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온통 바람샤워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2009.02.19 11:08 너브내 Edit
프랑스 빠삐뇽~스페인 사군토/08.11.22~29
맞바람에 자전거 ‘딱’…나무 붙잡고 ‘동동’
풍족할수록 오히려 쓸쓸 ‘뭔가 부족한 2%’

11월22일 프랑스 빠삐뇽에서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를 거쳐 사군토성이 있는 사군토 시까지 555㎞를 6일에 걸쳐 주행했다. 바르셀로나와 사군토에서 하루씩 더 머물러 8일이 걸렸다. 지중해 해안을 따라 가는 길에는 프랑스에서 많이 봤던 포도밭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올리브나무숲과 오렌지·감귤밭이 많았다. 바람이 거센 구간이 많아 애를 먹은 코스이기도 하다.
왜 거기에만 바람이 살까
11월22일 오전 9시 프랑스 빠삐뇽에서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큰 가로수의 가지들이 흔들리고 떨어진 낙엽들이 날아다닐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잔잔해지길 기대하며 1시간을 기다렸으나 세찬 바람이 계속 불었다. 나는 하는수 없이 바람소리를 들으며 거리로 나섰다.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왔고 내가 가는 길은 25㎞ 정도까지가 남남서, 이후는 남남동으로 방향이 약간 바뀌는 코스였다. 바람이 세찰 때 자전거는 바람의 힘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저절로 옆으로 기울어졌다. 자전거가 차선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핸들을 잡은 왼손에 힘을 주어야 했고, 그래도 자전거가 차선 안으로 빨려들어갈 때는 바로 방향 수정을 하여 갓길로 빠져나오며 전진했다.
유난히 센 맞바람이 불면 정말 자전거는 제자리에 딱 멈춰섰다. 이럴 때는 참 죽을 맛이다. 갈 길은 먼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힘만 한없이 소진이 된다. 25㎞를 가는 동안 자전거 타는 사람을 딱 한 사람 보았다. 그도 바람 때문에 더디게 앞으로 나아갔고 바람이 거센 장소를 지날 때는 걸어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10㎞ 정도로 전진해야 하는 힘든 코스였다. 스페인 국경 근처에 이르러, 앞쪽에서 불던 바람이 약간 등쪽으로 방향을 바꿨을 때부터 우군을 얻은 듯 주행속도가 빨라졌다. 페달이 가벼워지자 어디서 에너지가 생겼는지 작은 언덕은 몇 번의 페달링으로 넘어갔다.
유난히 바람이 많은 구간이 있었다. 나는 그런 곳이 참 궁금하다. 왜 거기만 가면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일까?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천산산맥 주위, 중국 사막지대의 일부 구간, 터키의 구릉지대, 그리고 멀리 산들이 보이는 바닷가인 이곳은 바람이 만들어지는 땅이었다. 공통점은 큰 산과 평야나 바다가 인접해 있는 곳이었다. 막힌 곳이 없는 사막지대에서는 특히 오후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바람이 사는 곳’에는 보통 풍력발전을 하는 풍차들이 있었다.
어깨 멘 카메라가방에 “위험” 경고

바람 길을 지나서 스페인 접경에 이르렀다. 스페인도 입국심사 없이 들어섰다. 첫날 도착한 지로나 시까지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고 간혹 보이는 낡은 집들과 들판은 좀 황량하게 보였다. 막상 지로나 시에 도착하자 거리는 멋쟁이 선남선녀들로 붐볐고 도시는 번화했다. 거리에는 의류상가가 유난히 많았다. 그날 숙박한 도심의 호텔은 깨끗한 별 2개짜리 호텔이었는데 하루 40유로로, 이탈리아나 프랑스보다는 다소 가격이 쌌다.
다음날은 바로셀로나까지 달렸다. 바로셀로나는 올림픽 개최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구시가지는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고딕풍의 오래된 멋진 건물과 좁은 골목들이 볼만했다. 그러나 이런 대도시에서 방값이 싼 호텔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먼저 눈에 띈 별 4개 호텔로 들어가서 어디에 싼 호텔이 있는가를 물었다.
“저 골목으로 들어가 보세요.”

