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 끝 은둔의 행복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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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군 소난지도. 작은 섬에 대형 펜션과 콘도가 여럿이다. 해안에는 또 대규모 펜션 공사가 한창이다. 경관 좋은 섬들은 외래 자본에 잠식당한 지 오래고, 어느 섬이나 개발로 이득을 보는 원주민은 드물다. 펜션들 때문에 해안 풍경이 막혀 답답하다. 누가 됐든 해안 풍경을 가리고,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은 섬이 가진 경관과 전망을 사유화하는 짓이다. 섬마을 공동의 재산을 독점하는 행위다. 그들은 땅의 일부만을 산 것이지 마을이 가진 경관마저 산 것은 아니다. 어느 때보다 경관 가치가 높아진 시대지만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작다. 경관을 해치는 건축은 규제하는 것이 옳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저 콘도나 펜션들이 마을공동체의 재산인 경관을 이용해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라도 마을에 귀속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 섬마을은 고요하다. 모두가 갯벌에 나갔다. 여자들은 바지락을 캐러 갔고 남자들은 낙지를 파러 갔다.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섬의 공동 양식장은 한해 바지락 채취가 끝나고 종패들이 뿌려졌다. 이제 또 어린 바지락들은 몸집을 키울 것이다. 주민들은 모두 부두 건너 무인도 우무도 갯벌에서 작업중이다. 여름이면 이 섬도 피서객들로 넘친다. 하지만 원주민이 운영하는 민박집들은 별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손님들이 시설 좋은 펜션이나 콘도만을 찾기 때문이다. 한때는 아이들만 30여명이 넘었던 적도 있지만 이제 섬은 늙고 퇴락했다. 30여가구 40명 남짓한 사람들이 산다. 이 섬도 노인들이 대다수다.

 
우무도 갯벌에서 낙지잡이를 하고 온 사내는 소난지도에 들어와 산 지 6년째. 사내는 오랜 세월 밖으로만 떠돌았다. 사우디 등 중동지역을 13년 동안이나 오가며 돈을 벌었다. 그때 모은 돈으로 자동차 정비공장을 세웠다. 고생 끝에 좋은 세월이 오는가 싶었는데 덜컥 아이엠에프(IMF)를 만났다. 3년을 버티다 접었다. 식당을 열었지만 그도 오래 못 갔다. “식당이란 게 오늘 오픈하면 내일 간판 내리는 거여. 그래서 흔히 하는 말대로 프리랜서라고, 개인적으로 다니면서 버는 게 제일 편해. 사람 상대 안 하고 편해.” 그래서 사내는 섬으로 은둔했다. 아내는 바지락을 캐고 사내는 낙지를 잡으며 산다. “바지락 파면 하루 5만원 벌이는 하거든. 낙지 물때에 나가면 못 잡아도 이삼십 마리는 잡아.” 낙지는 당진의 식당이나 횟집에 넘긴다. 마리당 삼사천원씩 하니 상당한 소득이다. “5만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육지 안 나가면 돈 쓸 일이 없으니 안 써서 남는 거지. 여기는 그냥 몸만 건강하면 직장 있어. 물 빠지면 바다에 나가 벌어오고 그렇게 사는 거지.” 사내는 지금의 삶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세상의 온갖 풍파 다 겪고 떠돌다 정착한 섬이니 그럴 것이다.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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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