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길 40㎞ 수 만년 섬의 시간 곧 뭍으로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강제윤시인의 섬기행] 도초도·비금도 (상)

 

잇고 잇고 이어져 국도 1호선 시발점 될 판

호남 첫 염전…들판은 간척으로 넓고 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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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에는 신안 군청이 없다. 신안 군청은 목포에 있다. 목포 땅에 신안군의 조차지가 있는 셈이다. 신안 섬사람들은 병원도, 시장도, 예식장도 모두 목포나 광주로 간다. 목포는 뭍과 신안의 섬들을 이어주는 통로다. 신안군과 목포시의 분리는 행정편의와 정치적 이해에 따른 임의적 구분이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만 목포와 신안의 구별이 중요할 뿐 섬사람들에게 그 구별은 무용하고 무의미하다. 신안의 섬사람들은 거의가 목포항으로 모여들고 목포항에서 흩어진다.

 

신안의 74개 유인도, 섬들은 각각이 하나의 소국처럼 독립적이다. 신안군은 섬 왕국, 이 나라 섬의 30% 가량이 신안에 모여 있다. 섬들은 본래 대부분이 산이었지만 지금은 간척으로 평지가 더 많아졌다. 그 간척지에서 쌀과 시금치와 대파와 고구마 등의 농작물이 나고 염전에서는 천일염이 생산 된다.

 

목포항에서 출항한 배가 압해, 외달, 팔금, 안좌, 노대, 사치 등의 섬 사이 해로를 통과해 도초도에 기항한다. 여객들을 내려주고 쾌속의 여객선은 최종 목적지 홍도를 향해 떠난다. 여객선은 서남문 대교로 연도된 도초와 비금 선착장을 오전과 오후에 한 차례씩 번갈아가며 들른다. 도초, 비금은 목포에서 4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바다의 섬이지만 수 만년 이어져 온 섬의 시간도 이제 곧 끝이 날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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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좌와 팔금, 자은과 암태, 비금과 도초는 각각의 두 섬들끼리 연도가 되었다. 압해도는 목포와 연륙이 되었다. 서로 떨어진 섬들 사이에도 머지않아 다리가 놓여 질 예정이다. 마침내 섬들이 모두 목포로 연결이 되고 나면 국도 1호선의 시작은 도초도가 되는 것이다. 황해 바다에 물이 들기 전에는 이곳 또한 육지였으니 섬이 뭍으로 이어지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섬의 시간이 끝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활력은 횟집에서 멈추고 양조장은 오래 전에 문 닫아

 

도초도는 선창작 부근에 횟집과 식당이 몰려 있다. 어디나 선창가는 나고 드는 사람들로 인해 상업 활동이 활발하다. 그러나 도초 선착장의 활력은 횟집들에서 멈춘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섬의 경제가 육지에 종속된 결과다. 중앙 사진관 주인은 택시 영업도 병행 한다. 사진관만으로는 가계가 어려운 까닭이다. 골목에도 상점들이 여럿 있지만 주인들은 모두 출타중이다. 미성전자, 평화 선구 철물점에도 주인이 없다. 선박용품을 판매하는 선구점 유리문에는 청거시, 홍거시, 그린새우 판매 안내 글씨가 새겨져 있다. 청거시, 홍거시는 갯지렁이의 종류다. 그런데 그린 새우는 또 뭔가. 낚시 미끼로 쓰는 크릴새우를 그린 새우로 잘못 표시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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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이발관은 불이 켜져 있다. 이발소 안에는 손님이 하나쯤 있나보다.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새어 나온다. 광명 양행에서는 신발, 내의, 가방, 기타 일절, 만물을 다 취급하지만 이 집도 주인은 출타중이다. 도초 양조장도 문을 닫았다. 폐업 한지 여러 해 돼 보이는 양조장. 무엇보다 나그네는 술을 만드는 지역의 양조장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다. 일본에 갔을 때 부러웠던 것의 하나가 시골은 물론이고 도시에도 소규모의 전통 양조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전통술이 살아 있었다. 가증스럽게도 자기 나라의 전통은 그대로 살려두고 식민지 조선의 오래된 전통들, 전통술 제조법 같은 것을 말살 해버린 것이 일본제국주의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해방이 되고 나서도 우리는 일제의 그 못된 버릇을 그대로 따랐다. 그나마 남아 있던 우리의 전통을 아주 말살해버린 것은 권력을 잡은 친일파의 후예들이었다. 