나는 박물관같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미로같은 길을 돌아다니다가 끝내 찾지 못했다. 난감해졌을 때 마침 청소차량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청소부는 친절하게도 도로지도를 보여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유럽에서도 간혹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나 보통 “Where is hotel?” 하고 물으면 잘 못알아듣다가 “Hotel!”이라고 한번 더 물으면 그때서야 알아듣곤 했다.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온 호텔은 문 옆에 ‘H’자만 써붙여 놓은, 간판도 없는 ‘라이온 호텔’이란 곳이었다. 이곳은 오래된 큰 건물로, 2층만 쓰고 있었고 나머지 층은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는 어느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는, 철문으로 된 것이었다. 숙박비는 40유로로 관광객이 많은 이 도시에서는 매우 싼 편이었다.
다음날 시내를 도는 1일 투어버스(요금 21유로)를 탔다. 버스 지붕 위에 앉아서 경치를 볼 수 있었는데, 날씨가 춥고 바람까지 불자 올라왔던 사람들은 곧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많은 고딕양식의 건물들이 있는 무역도시 바르셀로나를 ‘버스 위에서 편하게 앉아서 보는 관광도 쉬운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며 바람샤워에 몸을 떨어야 했다.

한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어깨에 멘 내 카메라가방을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가방을 그렇게 어깨에 메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나는 가방을 대각선으로 고쳐 메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명세만큼 바가지도 유명
한 가판대에서 미쉐린 스페인 지도를 샀는데 9유로를 받았다.
“지도가 왜 이렇게 비쌉니까?”
“9유로라고 써있지 않습니까?”
지도 커버에는 매직펜 글씨로 “9,00” 자가 쓰여 있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같은 지도를 보았더니 정가가 6유로였다. 유명세만큼 바가지도 심한 도시였다. 바로셀로나 거리를 걸을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서슴없이 키스를 하는 젊은 남녀가 더러 눈에 띄었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바로셀로나를 출발해 람폴라로 가는 길에 자전거여행자인 독일 청년 레오(19살)를 만났다. 그는 모로코까지 가는 중으로 3개월째 여행중이라고 하였다. 등에는 기타를 메고 있었고, 자전거에는 큰 배낭과 피크닉 바구니까지 싣고 있었다.
“기타를 좋아하나 봐요?”
“예, 오면서 하나 샀습니다.”
그가 나에게 잠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어서 호텔에서 잤다고 대답하자, “난 바닷가에서 해먹을 치고 잤습니다” 하고 말했다.
“춥지 않았나요?”
“제 침낭은 두꺼워서 춥지 않습니다.”
▲ 바르셀로나시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제 바닷가에서 땄다며 피크닉 바구니에서 귤 한 개를 꺼내주고 갔다. 거칠 것 없는 젊은 여행자의 모습이 낭만 그 자체였다.
다음날 토레블랑카로 가는 길부터는 주변은 온통 오렌지와 감귤 밭이 길가에 이어졌다. 길가에 울타리가 없는 과수원들이 더러 있어서 그곳을 지날 때 몇 개씩 따서 페니어 가방에 넣어 두었다. 다 익은 오렌지와 감귤들이 수북이 땅에 떨어져 썩는데도 아직 수확하지 않는 곳이 대다수였다. 한마디로 대풍이었다. 갓 딴 감귤은 달기는 한데 약간 쓴맛이 났다. 또 까맣게 익은 올리브 열매가 새카맣게 달린 올리브 나무들이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많았다.
전에 슬로베니아를 지날 때 은행이 수북이 땅에 떨어져 있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던 게 생각났다. 도토리나 은행은 땅에서 썩어서 거름이 될 뿐이었다. 이곳 스페인도 올리브 열매가 땅에 떨어져 쌓이고 있었다. 풍족한 것은 과일뿐 아니었다. 바다로 둘러 쌓인 이곳은 해산물도 풍족했다. 슈퍼마켓의 어물전 코너에는 싱싱하고 값싼 해산물들이 넘쳐났다.
낡은 것도 보존하면서 멋을 낼 줄 아는 지혜

