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거기서 거기인 유적지, 가? 말어?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8> 숙제 같은 마추픽추
산이 움직이고 하늘에 걸린 공중도시, 아!
사라진 잉카 황금사원 대지진 이후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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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토스를 출발해서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리마에서는 4박5일 동안 있으면서 딱히 한 일이 없다. 아마존에서의 피로 때문에 당시 새로 생긴 한인 민박 <지성이네서> 4박5일 동안 계속 뒹굴다 근처 스타벅스에 아이스카페라떼를 마시러 간 것밖에는. 
 
리마를 떠나 작은 오아시스마을인 와카치나에서 샌드보딩을 하고 페루에서의 최종 목적지인 쿠스코로 향했다. 와카치나에서 쿠스코로 가는 빠른 길이 파업 때문에 막혀버려서 20시간 정도를 등받이도 안 젖혀지는 가장 싼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쿠스코에 도착해서 파업 원인을 들어보니, 페루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가 쿠스코를 칠레에 빌려준다는 어이없는 정책을 시도하려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를 일본한테 임대해 주겠다는 것이다. 전기도 팔아먹더니 잉카의 심장 쿠스코를 팔아먹겠다는 건 도대체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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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바로 마약 성분의 힘인가
 
 
20시간 동안 딱딱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쿠스코는 전날 비가 왔는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쿠스코 시내의 메인 광장인 아르마스광장보다 위에 있는 산블라스 광장으로 갔다. 동행 친구의 부탁으로 20kg이 넘는 배낭을 들쳐 메고 숙소보다 먼저 들른 곳은 “코카샵”이라는 가게. 코카샵 에서는 코카잎으로 만든 여러 가지 제품을 판매하는 카페 겸 샵이다. 이곳의 메인 메뉴는 레몬을 넣고 끓인 코카 티와 중독성이 너무 강해 마약이 아닌가 싶은 코카브라우니이다. 그 외 초콜릿, 쿠키 등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비누, 립밤 같은 제품들도 있다. 코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뜸 이렇게 묻는다.
“그거 코카인 아냐?!”
코카잎이 코카인의 원료인 것은 맞다. 그래서 미국에 입국할 때는 상품으로 나와 있는 코카 티의 티백이나 코카 초콜릿 등이 모두 반입 금지품목이다. 하지만 이 코카잎은 안데스 원주민들의 전통이며 문화이다. 원주민들은 이 코카잎을 씹으며 고산병을 이겨왔고, 만병통치약이라고까지 한다. 나중에 또 소개하겠지만 볼리비아의 광부들은 은광에 있는 내내 이 코카잎을 줄기차게 씹어댄다. 안데스 사람들에게 코카잎은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절대 버릴 수 없는 그들의 고유문화이다.
 
코카잎의 맛은 처음엔 적응하기가 힘들다. 그냥 말린 풀잎을 씹는 것인데, 그 맛이 매우 쓰고 떫다. 하지만 고산병 치료에 좋아 고산지대에 적응을 못한 여행자들은 한동안 열심히 이 코카잎을 씹으며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씹다 보면 이게 은근 중독이 되어서 나중에는 없으면 허전할 정도이다. 이...이런게 바로 마약성분의 힘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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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2m에 긴 머리 칭칭 감고 외계인 믿는 ‘교주’

 
코카샵에서 브라우니와 함께 맛있는 코카티를 마시고 숙소로 행했다. 쿠스코에 도착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알아놓은 숙소는, 고도가 높은 쿠스코의 전망까지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헐떡이며 물어물어 겨우 숙소에 찾아갔다. 짐을 풀고 테라스에서 아직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는 쿠스코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드디어 이곳에 왔구나 싶었다. 여행자들의 낭만인 마추픽추가 있는 곳, 길 곳곳에 아직까지 그 시절의 흔적이 듬뿍 묻어나오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 
 
