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마저 뜨는 선유도, 주인 기다리는 망주봉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강제윤시인의 섬기행] 고군산군도 <2>

 

그나마 아이들에게는 섬인 것이 차라리 행운

마지막 풍장의 초분도 사라지고 바람이 분다

 

 

Untitled-1 copy.jpg


주인을 기다리는 봉우리, 선유도의 주산 망주봉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버전의 전설이 내려온다. 하나는 충신 버전이다. 선유도에 유배된 관리가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의 한양에 있는 왕을 사모하였다 해서 망주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또 하나는 번외 버전이다. 이 버전은 정감록에 젖줄을 대고 있다. 정감록은 이씨 조선이 멸망한 뒤 정도령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몇 백 년을 다스리고 그 후 조씨의 가야산 도읍 몇 백 년이 계속된 뒤 범씨의 완산 도읍이 시작된다고 예언한다. 

 

선유도 망주봉은 범씨 완산 도읍 천년왕국의 섬나라 버전이다. 그 천년왕국의 주인 범씨 왕을 기다리는 산이 망주봉이다. 망주봉의 유래는 아무래도 첫 번째 버전이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하지만 정감록의 두 번째 버전이야말로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나그네는 믿는다. 과거에 섬은 착취와 수탈이 없는 이상향으로 자주 꿈꾸어지곤 했다. 한양에 사는 양반들의 임금이 아니라 진정한 백성의 나라를 기다리는 민중들의 열망이 망주봉의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먹고 사는 것이 무서운 노인들

Untitled-6copy 2.jpg


선유초등학교, 중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고갯길을 넘는다. 초등학교는 모두 11명, 중학교는 1학년 3명, 2학년 4명, 3학년이 1명, 모두 8명이다. 중학교는 교사도 8명이니 학생 1인당 교사가 1인, 그야말로 1대1 가정교사다.  

 

선유 2구에서 1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아이들 셋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체육시간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서 아이들은 체육시간을 향유한다. 육지에서였다면 저런 소규모 학교는 진즉에 폐교됐을 것이다. 섬의 학교는 교통 문제 때문에 비용의 논리로 무조건 폐교시킬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이 곳이 섬인 것이 아이들에게는 행운이다. 

 

선유 1구 마을은 전형적인 어촌이다. 마을에 상업시설이 거의 없다. 여름 피서철에나 조금 북적거릴 것이다. 마을 골목길을 들어선다. 폐가인가 싶을 정도로 쇠락한 어떤 집 마당을 기웃거리는데 부엌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할머니는 타작이 끝난 들깨 단을 창고에 들이고 있다. 겨울 난방을 위해 땔감을 비축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무서워요. 먹을 것은 못 먹지. 허리는 아프지. 돈도 없지. 영감도 없고."

 

자식들은 모두 뭍에 나가 살지만 어미를 돌볼 여력이 없다. 노인은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허리야." 연신 고통에 찬 신음을 뱉어내면서 땔감을 옮긴다. 이 섬에서도 혼자 사는 노인들의 삶이 가장 고단하다. 독거노인들은 경제적 궁핍과 고질적인 병마에 시달리는 섬의 극빈층이다. 관광 수입도 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섬에서도 정부의 정책은 대개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시행될 뿐이다.

 

“다리 놔지면 섬사람들 인자 못 살아요.”

 

Untitled-4 copy 2.jpg


선유도와 무녀도는 사람과 이륜차만 다닐 수 있는 철교로 연도되어 있다. 선유도와 장자도 또한 같은 형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장자도와 대장도 사이에도 다리가 놓여 있다. 고군산군도의 네 섬은 하나의 생활권, 하나의 섬이다. 무녀도와 연결된 선유대교에는 낚시꾼들이 사철 끊이지 않는다. 

 

낚시꾼들은 낚아 올린 물고기를 횟집에 팔기도 한다. 머지않아 새만금 간척으로 이미 육지가 되어버린 이웃 섬 신시도와 무녀도 사이에도 연륙교가 놓일 예정이다.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고 나면 이제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그때는 몰려드는 자동차로 도로는 더 이상 걷기에 안전한 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그네는 아마도 이 섬들을 평화롭게 걷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저기 막으면서 암 것도 안 잽혀요. 기(게)나 잡아요. 딴 고기는 하나도 없어요. 고기가 씨가 말랐어. 그 전에는 광어 같은 것도 들었는데.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지. 바다가 육지가 되는데."

 

무녀 2구 해변가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그물 손질중이다. 꽃게잡이 그물. 예전에는 한 번 쓴 그물을 버렸었다. 이제는 한 푼도 아쉬워 몇 번이고 손질해서 쓴다. 서해안 다른 지역에는 올해 꽃게가 풍년이라는데 이곳에서는 꽃게도 잘 들지 않는다. 날마다 문어만 잡힌다. 새만금 방조제를 막으면서 고기가 씨가 말랐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어류의 산란장이던 갯벌이 사라지고 육지에서 내려오던 영양분이 사라지니 물고기들도 모두 떠나간 것이다. 아주머니는 육지와 다리가 생기는 것도 반갑지 않다.

 

"다리 놔지면 섬사람들 인자 못 살아요. 지금이사 대문도 없이 사는데. 여그는 내 것 아니면 안 가져가요. 이 앞에 쌀을 내 놔도 안 가져가요. 인제 외지 사람들 차 들어오고 그러면 다 가져갈 거 아녀요. 맨당 머 잃어묵으까 걱정하느라 일도 지대로 못하겄지. 다리 놔지면 존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겄지만 사람 피곤하기만 할 것이요. 골치 아퍼 죽겄어요. 동네 사람들끼리 살어야 쓴디."

