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목구멍’ 이과수 폭포, 내 혼을 삼켰다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7> 그냥 가서 보시라
    붉은색 오렌지색 보라색 남색, 해질녘 ‘4차원’ 하늘
  끝 모를 거대한 낙하 속으로 여린 나비는 사뿐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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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에서 하루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이과수폭포를 보러 갈 수 있는 마을인 푸에르토 이과수에 도착한다. 이과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의 국경에 걸쳐있으며 원래는 파라과이 쪽의 영토가 상당부분을 차지했지만 전쟁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게 뺏기고 말았다. 국립공원은 아르헨티나 쪽과 브라질 쪽으로 나뉘는데, 아르헨티나 쪽이 푸에루토 이과수, 브라질 쪽이 포스도 이과수다. 폭포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아르헨티나 쪽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폭포라고 불리는 이과수폭포. 어디선가 한두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정수기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과수는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미션’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실 이과수에 가기 전까지는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이과수폭포’ 라는 것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과수는 20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폭포들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이었다. 페루에 마추피추가 있다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는 이과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200여개 크고 작은 폭포들이 모여 있는 곳…영화 ‘미션’의 배경
 
  작은 마을은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숙소도 배낭여행자들 대상의 저가 숙소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곳은 대부분 고급 숙소이고, 좀 더 마을 쪽으로 걸어가자 그럭저럭 가격대비 괜찮은 숙소가 나타났다. 이과수의 숙소는 대부분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숙소의 시설은 어딜 가나 괜찮은 편이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만큼 아침식사도 간단하게 나왔는데 빵에 딸려 나오는 버터가 티끌 한 점 없는 새하얀 색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숙소에 있는 버터를 혼자 다 동낼 정도였다. 아르헨티나는 정말 천국. 덕분에 내 살은 심각할 정도로 불어났다. 이과수에서는 2박3일 동안 머물고 다음 목적지를 로사리오로 정했다. 굼벵이같이 뭉그적거리는 여행스타일이지만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항상 되도록 짧게 머무르곤 했다. 마추피추나 이과수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는 물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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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한 날은 숙소에서 낮잠을 자다가 느지막하게 동네를 산책하며 보냈다. 열대우림지역이라 스콜이 몰아쳤다가 개곤 했는데 해질녘 스콜이 몰아친 뒤에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붉은 오렌지색 하늘이 남았다. 보라색과 붉은색, 오렌지색이 뒤섞인 하늘과 바람소리만 들으면 여기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왠지 눈감으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거짓된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만 같았다. 붉은 오렌지색 하늘은 서서히 보라색으로 변하고 짙은 남색으로 변했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저글링을 하고 있는 요란한 옷차림의 여행자들을 만났다. 동행친구는 저글러들만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이내 자신도 저글러라며 그들과 함께 저글링을 하고는 이 마을에 얼마나 머물고 있는지, 갈만한 식당은 어딘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포장마차 비슷한 작은 가게들이 있는 시장을 알려주었다. 이 친구랑 같이 다니기 시작하고부터는 손쉽게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편하고 고마웠지만 한편 나는 스페인어를 할 일도 별로 없었고 어느새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나 자신은 부끄러워서 영어로 이야기를 잘 안하려 드는 것과 같이, 스페인어를 잘하는 친구가 옆에 있으니 괜히 스페인어로 말하는 게 부끄러워졌다.
  
  되는대로 걸터 앉으면 거기가 내 자리, 주인-손님 따로 없어
 
 시장에는 벌써 많은 여행자들이 작고 아담한 식당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때깔 나는 여행자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에 앉아 비싼 밥을 먹었지만 나는 꾀죄죄하고 몸에 한두 개쯤은 피어싱을 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치며 밥을 먹고 있는 이곳이 편했다. 좋은 레스토랑은 탁자나 의자가 없으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하지만 이런 곳은 의자든 아니든 그 위에 걸터앉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곧 내 자리가 되고 다른 여행자들과 합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값도 싸다. 배낭 여행자들에게 관광지 레스토랑의 비싼 밥은 사치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배낭 여행자들이 시장의 값싸고 푸짐한 먹을거리에 더 자연스러움을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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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제대로 된 문조차 없는, 작지만 사람이 가득한 식당에 들어가서 싸고 맛있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스테이크라고 해도 이런 식당에서 파는 건 두꺼운 고기가 적당히 익혀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삼겹살 정도 두께의 큰 고기와 밥, 약간의 야채나 감자들이 한 접시에 나오는 식이다. 식당에는 안쪽 자리와 그냥 밖에다가 큰 테이블과 의자를 놓은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 몇 명의 아르헨티나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배낭에는 저글링 도구들이 꽂혀 있었다. 그것을 본 내 친구는 또 가만히 있질 못하고 말을 걸어 그들의 도구로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공간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은 모두가 한 가지씩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저글링을 하는 친구들, 크리스탈볼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친구들,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 이렇게 여행자들이 모여 저마다의 재주를 펼치는 곳에서는 언제나 즐거운 파티가 펼쳐졌다. 특히 이과수는 세계적 관광지라 전 세계에서 이런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또 그런 여행자들이 싸고 배부른 음식을 찾아오는 곳도 그 공간일 게다. 그렇게 식당 주인도 손님들도 한데 어우러져 먹고 노래하고 구경하고 놀았다.
  
