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언덕에서 보인 신기루, 내 여행도 혹시?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데니즐리~세림파사/08.09.23-10.05
한 잔, 한 잔, 또 한잔, 넘치는 ‘차이’ 인심
여행 떠난 이래 가장 짧은 주행기록 1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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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국도를 지나면서 만난 도시들은 우리말 발음과 비슷한 이름(물론 뜻과는 상관없이)을 가진 곳이 여러 곳 있어서 심심치 않았다. 재미있는 이름 몇 가지를 보면 오르한가지, 마니사, 디딤, 보드룸(보드라움), 무그라, 카레, 다즈키리(다죽이리), 에디르네(애들이네) 등이다.
 
9월23일 데니즐리시를 출발하여 다즈키리, 산디크리, 아피온, 쿰벳, 보주육, 이즈밋 그리고 10월3일 터키에서의 자전거여행 출발점인 이스탄불로 돌아왔고, 거기서 이틀간 더 전진하여 불가리아 국경 방향에 있는 세림파사란 곳에 도착했다.
 
데니즐리를 지나서 돌아오는 길은 점점 고도가 높아져 고도 1,000m 정도의 구릉지대가 400㎞나 계속되었고 보주육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도가 낮아졌다. 이곳 구릉지대는 고도가 높아서 아침·저녁으론 초겨울 날씨처럼 제법 쌀쌀했다. 날씨가 추워지자 자전거를 탄 지 한 시간도 안돼 핸들을 잡은 손가락에 쥐가 나곤 했다. 잠시 쉬면 말끔히 사라졌다. 쌀쌀한 날씨가 좋은 점은 땀을 적게 흘리게 돼 물 소비량이 줄어든 것이다. 1.5리터 페트병 물이 그날 목적지에 도착해 보면 1/3이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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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클리로 가는 국도변에는 감자를 큰 포대에 담아 파는 노점상들이 많이 보였다. 산디클리에 도착한 뒤 나는 시장에 들러 감자 몇 개를 사 삶아 먹어보았다. 색깔은 고구마처럼 노란색이었고, 담백하니 맛이 좋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내 자전거 타이어는 앞바퀴가 1.95인치, 뒷바퀴는 2인치(예비타이어로 교체됨)로 다소 무거운 상태여서, 주행속도를 좀더 올리기 위해선 타이어를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제법 큰 도시인 아피온시에 도착해 나는 자전거샵을 찾았다.
 
처음 찾아간 곳은 오토바이 부품 등을 파는 곳이었다. 그곳에 마침 자전거 타이어 1.75인치가 있어서 구입했다. 오텔로 돌아와서 앞뒤 림에 장착하는데, 타이어 고무가 얼마나 딱딱한지 장착하면서 플라스틱 타이어 레버의 이빨이 다 무너져 버렸다. 타이어 상표를 보니 중국산이었다. 이 타이어로는 안되겠다싶어 환불할 생각으로 다시 타이어를 빼내려 했지만, 이빨 빠진 타이어 레버로는 도저히 분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항의를 하기 위해 타이어를 산 상가로 가려고 오텔을 나섰는데, 바로 근처에 큰 자전거샵이 보였다. 처음에 왔을 때는 왜 그 상가가 안 보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1.5인치 타이어를 구입하고 싶었으나 그곳에도 1.75인치밖에 없었다. 터키제 타이어를 사면서 타이어 레버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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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이어는 아주 굿입니다.”
“타이어 레버도 주세요.”
 
타이어 레버를 알아듣지 못해, 타이어 뜯는 시늉을 해보였더니 그는 공구함으로 가 한쪽은 스패너이고 한쪽은 타이어 레버인 쇳덩이 하나를 집어 주었다.
 
“이거 최고입니다”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올리자, 그는 그 쇳덩이 값은 받지 않았다.
 
나는 그 쇳덩이로 중국산 타이어를 간신히 림에서 분리할 수 있었다. 구입한 곳으로 가서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주인은 별 말없이 순순히 환불해줬다.
 