유럽은 풍족한 나라다. 도로 환경도 좋고 곳곳에 도시와 호텔이 있고 슈퍼마켓에는 질 좋은 물건들이 넘쳐난다. 운전자들의 매너도 좋고 자전거 상가도 많아서 유럽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쾌적한 라이딩이 가능했다.
자전거 타기에는 매우 좋은 환경이었으나 뭔가 2% 부족한 게 있었다. 자전거여행자의 경비가 만만치 않았고(여름이나 성수기에 캠핑장을 이용할 경우는 저렴하게 여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서유럽 사람들은 점잖아서 지금까지 흔하게 들어오던 “어디서 왔습니까?”란 말도 여기서는 어쩌다 한번 들을 수 있었다. 여행자는 이런 풍족한 곳에서 오히려 쓸쓸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러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라 여행자로서 유럽의 인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선진국의 한 축인, 오랜 문화를 가진 서유럽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개인주의가 발달되었으나 한편으로 인정 없는 사회가 돼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족한 사회가 될수록 사람의 정은 메말라 가는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거리에 앉아 있는 여행자에게 물 한잔 건네주는 동양적 인심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11월28일, 오렌지나무 가로수길이 있는 사군토에 도착했다. 사군토에는 사군토 성이 있었다. 여기서 바람 이야기를 한번 더 하자. 내가 사군토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반 쯤으로, 온 길은 미풍의 맞바람이 불었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몹시 센 바람이 불었다. 야자수 가로수의 큰 잎들이 모두 한쪽으로 쏠릴 정도여서 나는 그날 라이딩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군토성 구경을 나갔다. 운동모를 꽉 조여서 썼으나 바람에 벗겨질 것 같아 곧 벗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사군토 성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언덕에 올라서자 모래알들이 날아와 얼굴을 때렸다. 입구에서 성까지는 100m 길로 나는 중간쯤 가다가 광풍에 못이겨 한동안 나무를 붙잡고 서 있거나 성벽에 기대고 있어야 했다. 거기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은 성벽 등에 몸을 기대어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하고 어렵게 찍은 것들이었다. 결국 코앞에 성을 두고 나무만 끌어 안고 있다가 돌아서야 했다.
내려오면서 2층으로 된 아담한 사군토성 박물관에 들렀다. 여기선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입장 티켓을 주었다. 성에서 발굴된 갖가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군토 시는 화려한 도시는 아니나 스페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아담한 작은 도시였다. 성과 오래된 교회, 돌돌거리는 돌로 된 거리, 낡은 유럽풍의 집들과 좁은 골목길 등이 여느 도시 못지 않았다. 사군토 성으로 가는 길에 볼품없는 낡은 벽에 그려진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로 인해 그 벽에선 오히려 운치가 느껴졌다. 새 페인트로 칠하지 않고 낡은 것도 보존하면서 멋을 낼 줄 아는 한 스페인인의 지혜를 보았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맞바람에 자전거 ‘딱’…나무 붙잡고 ‘동동’
풍족할수록 오히려 쓸쓸 ‘뭔가 부족한 2%’

11월22일 프랑스 빠삐뇽에서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를 거쳐 사군토성이 있는 사군토 시까지 555㎞를 6일에 걸쳐 주행했다. 바르셀로나와 사군토에서 하루씩 더 머물러 8일이 걸렸다. 지중해 해안을 따라 가는 길에는 프랑스에서 많이 봤던 포도밭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올리브나무숲과 오렌지·감귤밭이 많았다. 바람이 거센 구간이 많아 애를 먹은 코스이기도 하다.
왜 거기에만 바람이 살까

유난히 센 맞바람이 불면 정말 자전거는 제자리에 딱 멈춰섰다. 이럴 때는 참 죽을 맛이다. 갈 길은 먼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힘만 한없이 소진이 된다. 25㎞를 가는 동안 자전거 타는 사람을 딱 한 사람 보았다. 그도 바람 때문에 더디게 앞으로 나아갔고 바람이 거센 장소를 지날 때는 걸어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10㎞ 정도로 전진해야 하는 힘든 코스였다. 스페인 국경 근처에 이르러, 앞쪽에서 불던 바람이 약간 등쪽으로 방향을 바꿨을 때부터 우군을 얻은 듯 주행속도가 빨라졌다. 페달이 가벼워지자 어디서 에너지가 생겼는지 작은 언덕은 몇 번의 페달링으로 넘어갔다.
유난히 바람이 많은 구간이 있었다. 나는 그런 곳이 참 궁금하다. 왜 거기만 가면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일까?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천산산맥 주위, 중국 사막지대의 일부 구간, 터키의 구릉지대, 그리고 멀리 산들이 보이는 바닷가인 이곳은 바람이 만들어지는 땅이었다. 공통점은 큰 산과 평야나 바다가 인접해 있는 곳이었다. 막힌 곳이 없는 사막지대에서는 특히 오후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바람이 사는 곳’에는 보통 풍력발전을 하는 풍차들이 있었다.
어깨 멘 카메라가방에 “위험” 경고

