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로 꿰라해도 꿴다” 서해 손바닥 보듯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서해의 황금시대, 파시 ② 제주 한림항
   30톤급 배 한 척으로 13억어치, 거의 로또 수준
   4년 전부터 참조기 쏟아져 멸치값보다 못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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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0월30일 오후, 제주 한림 항은 조기잡이 유자망 어선들로 꽉 들어차 빈틈이 없다. 조업에서 돌아온 어선들은 배의 냉장창고에서 조기 상자들을 내린다. 조기들은 수협 위판장으로 옮겨져 새벽 경매를 기다린다. 선원들은 또 한 번의 출어를 위한 그물 손질에 바쁘다. 내일 아침이면 저 어선들은 다시 바다로 나가 그물을 내리고 조기 떼를 기다릴 것이다.
 한림 항으로 드나드는 조기잡이 배들은 대부분 30~40톤급 유자망 어선들이다. 유자망 어선들은 수심 100m까지 그물을 내려 조기떼를 잡아들인다. 요즈음 한림 항에서 위판을 하는 유자망 어선은 70여척, 그중 60척은 추자도 선적이고 한림 배는 10척 정도다. 제주 조기는 추자도 배가 다 잡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9톤, 380마력의 추자도 선적 유자망 어선 봉신호에서는 9명의 선원들이 일한다. 선원 대부분이 동남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생존 위해 바다 깊숙이…멸족 피하려 새끼도 새끼를 배
 
 봉신호는 흑산도 근해에서 4일간의 조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만선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어획고를 올렸다. 한림 항에는 어제 들어왔으나 바로 위판하지 못했다. 800평에 불과한 한림 수협 위판장에서는 하루 7척의 배 밖에 소화하지 못한다. 배가 밀릴 때는 조업이 끝나고도 며칠씩 기다리기 일쑤다. 보통 봉신호 정도 크기의 배에서는 11~12명의 선원이 조업을 해야 적당하지만 선원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물에 걸린 조기들은 배에서 다 따내지 못하고 그물째 냉장보관한 뒤 한림 항으로 싣고 와 조기들을 딴다. 조기 따는 작업은 한림 지역 여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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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신호 김광현(43세) 기관장은 벌써 25년째 추자도 조기 배만 탔다. 선원들을 채근하지 않는 기관장의 그물 작업은 차분하다. 그는 가족들이 제주에 살지만 한림에 들어와도 얼굴 보기 힘들다. 비어기인 여름에 보름 동안 얼굴을 보는 것이 연중 가장 길게 가족들을 만나는 때다. 봉신호도 올해 첫 출항 때 추자도의 무당을 모시고 뱃고사를 지냈다. 선원실에는 여전히 배의 수호신인 배서낭(船王)이 모셔져 있다. 과학 기술의 시대에도 뱃사람들에게 바다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바다인 까닭이다.
 선주 김석만씨는 “서해안을 바늘로 꿰라면 꿸 정도로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는 50년 전부터 배를 탔다. 흑산도와 위도, 법성포, 연평도 파시까지 안 가 본 곳이 없다. 그가 조기파시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물코가 74mm 이상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52mm를 쓴다. 어린 새끼들까지 잡힐 정도로 그물코가 작아졌다. 선주는 연평과 칠산 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질 때까지 거르지 않고 다녔다. 나중에는 흑산도나 가거도 등지로 옮겨가며 조기를 잡았다. 연평과 칠산 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진 한참 후까지도 추자 사람들은 추자도 바다 속에 조기가 있는 것을 몰랐다. 육지의 저인망 배들이 조기를 잡아가는 것을 목격한 뒤에야 추자 바다 수심 100~120m 해저에 조기떼가 사는 것을 알게 됐다.
 연평과 칠산 바다에서 사라진 조기떼가 추자도 근해 깊은 바다 속에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기떼는 연평도와 해주 근해 얕은 바다에서 산란하던 습성까지 바꿔가며 생존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사람의 기술이 심해에 숨어든 조기떼까지 찾아내자 조기들은 또 한 번 생존법을 바꿨다. 과거에 조기들은 적어도 5년 이상의 성체가 돼야 산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기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졌다. 멸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산란시기를 대폭 앞당긴 것이다. 이제는 어미도 알을 배고 새끼도 알을 밴다. 2년생에 불과한 어린 조기들까지 산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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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칠산, 연평도 어장의 조기잡이 철은 봄이었다. 하지만 제주의 조기잡이는 가을인 9월부터 본격화된다. 첫 출어 때는 8시간이 넘게 걸리는 동중국해의 252해구까지 조업을 나간다. 9월 중순이면 조기떼가 3시간 거리인 231해구까지 올라온다. 10월이면 제주와 가거도, 흑산도, 홍도, 추자도 근해까지 몰려든다. 그때부터 이듬해 5월까지 조기들은 그 바다에 머물며 살아간다. 6월부터는 조기들이 자취를 감추고 8월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동중국해로 회귀하는 것이다. 어선들은 9월부터 11월까지 석달간 가장 많은 어획량을 기록한다. 어부들에게는 ‘된 대목’인 이때 총 어획고의 80% 이상을 올린다. 가을 조기는 알이 없다. 11월 말경이면 조기들이 물알을 배기 시작하고 봄이 돼야 알은 단단해 진다. 이때 잠깐 잡히는 알배기 조기는 양이 적지만 단가는 두 배 이상 뛴다.  
 
