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섬도 더 이상 꿈꾸던 섬이 아니다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강제윤 시인의 섬기행] 명도,말도,방축도

 

정체성 상실한 채 육지 사람들 위락 시설로

수호자는 더 이상 용왕·산신령이 아닌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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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온통 모순 덩어리 삶이다.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산소가 생명을 파괴하는 노화의 원인이 되고 삶을 사는 일이 삶을 소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삶의 대가로 끝내는 목숨을 지불해야 하는 삶.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태초부터 초월을 꿈꾸었다. 초월의 공간, 유토피아는 대개 깊은 산속이나 머나먼 바다 어디쯤에 있다고 믿어졌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세계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유토피아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지상을 벗어나 하늘에 있다고 믿어 온 천국은 또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우주선 따위 기계의 도움이 없다면 사람은 지구를 떠나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머릿속은 수만리 창공을 날아다니는 우주적 상상력으로 가득하지만 하늘은 결코 사람을 반기지 않는다. 창공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천국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수만 번 불러도 소용없다. 맨몸으로 하늘에 오른다면 대기권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은 얼어죽거나 불태워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늘은 결코 사람의 편이 아니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천사들이 아니라 적천사(敵天使)들이다.

 

◈ 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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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과 함께 유토피아의 한 원천이었던 섬. 이제 더 이상 섬도 꿈꾸던 섬은 아니다. 개발의 탐욕으로 섬은 상처를 입고 섬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육지 사람들의 위락 시설로 바뀌어 가고 있다. 섬을 잃는 것은 이상향을 잃는 일이다. 고군산(古群山) 군도(群島)의 많은 섬들도 지금 고난에 직면에 있다. 

 

새만금 갯벌을 죽인 뒤 갯벌에 쌓여야 할 펄들이 밀려와 섬의 바위에 쌓인다. 해초가 자라지 못하니 전복이나 해삼 등 바다 생물들의 살 길이 막막해졌다. 명도 섬사람들 또한 그렇다. 20여 가구가 사는 명도에는 어선이 10여척. 오로지 어로만이 생계의 수단이다. 새만금 갯벌이 사라진 뒤 이 바다를 찾는 물고기들도 반 이상 줄었다. 사람이 먹는 해산물들의 3분의2 이상이 갯벌이나 염습지에서 생의 일부를 보낸다. 갯벌이 사라졌으니 어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농경지에 비해 100배 이상 생산성이 높은 갯벌을 없애고 농지를 만든 어리석음의 결과다.

 

이 섬사람들도 반살이를 한다. 어로가 없는 겨울철이면 군산으로 나가 살다가 봄이 되면  되돌아온다. 섬사람들은 전복 가두리 양식 따위를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겨울철 수온이 찬 탓이기도 하고 양식에 쓸 다시마나 미역 등의 해초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해녀들이 해삼이나 소라 등을 잡지만 오늘 같은 사리 때는 물살이 세서 물질을 못한다. 사내 둘이 어로에 쓸 정치망을 손질하고 있다. 한 사람은 선주, 또 한 사람은 선원이다.

 

안 잡히면 짜증나 한 잔, 잘 잡히면 기분 좋아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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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좋은데 술을 너무 마셔서 탈이지. 고기가 안 잡히면 짜증나서 먹고, 잡히면 기분 좋아서 먹고. 핑계거리가 좋아요. 안주도 좋고. 술 못 먹는 사람도 섬에 1년만 살면 술이 서너 배는 늘어요."

 

섬살이의 즐거움도 술이고 고통도 술이다. 사내는 유명 관광지로 금싸라기 땅이 된 이웃 섬 선유도가 부럽기도 하고 못 마땅하기도 하다.

 

"선유도는 자리싸움 같은 걸 많이 해요. 인심도 사나워졌고. 모든 게 돈이에요. 전에는 더러 놀러 가면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라고 붙잡고들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졌어요." 