  못 말리는 마테차 사랑, 푹푹 찌는데도 그 뜨거운 걸 ‘홀짝홀짝’  
 
 본격적인 이과수 폭포 탐험은 둘째 날 이루어졌다. 다른 여행자들은 아침부터 일어나 빨리빨리 움직였겠지만 게을러터진 베짱이 같은 우리는 맨날 아침식사 제공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느지막하게 일어나 느릿느릿 준비를 하고 관광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일 교시 수업은 무조건 시간표에서 빼버리는 버릇이 여행 간다고 고쳐지진 않았다.
 국립공원까지는 푸에르토 이과수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다음날 슈퍼에서 점심거리를 사서 로사리오행 버스티켓을 끊고 출발하려 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았다. 뒤돌아보는 순간 무척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체 게바라 루트를 함께 여행한 언니였다! 너무나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얼싸안았다. 역시 루트가 비슷하면 다시 만나게 되어있는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우연히 어디선가 부딪히게 되나보다. 언니는 원래 일행이던 친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다시 새로운 일행을 만나 그날 브라질로 넘어간다고 했다. 곧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라 반가운 재회는 아쉽지만 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짤막한 인사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짧은 재회로 마음이 들떴다. 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한 20~30분 뻥 뚫린 도로를 달리다보면 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티켓을 사고 지도를 받아 지하철 개찰구 같은 게이트를 지나면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폭포, 악마의 목구멍을 보러 갈 수 있다. 약 80페소(약 3만 원 정도)라는 입장료가 결코 싼 것은 아니었지만 어딜 가나 세계적 관광지는 비싸기 마련.
 쓰라린 마음을 뒤로 하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받아든 지도를 보며 대충 루트를 짰지만 지도대로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자연 테마파크 같은 공원 내부에는 쪄죽을 것 같은 날씨에도 마떼잔을 들고 옆구리엔 왕따시만한 보온병을 든 아르헨티노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나른하게 걸어 다녔다. 이런 더위에도 저 뜨거운 마떼차를 마시는 그들에게 새삼스레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게다가 입구 쪽에는 마떼차를 위한 뜨거운 물 정수기까지 설치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아르헨티나의 마떼차 사랑은 대단하다.
  
   손등에도 앉았다가 열차 따라 왔다가, 하룻밤 풋사랑처럼
 
 열대우림이라 푹푹 찌는 날씨에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훌훌 벗어 제꼈다. 나는 해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푯말을 따라 열차를 타는 곳으로 가는 도중엔 처음 보는 못생긴 동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다람쥐도 청설모도 아닌 것이 도토리 같기도 은행 같기도 한 열매를 입에 물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공원 내는 희귀식물과 야생동물들의 천국이기도 했다. 그중 열대우림의 나비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비들은 화려하고 눈에 띄는 색상을 가진 열대지방의 꽃에 맞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나비는 팔랑팔랑 혼자서, 그리고 무리지어 국립공원 내의 관광객들을 홀렸는데, 요 앙큼한 것들은 가끔 고양이가 다리 사이로 지나다니며 제 머리를 다리에 부비며 교태부리듯 사뿐히 사람들의 피부에 앉는 것이었다. 한 마리가 내 손등에 앉아 긴 휴식을 취하는지 떨어질 생각을 않기에 요것이 꽃을 알아보는구나, 하며 내심 특별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지나가는 대머리 아저씨의 빛나는 이마에 핑크색 나비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특별한 꽃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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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이과수의 나비들은 관광객들을 설레게 하고 또 아쉽게도 하는 잠깐의 연인 같은 존재였다. 나비는 보라색 바탕에 오묘한 검고 붉은 점들이 흩뿌려져 있는 녀석, 파스텔 톤의 노랑, 하늘, 민트, 핑크 등 여리여리한 녀석들, 모노톤의 댄디하게 잘빠진 녀석 등등 온갖 종류가 다 모여 있었다.
  국립공원 안은 거대 자연테마파크와 같아서, 이곳저곳 둘러보기 위해 작은 열차를 타야한다. 관광객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는 줄 끝에 살그머니 서서 둘러보니 한국 사람들도 많다. 대공원 코끼리열차의 고급버전이라 할 수 있는 열차를 타고 숲 속을 달리는데, 크고 작은 나비들이 마치 열차와 달리기시합을 벌이듯 무리지어 세차게 달려든다. 결국 힘에 부쳐 나비들은 뒤처지고 말았지만 그 광경이 황홀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잠깐 멈춰 선 역에서는 파스텔톤의 나비들이 한데 모여 날개를 고이 접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나비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과수의 나비들은 그런 나에게 본때를 보여주듯 퍽 하고 한방 먹인 것이다.
 