뭐가 그렇게 좋아서 쿠스코에 2주나 머물렀는지 모르겠다. ‘매일 하루일과처럼 코카샵에 가서 차를 마시며 정치나 환경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광장 근처의 카페에서 브라우니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밤마다 음악공연을 즐겼다’라고 써 놓으니 왠지 방탕한 생활을 즐긴 것 같다. 쿠스코는 전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도시이기에, 광장에 나가 보면 지나가는 사람의 1/5 정도가 관광객이다. 아이들은 작은 상자에 담배를 담고 관광객들에게 짧은 영어로 말을 건다. 골목 사이사이마다 영어 간판을 단 레스토랑이나 숙소가 들어서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있는 거리를 다니다 보면 맨발에 나무로 만든 모자를 쓰고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와이키(케츄아어로 형제)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 와이키들의 정신적 지주 혹은 지도자는 퀘차콰탈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인데, 키가 거의 2m에 육박하고 바닥까지 끌릴 듯한 긴 머리를 칭칭 감고 있다. 이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마야인 달력을 믿는다. 퀘차콰탈과는 세 번 정도, 그들이 사는 집에 방문해서 만난 적이 있는데 도대체 무슨 사이비 종교인지 잘 이해가 안됐다.
 
그들은 채식을 하고 전기를 쓰지 않는다. 그릇도 냄비도 다 손수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이며, 화장실 또한 땅에 구멍을 파고 대충 천으로 가려놓은 게 다이다. 21세기에 원시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 종교(가 맞는 것 같다)의 신도들은 맨발로 쿠스코 거리를 활보하며 퀘차콰탈의 사상을 전파하기 바쁘다. 그들의 첫 번째 목표는 정부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손으로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워서 그 위력을 정부에 보여주는 것이란다. 음. 무슨 사상인지 도무지 이해는 안 됐지만 사이비 히피종교 수장을 만난 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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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정복자들이 허물고 그 위에 성당 지어

 
쿠스코의 건물들은 겉보기엔 서양식 건물처럼 보여도 잘 살펴보면 건물의 밑 부분이 잉카시대 건축양식을 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교하고 네모난 돌로 탄탄하게 쌓아 올린 토대는 허옇게 칠이 된 지배자들의 건축물을 묵묵히 지탱하고 있다. 잉카시대의 건축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나의 관심을 끈 건 코리칸차 사원이었다. 
 
쿠스코에는 전설로 전해지던 황금사원이 있었다. 그 사원은 태양신을 섬기는 사원으로, 잉카 시절 쿠스코의 중심사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그 사원은 거짓말처럼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쿠스코 사람들은 전설로 전해 내려온 그 사원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1650년과 1950년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지진으로 인해 쿠스코 시내 중심에 세워진 산토도밍고 성당이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설의 황금사원 코리칸차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코리칸차의 일부를 무너트리고 그 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지은 것이다.
 
