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째 발굴 중인 파묵칼레, 꿈들을 만나다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보드룸~데니즐리/08.09.18~22
BC 2세기 원형극장 그대로…한글 문구 상점도
가랑비 내리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비키니 차림
 

Untitled-2 copy.jpg


9월18일 해안도시 보드룸을 떠나며 나는 터키의 내륙으로 향했다. 야타간, 무그라, 카레에서 하루씩 숙박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파묵칼레가 있는 데니즐리에 9월22일 도착했다.
 
이 구간의 길은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주위엔 굽이굽이 산들이 보이는 것이, 마치 강원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여느 지역처럼 몇㎞마다 주유소가 있었고, 거기에 상가와 레스토랑이 있어서 필요한 식음료를 살 수 있다는 것도 여느 지역과 별 차이가 없었다. 
 
Untitled-7 copy.jpg야타간에 도착했을 때는 주유소 2층에 오텔(호텔)도 같이 운영하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묵었다. 주유소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할 때 모처럼 그들은 엄지손가락을 올려 포즈를 취해주었다.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운전자들은 짧게 몇 번의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고 지나가거나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V 사인’을 보내주는 운전자들은 많았으나 정작 사진을 찍을 때는 V 사인을 하거나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보통 점잖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대했다.
 
 
 

 

마치 강원도에 온 듯한 착각…빨간 고추 말리고 헛간에서 콩 까고
 
무그라를 지나 카레로 가는 길엔 점차 산이 높아져 1,000m 언덕 3개를 넘어야 했다. 산에는 소나무 숲이 많아서 운치를 더했다.
 
오후 2시쯤 산을 넘으면서 한 카페에 들렀다. 카페 뒤에 헛간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빨간 고추를 엮어 매달고 무화과 열매를 널어놓은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 시골마을 헛간을 연상시켰다. 정겨운 마음이 들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 한 분이 어두컴컴한 헛간 안에 앉아 콩을 까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쪼글쪼글한 손으로 널어놓은 무화과 열매를 집어 맛보라고 권했다. 무화과는 달면서도 씹히는 맛이 좋았다.
 

Untitled-6 copy.jpg


아직 숙소를 찾기엔 이른 시간이었으나, 문득 터키의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집에서 하루 묵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를 주문하면서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이 집 분위기가 참 좋군요. 여기서 하루 묵어갈 수 있을까요?”
 
카페 주인은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이럴 때마다 언제나 준비해 두고 있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마당에 텐트라도 치게 해 주시면 어떨까요?”
 
카페 주인은 단호했다.
“안됩니다. 여기는 야생개가 많아서 위험합니다.”
 
그는 끝내 거절하였고 나는 물러서야 했다.
 
다시 길을 떠나, 얼마쯤 더 가다가 다른 카페에 들러 음료수를 사며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숙박 요청은 거절했다. 터키에서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민박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로마 왕까지 찾아와 온천욕…1354년의 대지진으로 붕괴
 

Untitled-4.jpg


이날은 자전거 주행시간이 지체돼 어두워질 무렵인 오후 7시에야 한 오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고도가 높아서 초겨울 날씨처럼 바람이 차가웠다. 거리의 사람들은 털옷을 입고 다녔다.
 
다음날, 아침 8시 반에 출발해 고도 1,200m의 카지크벨리를 넘어 70㎞ 거리에 있는 데니즐리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남은 오후 시간이면 근처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파묵칼레를 구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텔 방에 짐을 넣어두고 바로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파묵칼레의 옛 이름은 히에라폴리스(Hierapolice:성스러운 도시)로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왕 에우메네스(Eumens) 2세가 세웠다고 한다. 그 후 11세기 후반 셀주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목화의 성이란 뜻을 지닌 파묵칼레로 불리게 되었다. 로마시대부터 번성했던 이 도시는 1354년의 대지진으로 붕괴돼 흙속에 파묻혀 버렸고,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 카를프만에 의해 발견돼 현재까지 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기원 전 2세기에 지어진 원형극장이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기를 넣은 수백 개의 항아리를 객석의 맨 꼭대기에 설치하여 소리의 공명을 유도하는 완벽한 음향시설을 갖춘 원형극장이었다.
 
또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란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을 찾아온 사람들이 죽으면 매장된 곳으로 지금은 석관으로 썼던 돌더미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파묵칼레는 로마의 왕까지 찾아와 온천욕을 했다고 할 정도로 수질이 좋고 자연 경관 또한 빼어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석회수가 녹은 온천수가 계단식 풀로 흘러내리면서 이뤄진 온천풀들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파묵칼레로 올라갈 때 차가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한글 문구들을 붙여 놓은 상점이 여러 곳 눈에 띄었다. 하얀 종유석 같은 바위 위로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동안 온천수가 흘러내리며 여행자들의 발을 적셨다.
 
