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근석이 여자들의 바람을 조장한다?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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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한다. 그렇다면 유인도와 무인도는 어떻게 구분할까.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무인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모든 섬이 유인도는 아니다. 국제해양법은 섬에 두 가구 이상 거주하고 식수가 있고, 나무가 자라야 유인도라 인정한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 섬은 유인도가 아니다. 식수와 나무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한 가구만 거주하는 섬을 유인도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뜻 보기에 타당하지 않은 듯한 이 규정은 사람살이(有人)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이기도 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니, 사람이 살아도 홀로(한 가구) 사는 섬은 유인도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섬뿐이랴. 사람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홀로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안좌도는 신안의 섬이다. 수화 김환기 화백의 고향이기도 하다. 안좌도 대리마을에는 3개의 성기 바위가 있다. 남자의 성기가 둘이고 여자의 성기가 하나. 화강암을 조각해서 만든 남근석 둘은 우주를 향해 발기한 것처럼 밭 한가운데 빳빳하게 서 있다. 여근석 하나는 마을 뒷동산인 후동산 정상에 있다. 남근석은 마을의 당제 때 당신으로 모셔지기까지 했다. 옛날 이 마을 여자들은 바람이 잘 나기로 유명했다. 마을의 장로들은 여자들의 바람기가 후동산의 여근석이 눈에 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정한 기운을 막기 위해 여근석 앞에다 소나무를 심어서 가렸다. 그래도 걱정이 남아 마을 입구에 남근석 두 기를 세워 음기를 제압하고자 했다. 그 후에 마을 여자들의 바람기가 잠잠해졌는지 전하는 이야기는 없다. 아주 없어지기야 했겠는가. 더 은밀해졌겠지. 과거 대리마을은 아주 큰 마을이었다. 한데 얽혀 사는 사람이 많으니 바람 잘 날도 없었겠지. 그 바람이 어디 말없는 바위 탓이기만 했을까. 그런데 장로들은 무슨 근거로 여자들이 여근석을 보고 바람이 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여근석을 보고 음심이 동한 것은 장로들을 비롯한 남자들이었을 텐데. 더구나 여자들의 바람 상대는 남자들인 것을. 어째서 남자들의 바람기는 제압할 생각을 안 했던 것일까. 바람의 원인을 여자들에게 뒤집어씌운 것은 장로들도 뭔가 찔리는 것이 많아서는 아니었을까. 안좌도 해변, 외로운 백로 한 마리 먼 산을 보고 서 있다. 물고기 한 마리 자셨는가. 오늘 굶주림을 면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집도 없고 쌓아둔 먹이도 없으나 근심이 없다. 사람이 한 마리 새보다 나은 것이 무엇일까. 고대광실에 몇 달, 몇 년치의 식량을 쌓아놓고도 늘 근심 걱정 끊일 날이 없는 것을.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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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