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눈물 자국인 문명에 아마존 땀 ‘줄줄’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7> 정글 속 대도시
휘황한 거리와 빈민촌 공존…이름 모를 약 ‘천국’
자궁암 낫고 눈도 좋아진다는 ‘신의 음식’에 솔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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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속으로 보트를 타고 가는 여행. 그 울림은 낭만적이다. 하루 정도면 꽤 낭만적이겠지. 라구나스에서 페루의 아마존 도시 이키토스까지는 대략 2-3일이 걸린다. 이키토스는 페루 국토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마존 속 대도시로, 육로로 갈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는데,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고 한다. 한동안 문명의 세계와 떨어져 있던 나로서는 빨리 도시에 가서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무리 자연이 좋다 해도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 생활에 익숙한 나는 역시 도시 사람일 수밖에 없나 보다.
 

 
잠시 한글 규칙 가르쳐줬는데 금방 이름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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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나스에서 이키토스까지의 보트여행은 낭만은커녕 언제 끝나나 싶은 여정이었다. 낮에는 미칠 듯이 덥고 밤에는 추운데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모기까지 동반한 보트여행이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서양 여행자들은 아예 해먹에 모기장을 쳐놨다. 
 
우리는 배의 꼭대기인 3층에 해먹을 걸고 흔들흔들 누워서 책을 읽었다. 3층은 지붕이 따로 없고 천막으로 햇빛을 가리게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들고 간 두 권의 책 중,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를 읽고 있었는데 이게 참 은근 잠이 잘 오는 책이다. 게다가 낮에는 너무 뜨거워 천막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 하루 종일 하는 거라곤 해먹에 누워 책 읽고, 자고, 때 되면 밥을 타서 먹는 것밖엔 없다. 배표를 살 때 받은 식사권으로  끼니 때 밥을 타서 먹으면 된다. 사람들은 접시를 지참해서 밥을 받아먹었는데, 우리는 접시가 없어서 그냥 식당에서 쓰는 접시에다 받아먹었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 알록달록한 실로 팔찌를 따곤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길거리에서 실로 만든 액세서리를 늘어놓고 파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기본적인 기술만 알아두면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좋고 심심할 때 시간 때우기도 최고다. 아직 손에 익지 않은 기술로 열심히 팔찌를 따고 있자니, 내 옆자리 해먹의 아이가 팔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색깔이 맘에 든다며 다 만들면 자기에게 팔라고 했다. 빨강 초록 노랑, 히피의 색인데, 이 녀석 벌써부터 조짐이 보인다.
 
팔찌를 만들며 그 아이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키토스에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히피는커녕 공부 깨나 하는 놈이었던 것이다. 페루에서는 국어와 수학을 배우고 영어는 잘 배우지 않는다며 한국에선 어떤 과목을 배우냐고 물었다. 그렇게 그 아이와 고등학교 때 이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낯을 익혔다. 또 한글을 써줘가며 그 규칙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똑똑한 녀석이라 그런지 금방 규칙을 파악하고 자기 이름과 누나 이름, 내 이름을 차례대로 한글로 썼다. 이 똑똑한 녀석한테 꿈을 물어보니 그저 부자란다. 한국 아이들과 별 다르지 않은 꿈을 가진 페루 아이다.
 
 
유랑악단의 요청에 선상 가수 돼 ‘아리랑’ 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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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가 다 만들어지고, 그 아이가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 말없이 왼쪽 팔에 묶어주었다. 돈을 내려는 것을, 선물이라고 하자 마침 그날이 자기 생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이, 무슨…, 감동을 위해 생일까지 뻥을 치나 싶었는데, 가족들에게 물어보니 사실이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그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 준 최초의 동양인이 되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페루의 영재 아이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겠지만, 그 나이에 맞는 더 재미있는 꿈을 가지길 바랐다.
 