 

육지에서 오는 관광객들도 일부 횟집이나 민박집에만 도움이 될 뿐 대부분의 어민들에게는 보탬이 안 된다.

 

"관광객 온다 해도 소용없어요. 즈그들 먹을 거 다 싣고 와요."

 

‘바다 농사’ 김 양식마저 새만금 탓에… 

 

Untitled-4 copy.jpg


그물을 손질하는 아주머니 옆에서 옆집 식구들은 김 양식 준비에 바쁘다. 어린 김을 이식할 밧줄을 손질하고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김 양식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먼저 조개나 굴 껍질 등에 김 포자액을 뿌린 뒤 김 양식장의 그물에 매달아 놓는다. 보름 정도 지나면 거기서 나온 김 싹이 그물에 붙는다. 다시 열흘이 흐르면 그물 전체로  김들이 퍼져 나간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자란 어린 김을 떼어내서 밧줄에 하나 씩 옮겨 붙인 뒤 바닷물 속에서 키운다. 벼를 파종하여 모내기 하는 것과 같다. 

 

모내기 뒤 보름에서 이십일이 지나면 첫 수확이 가능하다. 첫 번째 수확된 김은 너무 물러서 질이 떨어진다. 서너 번째 수확한 김의 품질이 그중 좋다. 겨울에 평균 여섯 번 정도 수확한다. 새만금 방조제를 막고 난 뒤에는 김 양식에도 피해가 크다. 김은 차가운 물에서 잘 자라는 한대성 해초다. 수온이 지나치게 높으면 아주 녹아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면서 조수의 흐름이 멈추자 수온이 높아져 김의 수확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김 양식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고기마저 잡히지 않는 바다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한 때문이다.

 

간척지 들판을 지나 무녀 1구로 간다. 둑을 막기 전에는 여기도 갯벌이었을 것이다. 간척된 땅은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지 않고 온통 갈대밭이다. 일부는 염전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염전도 문을 닫았다. 갈대밭이 끝나는 지점에 몽돌 해변이 있고 숲길을 따라 오르니 저수지다.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사람들의 상수원. 정수장 인근에는 민가 한 채 없다. 물은 오염원이 없다. 인기척에 놀란 오리 떼가 저수지 위로 날아오른다. 

 

바람에 죽은 육신 맡겨 육탈의 날 기다리는 풍장

 

Untitled-3 copy 2.jpg


정수장 샛길을 따라가니 무녀봉 오르는 길목이다. 이쯤 어디에 있다고 들었었다. 무녀도에 마지막 남은 초분이. 바람에 죽은 육신을 맡겨 육탈의 날을 기다리는 풍장. 길은 두 갈래 길. 고군산 일대의 초분 풍습이 다 사라진 뒤에도 마지막 초분이 한 기 남은 것은 그 집안의 끊이지 않는 우환 때문이었다. 40여년 전에 매장을 했으나 연달아 일어나는 집안의 우환이 매장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 다시 시신을 수습해 초분을 쓴 것이다. 

 

무녀봉 오르는 길은 아닐 것이다. 왼쪽 샛길 어디쯤에 초분이 있을 것이다. 묘를 썼다면 산 중턱까지라도 올랐을 터지만 초분은 멀리 가지 않고 마을 언저리나 산기슭에 있기 마련이다. 샛길의 끝에도 초분이 없다. 길목에 새로 쓴 듯한 묘만 하나 있다. 빈 터에는 녹색 플라스틱 통들이 수백 개 쌓여 있다. 겉면에는 과산화수소라 표기돼 있지만 저것은 분명 염산 통이다. 단속을 피해 숲속에 숨겨 두고 필요할 때면 날라다 쓸 것이다. 염산은 김양식 농사에 금지된 농약이다. 

 

산길을 나와 근처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올 봄, 초분 있던 자리에 묘를 썼다 한다. 아까 본 새 묘가 그 초분의 주인을 매장한 것이었다. 무녀도의 마지막 초분마저 사라져버렸다. 집안에 일어나던 액운은 모두 물러간 것일까.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제 초분에서 매장으로 이어지는 고군산군도의 2중 장례 풍습도 아주 소멸되고 말았다. 무녀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선유대교 아래로 나오니 죽어 있던 어선들이 다시 살아나 있다. 썰물 때 저 어선들은 마른 해삼처럼 뻘밭에 처박혀 오도 가도 못했다. 들물이 되자 어선들은 물먹은 해삼처럼 다시 살아나 바다를 유영한다. 

 

삶이란 때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안개 속

 

Untitled-2 copy 2.jpg

 

바람이 분다. 또 며칠 배가 다니지 못할 것이다. 아침 첫배, 옥도페리호가 오늘 군산행 마지막 배다. 선유도에 들어오는 관광객은 몇 되지 않는다. 떠나는 관광객들 속에 육지 나들이 가는 섬 주민들도 섞였다.
  
  "저번 날 보단 덜 부네."
  "나가 봐야 알지."
  "뒤로 가?"
  "뒤가 나서."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에는 배의 앞 선실보다 뒤쪽 선실이 편안하다. 무거운 기관실이 배의 후미에 있어 그 곳이 덜 흔들리기 때문이다. 멀미가 두려운 여객들은 넓은 앞쪽 선실을 두고 다들 비좁은 뒤쪽 선실로 몰려든다. 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각기 자리를 잡고 눕는다. 고단한 뱃길을 예감한 것일까. 삶이란 때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처럼 혼미하다. 하지만 삶이란 그보다 더 자주 예측 가능한 삶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글·사진/강제윤(http://blog.naver.com/bogilnara)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