같이 사진 찍자던 성숙한 몸매의 비키니 여성, 알고 보니 16살
 

Untitled-8 copy.jpg


이곳에서 온천욕은 금지돼 있다. 바지를 걷고 신발은 들고, 흐르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부슬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의외로 비키니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여성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나의 카메라 렌즈 속에 멋진 여성의 자태가 들어왔다.
‘찰칵.’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저, 잠깐만요. 미안하지만 저랑 사진 한 장 찍어주실래요!”
 
늘씬한 몸매의 비키니 여성이 내 곁에 와서 같이 사진 찍기를 요구하는 게 아닌가? 사진을 찍고 나서 내가 ‘원하면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머뭇거리며 돌아갔다. 파묵칼레를 구경한 뒤 돌아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휴지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놀랍게도 16살 난 소녀였다. 나는 성숙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서양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도 성숙해 보인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Untitled-4 copy.jpg


많은 사람들이 온천 위에 있는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에 와서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한다고 한다. 폐허의 도시 위로 떨어지는 부슬비를 맞으며 허물어진 돌계단을 밟으며 나도 무상한 발걸음을 떼어보았다.
 
우리는 한세상을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죽음과 인연이 없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 앞에서 우리는 말했다.
 
“장수하셔야죠”, “어서 완쾌되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오래오래 사실 겁니다” 등등.
 
우리는 죽음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저 어두운 곳은 외면하려고만 했다. 그것은 산 사람을 위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을 때 죽음을 대비해야 한다. 그것은 죽기 전에 살아서 못 다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는 거저 왔으나 살면서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성공을 했건 실패를 하였건 많은 일들을 하였으므로 아직 정리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후손에게 정리 못한 일들을 인계해 주어야 하는 게 산 자의 도리가 아닐까?
 
부슬비 내리는 폐허의 도시, 무상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젊다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투자로 끊임없이 도전을 한다. 그 결과 어느 시점에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되었을 때 안주하게 되고 도전정신도 사라지게 된다. 꿈이 없다는 얘기다. 젊었을 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경제적 안정을 찾은 후에 왜 그 꿈을 폐허의 돌무더기 속에 던져 넣어야 하는가? 10년이나 20년을 폐허의 흙 속에서도 씨앗으로 살아 있다가 꽃을 피우는 것이 꿈이다.
 
폐허의 무덤 속에 넣어둬 사라진 꿈은 꿈이 아니다. 물론 젊은 시절에 꿈을 이루는 멋진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서 나는 보통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때문에 잠시 그 일을 못 할지라도 그 일을 해야겠다는 꿈이 있다면 그 꿈은 언젠가 흙 속에서 싹을 틔워서 찬란한 꽃을 피울 것이다. 왜? 한세상 살아가는 시간은 한두 가지 일을 이루기에는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꿈을 이루는 것은 훗날 떳떳한 죽음에 대한 대비인 것을.
 

aIMG_5962 copy.jpg



나도 허황한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평생을 놀고먹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노는 것이고 거기서 수입이 생겨 먹기를 원했었다. 그것은 여행가의 꿈이었다. 젊었을 때는 경제적인 자립에 대한 필요성이 더 컸으므로 그 꿈을 접어야 했었다. 그래서 나는 취직을 했고 또 부동산 일도 해서 한푼 두푼 돈을 모았고 그 결과 잘살게 되지는 못했으나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이 되었다. 폐허의 돌무더기 속에서 씨앗 한 알이 싹을 틔우면서 지구별 여행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가는 길을 다 볼 수 있는 자전거란 신기한 이동수단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자전거를 선택했다.
 
나는 자전거를 잘 타거나 많이 타본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자전거를 탈 것인데 미리 좀 타봤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에 자전거와 패니어(자전거용 가방)를 구입하였다. 첫 방문국인 중국의 도로를 달리며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전거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자전거의 기어, 브레이크, 타이어 등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손보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출발 전에 자전거 전문가인 카멜바이크의 조윤형 사장에게 설명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실전경험에서 습득하게 된 것이었다. 나의 꿈은 그렇게 실현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꿈의 여행이다.
 
폐허의 도시 히에라폴리스에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나의 옷깃에도 수많은 꿈들이 잠들어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무상한 바람이 소리 내어 스쳐갔다. 

 

글·사진 정종호 (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