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깨진 수석…장나라가 나를 살렸다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여행] ⑦ 시안-란저우/08년 5월21~6월1일

 

자전거 횡단 프랑스부부 만나 친구처럼

비자 연장 뺑뺑이 ‘또 속았구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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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西安)에서 3일간 머물다 5월24일부터 6월1일까지 9일간 나는 협서성 시안~감숙성 란저우(蘭州) 약 700㎞를 자전거로 이동하였다. 이 구간 중 시안에서 티엔수이(天水市)까지는 약 350㎞의 거리다. 푸른 숲 사이로 흐르는 위하강 계곡을 따라 1,000~2,000m급 산들을 바라보며 가는 길이었다. 티엔수이를 지나면서 수려한 산들의 모습은 온통 황토산으로 바뀌고 터널도 자주 나타났다. 터널 안은 매우 어두워서 전조등과 후미등을 켜고 페달을 힘차게 밟아 빠져나오곤 하였다. 란저우 가기 전에 딩시(定西) 부근에 이르러 2,290m의 언덕을 최고점으로 하여 고도가 점차 낮아졌다. 위하강 계곡의 물도 황허강처럼 황토색이었다. 길 가엔 양봉을 하는 곳이 여러 곳 있었고, 마침 앵두가 제철이어서 이것들을 싼값에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3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시안에는 병마총과 진시황릉이 있고, 티엔수이에는 온천 등이 있으나 그 곳에 들르지 않았다. 우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좀 쉬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전거 여행이란,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보다는 길을 가면서 그곳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안장 위에서 바람과 햇살을 느끼면 충분하다는 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시안은 또 전에 한 번 들렀던 곳이기도 했다.

 

나를 멈춰 세운 공안, 뭐라뭐라 할 순간 차가 굴렀다

 

시안에서 3일간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한편 비자 연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안사무소를 찾았다.

 

먼저 중국 공안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이번 여행 중 중국 경찰인 공안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첫 만남은 칭다오의 중국 입국장에서였다. 앞서 인천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국할 때 그곳 직원들로부터 '얼마 전 자전거 10대를 갖고 중국에 입국하다가 칭다오 입국장에서 세금을 문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여서 나는 다소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은 검색대를 통과해 쉽게 나가는데 나는 옆의 공안사무실으로 불려갔다. 거기서 공안은 가방 5개를 풀어헤치고 짐을 일일이 검사했다. 3명의 공안요원이 물건을 모두 확인한 뒤에야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는데 걱정했던 세금 부과는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내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며 얼마짜리냐고 물어봤다.

 

지난 5월15일엔 거리에서 공안을 만났다. 복잡한 정주를 빠져 나와 310번 국도로 진입하는 4거리에서 한 공안차가 내 진행 방향 10여m 앞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공안은 나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교통 위반을 한 것도 아닌데 막아 서 기분이 좀 언짢았으나,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자전거를 세워야 했다. 그의 앞으로 다가가 자전거를 세운 직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공안이 나에게 막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그가 타고 왔던 공안차가 경사진 길옆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핸드브레이크가 풀린 듯했다. 공안차는 구르며 속도를 더하더니 도랑 옆 콘크리트 방어벽을 들이받고 말았다. 그는 당황한 표정이 되어 차로 뛰어갔다. 이 틈을 놓칠 새라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그의 옆을 빠르게 지나쳐 내달렸다. 쫓아오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내 앞길을 막는 자는 저렇게 되리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주행을 계속하였다.

 

여기로 가라해서 가니 아니고, 저기로 가라해서 가도 아니고…

 

세 번째 만남이 이곳 시안에서다. 숙소 근처의 공안 사무소에 들러 비자 연장을 하는 곳이 어디인지 문의했다. 올림픽 기간 중에 중국은 관광비자 기간을 모두 1개월로 바꾸었기 때문에, 3개월이 걸리는 중국 자전거여행 기간 중 2번의 비자 연장이 필요했다. 나의 간단한 질문에 공안 경찰이 여러 명 모여들었다. 한 사람이 어디론가 전화를 해보더니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공안은 내 여권과 숙박지 등록증(비자 연장을 위해서는 숙박지 등록증이 필요하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한참 뒤 그들 중 상관인 듯한 사람이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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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비자문제이니까, 아마 시안 공항에 사무실이 있을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안 공항으로 가서 공안사무실을 찾았는데, 한 공안이 "잘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고 얼마 안돼 다른 직원이 오더니 "여기가 아니고요, 시안시 북이로에 있는 공안사무실로 가세요" 하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북이로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북이로 사무실에 도착해 그곳 담당직원에게 문의하자 그는 "과칠로에 있는 공안사무실로 가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과칠로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운전사가 운전 중에 다른 운전자에게 길을 묻는 것이었다. 영 미덥지가 않았다. 

 

"그 곳 위치를 알고 있습니까?"

"그럼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는 중국 국기가 내걸린 어느 건물 앞에 나를 내려주었는데, 그 건물은 국토자원회사였다.