내가 그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니,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유랑 악단 친구들까지 와서 자기 이름을 한국어로 써달라고 졸랐다. 각자의 악기에 한국어로 이름을 써주고, 음악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자며 코멘트까지 써줬더니 고맙다며 답례로 연주를 해줬다. 그 음악은 핑크플로이드가 리메이크를 해서 잘 알려진 안데스음악 불후의 명곡 el condor pasa. 처음엔 느리게 시작해서 점점 빨라지는 연주를 들으며 절로 흥이나 어깨를 들썩였다. 차분히 가슴에 스미는 그 멜로디가 이렇게 사람을 신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연주를 끝내고 한국엔 어떤 전통음악이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아리랑을 불러줬다. 아리랑을 듣더니 멜로디가 너무 아름답다며 핸드폰 녹음기를 켜고 다시 한 번 불러 달랬다.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얼굴에 철판 깔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배 안의 사람들도 박수를 쳤다. 나는 머쓱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그들은 녹음한 것을 들으며 아리랑을 조금씩 연습하더니, 나우타에서 내릴 때는 기본적인 가락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완벽한 연주를 들을 수 있을까? 눈빛이 너무나도 선량하던 페루 북부지방 출신의 유랑 악단 친구들. 각자의 꿈을 가진 사람들을 실은 배는 나우타를 향해 아마존 강을 한가로이 흘러가고 있었다.
 
 
더위에 떡실신, 모기에 100방이나 물려 하루 종일 ‘벅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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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밤, 비에 테러 당해 해먹이고 옷이고 모두 젖어버려서 잠을 설치고, 다음날 오후 3시쯤 나우타에 도착했다. 3일 동안의 보트여행에서 정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목적지 이키토스까지 모터택시를 이용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정글 마을을 지나 ‘Bien benidos a Iquitos (Welcome to Iquitos)’라고 쓰인 간판을 지나자, 다시 혼잡스러운 문명세계가 펼쳐졌다. 알고 있는 숙소가 없어 일단은 광장으로 갔는데, 너무 오랜만에 대도시의 풍경을 접해서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번쩍이는 상가 하며, 삼성제품을 취급하는 상점, 화려한 옷가게들,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 경적음으로 혼잡한 거리다. 정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대도시였다. 광장에 내려 주위를 살펴보니 관광객들이 좋아할만한 레스토랑들이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때까지 잠시 잊고 살았던 서양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여기가 페루인가 다른 나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키토스의 첫 인상이 그랬기에, 나는 이키토스를 그린고 나라(그린고는 중남미에서 서양인들을 비하하며 쓰는 말이다. 원래는 미국인들만을 그린고라 불렀지만, 현지인들은 그냥 서양 사람들을 다 그린고라 부른다) 라고 이름 붙였다. 
 
숙소 정보가 없어, 일단 모터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에게 저렴한 숙소를 안내해 달라고 했다. 운전기사가 데려다 준 곳은 일반 가정집 같은 작고 저렴한 숙소였다. 
 
오랜만에 대도시에 왔으니 맛난 것을 먹고 싶었다.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피자와 샐러드로 식사를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아마존 강변을 거닐었다. 이키토스에는 그 더운 날씨 때문인지 아이스크림 가게가 유난히도 많았는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정글 과일 맛 아이스크림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정글 과일 중에서 내가 특히나 빠져있던 것은 마라꾸야라는 과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패션후르츠라 불린다. 이 향기롭고 새콤한 맛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마라꾸야 주스만 마신 적도 있다. 
 
저녁의 이키토스는 선선한 강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날 일어나서 보니 도저히 이건 뭐 내가 견딜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안부메일을 보내기 위해 피시방에 가도 더워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더위에 약한 나는 시내 구경을 나갔다가 더위에 떡실신 해서는 모터택시를 타고 숙소에 돌아가기 일쑤였다. 어찌나 더운지, 게다가 보이지도 않는 모기들이 나를 얼마나 공격했는지 자고 일어나면 다리에 100방은 기본으로 물려서 하루 종일 다리만 벅벅 긁고 있어야 했다. 
 
 
외설적인 그림의 ‘천연 비아그라’ 등 특산물 천지
 
이키토스는 위치의 특성상 다른 도시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광장 주변은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레스토랑이 즐비하지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빈민촌 벨렌이 나온다. 벨렌은 강가에 위치한 마을로, 우기에는 강물이 불어나 집이 강 위에 동동 뜨게 된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페루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는 벨렌의 집들은 대부분이 나무판자로 만들어져 있는데, 알록달록 예쁘게 칠해진 롱다리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왠지 정겹다. 
 