힘없이 무너져버린 스페인식 건물 아래, 잉카의 돌들은 흐트러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실제로 코리칸차 사원에 가보면, 잉카의 뛰어난 석조기술과 엉성하게 짜 맞춰진 스페인의 기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잉카의 건축기술은 마치 레고처럼 돌과 돌 사이에 구멍을 뚫어 다른 돌과 짜 맞추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잉카 이전시대의 문명인 티와나쿠 문명의 건축기술을 기초로 잉카시대에 발전한 것이다. 쿠스코에서는 근교의 유적을 하나의 티켓으로 둘러볼 수 있는 입장권을 파는데, 그 입장권에 이 코리칸차 사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실 쿠스코에 오면 다들 유적 몇 개씩은 보고 간다. 마추픽추는 물론이고, 그 외에도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곳이 쿠스코이다. 물론 돌길 그 자체도. 하지만 유적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는 그저 사람들을 만나고 시내를 활보하고 쇼핑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며칠을 있다 보니 마추픽추에 가는 것마저 귀찮아졌다. 마추픽추가 보고 싶어서 그 먼 길을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 마추픽추는 뭐랄까, 숙제 같은 것이었다. 하기는 싫은데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것.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에는 실망만 하고 돌아선 기억이 많은 터라 또 실망만 할 것 같아 의욕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안 보고 가는 것도 왠지 쿨해 보이는 것 같고, 여기까지 왔으니 꼭 봐야 할 것도  같고. 게다가 왜 이렇게 가는 길은 까다로운지….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이 관문마을인 아구아스 깔리엔테스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인데, 왕복표가 100달러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그 외에도 4일 동안 걸어서 마추픽추에 가는 잉카트레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서 가는 가장 싼 방법 등이 있다. 물론 나는 가장 싸게 가는 방법을 택했다. 국제학생증까지 도둑맞아 약 250달러의 입장료를 고스란히 페루 정부에 바쳐야 하는 내 신세로서는 도저히 잉카트레일이고 기차고 선택할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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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길, 철길 따라 터벅터벅

 
지금까지 같이 다니던 동행이 집으로 떠나고, 나도 그날 아침 간단한 짐을 챙겨 마추픽추로 떠났다. 지금까지 계속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길이었다. 하지만 예전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그 친구와 여행하며 배운 많은 것들을 살려, 이제는 혼자서 재미있게 내 여행을 채우면 되겠다는 생각에 즐거워졌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도 감사했다. 여행은 딱히 뭔가를 배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많은 것이 자기 안에 쌓여 있는 걸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아침 8시 버스를 타면 관문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저녁 6시쯤 도착한다. 좁디좁은 버스에는 이미 젊은 관광객들이 몇몇 타고 있었다. 4시간 정도를 달려서 산타마리아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콜렉티보를 갈아타 온천으로 유명한 산타테레사 까지 간 후에 또 콜렉티보를 갈아타야 한다.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나중엔 2-3시간 동안 산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꽤나 번거로웠지만 돈이 없는 배낭 여행자에겐 안성맞춤인 것 같다. 산타테레사에서 콜렉티보를 타고 내린 곳은 이드라라고 하는 기차역이다. 여기서부터 두세 시간 철길을 따라 걸으면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가 나온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 몇 명이 철길 따라 걷기 시작했지만 나는 배가 너무 고파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하기로 했다. 철길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5솔 짜리 메뉴를 먹고, 초콜릿과 물을 사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번 늦어지니 먼저 걷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 터벅터벅 걷게 됐다. 걷다가 기차가 오면 옆으로 피하고, 가끔가다 현지인들을 마주치면 ‘Hola’ 하고 가볍게 인사했다. 원래 한국에서도 혼자 산길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때도 처음엔 굉장히 기분이 상쾌했다. 정글의 공기를 맛보고 초코우유색 강이 때때로 눈앞에 나타나면 초코우유가 먹고 싶어 침을 삼키기도 했다. 물론 우기를 맞은 강은 날 집어삼킬 듯 쿨렁쿨렁 빠른 속도로 춤을 췄지만 말이다. 
 
