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내 소식 알리며 “세계에 소문날 것”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이탈리아 피아슨자~프랑스 안티베/08.11.07~13
자전거 상점 주인 알고보니 ‘마이다스’
‘합리’의 이름으로 자전거 주차비 따로

 
 
2 copy.jpg10월7일 피아슨자에 도착하자 자전거 상가를 찾았다. 타이어를 1과1/2인치로 교환하고, 앞 드레일러를 고정하는 나사가 망가져 수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 가게에 들러 자전거를 보여줬더니 주인은 다른 자전거 상점을 소개시켜 주었다. 알려준 곳으로 찾아가 다시 자전거를 보여주었다.
 
“앞 드레일러 나사가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타이어를 1과1/2인치 두께로 바꾸고 싶은데요.”
“어디서 왔습니까?”
“한국에서 왔고 세계일주 중입니다.”
 
상점 주인 티조니 지안파오코는 지름 5mm쯤 되는 작은 나사의 중앙에 쇠톱으로 일자 홈을 내어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서 고쳐 주었다. 그러면서 브레이크를 점검하고 기름칠이 필요한 부분에 알아서 기름칠도 해 주었다.
 
“얼마입니까?”
“자전거 상태는 좋습니다. 여행이나 잘 하세요.”
 
그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더니…
 
자전거상점에는 라이더가 여럿 있었다. 그들은 내 주위에서 영어로 통역도 해주며 한국의 남양주에서 온 한 남자를 반겨줬다. 내가 찾는 타이어는 재고가 없어서 사지 못했다.
 
그중 한 사람은 “티조니 지안파오코는 마이다스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신문사에 핸드폰으로 나의 소식을 알렸다.
 
“당신의 소식이 신문에 나고 전 세계에 알려질 것입니다.”
 
그는 내가 저렴한 숙소를 찾는다고 하자 앞장서서 한 호스텔로 안내도 해주었다. 호스텔의 싱글룸은 만원으로 도미토리에 숙박했다. 아침식사를 포함해 16유로로 저렴했다. 그리고 내 소식이 신문에 났는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 다음날 아침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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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주말이어서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울긋불긋한 저지를 입은 10여명의 중노년층 일행에게 제노아(GENOVA)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들은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닌 지름길을 알려줬다.
 
“그 길은 언덕 구간이 많지 않습니까?”
“그 길은 평지이고 경치가 좋습니다. 거리는 100㎞가 넘는 먼 거리입니다.”
 
그 일행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클을 탄 그들은 나를 추월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거나 오른손 손바닥을 내려서 보이며 지나갔다. 뒷모습은 한결같이 젊은이들 모습이었다.
 
가는 길엔 계곡이 있었고 계곡엔 물이 많아 래프팅을 하는 팀도 보였다. 높은 산은 아니었으나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산길로 가면서 나는 ‘세상에 믿을 놈이 없구나!’ 하면서 반복되는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80㎞쯤 가다가 지쳐버려서 한 마을에 들러 호텔이 있는가를 물었다.
 
“2㎞를 더 가면 호텔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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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따라 2㎞ 정도 갔을 때 침대가 그려진 간판이 나타났다. 간판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 보니 산속에 외딴집 3채가 있었다. 그중 한 집이 호텔이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고 옆집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시간이 오후 4시로, 산속이어서 5시면 어두워질 게 틀림없었다. 문 닫힌 호텔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반지하의 빈 헛간 문이 열려 있었다. 다행히 호텔 밖에 수도시설이 되어 있어서 물 공급도 가능했다. 나는 반지하 헛간에 들어가 매트리스와 침낭을 폈다. 버너를 꺼내 따뜻한 커피부터 한잔 끓여 마셨다. 먼 곳에서 가끔 인기척이 들리면 개가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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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주변엔 산안개가 자욱이 피어올라 있었다. ‘여기서 하루 잔 것도 소득은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산안개에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아침 노을과 산안개가 어우러진 모습은 볼만했다.
 
이탈리아는 관광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니다 보면 한적한 곳뿐 아니라 도시에도 문닫은 호텔이 꽤 많아서 호텔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가야 했다.
 
고독한 바다 보며 시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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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아로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100㎞ 정도 이어졌다. 제노아 부근에 이르자 터널 구간이 많았다. 제노아는 항구도시로, 작은 로마같이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지도를 보니 제노아부터 프랑스, 아프리카와 인접한 스페인의 알게시라스(Algeciras)까지 가는 길은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가는 긴 도로였다.
 
제노아에서 가는 해안선 길은 역시 멋진 풍경을 선사했다. 야자수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길과 도시의 아름다운 건물들, 바위를 뚫어 만든 터널들, 간혹 절벽 위에 고성이 하나씩 나타나는 길이었다. 경쾌한 몸놀림으로 사이클을 타고 가는 무리들, 멋쟁이 아가씨나 헬멧 속에서 허연 수염이 날리는 할아버지도 간혹 눈에 띄었다. 길 가에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바다가 고독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바다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한 편의 시를 지어 보았다. 개떡 같은 시일지라도 한번 읽어 보시라!