 

그들은 다만 아는 만큼만 얘기했을 뿐, 특성의 차이였다

 

'또 속았구나!' 나는 처음에 들렀던 공안사무실로 다시 찾아갔다. 과칠로의 주소를 보여주었더니, 그들은 미안하였던지 나를 공안차에 태워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506번 버스를 태워줬다. 그러면서 그 버스 운전사에게 나를 과칠로에서 내려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드디어 찾고 찾던 과칠로의 공안사무실 앞에 당도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오후 6시가 돼 있었고, 사무실 문 앞에는 오후 4시에 비자업무를 종료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다음날 오전 다시 과칠로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번엔 제대로 찾았다. 이름이 진닝이라는 여성 담당자는 나의 중국 여행 일정을 듣더니 아주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녀는 '아직 비자 기간이 한달이 지나지 않아, 비자 연장을 여기(시안)서 하면 일정이 짧아지므로 카자흐스탄 입국(카자흐스탄 입국예정일은 7월26일이었다)과 일정을 맞출 수 없다. 그러니 란주까지 6월2일 전에 도착하면 란주에서 6월2일부터 한달간 비자 연장을 하고, 다음엔 우루무치에서 7월2일부터 한달간 비자 연장을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며 그 내용을 종이에 적고 자신의 이름도 함께 써주었다. 비자 연장을 미리 해놓겠다는 내 생각은 이틀간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아주 적절한 여행 일정 컨설팅을 받은 셈이었다.

 

처음에는 중국 공안이 위압적으로 보였고, 그 다음에는 일 처리가 정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은 한 외국인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이 아는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 택시 운전사도 나를 과칠로에 내려주었으나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100m쯤 떨어진 곳에 내려놓았던 것이었다. 거기서 다른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길을 물었다면 쉽게 찾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공안도 우리나라 경찰관 아저씨 못지않게 친절하였다. 한 가지 문제는 묻는 말에 모른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애기하는 건 아무래도 나를 좀 피곤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준 정보를 단서로 삼아 내가 찾던 공안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2살과 3살 난 아이까지 싣고 1년 여정 아시아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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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엔 메이시안(眉縣) 근처에서 자전거 여행 중인 프랑스인 가족을 만났다. 중국에서 한 달가량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나와 같은 외국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레스토랑에서 근무한다는 44살의 파스칼과 그의 아내 세브린느, 그리고 2살·3살 난 두 아이였다. 두 아이는 세브린느가 타는 자전거에 달고 다니는 유모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2월부터 중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고, 1년 계획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프랑스까지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파스칼은 내가 프랑스에 들를 때 자기 집을 꼭 방문하여 달라며 이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자전거 여행자들은 만나면 서로 친구처럼 대하므로 금세 친해진다. 그들이 먼저 출발한 뒤 나는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손을 흔들어주다가 그들은 메이시안에 머물기 위해 남고, 나는 란저우까지 가는 일정이 빡빡해 계속 페달을 밟았다. 얼마 전 TV에서, 여행이 좋아서 갓난아이를 차에 태우고 여행한다는 가족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의지가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프랑스인 부부는 두 어린아이를 데리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자동차 여행과 자전거 여행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동차처럼 안락한 쿠션의자 없이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의 여행이 자전거다. 어린아이를 둘씩이나 데리고 페달을 밟아 나가는 그들의 꿈과 용기 앞에선, 그 어떤 문제도 걸림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아내는 “장나나의 팬”이라며 노래까지 흥얼흥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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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가족과 헤어진 뒤 계곡 사이로 위하강이 굽이치고 있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길가에 기석(奇石) 상가들이 많이 보였다. 수석(壽石)을 중국에서는 기석으로 부른다. 잠시 휴식을 취할 겸 한 기석 상가에 들러보았다.

 

"돌 구경 좀 하겠습니다." 내가 상점으로 다가가자, 가게 주인은 내 자전거를 구경하기 위해 다가왔다.

 

돌과 조각품들이 전시된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가 어두운데다(중국 상가들은 보통 상점에도 불을 잘 켜지 않는다), 그 때까지도 선글라스를 쓴 상태여서 더 컴컴하였다. 몇 발자국 안으로 들어서자 발에 무언가 툭 걸리더니 갑자기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시물들이 땅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였다. '중국에 와서 드디어 사고를 치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가운데 바닥을 보니 말에 탄 여인의 조각상과 구(球) 안에 작은 구가 3중으로 조각된 옥돌이 깨져 뒹굴고 있었다. 얼핏 말 탄 여인 조각상의 가격표를 보니 600위안(元)으로 적혀 있다. 밖에 있던 주인이 달려와 앉더니 깨어진 조각상을 만져보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뚜이부치(미안합니다)." 

 

그는 말없이 조각들을 주우며,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듯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거기에 있는 전부(약 150위안)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미안합니다. 나는 한국인 여행자인데, 이것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전부입니다."

그는 잠시 나의 행색을 살피며 머뭇거리더니, 돈을 안 받겠다며 돌려주었다. 뜻밖이었다. 미안한 마음의 일부라도 표현하고 싶어서 100위안(우리돈 15,000원)을 가게에 두고 나왔다.

 

주인은 마음이 다소 풀어졌는지 오히려 음료수를 내오며 마시라고 했다. 그의 아내는 호두 한 봉지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는 또 애초 내가 기석을 사기 위해 상점에 들른 줄로 알았는지, 묵직한 돌 조각상을 주며 가지라고 했다. 나는 자전거 여행자로 짐이 되는 것은 갖고 다니지 않는다며 사양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중국에서의 나의 여행 경로를 묻고는 오히려 나를 격려해 주었다. 상점 주인은 자신을 첸윤준이라고 소개하며 '중한우의장존(中韓友誼長存)'이란 문구와 '일로순풍(一路順風)'이란 문구를 써 주었다. 나는 '세계일주의 첫 방문국인 중국을 사랑합니다'라고 한글 문구를 써주며 답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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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장나나(장나라)를 아느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그의 아내는 자신이 "장나나의 팬"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나를 호의적으로 대한 것에도 장나라가 일조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심지어 장나라의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중국의 산골 마을에까지 파고든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 연예인들의 인기를 피부로 느끼며 잠시 가슴이 뿌듯해졌다. 

 

글·사진 정종호 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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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