 

종합 화장품도 문이 잠겼다. 광명당 시계점에도 주인은 없다. 광명 방앗간에서는 참기름 짜는 냄새가 고소하다. 가을이라 고춧가루를 빻으러 나온 노인 몇이 차례를 기다린다. 땅거미가 지는가. 선창가 평화 약방에 불이 들어온다. 서남문대교 가로등에도 불이 켜진다. 도초도에 밤이 찾아든 것이다.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돌, 수억 년 세월 농축된 생명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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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의 간척으로 형성된 도초와 비금의 들은 넓고 찰지다. 비금도의 해안에는 호남에서 처음으로 천일염이 생산된 염전이 있고 도초도에는 신안군에서 가장 넓은 들, 고란 평야가 있다. 신안의 섬들에는 거듭된 간척으로 드넓은 땅이 많다. 도초항에서 도남 염전 길을 걷는다. 염전에서는 소금을 쓸어 모으는 써래질이 한창이다. 소금 창고에는 갓 거둬들인 소금이 산처럼 쌓였다. 7~8월에 생산된 소금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한다. 염도가 너무 높으면 쓴 맛이 나서 소금의 질이 떨어진다. 전 세계 바다의 평균 염분 농도는 35‰(퍼밀)이다. 1‰은 바닷물 1000g 속에는 1g의 염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염분 농도 27~8‰ 정도가 될 때 소금은 쓰지 않은 최적의 짠맛을 얻는다. 7~8월 소금의 품질이 좋은 것은 우기 직후라 염분의 농도가 너무 높지 않고 적절하기 때문이다. 

 

소금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돌이다. 소금의 과다 섭취가 고혈압 등 여러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지만 물과 함께 소금은 세포의 기능에 필수적인 요소다. 소금과 물이 부족하면 세포는 양양실조와 탈수로 죽어가고 말 것이다. 소금의 성분들이 위액인 '위염산'을 만든다. 소금이 부족하면 위액이 만들어지지 않아 소화기능이 마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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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혈액의 적혈구는 영양분과 산소를 세포에 운반하고 노폐물을 몸 밖으로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적혈구의 활동력이 약해지거나 수가 줄면 세포들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지 못해 노폐물이 배출되지 못하고 쌓인다. 적혈구의 주성분은 철분이다. 그 철분을 소화시키는 것이 소금이 만드는 위염산이다. 소금의 부족이 우리 몸을 질병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바다의 소금은 양이온과 음이온의 결합으로 생겨났다. 바닷물 속의 양이온인 나트륨이나 칼슘, 칼륨 등은 뭍의 땅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것이지만 염소나 황산 같은 음이온들은 바다에서 솟아난 화산 연기에서 첨가됐다. 금속원소인 나트륨이 치명적인 독, 염소와 반응하면 염화나트륨이 생성된다. 자연계는 신비의 연속이다. 생명을 죽이는 독이 생명을 살리는 약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소금을 먹는 것은 바다와 육지가 빚어낸 생명의 결정체를 먹는 일이다. 소금 알갱이 안에 농축된 수억 년 세월을 먹는 일이다. 바다는 소금의 저장고. 그러나 소금을 주는 바닷물이 태초부터 짰던 것은 아니다. 수억 년 세월, 땅 속이나 바위에 섞여 있던 화학물질들이 빗물과 함께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바다는 점차 염분이 늘어났고, 바다에서 생성된 화합물들과 섞여서 마침내 짠 소금물이 되었다.

 

로마 최초 도로는 소금길…사랑에 빠진 사람 어원도 소금

 

dog.jpg고대 로마 제국 최초의 도로는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내륙으로 소금을 나르기 위해 만든 길이었다. 로마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살락스(salax)라 불렀다. 소금에 절여진 것처럼 흐물흐물 한 사람들. 사랑에 빠지면 다들 그렇지 않은가. 월급을 일컫는 샐러리(salary)도 소금에서 나왔다. 한 때 로마의 병사들에게 소금으로 급료를 지불했던 데서 유래됐다. 흔히 야채를 일컫는 샐러드(salad)는 본디 소금에 절인 야채다. 