 

부두에는 젊은 내외가 홍합을 손질하고 있다. 홍합은 배를 타고 나가 사리 때 물이 많이 빠지는 섬 주변의 바위에 붙은 것을 따온다. 끌을 들고 바위에 붙은 홍합을 떼어낸다. 작업은 하루 서너 시간 정도. 바람만 불지 않으면 한 사리에 칠팔일 따는 때도 있지만 보통은 한 달에 열흘 남짓 딸 수 있을 뿐이다. 개홍합이라고도 하는 잔 홍합은 물이 많이 빠지지 않아도 바위마다 가득하다. 하지만 개홍합은 아무도 따지 않는다. 종자 자체가 워낙 작고 속에 알맹이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 손길이 가기 쉬운 해안 바닷가에 개홍합이 번성하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몸의 기름기를 빼고 사는 것도 삶을 누리는 한 방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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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알이 없는 홍합을 골라내고 크고 작은 것을 분류한다. 크기에 따라 가격차도 크다. 하지만 부부는 홍합의 주인이 아니다. 어촌계에서 주민 한사람에게 섬의 홍합 채취권을 팔았다. 부부는 고용 돼서 일한다. 어민들은 수협 위판을 기피한다. 가격이 낮기 때문이다. 일반 수집상이 가격을 더 높이 쳐 준다. 상인도 군산보다는 부산 쪽 상인들이 더 높은 값에 사간다. 부산 지역이 홍합을 더 귀하게 치기 때문이다.

 

나그네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잘 해주던 부부는 홍합의 주인이 나타나자 입을 다문다. 같은 섬사람들끼리도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는 어렵기만 하다.

 

◈ 방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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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에서 어선을 대절해 방축도로 건너 왔다. 여기도 홍합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의 거의 막바지 작업이다. 명도와는 달리 이 섬은 권리를 팔지 않아 주민들 모두에게 채취권이 있다. 홍합은 20㎏ 한 포대 2만원 정도에 수집상에게 넘겨진다. 많이 따는 사람은 하루 일곱 포대까지 따기도 하지만 보통은 서너 개다.  

 

명도, 말도, 방축도는 세 섬이 다 행정구역상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다. 같은 옥도면에 속한 선유도와는 달리 고군산군도 관광산업의 혜택을 거의 못 누리고 산다. 해상 유람선에서 구경하고 가는 장자할아버지 바위나 거북 바위, 시루떡 바위, 남대문 바위, 책 바위, 쇠코 바위 등의 절경이 모두 이 섬들에 속해 있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유람선은 선유도에만 정박했다 돌아간다.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돈이 이들 섬까지 날아오지 않는 것이 주민들은 못내 섭섭하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방축도, 말도, 명도 세 섬이 다리로 연결되기를 소망하지만 기대는 난망하다. 

 

방축도 북쪽 해안에는 지난 겨울 태안에서 흘러온 기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군산 섬사람들도 오랫동안 방제작업을 했다. 지금은 대부분 원상회복됐지만 해변에는 얇은 기름막이 간간히 떠다닌다. 해변의 절벽에는 전망대로 만든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 옆길을 따라 산을 오르니 10여 분 만에 정상이다. 섬의 가장 높은 자리가 통신사의 기지국 차지다. 'SK텔레콤 방축도 기지국.' 옛날 이 산의 정상은 나무와 바위들의 자리였다.

 

허망 믿는 힘이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우주의 역설

 

Untitled-19 copy.jpg무선국 철탑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이 섬의 수호자가 바뀐 것을 알려주는 징표다. 섬의 수호자는 더 이상 용왕이나 산신령이나 나무와 바위의 정령이 아니다. 전화다. 과거 섬에서는 생사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누구든 신이나 정령들에게 기도했다. 그들은 섬의 절대자였다. 이제 그들은 무력하다. 섬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더 이상 그들을 찾지 않는다. 신 대신에 찾는 것은 전화기다. 신들은 응답이 없지만 전화기는 바로 응답을 준다. 오늘날 이 섬의 진정한 신은 전화기다. 산정의 기지국은 전화 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산길에는 등반을 돕기 위한 밧줄이 놓여 있다. 한 손으로 밧줄을 잡고 가다 문득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잘려나가 죽은 나무 밑둥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지 않은가. 눈을 Untitled-1 copy.jpg의심하며 가까이 다가가 본다. 착시였다. 새순은 죽은 나무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무 가지가 죽은 나무 밑둥에 붙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부활의 목격담도 저런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았다면 저 죽은 나무는 부활의 나무가 됐을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고들면 벗겨지지 않는 신비의 껍질이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신비함에 이끌려 사는 삶을 우매하거나 그릇된 삶이라고 질책할 수 있을까. 실체도 없는 신비의 본질은 믿음이다. 실상은 신비가 아니지만 사람은 신비를 믿으면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 돌아오기도 한다. 신비란 허망한 것이지만 그 허망함을 믿는 힘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이 우주의 역설. 어찌할 것인가. 궁극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 말도

