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장정 수백명을 부리던 권력 길따라 삶따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강화도·고창·화순 고인돌 무리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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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남한의 대표적인 탁자식 고인돌이다.

“대형 버스 무게가 11t쯤 되는데, 저 덮개돌 무게는 53t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 무리 중 하나인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앞에서 해설사가 말했다. “굄돌을 세운 뒤 흙을 덮고, 통나무를 깔아 저 돌을 움직이는 데 장정 500명의 힘이 필요했을 걸로 봅니다. 그 정도 권력을 가진 부족국가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뜻이죠.”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그 자태가 남한에서 가장 멋지고 크고 웅장한, 대표적인 탁자식 고인돌”로 꼽힌다.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엄청난 무게의 덮개돌(길이 6.4m, 너비 5.2m, 두께 1.3m)을 떠받치고 선 2장의 굄돌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고인돌을 찾아가는 여정은, 거대한 돌덩어리를 만나러 가는 일이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 속에 방치된 듯 자리 잡은 거석들은 낡고 빛바랜 흑백영상 속의 단풍 경치처럼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선사시대인들이 왜 그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놓았고 어떻게 운반했는지, 그 돌을 무엇에 썼는지를 생각하며 바라본다면 달리 보인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 무리. 탐방로 제1코스는 탁자식과 바둑판식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 무리. 탐방로 제1코스는 탁자식과 바둑판식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고인돌은 강력한 권력을 지닌 고대 부족국가 지배계층의 무덤(또는 제단)이다.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거석문화(큰 돌을 숭배하거나 무덤으로 쓰는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평지나 땅속에 돌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돌을 덮는 방식으로 축조했다. 기원전 12~기원전 2세기 무렵에 축조된 국내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평지에 높은 받침돌로 무덤방을 만든 탁자식(북방식), 받침돌이 낮은 바둑판식과 땅속 무덤방 위를 돌로 덮은 덮개식(이상 남방식)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 고인돌은 단일 무덤방에 하나의 돌을 덮는 게 특징이다. 유럽엔 여러 개의 받침돌 위에 여러 개의 덮개돌을 덮는 터널식(복도식)이 많다고 한다.

세계 고인돌 절반 이상 보유한 ‘고인돌 왕국’

우리나라가 ‘고인돌 왕국’으로 불리는 건, 세계에서 발견된 7만여기의 고인돌 중 4만여기가 국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한에 3만여기가 있고, 북한에 1만여기가 있다. 바위산이 많아 거대한 석재 채취가 가능했을뿐더러, 고인돌 축조가 가능할 만큼 과거 우리나라에 인력과 지배력을 갖춘 부족국가가 융성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4만여기보다 훨씬 많은 고인돌이 곳곳에 있었을 거라 본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자연적으로 무너지거나, 농경지·집터 등으로 이용되며 훼손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바위산·절벽 부근의 해안이나 강변 지역에 많이 나타난다. 2000년, 전국 해안·강변·산자락·농경지·마을에 분포하는 고인돌 가운데, 밀집도가 높고 원형이 잘 보전된 인천 강화도(70기), 전북 고창(447기), 전남 화순(596기)의 고인돌 무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전세계 7만기 중 4만기 국내 분포
강화도는 웅장한 탁자식
화순엔 세계 최대 덮개돌
고창은 탐방열차 이용해야

세 곳의 고인돌 밀집지역이 특히 주목받는 건 고인돌 축조에 쓰인 채석장 흔적이 함께 남아 있어서다. 강화도의 경우 고려산(주변 반경 4㎞ 이내에 세계문화유산 70여기를 포함해 150여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중턱, 고창은 섬틀봉과 중봉, 화순은 보검재 주변 산 중턱 바위산이 채석장으로 쓰였다. 고창·화순 채석장 유적에선 돌을 떼어내려고 나무를 박았던 쐐기 구멍과 옮기다 만 덮개돌 모습까지 관찰할 수 있다.

화순 고인돌 채석 흔적을 볼 수 있는 감태바위 채석장.
화순 고인돌 채석 흔적을 볼 수 있는 감태바위 채석장.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의 매력이 수천년 시간의 무게를 견뎌온 장엄한 모습이라면, 고창 지역에선 탁자식·바둑판식·덮개식 고인돌을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웃한 도산리에는 거의 완벽한 탁자 형태의 ‘도산리 고인돌’도 있다. 얼마 전까지 민가의 장독대가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장독대 고인돌’로 불리던 것이다.