벨렌이 매력적인 것은 크고 재미있는 시장 때문이다. 대체로 남미의 시장들은 한 가지 품목만 파는 시장이 있고, 그 구역을 지나면 또 다른 품목만 파는 시장이 나타나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집 앞에 재래식 시장이 있어 그 분위기에 익숙하고, 시내에 놀러나가도 광장시장 주변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지역에 갈 때마다 시장을 제일 먼저 둘러보곤 하는데, 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시장이 바로 이 벨렌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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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광장인 아르마스광장에서 강변을 따라 20분 정도 걷다 보면 시작되는 벨렌시장은 과일, 옷, 먹을거리, 아마존 민물고기, 천연담배 등 아마존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물건들을 파는 구역 등등의 신기한 것들 천지였다. 그 중 단연 기억에 남는 구역은 아마존식물로 만든 각종 약재를 파는 구역이었다. 약뿐만 아니라 아나콘다의 가죽, 정글 동물들의 가죽, 앵무새 털로 만든 예쁜 머리띠 등등, 다른 곳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모기에 시달린 나는 일단 모기약을 사기로 했다. 물린 곳을 보여주니 어렸을 때 자주 먹던 빨간 감기약병에 담긴 약을 꺼내주었다. 모기에 물린 부분을 비누로 깨끗이 씻고 바르면 된다고 했다. 약 종류는 뭐가 그렇게 많은지. 아마존 식물을 말린 약재, 병에 담긴 알 수 없는 액체들, 천연 비아그라인 듯 외설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박스…. 그 중에서도 가게마다 관광객을 발견하면 외치는 것은 “산 페드로” 와 “아야와스카” 였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꼭 자연에서 마시고 즐겨야
 
산 페드로부터 설명을 하자면, 선인장이다. 얇은 껍질을 벗겨내어 초록색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 초록색 부분을 물에 넣고 장시간 끓여 액체를 만드는데, 이 액체를 마시면 환각까진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증상이 12시간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여행길에서 만났던 히피 친구들이 말하길, 산 페드로를 마시면 꿈과 현실이 구분이 안 되고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진다고 한다.
 
산 페드로를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마시려면 꼭 자연 속에서 마시고 자연을 즐기며 트래킹을 하라는 조언도 해줬다. 마약이든 아니든 어쨌든 이런 류의 것들에 매우 보수적이고 범법행위라는 의식을 가진 한국인들의 정서를 잘 모르나 보다. 아무튼 이키토스에는 이 산 페드로라는 것의 가루와 액체를 팔고 있었다.
 
아마존에서 나와서 다른 곳을 여행하고 있을 때 가끔 인터넷을 하다 보면 친구들이 싸이월드나 메일로 안부를 물었다. 그와 동시에 너는 아마존 어디까지 들어가 봤냐는 질문을 꼭 한다. 그때 당시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MBC에서 방영했다. 그 <아마존의 눈물> 4편에서 나온 것이 이 아야와스카이다. 아야와스카는 아마존에서만 나는 정글 식물의 이름이다. <아마존의 눈물>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들은 얘기로는, 자궁암에 걸린 여성이 아야와스카를 정기적으로 마시고는 병이 치료되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 식물의 이름을 들은 것은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마존에 들어갈 것이라는 내 계획을 듣고 숙소에 있던 한 친구가 아야와스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아마존에 가면 아야와스카라는 것이 있는데, 이걸 마시고 어떤 사람은 시력이 좋아져서 안경을 벗었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라식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이상한 식물을 복용했을 뿐인데….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마존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이 있어 믿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마존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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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땐 몸 안에 살고 있던 악마가 밖으로 ‘웨~엑’
 
그 후로 아마존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아야와스카에 대해 물어보곤 했는데, 에콰도르에서부터 계속 같이 여행을 다니게 된 내 일행의 지인이 바로 그 안경을 벗었다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아야와스카를 마시고 시력이 좋아져 쓰던 안경이 안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것엔 아니더라도 아야와스카만큼은 관심이 지대했던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것저것 물었다.
 
