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눈뜨니 거대한 ‘반딧불이 크리스마스트리’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6> 드디어 아마존
숙소 책꽂이의 여행책자 넘기다 27달러 횡재
더위에 홀라당 하고 풍덩, 물고기 공격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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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허파 아마존. 헤아릴 수 없는 나무들의 바다, 그야말로 밀림.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황토색의 거대한 물줄기.
 
남미 여행의 목표중 하나인 아마존에 드디어 가게 됐다.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마존에 보트를 타고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배를 타고 아마존 유역의 대도시 이키토스 까지 가는데 5일, 버스 이동 시간까지 하면 거의 1주일이 걸린다. 하지만 역시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은 정보력! 영어만 읽으면 20시간 자고 난 후에도 졸린 나는  여행 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행이 동행인 친구가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시민권자이기에 숙소 책꽂이에 꽂혀있던 론리 플래닛을 보며 정보를 얻었다.
 
론리 플래닛을 보는데, 가끔씩 1달러 지폐가 나오기도 하고, 중간 페이지쯤에는 무려 20달러 지폐가 나오기도 했다! 오오 이것은 신의 축복인가! 배낭여행자의 처지를 잘 아는 어느 선량한 여행자가 책과 함께 후배 여행자들에게 남겨준 선물인지, 아니면 그저 끼워놓고 잊은 채로 책을 기증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총 27달러를 챙기고 정보까지 얻었다.
 
정보에 의하면 잘 알려진 푸칼파-이키토스 구간은 배로 일주일 정도가 걸리지만, 유리마구아스-이키토스 구간은 3~4일 걸린단다. 이동시간을 아끼기 위해 우리는 이 루트를 선택했다. 게다가 유리마구아스에서 가게 되면 중간에 있는 국립공원에서 더 싸게 투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땀이 아주 줄줄…나시티 한 장 남기고 다 벗었다
 
와라스를 떠나 유리마구아스로 가기 위한 관문도시인 타라포토에 가기 위해 다시 트루히요로 갔다. 트루히요에서 타라포토까지 한 12시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타라포토에 내리자마자 후끈후끈 열기가 올라와 입었던 옷을 나시티 한 장 남기고 다 벗었다. 드디어 아마존이구나. 타라포토에서 유리마구아스까지는 지프나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부르는 값이 제일 싼 합승택시를 이용했다. 
 
유리마구아스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울창한 나무들과 적색 흙이 ‘여기서부터 지구의 허파가 시작되는 것이오’ 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에어컨은 기대도 안했지만 창문을 열어도 더운, 7명이 탄 택시는(대형택시가 아니다, 그냥 일반 승용차 크기다) 찜통 그 자체였다. 땀이 삐질삐질 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줄줄 흘러내린다. 날씨가 더우면 정신 줄을 놓아버릴 정도로 더위에 약한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 싶었지만 정신이 혼미했다. 오고 싶어서 온 아마존이라지만 이제부터 어찌 견디나 벌써부터 심란해졌다. 한시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한 유리마구아스는 황토색 강이 흐르는 곳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나름 시내 중심가에 가서 이곳저곳 ‘HOSTAL’ 간판이 나와 있는 곳을 돌아다니며 흥정을 했고, 나름 괜찮은 가격에 깨끗하고 좋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묵을 곳을 잡는 것이 가장 귀찮다. 가이드북도 없는 상태로 마이너한 마을에 가면 20kg짜리 거대한 배낭과 보조 가방을 짊어지고 발품을 팔아 방을 구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을 잡자마자 씻고 나왔는데, 숙소 로비에 가이드라 하는 남자가 왔다. 마을이 작아 관광객이 오면 다 아는지, 로비에서 투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키토스까지 가는 길의 도중에서 라구나스라는 정글 마을에 내려, 그곳에서 파카야 국립공원으로 투어를 갈 생각이었다. 가이드의 이름은 미겔이었다. 미겔은 파카야 국립공원으로 가는 투어, 아이뻬냐 강을 타고 도는 투어를 소개했고, 3박4일 투어 예정이라면 아이뻬냐로 가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파카야 국립공원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일주일 정도는 투어를 해야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고, 80솔의 입장료가 별도로 붙는다고 했다. 빈곤에서 허덕이던 나는 당연히 입장료가 들지 않는 아이뻬냐를 택했다. 하지만 아이뻬냐에서는 아나콘다를 볼 수 없다고 했다. 미겔은 사진첩과 추천글 모음을 들고 와 보여주며, 한국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간간히 일본어는 보여도 한국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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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에 누워 오렌지빛 노을에 전통 생음악, 환상적 보트여행
 
