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친절한 아프리카, 혼자의 ‘사치’에 길을 접다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탄자니아 이링가~말라위 카타베이/09.03.02~11
네일 내일이 따로 없이 여기저기 기웃 ‘호기심 천국’
내전, 에이즈, 빈곤…, 풍광은 눈부셨지만 마음 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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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일은 이링가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하여 80㎞ 정도를 주행하여 오후 4시쯤 마핑가에 도착하였다. 가는 길은 고도 1,600m에서 1,900m정도의 고지대로 열대지방답지 않게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곳에서는 가는 도중 식당은 볼 수가 없었고 가끔 구운 옥수수(200실링)와 바나나(큰 것 한개 100실링)를 파는 곳이 있어서 그럭저럭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오후 마핑가로 가는 길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디. 
 
마핑가에 도착해 한 식당 안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
 
“비가 와서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주방의 여주인은 숯불 옆에 의자를 갖다 놓으며 앉으라고 권했다. 숯불 앞에 앉아 젖은 옷을 말렸다. 눈앞에 보이는 파리떼가 달라 붙어있는 구운 생선을 보며 커피 한 잔과 닭수프 요리를 주문하였다. 닭수프는 탄자니아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닭을 토막내어 큰 냄비에 삶아 밥과 함께 닭고기 한 토막을 건져 국물과 같이 접시에 담아주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따뜻한 국물맛은 양념이라고는 소금 한 가지였으나 젖은 속을 풀어주었다. 
 
거의 날마다 몇 시간씩 내리는 장대비 ‘또 하나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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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일 마핑가에서 마캄바코까지는 87㎞의 길로 가는 길에는 옥수수 하나 사먹을 만한 곳이 없어서 거의 도착할 무렵에는 허기가 졌다. 마캄바코 가까이 이르자 길가에 조그만 상점이 나타났고 가게에 들어서자 여주인이 콩깍지를 까고 있었다. 얼마냐고 물어보았더니 1리터에 1,000실링을 불렀다. 이것을 사서 마캄바코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으려고 삶아보았다. 콩은 오랫동안 끓였는데도 잘 익지 않았다. 탄자니아에서 가끔 먹었던 콩 수프는 부드러웠는데 내가 삶은 콩은 뻑뻑하기만 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콩은 하룻밤쯤 물에 불려서 삶는다고 한다. 어쨌건 처음 만들어본 소금만 들어간 콩 수프 한 그릇을 그날 나는 먹어 치웠다.  
 
다음 날도 비가 많이 왔다. 탄자니아에서 내리는 비는 주로 장대비였다. 이런 빗속에서 자전거를 계속 탄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거의 매일 몇 시간씩 내리는 장대비는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내키지 않았으나 약 250㎞ 떨어진 말라위를 가기 위하여 중간에 엠베야를 거쳐 국경마을인 송게까지 이틀간 버스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엠베야에 도착하였을 때도 버스에서 자전거를 내릴 때 누군가 장대비를 맞으며 고맙게도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적은 돈이나마 집어주면서 웃음과 함께 고마움을 표시한 뒤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로 뛰어 들어갔다.
 
고도 1,700m의 엠베야는 산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풍광이 좋은 도시였다. 장미꽃처럼 빨갛게 꽃들이 핀 아름드리 나무들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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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6일 오전 7시 송게로 출발한다는 미니버스는 2시간 늦게 출발했다. 조금 가더니 한 정류장에서 손님이 만원이 될 때까지 한 시간 이상 또 정차하였다. 승차 때 나는 뒤쪽의 좁은 짐칸에 자전거를 넣기 위해 자전거의 두 바퀴와 앞뒤 랙과 안장까지 떼어내야만 했다. 오후 2시쯤 송게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조립할 때 또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어 지켜보았고 한두 명은 나를 도와주었다. 아프리카만큼 사람들이 호기심 많고 친절한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며 네일내일이 따로 없는 이곳에서 우리의 옛 인심을 보는 것 같았다.
 
16번 째 방문국 말라위, 호수의 나라
 
그러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아직도 내전, 에이즈, 빈곤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길을 가면서 보는 푸르른 대지는 아름다웠지만 마음 한편이 저릴 때가 많았다. 도시를 벗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맨발로 다녔고 심지어 벌레를 잡아먹는 어린아이를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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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7일 오전 10시에 말라위 국경사무실로 들어섰다. 한 직원이 나에게 노란 카드를 보여주었다.
 
“황열병 예방접종카드가 있으세요?”
 
페니어가방 속에 그 동안 간직해둔 한국에서 가져온 노란 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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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와 예약한 호텔은 어디입니까?”
 
“나는 길을 가면서 보이는 호텔에 숙박합니다”라고 말하며 말라위 대사관에서 받아온, 말라위 소개 책자에서 찢어낸 손바닥만한 지도에 그려진 길을 보여주었다. 그는 호텔 이름을 알아야 한다며 호텔 이름을 대라고 추궁하였다. 대답을 못하고 있을 때 그 지도에 썬버드란 글자를 그가 보고는 “여기 썬버드 호텔이 아닙니까?” 하며 그는 썬버드 호텔을 적어넣었다.

드디어 16번째 방문국인 말라위로 들어섰다. 입국하자마자 맨발의 아이들이 “Hello! Hello! Give money!” 하며 뛰어나왔다. 나는 달려드는 아이들을 피하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개중에 몇 명은 수십 미터를 쫓아오기도 하였다.
 