일단 아야와스카는 보통 샤먼과 함께 세리머니를 하고 마신다. 혼자 마시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고 한다. 마시기 전 최소 12시간 동안 금식해야 하며, 마시고 난 다음날엔 부담 없는 과일을 먹는다. 한동안은 몸이 자연스레 채식을 원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아마존 원주민들은 이 아야와스카를 ‘신의 음식’이라 부른다고 한다. 아마도 담배처럼 원주민들이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던 환각제가 아닌가 싶다. 시장에서 아야와스카를 파는 현지인에게 이걸 마시느냐고 묻자 “몸을 정화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것을 마신 뒤에는 똥을 싸거나 토하게 되는데, 몸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빼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마치 장청소로 숙변을 제거하는 것처럼. 평소 우리가 술을 많이 마셨거나 체해서 토할 때완 달리 몸 안의 나쁜 기운들을 다 밖으로 끄집어내는 듯 토한다고 한다.
 
토할 때의 소리는 몸 안에 살고 있던 악마가 밖으로 나오며 소리 지르는 것처럼 그로테스크하고 무섭다고 한다. 아야와스카를 들이키고 한 30분 지나서 그 효과가 시작되는데 모두의 공통된 경험담은 게임 기호 같은 것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때부터 각자의 꿈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또 커다란 뱀이 보인다는 사람이 많고,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사후세계가 어땠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이 사후세계라고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기호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은 정글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아야와스카를 마시고 본 문양들은 아야와스카 식물을 잘랐을 때의 절단면이라고 한다. 페루의 샤먼 출신 화가인 파블로 아마링고는 자신의 아야와스카 경험을 그림으로 그렸고, 그의 그림을 보면서 경험자들은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격한 구토 뒤 낯선 기호 같은 문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야와스카를 경험해 본 친구는 모두 다섯 번을 마셨는데 비전이 보였던 것은 두 번이었고, 자신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꿔준 경험은 그중 한 번이었다고 했다. 그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아야와스카를 마시고 약 30분 뒤 발끝에서부터 악한 기운을 빼내는 것 같이 격한 구토를 하고 기호 같은 문양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수많은 불빛들이 어느 한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 자신도 하나의 불빛이 되어 이 낯선 풍경을 두려워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려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보고 달려가던 불빛이 다른 불빛에게 쟤는 왜 저러고 있냐며 낄낄거렸다. 그러자 또 다른 불빛이 이렇게 말했다.
 
‘냅둬, 쟤 여기 처음 왔어.’
그리고는 나의 시야에 무한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팽창하는 우주를 본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무한’이라는 것이 이렇게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저 개념으로서의 무한이 아닌, 실제로 무한이라는 것이 눈앞에 닥쳐왔다. 그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는 점점 작아만 지고, 작아지는 것도 모자라 아예 확인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살면서 가장 큰 공포를 느꼈고, 그 공포는 점점 심화되었다. 어서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나락으로 떨어졌다. 계속되는 두려움이 어느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느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할 수 있다.’ 이 말을 되뇌자마자, 갑자기 그 공포의 바닥을 치고 마치 심해에서 수면으로 올라오 듯, 몸뚱이가 붕 떠서 위로 올라갔다. 그 후로부터 나는 지금까지 느꼈던 것 중 최대치의 행복을 맛보았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친구는 그때의 경험을 마치 뇌에 핵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너는 인간이 식물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니?”
‘글쎄,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라고 대답을 하려던 찰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식물은 인간보다 똑똑해.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왔고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난 그걸 아야와스카를 통해 깨달았어. 아야와스카는 나에게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답을 알려주었거던.” 
 
 
본인 허락 없이 쓸 수 있는 경험담은 이것뿐
 
아야와스카에 대해 찾아보던 중, 샤먼들도 식물이 자신에게 식물을 이용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는 글을 보았다. 아마존 원시부족들은 오래 전부터 아마존의 식물을 이용해 약을 제조 해왔고 그 중심에 샤먼이 있었다. 정말 식물들이 약의 제조법을 알려준 것일까?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아마존에는 바르는 사후 피임약도 있다고 한다. 
 
아야와스카의 주된 성분은 DMT(dimethyltryptamine, 환각제의 일종)인데, 우리가 꿈을 꾸는 것도 뇌에서 이 성분을 방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DMT를 섭취하는 것이니, 강력한 꿈을 꾸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황당한 주장을 하기로 유명한 그레이엄 핸콕의 「슈퍼 내추럴」이라는 책을 참고하시길!
 
아무튼 세계는 알면 알수록 참 신비롭고 모르는 것이 더 늘어나는 느낌이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거짓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으며,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또 이런저런 경험담이 있지만, 본인 허락 없이 쓸 수 있는 경험담은 이 정도이다. 앞으로의 여행기에서도 아야와스카는 몇 번 정도 언급이 될 것 같다. 
 
