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르 진입 10Km 전부터 차량으로 꽉 막혀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모리타니아 노악초트~세네갈 다카르/09.02.01~15
3일 내리 생선만…“코리안 피쉬스프 최고!”
드디어 북서아프리카 자전거 여행 종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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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악초트에서 라이먼드는 호텔을 찾아들고 나는 민박을 했다. 라이먼드와 노악초트에 도착하여 저렴하며 깨끗한 호텔을 찾으려고 돌아다닐 때 찰리(45세)란 사람을 만났다.
 
“이곳은 호텔비가 매우 비쌉니다. 저의 집을 한번 보시죠?”
“하루 숙박비가 얼마입니까?”
“1,000오귀야만 주세요.”
 
그의 집은 시내와 가까웠고 현지인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나는 그의 집에서 숙박하기로 하였다. 시내의 길은 자동차 도로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 모래밭이었다.
 
처음 보는 큰 고기들이 눈에 많이 띄어
 
찰리가 보여 준 방을 나 혼자 쓰는 줄 알았으나 찰리가 기거하는 방이었고 그 집의 조그만 방들은 세들어 사는 가족들이 한 방씩 사용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방바닥의 절반은 비닐장판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침대로 사용하는 매트리스 한 장이 깔려있었다. 가구라고는 의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의자 위에는 주전자와 컵과 커피, 치즈 등이 놓여있었다. 
 
찰리는 노악초트의 중학교 불어선생으로 프랑스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살아봤으나 모리타니아가 제일 맘에 듭니다. 이곳은 한적하고 일에 부대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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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아는 공휴일이 금요일이라서 찰리의 안내를 받아 일요일에 세네갈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할 수 있었다. 그는 비자비용을 4,500오귀야라고 하였다.
 
“비자비용이 비싸군요. 좀 깎아 보시죠.”
그는 잠시 후
“2,500오귀야에 해주겠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가격은 1,500오귀야였으나 나는 2,500오귀야를 주었고 3일 후에 찰리에서 여권을 넘겨받았다.
 
빅피쉬를 사기 위해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는 큰 어시장이 있었고 어시장을 지나자 바닷가 모래사장이 나왔다. 어시장에서 생선들은 넘쳐났으며 처음 보는 큰 고기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바닷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멀리 파도에 흔들리는 어선들 쪽으로 시선들이 가있었다. 길이 10m 정도의 길쭉한 목선을 어부들이 파도를 헤치며 바다로 밀어내어 물속 깊숙이 배가 나가면 그때서야 배에 올라탔다. 모래사장에는 고기 광주리를 머리에 지고 가는 아낙네,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 고기잡이 배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생선장수, 가지런히 놓인 길쭉한 목선들, 당나귀 등이 한눈에도 이곳이 큰 어항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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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맛있는 생선을 삽시다.”
나는 메로란 이름의 생선 2마리(3,900오귀야, 고기 다듬는 비용 300오귀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옆집에서 큰 냄비를 빌려 매운탕을 끓여서 라이먼드, 찰리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코리안 피쉬스프(매운탕) 최고!”
 
모래가 씹히는 빵을 먹으며 이곳에 오며 빅피쉬를 먹자고 라이머드와 나는 여러 번 말했었다.
 
찰리는 그릇을 사왔고 라이먼드는 그릇 가격을 물어보더니 그 비용을 찰리에게 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생선을 안 먹어요. 너무 흔해서 그런지….”
 
큰 아지와 도미를 시장에서 3Kg 사는데 1,000오귀야를 주었다. 생선 값이 똥값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싸고 씨알 좋은 생선들을 먹어보랴? 나는 3일을 계속하여 생선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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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야 길 잘못 든 줄 알아
 
비자가 필요 없는 라이먼드는 3일을 머문 후 세네갈과 감비야를 향해 먼저 출발 하였고 나는 비자를 받아 다음날인 2월 4일 출발하였다.
 
세네갈 국경까지는 200여 Km길로 110Km를 진행한 시점에 한 작은 도시가 있어서 그곳 호텔에 숙박한 후 국경지역인 로쏘에 오후 3시경에 도착하였다.
 
모리타니아 출국사무소로 들어갔다.
 
“1,000오귀야 주세요.”
 
출국 스탬프를 찍어주는데 불법적으로 돈을 요구하였다. 나는 돈이 없다고 하며 기다렸다. 군인들은 몇 번 돈을 요구하였지만 돈이 없다며 계속 버티자 결국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사실 나의 지갑에는 550오귀야밖에 없었다. 참고로 라이먼드는 출국스탬프를 받지 않고 강을 건넜다는 얘기를 후에 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세네갈과 모리타니아는 강을 사이로 국경이 나뉘어 있었고 배를 타고 세네갈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거기서 나는 육로로 가는 길을 물었다.
 
“오른쪽 길로 가면 됩니다. 내가 안내하죠.”
 
한 사람이 나를 안내한다며 앞장서서 갔다. 그러더니 곧, “경찰에게 물어봐야 되겠군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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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경찰에게 나를 데리고 갔고 경찰은 여권을 보더니 출국도장을 받았는데 왜 육로로 가려고 하느냐고 따지며 20유로를 내야 된다고 하였다. 돈이 없다고 하자 환전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는 나를 계속 붙잡고 있었으며 그냥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지갑을 꺼내 이것이 다라며 지갑을 털어 500오귀야를 주자 그때서 그는 나를 보내주었다. 그 돈은 내가 물을 사려고 남겨둔 돈이었다.
 
나는 육로 길로 들어섰다. 입구가 비포장 도로라서 가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이 길이 세네갈 다카르로 가는 길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쭉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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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좀 더 상세히 물어보지 못하고 조금만 가면 되리라고 생각하여 계속 강을 따라 전진하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길이 맞다고 하니 모래와 진흙, 돌들이 깔린 비포장 도로를 계속 따라가다가 저녁이 가까워졌다.
 