타이어를 바꾼 뒤 아피온을 출발하자 그때부터 맞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였다. 맞바람은 무려 4일간 계속되었고 나는 구릉지대에 솟은 또하나의 언덕인 ‘바람의 언덕’들을 넘고 또 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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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한번은 신기루를 보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빛의 덩어리와 그 속에 든 한 그루의 나무가 지평선 끝에서 눈부시게 떠올랐다. 사진을 찍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니 선명하게 빛나던 그 황금빛 덩어리와 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회색의 구름만 있을 뿐이었다. 기묘한 자연현상에 나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것은 코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고, 어떤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도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먼 곳에 있는 알 수 없는 신기루를 쫓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은 자전거 여행을 간혹 두렵게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몇 년씩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지구 위를 달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신기루의 정체를 알기 위해 나의 발은 명령을 하달 받은 군인처럼 페달을 밟고 있다. 나의 여행은 신기루를 따라가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GPS에 표시된 8,310㎞ 기록의 특혜
 
 
Untitled-8 copy.jpg9월30일 숙박한 파무코바의 한 오텔은 핸드폰 상가와 겸업을 하는 곳이었다. 숙박비는 10리라로 터키에 숙박한 이래 가장 쌌다. 시설은 방에는 침상 3개가 있었고 욕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4층 건물이었다. 그곳 주인은 우르라는 이름의 27살의 청년으로, 겉모습은 나이가 좀더 들어 보이는 뚱뚱한 체격이었다. 처음 핸드폰 상가로 들어서며 숙박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손님들이 많아 그는 매우 바빴고 기다리라고 하였다.
 
“차이 좀 드시겠어요?”
 
나는 숙소로 빨리 들어가고 싶어 사양했으나 그는 전화로 차이를 주문했다. 기다리며 차이 한 잔을 다 마시자 그는 또 한번 차이를 권했다.
 
“한잔 더 하시겠어요?”
 
나는 “노”라고 확실하게 말해서 거절했다. 그는 내가 짐을 3층 방으로 나르는 것을 도와줄 때 그가 자전거를 얼마나 타고 왔냐고 물어서 GPS에 표시된 8,310㎞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더 친절해졌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사무실에 있는 ADSL로 연결된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는 내가 핸드폰 사무실로 가기만 하면 차이를 주문해 마시라고 주었다. 다음날 아침 그곳을 떠날 때 우르 대신 그의 부친이 나를 전송했다. 그곳을 떠나 10㎞쯤 전진했을 때 버너의 연료통을 오텔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연료통을 찾으러 돌아가자 우르가 반갑게 맞았다.
 
“이거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차이를 주문했다. 나는 사람 좋은 우르와 전날 사진을 못 찍은 것을 아쉬워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그가 주는 차이를 마시며 기념촬영을 했다. 그가 고마워서 이메일 주소를 적어 달라고 해서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고 서로 포옹까지 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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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바람이 잔잔하여 자전거는 매우 잘 달렸다. 이즈밋에 도착해서는 오래간만에 어물전을 만났다. 어물전에서 도미 한 마리를 사서, 매운탕을 얼큰하게 끓여 맥주 한잔 곁들여 먹었다. 먹고 나서 사진을 전송하려고 보니,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다른 사람의 메일 주소는 모두 있는데 공교롭게도 우르의 이메일 주소만 없는 게 아닌가? 우르가 나와 함께 사진을 찍어 좋아했었는데, 아무튼 쪽지를 잃어버린 건 내 잘못이었다.
 
이번에 터키 여행을 하면서 터키에는 차이 인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이는 끓일 때 차이 만드는 주전자를 썼다. 한번 만들면 여러 잔이 나왔다. 그래서 터키에는 따뜻한 차이를 나눠 먹으며 담소하는 미풍양속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전거 여행자는 늘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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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밋에서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왔던 길을 더듬어 가는 길이었다. 자전거로 이스탄불에 있는 2개의 다리를 건너지 못하여 하렘이란 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전에 묵었던 악비익 거리에 있는 동양호스텔 문앞에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단체손님으로 방이 만원이었다. 나는 맞은편 써던크로스 호스텔에서 묵게 되었다. 나는 이스탄불처럼 사람이 많고 복잡한 도시보다는 한적한 곳이 좋아서 배를 타기 전에 한적한 곳에서 묵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뿐인 호텔은 숙박비가 비싸 숙박을 포기하고 배낭여행자 거리인 이곳으로 왔었다. 60리라를 50리라로 깎아 싱글룸을 잡았다. 여기선 간단한 아침식사도 제공됐다.
 