 

중국의 사천 지방에서는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소금 생산이 시작됐다. 기원전 1000년 전부터 해염(海鹽), 바다 소금을 생산한 기록도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서기 200년경부터 천연 가스를 이용해 소금을 굽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고구려조에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토록 오랜 옛날부터 소금은 사람살이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신안군은 천일염 생산의 메카다. 신안군에서 한국 천일염의 70% 이상이 생산 된다. 천일염 생산의 중심지에 도초, 비금, 증도 등의 섬이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고정적으로 도초나 비금을 찾는 피서객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서울이나 도시에서 소금구이 고깃집을 하는 사람들이다. 섬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해수욕도 즐기고 돌아갈 때는 타고 온 화물 트럭에 싸고 질 좋은 천일염을 가득 싣고 돌아간다.  

 

목선은 낡아가고, 선박수리집 여자도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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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교를 건너 비금도 해안 길을 걷는다. 비금면 수대리 송치, 남해 듸젤 앞 해변에는 폐선 한척이 정박해 있다. 폐선은 목선이다. 한때는 영원히 정박을 모를 것처럼 떠다녔을 목선. 폐선은 외지 사람이 이곳에 놔두고 간 것이다. 남해 듸젤 집 여자의 이야기다. 가지러 오겠다던 배 주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낡은 차를 폐차장에 보내지 않고 외딴 곳에 버린 것같이 목선도 그렇게 버려진 것이다. 저 목선처럼 정착을 모르고 떠도는 나그네도 마침내 어느 적 어느 해변에서 낡아가게 되겠지. 

 

도초와 비금 사이 해협에는 두 척의 어선이 떠 있다. 한때 조기와 꽃게로 흥청거렸던 바다. 조기와 꽃게 어장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이 바다에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젖새우다. 하지만 오늘 떠 있는 저 두 척의 배는 새우잡이 배가 아니다. 고기잡이 그물배. 멀리서도 배의 용도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배에 실린 선구들 덕분이다. 저 배들의 선미에는 붉은 깃발들이 꽂혀 있고 뱃머리에는 도르래가 장착되어 있다. 고기잡이배들은 그물을 내리고 저 깃대를 꽂아 위치를 표시한다. 새우잡이 배는 깃발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복수라고 하는 부표나 쥬브를 싣고 다닌다. 남해 듸젤 집 여자는 35년 전에 비금도로로 이주해 왔다. 선박 수리 기술자인 남편을 따라 들어왔다. 

 

"옛날에는 깡다리, 부서 그런 것이 많이 나왔지라. 인제 부서는 보자도 없어라우. 그래도 봄엔 깡다리랑 갑오징어가 쪼맨치 나긴 합디다만. 이 마을은 어장배도 많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장사하고 그래라우. 어디나 다 똑같지라. 사람 사는 거시사."

 

쥐 한 마리가 폐선의 선체로 기어오른다. 폐선은 쥐들의 보금자리가 된지 오래다. 폐선의 뱃머리는 아주 파손 되었고 배의 판자들을 이어주던 쇠도 부식되어 가루가 날린다. 여자는 더러 육지에 나가기도 하지만 섬이 그리워 이내 돌아온다. 

 

"나가면 심심해라우. 여그서는 넓은 바다도 보고 그란디 나가면 답답해라우."

 

송치마을 경로당 앞에 건립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의 내용이 재미있다. 비석의 기증자인 마을 노인 회장이 손수 비문을 지었다.

 

"노인은 구구팔팔 이삼사 하고 중장년은 사업이 번창하여 마을 전체가 부귀할 것이며 청소년은 전국 각지로 풀려 장래에 나라의 기둥감이 되리로다."

 

구구팔팔 하고 이삼사. 노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숫자가 9988과 234 라던가. 노인들은 건배를 할 때도 구구팔팔 이삼사를 외친다.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만 아프고 사흘째 죽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은 숫자. 건강하게 오래 살 수만 있다면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노인들의 담박한 태도가 부럽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는 진리를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그래도 나그네는 여전히 이 유한한 삶이, 존재의 사멸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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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제윤(http://blog.naver.com/bogil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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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