있다. 두 그루는 마을 안에, 한 그루는 논가에 솟았는데, 이 중 두 그루가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당산목이다. 해마다 정월 초이틀 또는 초사흗날 밤,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린다. 먼저 논가의 천룡당산나무(할아버지나무)에 제사 지내고 마을 쪽 할머니나무에 지낸다.
 마을회관 ‘할머니방’에 모이신 어르신 10여분이 마을 당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은 법도가 물러졌지. 당산나무 지삿날 여자는 꼼짝두 모뎠어. 온 마을에 금줄 치고 오도가도 모뎌.”(행산댁 이복순씨·85)
 “내 개팽이(가평)에 시집와 75년을 사는디, 봉게로 남정네들이 장두 보구 괴기 사구, 떡두 하구 다 해. 지사 땐 비린 건 입에도 안 대. 몸에 이도 안 잡구.”(호동댁 김봉녀씨·90)
 “정월 대보름엔 긴 동아줄을 나무에 입혀서니, 돼야지두 잡구 왼 동네를 한바퀴 돌구 난리가 나부리지라.”(수성댁 이기순씨·83)
 
 해마다 수백 살 당산나무 당제…항일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 사당도
 
 멋진 거목들은 67년 역사를 가진 가평초등학교 운동장 가에도 있다. 폭포수 같은 바람을 쏟아내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팽나무 20여그루가 짙은 그늘을 거느리고 늘어서 있다. 운동장 가에서 친목도모 배구를 하는 선생님들에게도, 농구공을 튀기며 뙤약볕을 즐기는 어린이들에도, 나무 그늘 한 자락과 청량한 바람 한 줄기가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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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 학교 나무 그늘이 너무 좋아, 다른 학교에서 소풍을 올 정도예요.” 학교 역사보다 훨씬 오랜 내력을 지진 이 나무들은 “마을의 서쪽을 보하는 비보림”으로 심어진 것들이다. 가평초교는 전교생 19명에 선생님 8명인 작은 학교다.
 이 마을의 자랑거리가 한학을 숭상하는 전통과 교육열이다. “여가 말하자믄 유학이 성한 디요. 유교적 전통과 한학을 숭상허고, 옛것을 중히 여기는 마을이라.”(고복상씨) 마을엔 구한말 한학자이자 항일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 선생과 그의 제자인 이 마을 출신 독립운동가 고석진·고용진·고예진 선생 네 분을 모신 사당 도동사가 있다. 1928년 세운 사당으로, 해마다 5월5일 제를 올린다.
 가평마을은 최근 30여년 사이에 무려 18명의 박사를 배출한 ‘박사 마을’이기도 하다. 고씨·유씨·기씨 등 70여가구 14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의학·수학·경제학·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평마을을 둘러볼 때, 철마다 주민들이 벌이는 농산물 수확 등 농촌체험 행사와 함께한다면 한결 보람있는 여행길이 될 듯하다. 6월엔 복분자 따기, 술·음료 담그기, 시골밥상 산채체험 등을 진행한다. 체험장이나 민박집에서 묵을 수도 있다. 1박 1인 1만원, 식사 5000원.
 
 ◇ 덕화리 유점마을
  
 “우리 것이 다 읍서져가는디, 우리 것을 지키자, 우리 종교를 지키자, 말하자믄 우리 전통을 지키자 허는 것이여.”
 가평마을에서 약 3㎞ 거리에 있는 덕화리 유점마을은 이른바 ‘도인 마을’ 중 하나다. 상투 틀고 망건 쓰고, 흰 한옷 입고, 경 읽고 일하며 살아간다. 16가구 중 8가구 20여명이 유학을 숭상하는 토속종교 ‘갱정유도’(更定儒道)를 믿는 ‘형제’들이다. 갱정유도는 일제강점기 말 강대성(1890~1954)이 창시한 신흥종교. 하동 청학동, 남원, 부안 변산, 공주 등에 갱정유도를 신봉하는 크고 작은 도인마을이 형성돼 있다.
a3.jpg “전통은 지키되 공자왈 맹자왈만 가지고는 세상을 바꾸지 못헌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요. 혹자는 우리를 낡은 조선시대 사람으로 보는디, 요것은 말하자믄 우리 취지 허고는 전혀 다른 것이지라.”(주민 남정홍씨·50) 남씨는 “갱정유도를 믿는 이들은 인간 본성을 깨닫고 되찾기 위해 수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유점마을은 여느 도인마을과 달리 외부 노출을 꺼린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반기지도 않고, 자세히 알려지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한 집 마당에 들어서자, 머리를 길게 땋은 청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다. “사진 찍지 마세요.”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다.
 도인마을의 좌장 격인 배태진씨를, 그의 허름한 흙벽집으로 찾아가 만났다. “그랑게 현재는, 말하자믄 우리가 수양이 덜 된 상태지라. 나 자신도 공부하는 중인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것는가.” 그는 수양이 안된 상태로 외부에 노출이 된다면 “목표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점마을이 ‘지리산 청학동’처럼 상업화하고 관광지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수양이 모지래면 요것이 점점 병이 되아가지고, 민박 허고 밥 팔고 서당 팔고 해서 그르치게 되는 것이요.”
 그러나 언젠가는 세상에 문을 열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간 본성을 지키기 위해 수양허는 것이 중요헌디, 하지만서도 우리 최종 목표는 사회로 나아가 공헌허고 인류에 공헌하는 것이요. 우리 혼자 깨우치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믄 사회가 무슨 소용이것소.” 새로워진 사회 현상에 적응하는 일도 소홀히하지 않는다. 차도 몰고, 컴퓨터도 배운다. 배씨의 큰아들(31)은 캄보디아 출신 여성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이뤘다.
 
