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빨’ 센 보문사, 비둘기 관음보살 친견하다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강제윤시인의 섬기행] 석모도

 

5분 뱃길, 갈매기는 새우 대신 새우깡 따라 졸졸

사람 양식장의 주인은 가족일까, 돈일까, 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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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인생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보여도 거기에는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키워나가는 행위다."(카렌 암스트롱) 

 

밤 10시, 신촌 버스터미널에서 강화행 막차를 탔다. 자정 무렵 강화 버스 터미널 부근 여관에 들었다. 파리 한 마리가 귀찮게 잠을 방해한다. 잡아 버릴까 망설이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배를 탈 참이었다. 몸은 고단했고, 알람시계는 없었다. 잠들기 전,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잠깐 걱정 했었다. 웅웅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파리는 사이렌을 불며 나그네의 얼굴 부근에서 아침 비행을 시작한다. 이놈의 파리새끼, 손을 한번 휘젓다가 번쩍 정신이 든다. 고맙지 않은가. 아침의 전령, 파리는 게으른 나그네의 아침잠을 깨우기 위해 경적을 울려 준 것이다.

 

아침의 전령 파리…도로 안내판 절반이 종교 시설

 

누군가 외포리 갈매기들을 '거지' 갈매기라 했다. 외포리 갈매기들의 구걸행각은 공원의 비둘기들보다 더 노골적이다. 외포리와 석모도 바닷길을 영역으로 하는 갈매기들의 주식은 바다 새우가 아니라 새우깡이다. 갈매기들은 새우깡을 뿌려대는 관광객들의 코앞까지 접근한다. 어떤 녀석은 겁도 없이 손끝의 새우깡을 채가기도 한다. 갈매기들은 더 이상 바다의 새우나 물고기들을 잡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마음만이 아니라 몸까지 바꾸어버린다. 새우깡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은 새우가 아니라 밀가루와 전분이다. 새우깡에는 새우가 5.3% 밖에 들어 있지 않다. 바다 새의 주식이 과자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새우깡만으로도 영양은 넘친다. 갈매기들은 하나같이 비만이다. 

 

외포리와 석모도 사이의 뱃길은 5분 남짓. 여객선은 강화 본 섬의 외포리와 석모도 석포항 사이를 왕래한다. 그 짧은 길을 갈매기들도 하루에 수십 번씩 오간다. 여객선은 갈매기들의 서식지, 갈매기들은 끈도 없이 여객선에 붙들려 산다. 사료를 주고 손바닥을 탁탁 털며 배에서 내리는 사육사들. 먹이에 길들여지는 것이 어디 갈매기들뿐이랴. 사람도 쉽게 놓여나지 못한다. 사람 양식장의 주인은 누구일까. 가족일까, 돈일까, 신일까 그도 아니면 외계 여행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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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항에서 보문사까지 걷는다. 석포항 부근 콘도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왼쪽은 매음리, 어류정항, 보문사 길이고 오른쪽 길은 상리, 하리, 석모리, 삼산 면사무소 가는 길이다. 석포 교회, 언약 교회, 감사 교회, 석모 교회, 삼산 장로교회, 송가 교회, 항포 교회, 석포리 성공회, 천주교회 석모 공소, 보문사, 단군 성전 기도도량 등 도로 안내판의 절반이 종교 시설이다. 그중에서도 교회는 단연 우세를 점한다. 보문사가 기도도량으로는 전국구지만 석모도 주민들의 신자수로는 교회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한때 한국의 교회는 다방 숫자와 같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석모도에는 교회가 다방보다 많다.

 

폐염전은 골프장이 되고

 

7월 중순의 논에는 벼들의 키가 아이들 허리까지 자랐다. 작은 농수로에는 녹조류가 번성하고, 수로의 폭은 좁고 물은 깊지 않지만 수로에는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유유히 떠다닌다. 잉어들의 점심시간. 잉어 두 녀석이 나란히 고개를 곧추 세우고 물풀을 뜯는다. 잉어는 물속의 염소다. 수로에서는 자주 황소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녀석들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이내 숨어버린다. 갈대 잎 위에서는 잠자리가 먹이를 노리고 소금쟁이는 부지런히 물위를 미끄러져 다닌다. 나그네가 살던 섬에서는 소금쟁이를 엿장수라 불렀다. 가위모양의 생김새 때문일 것이다. 물에 살면서도 물속을 헤엄치지 않고 물위를 걸어 다니는 소금쟁이. 수상스키 선수처럼 날렵하고 멋지다.

 

저 논들은 모두 바다 물길을 막아 만든 간척지다. '농로는 지반이 약하니 농기계 외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서 있지만 자동차는 무시로 다닌다. 천일염을 생산하던 매음리 삼양염전은 골프장으로 변신중이다. 이 나라의 해변은 온통 골프장과 콘도와 펜션, 모텔, 횟집 일색이다. 길가에서 풀을 베던 노인은 '소금 값도 괜찮은 편인데 왜 골프장을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노인은 '골프장이 생기면 농약 때문에 바다가 망가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길을 가는 내내 도로 변 갓길은 온통 개망초 천지다. 개망초야말로 이 계절의 주인이다. 