“모리타니아는 들어올 때도 험난한 비포장 도로였는데 나가는 데도 애를 먹이는구나!”
 
푸념을 하며 가다가 한 검문소가 보여 군인에게 물 좀 달라고 하였더니 1.5리터 페트병에 물을 반쯤 담아줬다. 해가 지기 전에 텐트를 쳐야 했다. 비포장 도로를 23Km 들어온 시점이었다.
 
예정에 없던 야영이라 가지고 있는 부식은 쌀 약 600g, 양파1개, 물 2리터, 먹다 남은 빵 한 줌, 녹아버린 버터가 전부였다. 반찬이 없어서 밥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 밥을 하고 버터를 조금 비벼가며 생양파를 반찬으로 먹었다. 이곳 쌀은 우리 쌀처럼 깨끗하지 않았으나 쌀까지 씻을 물은 없었다. 그나마 물을 조금 얻어 밥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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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하던 젊은이 호텔 비싸다며 무료로 자기 집에
 
다음날 아침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고(이 길도 다카르로 가는 길이 맞으나 돌아가는 길이었고 비포장이라서 자전거 통행이 어려운 길이었다) 다시 로쏘로 돌아갔다. 로쏘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요금이 200오귀야였다. 결국 200오귀야가 없어서 100달러를 환전하였다. 모리타니아돈 오귀야 약간과 세네갈 돈 프랑(1$=약 500프랑 하는 환율을 400프랑에 환전)을 환전하였다.
 
세네갈로 입국하여 50Km를 가서 로쏘베쵸란 도시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호텔을 찾으니 묻는 사람마다 대답이 달랐다. “50Km를 더 가면 있다”, “저 레스토랑에서 재워준다”….
 
재워준다는 레스토랑에 가보았으나 그곳은 아니었다. 한 젊은이에게 물으니 “뒤로 가면 있다”며 그가 앞장서 호텔로 안내하였다. 호텔간판이 없어서 지나친 건물이었다.
“7,000프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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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물가 사정을 몰라서 비싸다고 하며 “5,000프랑”으로 흥정하였으나 그는 7,000프랑 이하는 안 된다고 하였다(그 후 내가 머문 세네갈의 숙박비는 9,000·10,000·14,600·15,000프랑으로 그곳이 가장 싼 곳이었다). 그때 나를 안내해준 라민이란 젊은이가 “이 호텔은 숙박비가 비싸다”고 하며 자기 집에서 자겠느냐고 물었다.
 
“얼마 주면 됩니까?”
“안 줘도 됩니다.”
 
모래사장 골목길로 들어서 라민의 집으로 가서 하루 숙박할 수 있었다. 
 
라민의 집은 독립된 3채의 작은 집에 부모, 누나, 라민이 가각 한 채씩 사용하고 있었다. 짚으로 지붕을 만든 집과 슬레트로 지붕을 한 집이 섞여 있었다. 방 하나인 라민의 집안에는 넓은 침대 하나가 가구의 전부였다. 그곳에서 라민의 친구와 함께 기거하고 있었고 나는 침대 옆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었다. 텐트에서 자면 모기걱정이 없으므로 방에서도 종종 텐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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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교에서 기계를 전공하였으나 일자리가 없어서 상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라민은 적은 수입으로 부모를 부양하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여자친구와 동네 친구들이 한번씩 들러 나와 인사를 하고 갔다.
 
그의 집에서 물 한잔이라도 얻어먹을 수 없었고 저녁으로 빵과 만든 커피를 라민과 나누어 먹었다. 다음날 그 집을 나서며 약간의 돈을 그에게 주었다.
 
케냐 빼고 탄자니아로 궤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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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산루이스, 로가, 디에스를 지나 4일에 걸쳐 세네갈 수도인 다카르에 도착하였다. 가는 길에는 바오밥 나무가 많이 보였다. 길 옆에서 독수리들이 죽은 소를 뜯어 먹는 모습도 보였다. 사진을 찍으면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웃으면서 ‘돈이 없다’고 하면 되었다.
 
역시 다카르는 진입하기 10Km 전부터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과일 노점상에서 파파야나 코코아를 사먹으며 가면서 다카르에 도착하여 바닷가 앞에 있는 오셔니움(Oceanium) 호텔로 들어섰다. 호텔 옆에는 어선들이 여러 척 있었고 그곳에서 잡아온 생선들을 사먹을 수 있었다. 간혹 살아있는 놈은 회를 떠서 토마토 케찹을 발라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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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르는 북서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의 종점으로, 여기서 남동아프리카의 여행을 위하여 케냐로 가는 비자를 받고 비행기표를 예매하려고 하였다. 케냐 비자는 영국대사관에서 받을 수 있었으나 월요일만 접수하여 시간이 걸렸고 마침 세네갈 비자 기간도 끝나는 시점이라 세네갈 비자의 연장도 필요하였다.
 
비자 연장도 며칠이 소요된다고 하여 결국 열흘 이상을 이곳에서 머물러야 비행기를 탈 수 일을 것 같았다. 남동아프리카 루트를 일부 재검토하여 케냐를 빼고 탄자니아->말라위->모잠비크->스와질랜드->사우스아프리카로 경로를 수정하였다. 그리고 2월15일자 탄자니아 비행기표를 예매하였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로 돌아오자 “감비아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내용의 라이먼드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 다시 만난 라이먼드는 나보고 “좋은 숙소를 잘 찾는다”며 내가 묵은 호텔로 와서 숙박하였고 이틀간 같이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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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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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