 유학 숭상하는 토속종교 ‘갱정유도’ 신봉…아침마다 경 외고 묵언수행
 
 마을 풍경은 여느 산골마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소박하고 낡고 허름한 집들 안팎을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결혼 전의 남녀는 머리를 길게 땋은 한복 차림으로 서당에 다니며 기초 한문과 한글, 수학 등을 배운다. 자라면 갱정유도의 경전인 <부응경>을 가르친다. 그러나 최근엔 서당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아 “일부 청소년을 청학동으로 유학 보내”기도 했다.
a4.jpg <부응경>은 갱정유도를 창종한 강대성이 하늘에서 받아 기록했다는, 난세를 살아내는 데 필요한 경전이다.(갱정유도를 따르는 이들은 ‘교주’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선생님’ 또는 ‘영신당주님’ 등으로 부른다) <부응경>은 모두 365권이 있다 하나, 일제강점기 때 핍박을 받아,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었다가 훼손되거나 유실돼 70여권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해인경>이다.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해 난세를 헤쳐나간다는 내용을 담은 이 경을 세번 외면 마음의 평정을 얻고 기가 충만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도인들은 아침마다 경을 외고, 마을 뒤 산자락에 있는 약수터를 수양처로 삼아 이곳에서 묵언수행을 하며 마음을 닦고 닦는다.
 유점마을 도인들은 벼농사와 복분자·고추 농사를 짓고, 옷과 망건·갓 등은 직접 만들어 쓴다. 갱정유도인들이 절대금물로 삼는 2가지가 있다. 흡연과 개고기다. “담배는 정신건강을 해치고, 개는 추물이어서 먹지 않는다.”
 유점마을에 갱정유도인들이 깃들여 산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20여년 전 전남 여천에 살던 배씨 일가가 들어와 수양하며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주변의 왕림리·도산리·아산리 등에도 20여가구 4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산다. 유점마을은 본디 유기(놋쇠)점이 있던 데서 비롯한 이름인데, 몇년 전 마을회의를 열어 한자 이름을 ‘유점’(儒点)으로 고쳤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온 지 15년 됐다는 남정홍씨가 작별인사를 하며 말했다. “우리는 제2청학동의 길을 걷지 말자. 이게 우리 마을 사람의 일치된 생각입니다.” 노출을 꺼리지만 방문객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조용히 둘러보며 주민과 인사 나누고 돌아간다면 굳이 막지 않는 분위기다. 사진 촬영과 흡연은 조심해야 한다.
 
  고창/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고창 여행쪽지
  
 ⊙ 가는길/호남고속도로 내장산나들목~입암 쪽 우회전~다시 우회전~747번 지방도~입암 천원사거리~밤고개~신림면 도림리 네거리 좌회전~가평마을. 유점마을은 가평마을 못미쳐 덕화리에서 팻말 보고 좌회전해 2.4㎞ 들어가면 된다. 서해안고속도 고창나들목~정읍 쪽 좌회전~세곡삼거리 우회전~708번 지방도~왕림네거리 우회전~가평마을.
a5.jpg ⊙ 먹을곳/바닷가 뻘밭 가두리에서 사료 없이 기른 장어로 이름난 고창읍 용궁회관(063-562-6464)의 장어구이(1인분 2만2000원), 복분자 즙을 넣어 반죽한 냉면을 내는 태흥갈비(063-564-2223), 전주식 콩나물국밥의 ‘콩나물해장국’집(063-564-0304).
 ⊙ 주변 볼거리/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 보리밭(6월초까지), 고창읍 매산리·죽림리 일대의 고인돌 무리(세계문화유산)와 고인돌박물관, 고창읍성, 선운사 등. 최근 고인돌 유적지에서 운곡저수지로 이어지는 오베이골 생태습지탐방로(운곡습지)가 개설됐다. 운곡습지는 지난 4월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생태습지다. 1.5㎞ 거리의 생태습지연못까지 다녀올 만하다. 고창군에선 내년 여름까지 임도를 숲으로 복원한 뒤 2㎞ 가량의 나무데크 탐방로를 내고 해설사도 상주시킬 계획이다.
 ⊙ 여행문의/고창군청 문화관광과 (063)560-2457, 고인돌박물관 (063)560-2715, 가평마을 체험관 (063)561-5149.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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