투어비용은 깎아서 하루에 30달러. 강변에 위치한 미겔의 사무실에 도착하니 마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마존에 깔리는 강렬한 오렌지빛 석양은 강까지 물들이고 이름 모를 붉은 열대의 꽃까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미장센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때 본 아마존의 노을은, 지금까지 본 노을 중 단연 최고였다. 보트를 타고 가기 위해 미겔과 함께 해먹(그물침대)을 사고, 다음날 아침 9시에 항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아침에 항구에서 미겔을 다시 만나, 우리가 3박4일 동안 먹을 빵과 식량을 작은 배에 싣고 배의 2층에 해먹을 걸었다. 배는 작은데 사람은 많아 해먹도 사이사이를 비집고 가판 바로 옆에 겨우 걸었다. 해먹에 누워 흔들흔들 아마존의 공기를 마시며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서는 갑판에 올라가 풍경을 삼켰다. 멍하니 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핑크색이 얼룩덜룩한 생물체가 강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잠겼다. 핑크 돌고래다! 이렇게 빨리 핑크 돌고래를 보게 되다니. 멍하니 강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갑판에서는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5명 정도가 전통악기로 안데스음악을 연주했다. 그렇게 능숙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아마존 안에서 보트를 타고 노을을 감상하며 거기에 배경음악까지 깔아주다니. 참으로 낭만적인 보트여행이다. 해먹에 누워서 음악을 감상하며 잠시 잠들었는데, 벌써 라구나스란다. 해먹을 정리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내렸다. 항구라고 해도 주변에 건물이 몇 채 있고, 전기도 안 들어와 마을의 빛이라곤 달빛과 촛불뿐이었다. 
 
항구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미겔의 장인이자 이번 투어의 가이드라고 하는 앞니 두 개가 쏘옥 빠진 남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항구 바로 옆의 숙소에 데려다 주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 남자가 안내해 준 숙소는 방에 딸랑 침대와 모기장만 있고 벽에, 천장에, 바닥에 풍뎅이 같은 까만 벌레가 잔뜩 있었다. 씻을 곳도 없었다. 대충 이빨만 닦고 잠을 청했다.
 
 
금세 발갛게 익어버린 맨살, 햇살은 살인적
 
다음날 가이드의 집에 배낭을 놓고, 대충 3박 4일 동안 필요한 짐과 식량, 물을 챙겨서 항구로 갔다. 작은 카누에 나와 동행, 그리고 가이드인 후안 아저씨와 마가리타 아주머니. 이렇게 네 사람이 짐을 잔뜩 싣고 아이뻬냐 강을 향해 출발했다. 
 
모터보트가 없어 가이드 둘이서 노를 저었는데, 아마존의 햇살은 살인적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강 위를 허연 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카누 위에 몸을 맡겼다. 처음엔 카누 안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움직이는 것도 무서웠다. 그대로 고정된 상태에서 몇 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다보니, 내 살은 보고만 있어도 화끈거리는 붉은 색으로 익어버렸다. 가이드는 둘 다 영어를 거의 한마디도 못했다. 아마존에서 자주 보이는 동물의 이름들만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말하는 것이 다였다. 그것도 후안은 “몽키”라고 말하고 나서는 발음이 재미있는지, 이빨이 없어 잇몸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며 낄낄댔다.
 
몇 시간 정도 강을 타고 가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강변에 드문드문 있는 현지인들의 집에 들렀다. 울창한 열대 나무 사이로 구아바가 떨어져 있고, 바나나나무에는 꽃이 피어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어린 아이 여러 명, 여인들이 서너 명,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들이 대여섯 명 있고, 대낮부터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현지인들은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고, 아이들은 흔히 보지 못하는 동양인들이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는지, 엄마의 치마폭 뒤에 숨어 호기심에 찬 눈빛을 보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한 잔의 술을 권했고,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이지만 그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단숨에 들이켰다. 이 조그만 동양 여자가 자기네 전통주를 단숨에 비워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알콜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냄새만 맡아도 벌써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쉽지만 사양했다.
 