 

말도는 벌써 홍합 철이 끝났다. 이제는 바지락을 캐서 뭍으로 보낸다. 부둣가에서는 '개똥이네' 명패가 붙은 바지락 자루들이 여객선으로 옮겨진다. 군산의 어패류 도매상 주인이 개똥이일까, 주인의 아들 이름이 개똥이일까. 

 

여객선은 마을 입구 선착장에 닿지만 어선들이 정박하는 포구는 마을과 떨어져 있다. 섬은 느리게 걸어도 30분이면 일주할 정도로 작다. 마을의 서쪽 고개 너머에 말도 등대가 있고 그 아래 포구가 있다. 옛 고갯길로는 더 이상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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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겨울에 섬을 떠나 있던 선원들이 돌아와 그물을 손질하며 출어를 기다린다. 무인도 '큰 모가지'와 '작은 모가지'는 방파제 공사로 말도와 이어져 경관이 훼손됐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풍경보다는 대피항이 생존에 더 가까운 것을 어쩌랴. 그래도 포구는 호수처럼 아늑하고 아름답다. 둑길을 따라 걷는데 인기척에 놀란 숭어 떼 한 무리 후다닥 물속으로 도망친다. 숭어들은 떼 지어 몰려다니며 수면의 먹이까지 탐한다. 포구의 수면에는 늘 유출된 기름이 둥둥 떠다니기 마련이다. 숭어가 그 기름까지 먹으니 어떤 숭어회에서 더러 기름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삶도 그 끝은 언제나 순간

 

오늘 말도의 하늘과 바다는 평화롭다. 하지만 이 평화는 참 평화일까 거짓 평화일까. 말도에서 22㎞ 거리에 공군 사격장 직도와 소직도가 있다. 1971년 사격장이 들어서면서 섬에다 끊임없이 폭탄을 쏟아 부었다. 해발 66m 높이의 섬이 지금은 25m 정도로 낮아졌다. 사격장이 되기 전까지 말도, 방축도, 명도 섬 주민들에게 직도는 황금어장이었다. 1971년 이후 직도 반경 18㎞ 이내의 해역에서 모든 조업이 금지 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40여년 가까이 머리에 폭탄을 이고 살았다. 전투기의 소음과 폭격의 진동으로 고통당했으며 항상 오폭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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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는 매향리 미군 사격장이 폐쇄되면서 미 공군의 사격장까지 옮겨왔다. 군산시는 정부 지원금 3000억원에 직도와 섬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잡혔다. 자동 채점 장치(WISS)가 설치된 직도에는 연습탄이 투하되지만 바로 옆의 소직도에는 여전히 살상용 폭탄이 투하된다. 직도 사격장은 명목상 한국 공군 사격장이지만 실상은 4개월마다 순환 배치되는 미 공군의 국제 사격장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아비노 미군 기지와 미 동부의 쇼오 공군 제8전투비행단, 알래스카 비행단 등이 4개월간 폭격 연습을 하다 돌아갔거나 폭격 연습중이다. 아파치 헬기도 이 섬에 폭격 연습을 하고 간다.   

 

자주 잊고 살지만 영속되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삶도 그 끝은 언제나 순간이다.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섬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만성 질환처럼 굳어져버린 위험.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공포도 습관이 되면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보다 큰 공포가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불안에 떨지 않는다. 사람들은 머리 위에서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공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글·사진/강제윤(http://blog.naver.com/bogil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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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