 
어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날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린다. 판쵸 우의를 뒤집어쓰고 깜깜해지기 전까지 마을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성큼성큼 짧은 다리를 쫙쫙 벌려 파워워킹을 했다. 비는 오고, 판초 우의를 뒤집어써서 땀은 나고 마을까진 아직 먼 것 같고 배는 고프고…. 발걸음을 재촉해 정신없이 걷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어슴푸레하게 코발트블루와 보랏빛을 섞어 놓은 듯 한 색깔의 풍경에, 내 앞에 보이는 거대한 산줄기는 안개로 옷을 만들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찔했다. 산이 나에게 올 테면 와보라고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안개에 휩싸인 산이 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역시나 산은 살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산은 살아있고, 내가 태어나기 몇 천 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들과 역사의 변화를 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무서운 게 아닌, 날 보고 있는 산이 무서워졌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드디어, 드디어 마을에 도착이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마을엔 비옷을 입은 외국 관광객들이 레스토랑의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마을을 몇 바퀴 돈 뒤, 싱글에 화장실까지 딸린 방을 싸게 잡아 짐을 풀고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마추픽추 관문마을에 맞게, 외국인 취향의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즐비하고 가격도 비쌌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하루에 입장인원 200명 한정인 와이나피추에 올라갈 수 있는데, 내 체력을 너무 맹신했나 보다. 그렇게 피로에 찌들었는데도 밤 12시 정도에 잤다. 결국 다음날 일어나보니 아침 7시 반. 보통 와이나피추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5시쯤 일어나서 간다고 하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눈물의 265달러, 이거 실망하는 거 아냐?
 
마추픽추의 하이라이트는 와이나피추에 올라가서 보는 전경이라고 들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마추픽추가 별로였다는 사람들은 많이 봤는데 와이나피추에서 본 마추픽추는 최고라고 했다. 안 보면 후회할 거라고. 서둘러서 짐을 챙겨 버스를 타고는 마추픽추로 향했다. 매표소에 내려서 눈물을 머금고 265달러를 지불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 옆에 마추픽추 도장이 있는데, 다들 여권에 그 도장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표를 끊고 들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던 동양인 여행객들도 많아 왠지 친밀감이 들었다. 아침 9시쯤의 마추픽추는 자욱한 안개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단 나는 와이나피추는 포기하고 사람들이 없는 후미진 곳의 잉카인의 다리를 보러 갔다. 빗물을 듬뿍 머금은 좁은 땅을 밟고 들어간 그곳은, 길 바로 옆이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그런데 안개에 뒤덮여 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심심해져서 경비 아저씨에게 말을 걸고, 같이 경비실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예전 같으면 나 혼자 말도 잘 안 통하는 낯선 사람과 말을 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그새 이렇게 대담해졌나 보다. 아저씨는 지금은 안개가 자욱하지만 점심쯤 되면 안개가 걷혀 마추픽추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혹시 모르니 와이나피추에 가보라는 경비아저씨의 말을 따라 와이나피추 쪽으로 슬슬 내려갔다. 역시나 이미 번호표는 끝났다. 와이나피추는 “늙은 봉우리”라는 뜻인데, 이곳에 올라가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면 마추픽추가 왜 이렇게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추픽추의 별명은 “잃어버린 공중도시”다. 하늘에서 보지 않는 한 그 존재 자체를 알 수 없고 가는 길도 딱 하나 있을 뿐이다. 잉카인들이 왜 이곳에 이런 건물을 세웠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오후가 되니 비가 개고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사진 찍는 포인트에 가서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본 세계 문화유산은 나에게 실망만 안겨줬다. 내국인의 입장료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외국인 입장료에서부터 내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지마할에서는 성추행까지 당한 터라 세계유산에 대해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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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 사주고 교통비까지 내준 그 남자
 
기대를 버려서 그런지, 아니면 마추픽추가 원래 사람의 마음에 파고드는 것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마추픽추는 기대 이상이었다. 가이드도, 기본 지식도 없었지만 산꼭대기에 세워진 정교한 석조건축은 이 역사를 제대로 알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성적표를 확인해 보고 나서의 마음과 비슷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잉카트레일에 참가한 친구들은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걸어오며 유적들의 의미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마추픽추에 도착했을 때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냥 마추픽추에 올라온 나도 어느 정도의 감동을 느꼈는데, 잉카트레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한 가지 방법을 택하면 다른 방법으로 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다시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항상 내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동반한다. 
 