대낮부터 술을 받아 마시고, 우리는 조금 떨어진 원두막 같은 집으로 가서 걸려있는 해먹에 누워 앵무새들과 놀고, 마가리타는 점심준비를 했다. 아마존에서 처음 먹은 음식은, 참치스파게티다. 아마존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겠지, 기대를 잔뜩 했건만 스파게티라니. 그래도 마가리타가 정성껏 요리해준 게 어딘가. 가득 담은 한 접시를 금세 비웠다. 마가리타의 요리솜씨는 최고였다! 덕분에 나는 아마존 투어 내내 원래 양보다 항상 과식을 해서 배탈이 나기도 했다. 점심을 다 먹고, 화장실을 물어보자 저 멀리 안 보이는 데로 가서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아마존에서는 널리고 깔린 게 화장실이다.
 
 
모기는 유독 이방인만 옷을 뚫고 죽어라 물어대
 
맛있게 밥도 먹었겠다, 몸도 마음도 가뿐해져 다시 카누에 타고  아이뻬냐를 향해 갔다. 그렇게 몇 시간 정도 갔을까, 배를 대고 육지로 올라가 평평한 곳을 찾았다. 후안은 짐을 풀고 낫으로 풀을 베어 나뭇가지에 모기장을 치고 우리의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엥, 벌써 자는 건 아니겠지? 오늘 한 것이라고는 먹고 싸고 카누를 탄 것밖에는 없는데. 마가리타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빵과 커피로 간단한 저녁을 주고 이제 오늘 할 일은 밤 10시쯤 악어를 잡으러 가는 일밖에는 없다며 편히 쉬라고 했다.
 
아직 주위는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모기는 어찌나 그렇게 많은지, 긴 팔 긴 바지를 입고도 달라붙는 모기떼에 정신을 못 차렸다. 아마존의 모기떼는 바지도 뚫고 피를 빨아먹을 정도로 강력했다. 새로운 피 맛을 갈구하는지, 웃옷을 벗고 있는 후안에게는 갈 생각도 안하고 우리만 죽어라 공격했다. 덕분에 빨갛게 익어 움직이기도 힘든 나는 그대로 모기의 제물이 되었다. 안전한 곳을 찾아 모기장 안으로 냉큼 기어들어가서 누웠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나보다.
 
후안이 악어사냥을 가자며 우리를 깨웠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아마존의 밤은 노 젓는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핑크 돌고래의 물 뿜는 소리만이 울렸다. 열대 나무의 그림자와 낮게 깔린 태양처럼 크고 오렌지 빛의 달과 강물에 비친 달빛. 아마존의 야경은 그야말로 태고의 신비를 뽐내고 있는 듯 했다. 육지 쪽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후안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숨을 죽이다가 한순간 작살을 휙 던졌다. 그대로 잠시 멈춰 있다가 잡아 올린 작살 끝에는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힘없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후안은 우리에게 씨익 웃어 보이며 내일 이걸로 요리를 해먹을 거라 했다. 그렇게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았지만 악어는 보이지 않아, 악어사냥은 다음날로 미루고 다시 돌아왔다. 모기장만을 친 돗자리 위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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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잡아온 물고기는 뼈만 앙상, 이럴 수가 T_T 
 
다음날 아침, 날이 밝아 눈을 뜨니 마가리타는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인사를 하고 만들어 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어제 잡은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불을 땐 곳 옆에 있는 냄비를 들여다보니 벌써 그 물고기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이럴 수가 T_T 조금 섭섭했지만 이미 없어진 생선을 어쩌랴. 짐을 정리하고 다시 카누에 올라탔다.
 
뜨거운 햇살 아래 몇 시간  가다보니 황토색 강물과 검은색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후안은 여기서부터가 아이뻬냐 강이라고 했다. 아이뻬냐는 그 물이 검기에 검은 강으로 불린다고 한다. 강과 강이 만나는 지점은 나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황토색 강물과 흑색 강물이 보란 듯이 둘로 확 나뉘어져, 아이뻬냐에 들어선 순간 강물은 잠잠하고 검은 빛을 띠었다. 주위 풍경도 달라 보였다. 후안과 마가리타는 열대의 새들이 날아갈 때마다 이름을 알려주었고, 멀리서 원숭이 울음이 들릴 때마다, 그 원숭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핑크 돌고래와 킹피셔는 질릴 정도로 보았다.
 