 
 <길 끝의 바다>
 
 바다로 가는 길
 산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었다.
 사막에 누워 낙타 울음소리를 들었다.
 바람 따라 가다
 그 길 끝에서
 너울너울 춤 추는 바다를 보았다.
 
 새벽 햇살이 길 열어줄 때
 바람 속에서
 들꽃은 환하게 피어나고
 
 길 옆에 사는 사람들은
 집 앞에 의자를 내어 놓고
 꽃을 심는다.
 
 설산의 빙하가 떨어져
 강물 되어
 바다로 가는 길
  
 그 길 끝에서
 의자에 앉아
 바다로 뛰어드는 물새를 보았다.
 너울너울 춤을 추는 바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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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견인, 그러나 과태료는 면제
 
11월13일은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프랑스로 이동하였다. 여기도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로 입국할 때처럼 국경에는 아무 통제가 없었다. 나는 다른 차량과 같이 국경이란 가상의 선 앞에서 프랑스란 간판을 보고 여기부터 프랑스 땅임을 알았다.
 
지중해를 보며 2시간쯤 달렸을 때 모나코로 들어섰다. 모나코는 한 도시에 불과한 작고 아름다운 나라로 ,경사진 땅에 위치해 있다. 나는 모나코를 통과하다가 언덕 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섰다. 1.6㎞ 길이의 터널을 통과할 때 다른 차들이 나를 보고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렸다. 터널 안 차도 옆에 턱진 보도가 있었는데 나보고 그곳으로 가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터널 중간부터 자전거에서 내려 보도로 올라가 걸어서 터널을 빠져나왔다.
 
“봉쥬르! 이 길은 고속도로로 가는 길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간 해발 400m의 언덕 위에선 견인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스로 가야 하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가야 합니까?”
그들은 자전거와 나를 견인차에 태우고 잠시 가더니 한 톨게이트 앞에서 내려주었다.
 
“이 길로 내려가세요. 니스로 가는 길입니다.”
고속도로에서 2번째의 견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크로아티아처럼 과태료를 물리지 않았고 그들은 오히려 상냥하게 대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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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양도시 니스를 지나 안티베에 오후 4시 쯤 도착했다. 안티베엔 좀 오래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프랑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구시가지가 있었다. 호텔을 알아보니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호텔이 78~98유로를 불렀다. 좀 더 알아보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가다가 거기 있던 두 노인에게 저렴한 호텔을 물어보았다.
 
“여기서 4㎞ 가면 유스호스텔이 있어요.”
그들은 친절하게도 약도를 그려주고 시가지 지도도 프린트해 와서 나에게 주었다. 내가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자 그들은 박수를 쳤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보이지 않고…
 
나는 두 노인이 알려준 유스호스텔이 있는 곳까지 가보았으나 유스호스텔은 보이지 않았다. 그 지역을 두 번 돈 뒤에야 그곳이 문을 닫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안티베 시가지로 들어와서 별 두개짜리 호텔을 찾아서 들어섰다.
 
“하루 숙박비가 얼마입니까?”
“60유로입니다. 조식을 포함하면 80유로이고 자전거를 주차장에 두려면 5유로입니다.”
“뭔 말입니까? 자전거에 돈을 받는다고요?”
“호텔 밖에 두면 안 받습니다. 단, 자전거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호텔 건물 밖 정원에 두지요.”
 
리셉션 직원은 처음엔 좋다고 했으나 나중엔 그곳도 호텔 내부이므로 안된다고 했다.
 
호텔비를 지불하고 자전거 주차비까지 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기가 막혔다. 나는 여직원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자전거 주차비 얘기는 처음입니다. 자전거 주차비를 받는 이유가 뭡니까?”
 
호텔 로비에서 옥신각신하는 게 시끄러웠는지 누군가 그녀에게 뭐라고 했고, 그녀는 호텔 정원에 자전거 주차를 허용했다.
 
프랑스에 들어와 첫날의 숙박은 언짢았다. 그녀의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와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가혹한 호텔비, 자전거 주차 사건, 뒤에 인터넷 사용 때 30분 사용에 1유로를 지불한 일, 아침 식사비를 따로 받는 것 등 모든 서비스가 분할되어 있었고 그 비용도 분할되어 있었다. 이것이 합리적인 것일지는 몰라도 인간적이라고는 나는 볼 수가 없었다. 아니, 합리적이지도 않고 주인 멋대로 가격을 책정한 것에 불과했다. 모든 서비스를 분할하려면 타올 사용, 침대시트 사용 등 더 세세히 분할했어야 합리적일 것이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보이지 않고 경제대국 프랑스가 입국 첫날부터 먼저 보였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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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