바람 길을 지나서 스페인 접경에 이르렀다. 스페인도 입국심사 없이 들어섰다. 첫날 도착한 지로나 시까지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고 간혹 보이는 낡은 집들과 들판은 좀 황량하게 보였다. 막상 지로나 시에 도착하자 거리는 멋쟁이 선남선녀들로 붐볐고 도시는 번화했다. 거리에는 의류상가가 유난히 많았다. 그날 숙박한 도심의 호텔은 깨끗한 별 2개짜리 호텔이었는데 하루 40유로로, 이탈리아나 프랑스보다는 다소 가격이 쌌다.
다음날은 바로셀로나까지 달렸다. 바로셀로나는 올림픽 개최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구시가지는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고딕풍의 오래된 멋진 건물과 좁은 골목들이 볼만했다. 그러나 이런 대도시에서 방값이 싼 호텔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먼저 눈에 띈 별 4개 호텔로 들어가서 어디에 싼 호텔이 있는가를 물었다.
“저 골목으로 들어가 보세요.”

나는 박물관같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미로같은 길을 돌아다니다가 끝내 찾지 못했다. 난감해졌을 때 마침 청소차량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청소부는 친절하게도 도로지도를 보여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유럽에서도 간혹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나 보통 “Where is hotel?” 하고 물으면 잘 못알아듣다가 “Hotel!”이라고 한번 더 물으면 그때서야 알아듣곤 했다.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온 호텔은 문 옆에 ‘H’자만 써붙여 놓은, 간판도 없는 ‘라이온 호텔’이란 곳이었다. 이곳은 오래된 큰 건물로, 2층만 쓰고 있었고 나머지 층은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는 어느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는, 철문으로 된 것이었다. 숙박비는 40유로로 관광객이 많은 이 도시에서는 매우 싼 편이었다.
다음날 시내를 도는 1일 투어버스(요금 21유로)를 탔다. 버스 지붕 위에 앉아서 경치를 볼 수 있었는데, 날씨가 춥고 바람까지 불자 올라왔던 사람들은 곧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많은 고딕양식의 건물들이 있는 무역도시 바르셀로나를 ‘버스 위에서 편하게 앉아서 보는 관광도 쉬운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며 바람샤워에 몸을 떨어야 했다.

한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어깨에 멘 내 카메라가방을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가방을 그렇게 어깨에 메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나는 가방을 대각선으로 고쳐 메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명세만큼 바가지도 유명
한 가판대에서 미쉐린 스페인 지도를 샀는데 9유로를 받았다.
“지도가 왜 이렇게 비쌉니까?”
“9유로라고 써있지 않습니까?”
지도 커버에는 매직펜 글씨로 “9,00” 자가 쓰여 있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같은 지도를 보았더니 정가가 6유로였다. 유명세만큼 바가지도 심한 도시였다. 바로셀로나 거리를 걸을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서슴없이 키스를 하는 젊은 남녀가 더러 눈에 띄었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바로셀로나를 출발해 람폴라로 가는 길에 자전거여행자인 독일 청년 레오(19살)를 만났다. 그는 모로코까지 가는 중으로 3개월째 여행중이라고 하였다. 등에는 기타를 메고 있었고, 자전거에는 큰 배낭과 피크닉 바구니까지 싣고 있었다.
“기타를 좋아하나 봐요?”
“예, 오면서 하나 샀습니다.”
그가 나에게 잠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어서 호텔에서 잤다고 대답하자, “난 바닷가에서 해먹을 치고 잤습니다” 하고 말했다.
“춥지 않았나요?”
“제 침낭은 두꺼워서 춥지 않습니다.”