이키토스에서는 매일 망고를 사다가 냉동실에 얼려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얼린 망고일 거라며 매일 얼린 망고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았을까. 이에 섬유질이 잔뜩 끼어도 좋다고 먹어댔다.
 
 
5종만 있는 동물원…이 영악하고 요망한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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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이키토스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동물원이다. 이키토스의 동물원은 그 ‘사기스러움’이 매력적인 곳이다. 벨렌에서 배를 타고 아마존 강을 약 2시간 정도 가면 동물원에 도착하는데, 말이 아마존 동물원이지 정작 동물원에 있는 동물의 종류는 5종 정도다. 하지만 울타리에 들어가서 직접 동물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입장료는 20솔. (당시1달러=3솔) 페루의 물가를 고려하면 꽤 비싸다.
 
이건 사기라며 깎으려고 인디오들의 조상과 우리 조상들은 같다면서 별별 ‘개드립’을 다 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한 15분 정도 실랑이 끝에 5솔을 깎았다. 하지만 15솔로도 바가지를 쓴 기분이 들게 하는 동물원이었다. 동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특히 나무늘보는 상상 이상으로 웃기게 생겼다. 느릿느릿 움직이며 맹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게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동물원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원숭이다. 게다가 원숭이도 두 마리밖에 없다. 외관은 어느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귀여운 원숭이이지만, 우리로 들어가니 그중 한 마리가 ‘끼이잉~’ 하며 다가와 덥석 안겼다. 내 품에 안겨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팔을 핥고는, 떼어놓으면 계속 따라붙고, 내가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졸졸 따라왔다. 이건 뭐, 원숭이인지 개인지….

실컷 놀다 이제 다른 동물을 보고 싶어서 나가려는데, 원숭이가 갑자기 ‘끼아악‘ 소리를 내면서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개인기인지, 원숭이는 마치 애니메이션 슈렉에서 나오는 고양이의 눈빛을 하고는 제발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웃겨서 또 안아주다가 가려고 하면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계속 뒷목을 잡고 뒤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조련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다음엔 자신을 때려 보였다. 원숭이는 우리에게 조련사가 자신을 학대한다는 사인을 보낸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 하자, 이 영악하고 요망한 것은 자기가 아무리 잡아도 우리가 갈 것을 알고는 나중엔 거들떠도 안보고 바나나를 처묵처묵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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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중 가장 스릴 있고 황당한 화장실
 
원숭이와 한참 놀고 나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관리인 같아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화장실을 물으니 웃으며 건물 뒤쪽에 있다고 했다. 아무리 건물을 다 뒤져보아도 화장실로 보이는 곳은 없었다. 다시 그 아주머니의 딸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화장실을 물으니 지금 막 짓고 있는 건물의 뒤편에 데려다 주며 여기서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그곳은 2층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싸라는 건지. 여기가 맞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는 2층 바닥에 발바닥 반을 걸치고 엉덩이를 쭉 빼서 볼일을 봤다. 떨어지면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리는 화장실 아닌 화장실이었다. 바닥에 닿은 발바닥 반쪽에 힘을 꽉 줘야하는 아슬아슬한 그곳은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가장 스릴있고 황당한 화장실이었다. 작은 것이었기에 망정이지.
 
다음 행선지를 위해 이키토스를 떠날 때는 시간 관계상 비행기를 이용했다. 리마까지 가는 비행기는 약 300달러 정도로, 의외로 비쌌다. 하지만 다시 보트를 타기엔 체력도 시간도 없었다. 비행기는 낮게 날았다. 약 두 시간 동안의 비행에서 본 것은, 그야말로 지구의 허파였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펼치는 비행기 아래 풍경은 마치 바다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갈 때는 바다가 많이 보이는데, 내가 그때 본 것은 나무로 이루어진 바다, 수해(樹海)였다. 짙푸른 색의 나무의 바다 속에서 간간히 헤엄치는 황토색 물줄기. 슬픈 것은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군데군데 나무를 태워 만든 화전이 보이고, 그 면적이 점점 넓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나무의 바다는 약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내가 본 것은 거대한 아마존의 1/10도 안 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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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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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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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