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자전거상점 두고 뺑뺑이 ‘눈이란 참…’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프랑스 안티베~빠삐뇽/08.11.14~22)
그저 달리느라 알프스도 꽃밭도 그냥 스칠뻔
시간이 지날수록 새삼 드는 의문, ‘여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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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4일. 안티베의 해안가에서 한 예술가가 달마와 용을 조각해놓은 모래 조각작품을 감상하며 다시 나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굴곡진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을 때 내려오던 한 자전거 여행자와 마주쳤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멈추어 섰다. 그는 55살의 롭이라는 남자였다. 런던에서 출발했다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
 
자전거를 매개로 짧은 시간에 쉽게 친숙
 
“세계일주 여행을 출발한 지 3주 만에 처음으로 자전거여행자를 만났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탔는데, 이번 여행을 위해 그동안 계속 돈을 모아왔지요.”
유럽 사람들은 체격도 크고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자전거를 참 잘 탔다. 그는 대머리에 약간 배도 나왔으나 표정은 매우 밝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자전거 여행이 재미있나요?”
“그럼요, 자전거 여행처럼 환상적인 게 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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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원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것일 뿐이고, 여행의 한 종류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여행이란 다분히 사적이고 자유로운 것으로 여행자마다 의미가 다를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나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다가왔다. 누구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평화로워진다. 풀잎이나 들꽃, 나무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현대화된 복잡한 도시는 별로 머물고 싶지 않지만 숲속의 도시나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선 유서 깊은 도시를 지날 때는 한동안 머물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여행의 백미였다. 사람을 만나 어떤 생각의 교감이나 정을 느낄 때 단 몇 분의 인연이라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런 점에서 자전거 여행은 다른 여행보다 조금 유리한 면이 있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자전거란 이동수단을 보면 상대방이 부담 없이 호감을 보이거나 말을 걸기가 쉽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게 관심을 보이면 나도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짧은 시간에 서로 친숙하게 된다.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그래서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를 타는 재미를 논외로 하더라도 재미가 있다.
 
해방이긴 하나 통제와 의지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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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속되는 육체적인 운동이나 하루에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따른 여행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숙박, 식사, 세탁, 자전거 정비, 많은 짐의 관리 등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서 부지런함을 요구하고 그만큼 결과를 베풀어준다. 50㎞를 가기 위해서는 50㎞의 페달을, 100㎞를 가기 위해서는 100㎞의 페달을 밟아야 하며 생면부지인 나라의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서 수많은 교차로를 지날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교통순경이나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손짓 몸짓으로 몇 번씩 길을 묻기도 하고 방향만 잡고 감으로 가다가 되돌아 오기도 했다. 저녁에 숙박비가 싼 호텔을 찾기 위해 한두 시간씩 도로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부식 준비로 쇼핑을 하거나(나는 한국음식에 길들여져 있어서 가능하면 밥을 지어먹었다.) 내일 여행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은 여유로운 여행이 아닌 바쁜 일정의 여행이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자유 속에서 고독을 즐기는 일이었다. 무엇을 하건 혼자서 결정하며 처리해야 하고 그런 중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복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개선되어 놀랍게도 회복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여행은 구속에서의 해방이긴 하나 스스로 통제가 필요함도 알게 되었다. 여행중 뭔가 해결 못하거나 문제가 생겼다면 모두 내 탓이요 내 잘못이었다. 한 예로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나는 틀린 비자 정보를 믿고 행동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었다. 비자문제는 중요한 것으로 나는 사전에 적어도 스폰서를 해준 혜초여행사 등에 알아봤어야 했다. 사사로운 나의 간과가 한때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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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행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게 된다. 하루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의지가 필요하고 그런 날들이 연속되면서 자신의 의지를 계속 시험하게 된다. 그러나 여행을 계속하겠다는 목적의식이 있는 한 우리의 몸과 마음은 환경에 적응되고 어떤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는 한 시험은 하루 밤의 감상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과정을 거쳐서 잊어버렸던 자신의 어떤 부분이 서서히 회복되고 그것은 나 자신을 회복시키고 확인하는 일이었다.
 
누가 보건 말건 스스럼없는 진한 포옹
 
각설하고, 롭은 텐트 없이 호텔만을 이용해 여행을 하겠다고 하였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무거운 텐트를 버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직 남아 있는 아프리카 등의 여행 상황을 몰라서 텐트를 계속 싣고 다녔다. 지금까지 비상시 산속이나 외딴곳에서 텐트를 친 일이 있었으나 불과 며칠이 안되었다.
 
롭과 헤어질 때 그는 손짓으로 먼 곳에 하얗게 솟아오른 알프스산을 가리켰다. 바다 건너 알프스의 우뚝 솟은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앞만 보고 언덕을 올라오느라고 보지 못했었다. 유럽에 들어와 처음 보는 알프스였다. 언덕을 넘어가자 다시한번 알프스는 바다 조망과 어우러져 그 하얀 설산의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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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맥심까지 다음날은 토우론까지 페달을 밟았다. 토우론으로 가는 길은 바다가 아닌 내륙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 산촌을 지나다가 버스 정차장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먹다가 앞을 보니 눈부신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눈부신 꽃밭을 코앞에 두고도 나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소박한 작은 들꽃들이 모여서 화사한 꽃밭이 되어 햇살 속에 화사하게 드러낸 모습을 못보고 있었다. ‘나의 눈은 지나쳐 버리는 게 너무 많구나!’ 하며 나의 눈과 먹는 것만 생각하는 나의 짱구머리를 탓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탓하기 전에 들꽃밭을 가슴에 담아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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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6일은 토우론에서 마르세일레로 향하였다. 그날은 마을마다 벼룩시장이 섰다. 벼룩시장은 주로 집에서 쓰던 중고품들을 가져와 파는 곳이었다. 갖가지 만물상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나와서 물건을 사고팔고 있었다. 벼룩시장 풍물을 카메라에 담는데 한 쌍의 남녀가 물건을 고르는 손님 앞에서 진한 포옹을 하고 있었다. 역시 프랑스는 애정표현도 자유로웠다.
 