점심쯤 되어 다시 마을로 돌아가 잠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내 앞에서 어느 일본인 할아버지가 바나나를 사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쳐 인사를 하자 웃으며 바나나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 할아버지와 서서 몇 분간 수다를 떨고 다시 판초 우의를 뒤집어쓰고 쿠스코를 향해 출발했다. 혼자 왔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뒤에서 현지인 남자가 와서 이드로까지 가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막차가 4시 정도까지밖에 없다며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자신도 그쪽으로 가니 같이 가자고 했다. 4시까지는 2시간이 채 안 남아 있었다. 헐레벌떡 뛰는 듯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는 쿠스코에 살고 있으니 나중에 도착해서 연락하라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스페인어를 계속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상대는 영어를 거의 몰랐지만, 내 어설픈 스페인어로도 의사 전달은 되나 보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드로에 도착해서 콜렉티보를 잡은 뒤, 그는 나에게 치챠(페루의 전통적인 옥수수로 만든 음료수.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달착지근하면서도 오묘한 게 맛있다) 한 잔을 대접했다. 좋다고 받아 마시고는 콜렉티보를 타고 가는데 그는 산타테레사까지만 간다고 했다. 산타테레사에 내려서 내가 타고 갈 콜렉티보까지 잡아주고는 교통비까지 내주었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그는 천사인가보다. 아직까지 에콰도르에서 싹 다 털린 것에 대한 ‘운명의 보상’이 유효한지, 나는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난 것 같다. 
 
 
잉카의 심장 쿠스코, ‘빠순이’가 되다
 
산타마리아에서 쿠스코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자리가 없어 운전사 옆 보조의자에 앉아갔다. 나는 의자가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운전사 의자와 객석 사이의 틈에 찌그러져 앉아갔다. 눈 덮인 안데스의 검푸른 봉우리가 보름달이 뿜어내는 빛에 윤곽을 드러내는 걸  보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운전석 뒤에 찌그러져 있던 아저씨가 저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쿠스코가 너무 아름다워 살고 싶다고 하니 굉장히 좋아했다. 빈말이 아니라 쿠스코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도시이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계속 머무르고 싶어지는 곳이다. 
 
버스는 안데스 고개를 구비구비 넘어가면서 가끔 차를 세워 안데스의 물을 담았다. 페루나 볼리비아에서는 이렇게 받은 물을 냉각수로 사용한다. 버스가 쿠스코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쯤이었다. 그 시간에 밖에 나가는 건 조금 위험할 것 같아 버스에서 자기로 했다. 칠레나 아르헨티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버스가 애매한 시간에 도착할 경우, 버스 안에서 잘 수 있게 해준다. 나 말고도 운전석 뒤에 찌그러져 있던 아저씨까지 포함해 몇 명이 버스 안에서 자게 되었다. 한두 시간쯤 잤을까, 그 아저씨가 날 깨워서 아직 이른 시간이라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택시를 잡아 숙소까지 간 뒤, 그는 내가 숙소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까지 멀리서 지켜봐 주었다.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마추픽추에 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추픽추 자체가 아닌, 혼자 걸어간 산길과 수많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정말 이제 막 시작한 혼자만의 여행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 아무래도 새로운 만남이 그만큼 적어진다. 여행은 그 장소에 가서 보는 것만이 아닌,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에 따라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쿠스코에서는 그 뒤로 이틀 정도 더 있다가 코카샵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친구가 마침 나와 루트가 비슷해 같이 볼리비아로 떠나기로 했다. 페루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도시 쿠스코를 떠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빨리 떠나고 싶은 도시가 있고 정말 떠나기 싫어서 계속 눌러있게 되는 도시가 있는데 나에게는 쿠스코가 그 첫 번째 도시였던 것 같다. 좋은 만남이 있었고 안데스 음악이 흐르는 도시. 혹자는 너무 관광지 같아서 싫다고 하지만 그 후로 나는 누군가가 쿠스코에 간다고 하면 반갑게 이야기하며 쿠스코 칭찬에 열을 올리는 쿠스코 ‘빠순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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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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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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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