  어라? 하고 깨달은 순간 이미 늦었다, 아뿔싸 역방향!
 
 우리는 가르간타 델 디아블로(‘악마의 목구멍’이라는 뜻)라 불리는 가장 거대하고 가장 유명한 폭포를 하이라이트로 남겨두기 위해서 다른 폭포부터 보기 시작했다. 기름지게 잘 자라난 무성한 풀잎들 사이로 잘 닦인 나뭇길을 따라가다 보면 야자수 사이에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들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황토색과 녹색이 섞인 듯한 탁한 강물은 유유히 흐르다 낭떠러지에 가까워지면서 빠른 속도로 달리고, 그 끝에 달하자 서로 경쟁하듯 밑으로 밑으로 곤두박질 쳤다.
 그 주위엔 항상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가끔은 쌍무지개가 완만한 곡선으로 폭포의 낙하를 보좌하듯 에워싸기도 했다. 세찬 물줄기로 인한 물보라가 새벽이 안개를 피우듯 사방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가까이 가면 샤워를 하고 나온 것처럼 전신이 흠뻑 젖어버렸다. 더위를 날리기 위해 관광객들은 그 속으로 들어가서는 일행과 함께 웃음의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머리고 옷이고 다 젖어도 햇살이 강해 금방 말랐다. 그렇게 폭포를 몇 군데 보고 이제 가르간타 델 디아블로를 보기 위해 열차를 탔다. 아무 거리낌 없이 열차를 탔는데 이상하다. 분명 전에 내렸던 것 같은 역을 지나친다. 어라? 하는 순간 깨달았다. 반대 방향으로 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열차를 타고 공원 입구로 되돌아 왔다. 그때가 4시 반쯤 되었는데,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좋게 좋게 생각하고 다시 열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역이 휑하다. 역무원(?)은 바지에 똥싼 거 마냥 엉거주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둘에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는 딱하다는 눈을 하고는 이제 공원 안쪽으로 가는 열차는 없다고 한다. 그날 운행이 모두 종료된 상황이라고. 헉, 그럼 이대로 그 엄청난 폭포를 못보고 가는 건가? 아니면 내일 또 돈을 내고 와야 하나? 로사리오행 버스 출발은 5시인데. 지금까지 튼튼한 두 다리를 믿으며 여행해 왔던 우리는 걸어갈 수는 없냐고 물어보니, 걸어가는 데만 약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공원 문을 닫는 시간이 6시란다. 방법이 없었다.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고 우린 터덜터덜 공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매표소에서 도장을 받아 가면 그 다음날에는 반값으로 입장할 수 있다.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기 전에 가르간타 델 디아블로만 보러 가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o o 한’에 꽂히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
 
 다음날 우리는 12시 정도에 다시 공원으로 나섰다. 버스 출발 시간이 5시이니,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45페소를 내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열차에 올라탔다. 마음은 쓰라렸지만 정신이 없어 허둥지둥 가르간타 델 디아블로로 향했다. 열차에서 내려 수많은 관광객들의 행렬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두세 명씩 앞을 막고 걸어가는 관광객들을 이리 제치고 저리 제치면서 빨라지는 물결에 맞춰 땀을 줄줄 흘려가며 휙휙 앞으로 나아갔다. 제멋대로 꺾인 나뭇가지들이 강물에 꼬꾸라져 있는 위에 다리를 만들어놓고, 그 다리가 끝나는 곳까지 가면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그 폭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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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한’이라는 수식어를 좋아한다. 당장 검색창에 ‘세상에서 가장’까지만 쳐도 수많은 자동검색어들이 뜬다.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한 것’을 실제로 보는 것에 대한 적지 않은 로망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에베레스트는 정복의 대상이 되었고 티티카카와 이과수는 남미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되었다. 그것을 직접 보고 왔다는 기쁨과 자기 안의 컬렉션이 하나 늘어난 기쁨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심을 채워주기도 한다.
 저 멀리서 거대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강물의 투신이 보였다. 헉헉대며 뛰어갔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머리에, 볼에, 옷에 물보라가 튀었다. 드디어 마주한 그 대자연은 지금껏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비주류를 지향한다. 비주류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지향한다. 여행을 할 때도 유명한 곳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지만 잘 알려지지 않거나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곳을 좋아한다.
 