바다를 보며 마르세일레 부근에 이르자 고도계가 300m를 가리켰다. 주위의 거대한 바위산들이 둘러싸인 길을 지나는 동안 저 아래로 마르세일레 시가 내려다 보였다. 프랑스 남부의 큰 도시로 도로가의 번듯한 큰 건물 뒤로는 복잡한 시장이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 있었고 “레송! 레송!” 하며 몰래 절반 값에 담배를 파는 사람들(프랑스는 담배값이 5~6유로로 비쌌다)과 흑인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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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참 고달픈 프랑스
 
나는 여기서 자전거를 수리하려고 마음먹었다. 뒷바퀴의 림이 스포크와 접촉되는 몇 군데에 언제인지 균열이 생겼다. 마침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어서, 월요일 오전 10시에 자전거를 끌고 거리에 나와 상점 위치를 물었다. 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는 길을 안내한다고 100여미터를 앞장섰다.
 
“이 길로 쭉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가면 있습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자전거상점이 보이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아래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200미터쯤 가면 있어요.”
나는 다시 그곳으로 가서도 자전거 점포를 못 찾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 여자에게 물었다.
 
“아래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가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취급하는 큰 상가가 있습니다.”
나는 알려준 대로 갔으나 그곳은 오토바이 상가였고 문이 닫힌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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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곳이 다 달랐지만 자전거상점이 있다고 하는 걸 보니 분명히 이 근처에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골목을 여기저기 돌다가 또 물어보았다.
 
“왼쪽 길로 가다가 오른쪽 길로 가세요.”
그곳에 가 봐도 나타나지 않아서 ‘다음 도시에서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한번 더 물어 보았다.
 
“바로 옆에 있지 않아요? 이리 와 보세요.”
친절하게도 그는 코앞의 자전거상점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나는 이 앞을 두세 번 지나쳤으나 보지 못하였다. 쇼윈도가 조그만 문 닫힌 상점에는 자전거를 타고 점프하는 그림이 하나 있었고 상점 이름인지 크게 “X”자가 써 있어서 나는 그곳이 자전거상점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상점 문에는 월요일은 오후 2시30분부터 6시까지 문을 연다는 문구가 써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은 쉬고 월요일은 오후에 잠깐 문을 여니 프랑스에서는 손님이 참 고달프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전거상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오후 3시에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뒷바퀴의 림을 바꾸려고 합니다. 좋은 걸로 주세요.”
 
자전거상점 주인은 림비용 100유로와 수공비 30유로를 청구하였으나 10유로를 할인받았다.
 
자전거 수리가 끝나고 자전거를 타보니 한결 주행이 부드러워졌다.
 
빠삐뇽에서의 마지막 밤, 와인 한 병에 죽음같은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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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 호텔방에서 버너를 켜고 저녁 준비를 할 때였다.
 
 “문 열어봐요!”
호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버너 소리에 무슨 일인가 하고 주인 할아버지가 온 것을. 나는 문을 조금만 열고 말했다.
“안 들어오셔도 돼요. 끄겠습니다.”
 
나는 소고기 400g을 넣어 준비한 찌개거리와 절반쯤 된 밥을 처분해야 했었다. 어제도 밥을 해먹었으나 이상이 없었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할아버지가 들어와 본 모양이었다. 그동안 호텔방 화장실이나 발코니에서 저녁과 아침을 지어먹었으나 주인이 찾아와 제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바게트와 치킨구이를 사와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11월22일은 스페인과 국경 근처의 도시인 빠삐뇽으로 향하였다. 빠삐뇽 근처에 이르자 프랑스는 나를 보내주기 싫었는지 거센 바람이 나의 길을 막았다. 나는 자전거를 바람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비스듬히 기울여 가야 했다. 간혹 돌풍이 불면 조금씩 전진하던 자전거는 제자리에 딱 멈추어 섰다. 그 와중에도 바람 속에서 수많은 새떼가 무리지어 군무를 연출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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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뇽에 도착해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저녁이라고, 기분 낸다고 2유로짜리 포도주 한 병을 샀다. 홍합국을 안주로 포도주를 마시며 호텔방에서 혼자서 파티를 하였다. 오래간만에 먹는 술이라서 그런지 취기가 돌았고, 나는 한 병을 다 마신 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단잠에 빠져들었다.
 
프랑스에서의 호텔 비용은 30에서 60유로(별 하나 또는 둘인 호텔)였고 아침식사를 할 경우는 따로 비용을 계산해야 했다. 호텔비는 전혀 깎아주지 않았는데, 깎아달라고 할 경우는 다른 싼 호텔을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호텔에 인터넷이 있는 경우 사용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무료인 경우도 있었다. 한적한 곳에 캠핑장이 여러 곳 있었으나 비수기라서 문 닫은 곳이 많았다. 문을 연 곳이 있어도 날씨가 쌀쌀해져 나는 텐트 칠 마음이 나지 않아 이용하지 않았다. 또 부식 등 필요한 물품 조달을 위해 나는 도시의 호텔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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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은 영어식 발음으로 주로 표기했습니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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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