Untitled-13 copy.jpg오후 3시에 50㎞ 거리의 카롱가에 도착하여 한 게스트하우스(2,000콰차)에 2일간 머물렀다. 게스트하우스 직원 아담은 상냥하고 친절하였다. 길을 물으면 그는 그곳까지 안내해 주었고 저녁에는 제일 번화가라는 허름한 카페 3군데가 있는 거리로 가서 청춘 남녀들이 맥주를 마시며 엉덩이 춤을 추는 모습을 구경시켜 주었다.
 
다음날 아침 호숫가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보았다. 말라위는 남한 면적 크기의 나라로 국토의 20%가 호수로 이뤄졌다. 바다와 같은 푸른 호숫가에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고무신처럼 생긴 배들이 늘어서 있었고 간혹 배에 가득 찬 잡아온 물고기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눈치 빠른 사람이 접근하여 물고기를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큰 물고기 있나요?”
나는 그에게서 30~40㎝ 정도의 제법 큰 물고기 3마리를 800콰차(1달러=150콰차)에 사와서 모처럼 잘 먹을 수 있었다.
 
맨발의 그에게 운동화 주자  “신의 축복을”
 
다음날 친절하게 대해준 아담에게 내가 갖고 있던 두 개 바지 중 하나를 선물로 주고 치룸바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역시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Hello!”, “How are you?” 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대답을 안 하면 그들이 “Fine”이라고 말했다.
 
가는 길 중간중간 말라위 호수의 모습이 나타났고 호수 가까운 곳에선 머리에 생선 바구니를 이거나 손에 끈으로 묶은 생선들을 들고 가는 사람들 모습이 많이 보였다. 말라위 호수의 풍요로움을 물고기를 가져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물고기들은 햇빛에 말렸는데 생긴 모양이 멸치와 똑같았다. 맛을 보았더니 싱거웠지만 고소한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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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마을 치웨타를 지나자 길은 갑자기 가파른 산길로 변했고 고도가 1,900m로 높아지며 카타베이까지 200㎞에 이르는 내륙의 길이 이어졌다.
 
3월10일은 카타베이로 가는 길의 중간마을인 페지란 곳의 게스트하우스(300콰차)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프리카 자전거여행의 종착역인 호숫가의 마을 카타베이로 향하였다.
 
한 상점에 들러 환타 한 병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맨발로 타는 사람이 지나가기에 그에게 오라고 손짓을 보냈다. 그에게 갖고 있던 운동화를 주었다.
 
“이거 신고 타세요.”
 
그가 운동화를 받아들고 말했다. “신이 당신을 축복할 것입니다.”
 
어느새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서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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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다 빠진 천마는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목적지에

 
오후 5시쯤 엠주주란 곳에 도착해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카타베이까지는 47㎞의 거리였으나 내리막길이었다.
 
“좋다! 오늘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카타베이까지 갈 것이다.”
 
카타베이를 향하여 2~3㎞를 진행한 시점에서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 튜브를 교체하고 공기를 주입하는데 지금까지 잘 써왔던 에어펌프마저 고장이 나버렸다.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바람은 절반도 안 들어가 타이어가 물컹거렸다. 다시 망설였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엠주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나 마지막 날의 목적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리막길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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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내리막은 잘 달렸으나 오르막에서는 뒷타이어의 영향으로 힘겨워했다. 한 시간쯤 나아갔을 때 한 마을이 나타났고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한 자전거포에 들어갔다.
 
“여기 바람 좀 넣어 주세요.”
 
그러나 자전거포에는 내 튜브에 공기를 넣을 수 있는 펌프가 없었다. 이때 한 사람이 비닐종이와 대나무통 같은 것을 갖고 왔다. 튜브 밸브에 비닐을 감고 대나무통 펌프로 바람을 넣기 위해 5분 정도 열심히 펌프질을 하였으나 타이어는 그대로 물렁한 상태였다. 그에게 그만하라고 한 후 그래도 수고했다며 환타 한 병을 사주고 다시 내리막 산길로 들어섰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올라 환하게 앞길을 비춰주었다. 아프리카에 처음 들어섰을 때 밤길을 달리며 양들과 충돌한 일을 생각하며 전조등을 켜고 목에는 헤드랜턴을 차고 어둠 속을 밝히며 천천히 달렸다. 캄캄한 숲 구간을 지날 때 어둠 속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Hello!” 하며 인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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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도착할 무렵 타이어를 만져보니 타이어는 남은 바람마저 다 내어주고 주저앉아 있었다. 천마는 비틀거렸으나 끝까지 나를 태우고 아름다운 호숫가가 있는 카타베이로 천천히 들어섰다. 그리고 안장 위에서 내렸다.
 
자전거 여행자에겐 아프리카는 천국
 
아프리카는 잘 보존된 자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물가가 저렴하였고 특히 숙박비가 저렴하여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천국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친절하였다. 물론 공산품들은 대체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비싼 물품도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는 행복하였다.
 
물건을 가득 담은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는 자전거는 이곳에선 오히려 사치 같았다. 그들은 맨발로 페달이 떨어져나간 자전거를 탔고 그나마 자전거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여유로워 보였다. 돈을 달라며 멀리서부터 뛰어 나오는 맨발의 아이들, 동경과 부러움의 눈으로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들, 자전거를 타는 외국인을 보고 습관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이던 아이들 앞에서 나는 배부르고 사치스러운 부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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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매일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이 여행을 더 해야 할 것인가에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내 조그만 그릇의 한계라고 생각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곳에서 며칠간 휴식을 취하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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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