후안은 5일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마존 원시부족을 볼 수 있지만, 언어가 달라 소통하기가 어렵고 자신도 딱 한번밖에는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존에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원시부족을 만났냐고 물어보는데, 아마존 원시부족들은 일반 여행자들은 만나기가 힘들다. 브라질의 경우, 정부의 허가증이 있거나, 부족장의 초대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첫날과 같이, 점심을 먹고는 또 카누를 타고, 저녁은 간단하게 빵으로 먹었다. 모기에 시달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우리를 위해 마가리타는 자신의 옷으로 부채질까지 해줬다. 그런 여왕 대접을 받으니 괜스레 마가리타에게 미안해졌다. 그날 밤에는 어제 못 잡았던 악어를 잡으러 가기로 했다. 모기장 안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후안이 우리를 깨웠다. 눈을 뜨자마자 본 풍경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였다. 거대한 나무에 반딧불이 수백 마리 모여, 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100% 자연산 크리스마스트리는 황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찬찬히 감상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후안은 우리를 재촉했다. 
 
보통 악어는 밤에 사냥을 하는데, 악어가 있을 만한 물가에 불을 비추다 보면 두 눈이 빨갛게 빛나는 악어를 찾을 수 있다. 바보 같은 악어는 눈에 불을 비추면 꿈쩍 못하고 그대로 잡혀버린다. 우리가 잡은 악어는 팔뚝 정도 크기의 새끼악어였다. 악어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던데...흐흐. 침을 꿀꺽 삼키며 악어의 뒷다리에 끈을 묶어 카누에 연결했다. 물고기도 몇 마리 잡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귀여운 새끼 악어는 결국 엄마를 찾아 탈출에 성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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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듯이 쏟아지다 금방 핑크빛, 하늘은 천의 얼굴

 
우리가 드디어 아마존의 물고기를 맛볼 수 있던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요리를 하고 있는 마가리타에게 친구가 튜브 고추장을 건네며 한국의 소스인데 이걸 한번 써보겠냐고 했다. 레몬을 넣고 생선을 조리던 마가리타는 고추장을 약간 풀어 넣었고, 그걸 맛본 후안은 코리안 살사(한국 소스)가 너무 맛있다며 극찬을 했다. 마가리타의 뛰어난 요리솜씨 덕분인지, 아마존의 물고기는 입에 넣는 순간 혀끝에서 사르르 녹았다.
 
게다가 후안은 완전히 고추장에 맛에 푸욱 빠져버렸는지, 그날 점심에도 한국 소스를 쓰겠냐고 마가리타에게 물어보니, 저 멀리 있던 후안이 “Si!!!!!!!!!!!!!!!!!!!!!!!!! (Yes)” 라며 눈을 크게 뜨고 달려왔다. 튜브 고추장이라 양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요리하고 있는 마가리타 옆에서 다 쓴 고추장 튜브를 매우 아쉬워하며 튜브를 쪼옥 쪼옥 빨고 있었다. 후안은 우리가 떠날 때도 한국 소스 남은 것 없냐며 고추장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3박 4일 동안 이빨만 겨우 닦고 물 대신 땀으로 샤워를 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한 참을 수 없는 더위가 괴롭혀, 옷을 벗어던지고 아이뻬냐에 뛰어들었다. 강바닥은 진흙 위에 나뭇잎이 덮여있는지, 푹신푹신해서 발이 쑤욱 빠졌다. 무더위에 못 참고 뛰어든 강물인데, 이번엔 물고기들이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그만 물고기들이 날 살짝 살짝 깨물어 움찔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신기한 건 며칠 동안 머리를 못 감은데다 땀까지 흘려서 떡이 된 머리를 몇 가닥 뭉쳐서 강물에 던져보니 물고기들이 떡밥인줄 알고 냉큼냉큼 잘도 받아먹는다는 것이다.
 
아마존 투어의 마지막 날에는 미친 듯이 비가 휘몰아쳤다. 카누 위에서 스콜을 맞는 기분이란…. 약 20분쯤 격한 비가 쏟아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확 그쳐버리는 것이 신기했다. 게다가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은 아직 오후 3시인데 연한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아마존의 하늘은 정말 다양다색하다. 붉은 오렌지가 되기도 하고 엷은 핑크가 되기도 하고 별이 밤하늘의 어둠을 가릴 정도로 쏟아지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과식해서 배탈도 나기도 하면서, 3박4일 동안의 아마존 투어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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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냉수샤워, 아아, 정말 이것은 천국!
 
