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있어봤자 신경만 쓰이제, 아내가 젤이야”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영광행 여객선에서 만난 65살 동갑내기 낚시광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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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송이도는 흰 갯돌 해변과 마을 뒤 드넓은 풀등으로 인해 유명세를 탔다. 흰 갯돌 해변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콘도가 있다. 섬 주민들은 어민회관 2층 민박을 ‘콘도’라 부른다. 고단했던 것일까, 까무룩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이 벌겋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방 안에 누워 일출을 본다. 서해 일몰, 동해 일출이란 고정 관념일 뿐. 서해에서도 해는 뜨고 동해에서도 해는 진다. 영광 쪽 산들을 벌겋게 물들이는 아침노을. 대지는, 바다는 밤새 태양을 기다렸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고갯길을 넘는다. 썰물의 시간. 이각도 앞까지 물이 빠져 물속에 잠겨 있던 수십만평의 모래섬이 모습을 다 드러났다. 언뜻 펄흙으로 된 갯벌처럼 보이지만 이 풀등은 약간의 펄이 섞인 모래 평원이다. 거대한 풀등이 파헤쳐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펄이 섞이지 않았다면 진즉에 골재 채취로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바다 생태계에 다행스런 일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 들어간다. 인천 대이작도 풀등보다는 모래에 펄이 많이 섞여 있지만 넓이는 그에 못지않다. 풀등은 송이도의 특산물인 동백하, 새우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맛조개와 대합이 많이 나는 조개 밭이다. 한때 지주식 김 양식장을 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새우와 조개와, 게와 고동과 물고기들의 부화장. 풀등은 바다 생물들의 자궁인 동시에 무덤이다. 오늘 장대 한 마리는 제가 놀던 모래밭에서 선 채로 열반에 들었다. 이제 저 물고기는 한때 제 먹이였던 미생물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렇게 제 생을 버리고 다른 생으로 환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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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으로 돌아가는 여객선, 승합차 뒤칸에서 낚시꾼 부부가 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여 점심을 먹는다. 짐칸에 평상을 만들어 개조한 승합차는 식탁 겸 침실이다. 소주도 한잔 곁들인 선상 파티. 언뜻 보기에 오십대 후반이나 됐는가 싶은데 부부는 65살 동갑이다. 자식들 키워 출가시키고 둘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낸다. 남편은 아직 하는 일이 있어 바쁘지만 틈만 나면 차를 끌고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낚시를 한다. 숙식은 모두 봉고차에서 해결한다. 부부끼리도 맘이 맞아야 함께 다닐 수 있는데 아내도 낚시광이니 연분이다.
 
“애들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둘이 사는디 이게 낙이요.” 산전수전 다 겪었을 남자가 행복하게 웃는다. “낚시도 하고 구경도 하고 나이 먹어서 이게 젤이요. 부부 둘이 다니는 게 젤로 좋아. 애인 있어봐야 신경만 쓰이제.” ‘신경 많이 써’본 듯한 고수의 깨달음이다.

 
시인·<올레, 사랑을 만나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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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