 한림 위판 조기 90%는 법성포로 가 굴비로
 
 밤 10시, 한림 수협 위판장은 조기 선별작업이 한창이다. 다음날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위판시간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한다. 지게차가 조기들을 옮겨주면 한 선별대당 14~15명씩의 여성 노동자들이 분류 작업을 한다. 조기들을 크기에 따라 75마리, 130마리, 깡치, 깡깡치 등으로 분류되어 나무 상자에 담긴다. 깡치는 상자당 155~160마리, 깡깡치는 그보다 더 작은 조기들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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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마리짜리도 몸길이가 20cm도 못 되는 2년생 미만의 어린 조기들이다. 나무상자에 가지런히 쌓인 조기들은 모두 누런 배를 위로 하고 누웠다. 배를 위로 세우는 것은 빛깔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래로 놓으면 배가 처져서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31일. 한림 수협에서는 130마리짜리 참조기가 상자당 6만1천~7만4천원 사이에 낙찰됐다. 제법 굵은 75마리짜리는 상자당 35만~39만원. 깡치는 2만9천~3만3천원. 깡깡치는 1만9천~2만1천원에 불과하다. 조기가 멸치값보다 못하다. 한림수협 77번 중매인 조문형(63세)씨에 따르면 추자도 근해에서 참조기가 대량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다. 과거에는 상자당 50마리도 흔했는데 지금은 가장 커봐야 75마리다. 트롤 어선들도 조기를 잡지만 근래 4년 동안은 유자망 어선이 조기를 가장 많이 잡는다. 어선들이 어군 탐지기를 이용해 동중국해까지 쫓아 내려가 조기를 잡고 또 제주, 흑산 근해에서 중간 길목을 막고 잡아들이니 칠산이나 연평도까지 올라갈 조기는 더 이상 없다. 그마저도 흔치 않다. 한림 수협에서 위판된 조기들의 90% 이상은 법성포로 가서 영광굴비가 된다.
 “굴비로 엮어야 마진이 남지요. 이 단가로 노량진 수산시장 가서는 본전도 못해요.”
 법성포의 상인들은 중매인을 통해 조기를 확보한 뒤 수협 창고에 냉동시켰다가 실어간다. 한림 수협에 따르면 2007년에 최고의 어획고를 올린 조기잡이 배는 30톤급의 88대양호였다. 무려 13억의 매출을 올렸다. 선주 겸 선장의 이익이 25% 수준이니 4억이 넘는 이익을 남겼다. 배 한 척이 번 수입이 거의 로또 수준이다. 어선들이 기를 쓰고 조기를 잡으려 달려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강제윤(시인, ‘섬을 걷다’ 저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bogil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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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