라구나스로 돌아와, 숙소를 잡고 꿈에 그리던 냉수샤워를 했다. 아아, 정말 이것은 천국이다, 천국! 뻑적지근한 머리를 샴푸로 감아내고 몸에 비누칠을 하는데 하루 종일 샤워를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평소엔 별 것 아닌 일에 감동하고 감사함을 느낀다더니, 딱 맞다. 시원하게 씻은 뒤, 숙소에서 다른 방에 묵고 있는 미국 여행자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그들 역시 미겔이 데려온 그룹인데, 가이드북보다 싸게 신청했다고 좋아했다. 그들이 싸다고 좋아하던 가격은 하루에 70달러였다. 분명히 미겔이 처음에 자기는 현지인이건,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똑같은 가격을 받는다고 했는데….
 
마침 저녁에 후안네 집에 초대받아 미겔 식구와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가니, 다들 TV 앞에 모여 이소룡의 생애를 다룬 용쟁호투를 보고 있었다. 이런 아마존의 작은 마을에도 TV나 DVD가 있고, 심지어 마을엔 단 한 곳뿐이지만 PC방도 있다. 문제는 밤 10시가 되면 모든 전기가 끊긴다. 후안이 뒤뜰에서 따준 코코넛 물을 마시고 나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미겔에게 미국인 그룹의 가격에 대해 물어보니 우물쭈물 하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꺼낸 화제는, 내일 배를 타기 전에 잠시 파카야 국립공원에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입장료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 입구에서 수영하는 것은 돈을 안 내도 된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부터 미겔의 가족들과 함께 모터택시를 타고 파카야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정글지방에서 많이 먹는 윳카(식물의 뿌리로, 고구마나 감자와 비슷하다)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미겔은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게릴라에게 점령당해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계인 후지모리 대통령이 재임 당시 게릴라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게릴라를 소탕해서 지금은 평화롭다고 한다. 그 덕분에 페루인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을 그리워한다. 물론 지금 대통령인 알란 가르시아가 최악이라는 것도 있지만.
 
 
‘코리안 살사’ 고추장에 반한 그와 정들자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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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도착해 우리는 카누를 빌려 공원 안쪽으로 조금 들어갔다. 딱 든 생각은, 3박 4일이라도 아이뻬냐가 아닌 파카야로 왔어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상상하던 아마존은 파카야였다. 우거진 식물과 거대한 나무, 아나콘다까지. 이미 끝났는데 아쉬워 해봤자다. 다시 공원 입구로 돌아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에 뛰어들었다. 몸이 조금 식으면 다시 올라와서 물기를 말리고, 또 더워지면 뛰어들고를 반복하다가 미겔이 사온 파인애플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6일 동안 정든 후안네 식구들과 한가롭고 평화로운 아마존의 작은 마을을 떠나야 한다니,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배 시간은 밤 11시였다.
 
마을로 돌아와 주스가게에서 아마존 열대과일로 만든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짐을 챙겨 배 시간이 될 때까지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마을에는 백인이 한 명 사는데, 그 백인은 샤먼이 되기 위해 이 마을에서 4년 동안 샤머니즘을 공부하고 있단다. 배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사고 밤 10시쯤 슬슬 항구 쪽으로 갔다. 멍하니 밤하늘을 보면서 기다린 지 두 시간이 넘었는데도 배는 올 생각을 안한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영문을 몰라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배가 연착한다고 한다. 그것도 새벽 4시에 도착한단다. 정전이 되어버린 아마존 시골마을에서 딱히 할 것도 없어, 첫날 묵었던 항구 바로 앞 숙소의 기둥에 해먹을 걸고 잠을 청했다. 이미 그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해먹을 걸고 있어, 겨우 겨우 걸었는데 자다가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해먹의 끈이 풀린 것이다. 나 때문에 옆에서 자고 있던 아저씨가 깨고, 빙긋 웃으며 다시 해먹을 튼튼하게 매어줬다. 
 
꿈꾸는 기계라 불리는 해먹에서 선잠을 자고, 고동소리에 잠을 깬 것은 아침 7시 반이었다. 배를 타려고 짐을 챙겨 나가자, 미겔과 후안이 인사를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여행자 중에서 우리가 가장 친근하고 좋았다는 그들의 인사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라구나스를 방문하게 된다면 고추장 한 통을 가져가 선물해주어야겠다.
 
글.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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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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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