화순 고인돌 무리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핑매바위 고인돌이다. 길이 7m, 높이 4m, 무게 200t의 거대한 덮개돌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덮개돌이라고 한다. 왼손으로 돌을 던져 덮개돌 위의 구멍에 집어넣으면 시집·장가를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전남 화순의 핑매바위. 덮개식(개석식) 고인돌이다. 덮개돌 무게가 200t에 이른다.
전남 화순의 핑매바위. 덮개식(개석식) 고인돌이다. 덮개돌 무게가 200t에 이른다.

탐방 전 유적지 들머리 전시관 관람부터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유적지 탐방 방식은 세 곳이 다르다. 강화도 부근리의 고인돌은 밀집도가 낮은 반면 잠깐 걸으면 되지만, 고창 죽림리와 화순 효산리~대신리 유적은 밀집도가 높으면서도 지역이 넓어 차량으로 이동하는 게 편하다.

고창 죽림리 바둑판식 고인돌과 탐방로.
고창 죽림리 바둑판식 고인돌과 탐방로.

고창 죽림리 유적은 채석장 유적을 포함해 5개의 코스를 차례로 왕복하는 탐방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일반차량은 출입할 수 없다. 걸어서 찬찬히 둘러보겠다면 매표소에서 700m쯤 걸어간 뒤 좌우로 뻗은 1~5코스(전체 1.8㎞) 탐방로 주변의 고인돌 무리를 둘러보면 된다. 주로 육중한 바둑판식·덮개식인데 1코스에서는 탁자식도 만날 수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탐방열차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탐방열차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화순 고인돌 탐방은 효산리~대신리 구간의 5개 탐방 포인트를 개인차량으로 이동하며 살펴보는 방식이다. 바둑판식·덮개식이며, 감태바위 채석장 등 채석장 유적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중간에 주차공간도 마련돼 있다. 비포장 흙먼지 길이므로 차량 속도를 줄이는 건 필수.

고인돌도 사전 지식 없이 보면 그냥 거대한 돌덩어리일 뿐이다. 고인돌 유적을 탐방하기 전, 먼저 유적지 들머리의 박물관·전시관에 들른다면 훨씬 풍성한 탐방이 될 듯하다. 해당 지역 고인돌의 특징과 축조 방법, 토기·돌칼 등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해설사도 대기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세 곳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구석구석엔 고인돌 무리가 널려 있다. 고인돌이 있는 곳엔 유적지임을 알리는 갈색 간판이나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댐을 막으며 수몰된 곳에서 고인돌들을 옮겨와 전시해놓은 곳도 여러 곳이다. 전남 순천의 ‘고인돌 공원’의 경우 주암댐으로 물에 잠긴 9개 지역에서 140여기의 고인돌을 옮겨 복원해놓았다.

강화 고창 화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또다른 큰돌 유적지 궁금하다면

△ 영국 스톤헨지 유적 런던 서남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선사시대 거석 유적. 흙을 쌓은 제방 위에 기둥돌들을 원형으로 세우고 덮개돌을 얹은 형태다. 기원전 3000~기원전 1600년까지 3차례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큰 돌의 무게는 50t.

△ 영국 에이브버리 유적 스톤헨지 북쪽에 있는 거석 유적. 터의 둘레는 1.3㎞(스톤헨지의 3배 규모)로, 50~60t짜리 돌 27개가 남아 있다.

△ 프랑스 카르나크 열석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 대규모 선사유적. 60㎝~6m 크기의 선돌 2000여개가 3개 열로 나뉘어 약 4㎞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다.

△ 중국 석붕산 고인돌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대에 300여 기의 탁자식 고인돌이 분포한다. 랴오닝성의 ‘석붕산(스펑산)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길이 8.6m, 너비 5.7m, 두께 40~50㎝의 덮개돌을 얹었다.

△ 북한 노암리 고인돌 황해남도 안악군 노암리에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탁자식 고인돌. 덮개돌은 길이가 7.8m, 너비 5.7m, 두께는 7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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