 

가족건강, 사업 번창, 학업 성취…, 스님들의 대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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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항에서 10킬로, 삼복염천의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보문사. 금산의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 여수의 향일암과 함께 이 땅 불교의 4대 해수 관음 기도처 중의 하나다. 속칭 '기도빨'이 세다는 곳이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 대사가 창건했다. 현재의 보문사 동굴 사원은 회정 대사가 처음 건립한 것을 조선 순조 12년(181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너럭바위 아래 천연 동굴을 이용해 법당을 만들었다. 동굴 법당에는 부처와 보살, 나한들을 모셨다. 투박한 석불들은 신라 때 어떤 어부가 꿈을 꾸고 바다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 것이라 전한다.

 

동굴 법당에는 수많은 연등이 걸렸고 위패들도 모셔져 있다. 연등마다 명패가 걸리고 명패에는 소망이 가득하다. 1300 사업번창, 학업성취, 삼재소멸, 1382 사업번창, 건강, 1383 박사학위 취득, 건강 1389 업장소멸, 건강, 1407 소원성취, 학업성취 1469 가족건강, 결혼 성사….

 

기원은 가족건강과 사업 번창, 학업 성취 등의 소망이 가장 많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자녀들 좋은 대학 가게 해주고, 가족들 건강히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망들. 소망은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주는 증표다. 돈과 학벌과 건강. 연등에 결린 신도들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스님들은 조석으로 기도를 대리한다.

 

기도란 무엇일까? 내 안에 신이 있고 내 안에 불성이 있다면 기도란 내 안의 부처와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하는 것도 나고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도 나다. 그러므로 기도처에서의 기도는 소망을 이루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인간 정신의 높은 곳으로 이끄는 고귀한 행위다. 정신의 고양을 통해 스스로 신과 불보살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야 나는 나의 기도를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그것도 기도라 할 수 있을까? 문득 한 의문이 스쳐간다.

 

성취는 기약 없으나

 

극락 보전 마루에서는 여러 보살님들이 간절하게 절을 올린다. 성취는 기약 없고 소망은 끝이 없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생이 오고 갔을 것이다. 이 보문 동천의 법당에서. 보문사의 해수관음을 친견하려면 극락보전 뒤 험한 산길을 올라야 한다. 대게 영험하다는 기도처들은 높은 곳에 위치한다. 산중턱이나 언덕의 끝자리에 있다. 그런 기도처의 창설자들은 적어도 인간 심리의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녔던 것이 분명하다. 기도가 자기 정화 의식의 정수란 사실을 그들은 이미 눈치 챈 것이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땀 흘리며 높은 곳으로 오르는 동안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의 찌꺼기들은 걸러진다. 몸과 정신은 자연스럽게 정화되고 고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기도처에 도달한 순간 기도객들은 이미 기도의 반은 성취하게 된다. 기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영험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해수관음에 대한 이 땅 사람들의 신심은 투철하다. 관음 신앙은 한국, 일본, 중국, 티베트 등에서 활발하다.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여긴다. 티베트의 포탈라궁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을 조형화 한 것이다. 관음신앙은 미륵신앙, 지장신앙, 정토신앙 등과 함께 불교의 대표적 타력신앙이다. 관음보살은 범어로는 '아바로키테스바라'. 한자로 번역한 것이 관음, 광세음, 관세음, 또는 관자재, 관세자재 보살이다. 관음보살은 세상의 음성을 관찰하여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건져주고'(悲)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慈) 자비(慈悲)의 화신이다.

 

과학의 시대에도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지고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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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마애석불 좌상은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 눈썹 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마애불 앞 안내판에는 조성 내역이 친절하게 기록 되어 있다. 하지만 기도하러 온 동네 노인의 믿음은 다르다. 노인은 어느 날 천둥 벼락이 치더니 바위를 가르고 부처님이 튀어 나오셨다고 믿는다. 과학의 시대에도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그것이 신앙의 힘이고 신앙의 신비다. 바위에 갇힌 부처님을 꺼내준 것은 그런 중생들의 신심일 터. 믿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마애석불은 진실로 관음보살이다. 관음보살은 감로수 병을 들고 연꽃받침 위에 좌정해 있다.

 

마애불 조성 안내판 옆에는 '비둘기들이 불상을 훼손하고 있으니 공양물을 밖에 드러내 놓지 말아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관음보살께 올리는 공양물을 비둘기들이 훔쳐 먹고 관음보살 몸 이곳저곳에 함부로 똥을 싸대고 있으니 먹이를 주지 말라는 뜻이다. 마애불의 온몸은 비둘기 똥으로 얼룩져 있다. 사람들은 바위에 기대 믿음을 얻어가지만 비둘기들은 바위에 기대 먹이를 얻고 잠을 잔다. 비둘기들이 현명한 것도 사람이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그네가 보기에는 암만해도 이 석불의 진짜 주인은 비둘기들이다. 비둘기들은 말없는 관음의 응신일까. 의지할 데 없으면 쇳덩어리나 나무 조각, 너럭바위 하나에도 기대고 싶은 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석불 앞에서 사람들은 절을 하고 비둘기들은 응답한다. 구구구구…. 여름 낙가산, 아홉 분의 비둘기 보살이 불상 곳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몇은 법문을 하고, 몇은 졸고, 또 몇은 몸치장중이시다.
  
글·사진/강제윤(http://blog.naver.com/bogil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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