다음날 아침 출발 준비를 마치고 제일 먼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려는데 한 사람이 내 앞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27살의 시몬이라는 캐나다 청년으로, 턱수염이 덥수룩하였고 체격도 균형이 잡혀 있었다. 가볍게 서로 “Hello!” 하며 인사를 하고 같이 한 바구니의 빵을 나눠 먹으며 자전거 이야기를 하였다. 바구니의 빵이 바닥을 보이자 나는 빵을 더 주문했다. 종업원은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가져왔고 우리는 그 바구니의 빵도 마지막 남은 두 조각까지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Untitled-9 copy.jpg“자전거 여행자는 늘 배가 고프지요.”
 
그렇게 웃으면서 말한 그는 프랑스에서 터키까지 5,700㎞를 석달 반 걸려 자전거로 여행했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You are crazy!” 하며 갖고 있던 불가리아 지도를 건네주었다. 그는 며칠 휴식을 취하며 캐나다로 돌아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헤어질 때 명함을 주자 그는 그곳에 적힌 나의 다음카페 ‘around the world on two wheels’를 보더니 카페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그가 나의 카페에 들어와 사진이라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글 문제로 그가 쉽게 가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페를 보려면 가입해야 하는데요?”
“가입하면 되지요, 뭐.”
 
나는 또 짧은 인연의 친구를 사귀고 안장 위에 올랐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구름
 
10월5일 쿰부르가즈에서 출발해 에드리네를 향하여 1시간쯤 가다가 주유소에 들러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멀리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주유소 옆에는 호텔이 하나 있어 잠시 망설였다. 비가 올 날씨인가, 아니면 맑아질 날씨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구름을 보며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전에도 이런 날씨에는 자전거를 탔었고 목적지까지 예정대로 도착하곤 했다. 나는 노란색의 방수커버를 카메라가방에 씌우고 출발했다. 큰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도로로 들어선 지 2분도 안되어 갑자기 빗줄기가 퍼부었다. 빗방울은 마치 우박처럼 굵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자전거를 돌려서 다시 주유소로 가서 자전거를 세웠을 때는, 불과 2~3분 사이였는데도 주머니 속의 스카프까지 다 젖어 있는 상태였다. 잠시 젖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주유소 옆 레스토랑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나를 보고는 들어오라고 손짓했고 나는 그곳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차이를 한 잔 주문하면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나보고 마시라고 권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는, 젖은 몸이어서 앉지 못하고 서서 차이를 마셨다. 그에게 담배를 권하고 라이터를 켰지만 불이 붙지 않아 그의 불로 담뱃불을 붙였다. 옆에서 불던 바람의 방향이 맞바람으로 변해 빗줄기와 함께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터키에는 국기를 게양한 곳이 많아 쉽게 바람의 방향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차이를 다 마시고 나서도 이 비가 계속 올 비인가, 잠시 후 그칠 소낙비인가 알 수가 없었다. 하늘은 잠시 구름이 엷어지는 듯 하다가 흐려지고 검은 구름 덩어리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낮은 하늘로 지나가고 있었다. 빗줄기가 다소 가늘어졌다. 그날은 오전 9시10분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14㎞를 진행한 상태로 현재 시각은 11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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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들어가 숙박비를 물어보았다.
 
“1인이면 30리라이고 2인이면 60리라입니다.”
 
30분 후에 날씨를 봐서 숙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으나 그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주유대 옆에 세워둔 자전거를 가져와 숙박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날은 자전거여행을 떠난 이래로 가장 짧은 거리인 14㎞의 주행기록을 세운 날이었다. 호텔에 숙박한 뒤에도 큰 비는 아니었으나 계속 비가 내렸고, 오후 2시가 지나서 갰다. 시간이 지나면서 뭉게구름이 떠 있는 청명한 날씨로 변했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다. 그곳은 세림파사란 곳이었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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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