  이과수는 원주민어로 ‘많은 물’ 뜻,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르간타 델 디아블로만큼은 달랐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표현 그대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그 어마어마한 자연 앞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알 수 있었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그 거대한 물줄기는 낭떠러지를 만나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떨어지고 물보라로 인해 그 아래는 온통 흰색이다. 그 중간에 무지개가 걸려있다. 가르간타 델 디아블로는 그 밑을 볼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걸까. 물의 흐름을 응시하고 있자니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강한 욕구가 꿈틀거렸다. 고개를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면 무척 평화로운데도, 눈앞의 악마는 그 목구멍으로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이과수는 원주민 언어인 과라니어로 ‘많은 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많은 물이다. 게다가 악마의 목구멍이라니, 이름 참 기똥차게 잘 지었다. 그 무시무시한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나비들이 뛰어들었다. 두렵지도 않은 걸까. 얇은 날개로 가녀린 날갯짓을 하며 보는 인간을 압도해버리는 그 속으로 뛰어드는 나비들을 보고 갑자기 콧등이 시큰거렸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동영상도 찍었지만 실제로 본 가르간타 델 디아블로만큼의 감동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혼이 나간 듯 감탄하고 있다가 시간을 보니 서둘러서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너무 아쉬웠지만 왔던 길을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걷다가 뛰고, 뛰었다 걷고를 반복하며 공원에서 나와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우리가 헐레벌떡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떠나갔다. 다음 버스는 20분 뒤에 있었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약 50분이었다. 마을까지는 버스로 20분 정도. 버스에서 내려서 10분 만에 짐을 찾으러 숙소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건 거의 미션임파서블이었다. 우리의 초조함을 비웃는 듯이 버스는 느릿느릿 다가왔다. 볼리비아나 페루라면 시간에 맞추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간 게 무색할 정도로 예정된 시간에 출발하는 경우가 없는데, 아르헨티나는 다르다. 20분이 조금 더 걸려 마을에 도착했다.
 
  ‘쌀 반 가마니’ 짊어지고 달린 ‘괴력’…이 와중에 피자라니 
   
 내가 가진 시간은 약 5분 정도. 피자에 죽고 못 사는 이탈리아 동행은 공원으로 가기 전에 버스에서 먹을 피자를 주문해 놓아서 피자를 찾으러 갔다. 나는 숙소까지 뛰어가 나와 친구의 짐을 찾아와야 했다. 종아리에선 젖산 분비가 왕성하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쉬지 않고 달렸다. 친절한 숙소 주인은 내 모습을 보고 허둥지둥 짐을 챙겨 택시를 잡아주려 했다. 하지만 빌어먹을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나는 내 배낭과 친구의 배낭을 양 어깨에 둘러메고 뛰기 시작했다. 내 65L 짜리 배낭이 20kg이 조금 넘고 친구의 배낭도 그쯤 되었으니 양 어깨에 20kg씩 짊어지고 뛴 것이다. 행군훈련도 아니고... 정신이 나가면 힘이 불끈 솟는지, 그걸 양옆으로 매고 또 북에 작은 가방까지 메고도 잘만 뛰었다. 지금까지 먹어 온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들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뛰어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숙소 주인은 “Suerte!!(행운을 빈다)”고 외쳤다.
 괴력을 발휘한 결과, 나는 버스정류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도 출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는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버스 티켓을 내가 가지고 있었기에 짐을 맡기고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친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쌩쑈를 하고 있는 사이에도 피자는 완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예약한 좌석은 2층의 맨 앞자리였다. 2층버스의 맨 앞좌석은 그 앞에 유리창밖에 없어 그 좌석에 앉으면 영화관에 온 것 같다. 제일 선호하는 좌석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기가 많아 그 자리를 예약하기란 쉽지 않다. 탁 트인 시야로 들어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동하는 것도 남미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다.
 너무 힘들어서 자리에 앉아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헉, 아직 내 옆자리는 비어 있는데! 재빨리 내려가 차장에게 아직 친구가 오지 않았다고, 기다려달라고 하려던 참에 친구가 피자 상자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우리의 등에는 차장과 운전수의 따끔한 눈초리가 꽂혔다.
 자리에 앉아 푸에르토 이과수의 일몰을 감상하며 따끈따끈한 피자를 뚝딱 해치웠다. 그래, 다 먹자고 하는 건데. 다른 나라의 피자는 심하게 욕하면서도 아르헨티나의 피자는 인정하는 친구는 만족스러운 듯 입맛을 다시고 잠들었다. 피자와 진한 오렌지색의 강렬한 햇빛. 나는 여전히 아릿한 종아리를 주무르며 좌석을 뒤로 젖혔다.
  
 글 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2010년 여름방학에는 유럽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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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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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