그는 어제 바닷가에서 땄다며 피크닉 바구니에서 귤 한 개를 꺼내주고 갔다. 거칠 것 없는 젊은 여행자의 모습이 낭만 그 자체였다.
다음날 토레블랑카로 가는 길부터는 주변은 온통 오렌지와 감귤 밭이 길가에 이어졌다. 길가에 울타리가 없는 과수원들이 더러 있어서 그곳을 지날 때 몇 개씩 따서 페니어 가방에 넣어 두었다. 다 익은 오렌지와 감귤들이 수북이 땅에 떨어져 썩는데도 아직 수확하지 않는 곳이 대다수였다. 한마디로 대풍이었다. 갓 딴 감귤은 달기는 한데 약간 쓴맛이 났다. 또 까맣게 익은 올리브 열매가 새카맣게 달린 올리브 나무들이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많았다.
전에 슬로베니아를 지날 때 은행이 수북이 땅에 떨어져 있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던 게 생각났다. 도토리나 은행은 땅에서 썩어서 거름이 될 뿐이었다. 이곳 스페인도 올리브 열매가 땅에 떨어져 쌓이고 있었다. 풍족한 것은 과일뿐 아니었다. 바다로 둘러 쌓인 이곳은 해산물도 풍족했다. 슈퍼마켓의 어물전 코너에는 싱싱하고 값싼 해산물들이 넘쳐났다.
낡은 것도 보존하면서 멋을 낼 줄 아는 지혜

유럽은 풍족한 나라다. 도로 환경도 좋고 곳곳에 도시와 호텔이 있고 슈퍼마켓에는 질 좋은 물건들이 넘쳐난다. 운전자들의 매너도 좋고 자전거 상가도 많아서 유럽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쾌적한 라이딩이 가능했다.
자전거 타기에는 매우 좋은 환경이었으나 뭔가 2% 부족한 게 있었다. 자전거여행자의 경비가 만만치 않았고(여름이나 성수기에 캠핑장을 이용할 경우는 저렴하게 여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서유럽 사람들은 점잖아서 지금까지 흔하게 들어오던 “어디서 왔습니까?”란 말도 여기서는 어쩌다 한번 들을 수 있었다. 여행자는 이런 풍족한 곳에서 오히려 쓸쓸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러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라 여행자로서 유럽의 인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선진국의 한 축인, 오랜 문화를 가진 서유럽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개인주의가 발달되었으나 한편으로 인정 없는 사회가 돼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족한 사회가 될수록 사람의 정은 메말라 가는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거리에 앉아 있는 여행자에게 물 한잔 건네주는 동양적 인심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11월28일, 오렌지나무 가로수길이 있는 사군토에 도착했다. 사군토에는 사군토 성이 있었다. 여기서 바람 이야기를 한번 더 하자. 내가 사군토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반 쯤으로, 온 길은 미풍의 맞바람이 불었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몹시 센 바람이 불었다. 야자수 가로수의 큰 잎들이 모두 한쪽으로 쏠릴 정도여서 나는 그날 라이딩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군토성 구경을 나갔다. 운동모를 꽉 조여서 썼으나 바람에 벗겨질 것 같아 곧 벗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사군토 성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언덕에 올라서자 모래알들이 날아와 얼굴을 때렸다. 입구에서 성까지는 100m 길로 나는 중간쯤 가다가 광풍에 못이겨 한동안 나무를 붙잡고 서 있거나 성벽에 기대고 있어야 했다. 거기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은 성벽 등에 몸을 기대어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하고 어렵게 찍은 것들이었다. 결국 코앞에 성을 두고 나무만 끌어 안고 있다가 돌아서야 했다.
내려오면서 2층으로 된 아담한 사군토성 박물관에 들렀다. 여기선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입장 티켓을 주었다. 성에서 발굴된 갖가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군토 시는 화려한 도시는 아니나 스페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아담한 작은 도시였다. 성과 오래된 교회, 돌돌거리는 돌로 된 거리, 낡은 유럽풍의 집들과 좁은 골목길 등이 여느 도시 못지 않았다. 사군토 성으로 가는 길에 볼품없는 낡은 벽에 그려진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로 인해 그 벽에선 오히려 운치가 느껴졌다. 새 페인트로 칠하지 않고 낡은 것도 보존하면서 멋을 낼 줄 아는 한 스페인인의 지혜를 보았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