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은 마치 이웃동네 넘나들 듯 ‘프리패스’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슬로베니아~이탈리아/08.10.29~11.06
30여 분 달리는 사이에 세 번이나 나타난 무지개
가는 말이 커야 오는 말이 고와지는 ‘불문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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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9일 아침. 비, 구름, 해가 동시에 그려져 있는 일기예보 TV 방송을 보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거리로 나왔다. 파란 하늘이 한쪽에 보였고 대체로 회색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로 도로는 젖어서 물방울이 자전거 바퀴를 타고 튀었다. 될 수 있는대로 물이 안 고인 도로를 타고 달렸다.
 
코세브제를 빠져나오자 햇살이 비치며 흐릿한 무지개가 떠올랐다. 그리고 5분쯤 달렸을 때 또 하나의 무지개가 떠올랐다. 무지개를 보며 좌회전하자 무지개는 바로 사라졌다.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하늘이 어두워졌다가 해가 잠시 나타나곤 하였는데 30분쯤 후에 다시한번 무지개가 나타났다. 하루에 무지개를 3번 본 셈이었다.
 
행복할 것 같은 풍경에 “보기에는 그렇지요”
 
copy.jpg한 2층집 민가 앞에 벤치가 보여서 집 앞에 나와 있던 할머니에게 잠시 쉬어가도 좋으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집안에 있는 아들에게 알렸다. 바로 아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서 나를 보더니,
 
“물이라도 드릴까요?”
“물은 나도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려고 했습니다만…. 집 구경이나 한번 할 수 있을까요?”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슬로베니아의 한 작은 산마을의 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는 23살의 주레 크나브스씨로 4식구가 살고 있다고 하였다.
 
1층의 거실 벽은 온통 사슴의 머리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아버지가 사냥한 것이라고 하였다. 광 한쪽에는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 땔감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의 자전거와 부속품 등이 널려 있었다. 그 집을 다 둘러볼 때쯤 그의 어머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는 나중에 내가 갈 때도 햄·치즈,식초에 절인 야채를 듬뿍 넣은 아주 커다란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어 종이에 싸서 봉투에 넣어 주었다.
 
“슬로베니아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오는 길이 참 보기가 좋더군요. 숲과 초원, 아담한 집, 깨끗한 도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는 “보기에는 그렇지요” 하면서 “So-so(그저 그렇다)”란 말로 받았다.
 
자연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행복은 다르다는 말이었다. 보통 우리는 겉모습을 보고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을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쨌건 동화 속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좀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 이웃집에서 놀러온 할머니 한 분이 가져온 귤 3개를 주었다. 그릇이 비워지기 전에 주레 크나브스씨와 어머니는 빵과 커피와 주스를 다시 채워주었다. 배불리 먹은 후 그들과 포옹하며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햇살에 반짝이는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그 집 앞의 언덕길을 올라가며 손을 흔들었다.
 
출입국사무소 텅 비어 그냥 지나오려니 은근히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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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날씨는 수시로 바뀌었고 오후 3시반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며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포스토나에 들어섰다. 먼저 눈에 띈 SPORT란 이름의 호텔로 들어섰다. 그 호텔 내부는 자전거와 산을 찍은 사진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혹시 호텔 주인이 자전거와 관련이 있나요?”
“그는 자전거, 등산, 행글라이딩, 동굴탐험 등 만능입니다.”
 
걸려 있는 사진 중 한 장을 카메라에 담으며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그 사장이 멋있는 남자라고 생각하였다.
 
호텔 숙박비는 60유로라고 하였으나 마침 호스텔도 같이 운영하고 있어서 아침식사를 포함하여 25유로에 숙박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 숙박비가 60유로라고 하여 나는 “돈이 많지가 않다”며 금액을 깎아볼까 하였는데, 호텔 직원이 “그럼, 25유로에 호스텔로 하세요” 하며 방 열쇠를 내주었다. 내가 묵은 호스텔 방은 2개의 방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 방은 보통 호텔방과 같았고 한 방은 2층 침대가 3개 있는 방이었다. 요즘이 비수기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나 혼자 호스텔 방을 다 사용할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렸으나 한국의 장맛비같이 시원스레 비가 쏟아지지 않고 종종종 비가 내렸다. 비는 그 후 3일 동안 계속해서 내렸고, 나는 침대 위에 눕기만 하면 왜 그렇게 잠이 오는지 3일간 대체로 잠만 잤다.
 
SPORT호텔에서 출발할 때 직원이 프린트하여 준 주간 일기예보에는 “맑음, 맑음/흐림/비, 비, 비, 흐림, 비”로 되어 있었고 나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며 출발하였다. 일기예보대로 구름이 점차 사라지더니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청명한 하늘로 변하였다.
 
3일을 푹 쉰 뒤라 자전거는 힘차게 달렸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고 붉게 물든 산허리 길을 삼삼오오 달리면서 낯선 동양인에게 간혹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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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되어 온통 산야를 수놓은 포도밭을 보면서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국경에 도착하였을 때 국경사무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슬로베니아도 이탈리아도 출입국사무실 문이 닫혀 있었고 차량들은 자유스럽게 넘나들었다. 패스포트에 입국도장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나는 은근히 불안하였지만 ‘사람이 없는 것을 어쩌랴?’하며 이탈리아로 진입했다. 마침 산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국경사무실에 사람이 없네요?”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는 아무 컨트롤을 받지 않고 다닐 수 있답니다.”
 
국가간 통행이 자유스럽다는 것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경이란 통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그 가상의 선을 열어 놓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 입국심사나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이곳은 통제 없는 국경이었다.
 
드디어 이탈리아, 풍광은 별반 다름없으나 경제 원리는 ‘냉정’
 
이탈리아로 들어가 달린 며칠간의 길은 해수면보다 낮거나 약간 높은 아주 평탄한 길이었다. 집, 사람, 농가, 성당 등의 모습은 이미 지나왔던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평지라서 자전거 타기에는 좋으나 3일간의 풍광은 별반 특별한 게 없었다.
 
첫날은 몽팔코네, 다음은 산 도나 디 피아베, 파도바, 그리고 만토바란 곳에서 묵었다. 이탈리아의 호텔은 별 하나부터 4개까지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보통 별 3개의 호텔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그곳에서 숙박하였다. 숙박비는 50, 48(40유로로 할인), 35(화장실 공동사용), 55(40유로로 할인)유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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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선진국이라고 느낀 점은 운전자들의 매너에서였다. 좁은 길에서 육중한 트럭이 과속을 하면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옆을 스치듯 지나갈 때는 자전거가 흔들렸다. 여느 도로처럼 갓길이 없는 도로가 많았다. 2차선 도로의 맞은편에서 차가 오고 있으면 트럭은 멈추어서 기다렸다가 맞은편 차선에 차가 없을 때 자전거와 멀찍이 떨어져 추월해 갔다. 시내의 도로에서는 사람이나 자전거가 길을 건너려고 할 때 충분히 먼저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들은 멈춰 기다리며 양보해줬다. 약자를 우선시 하는 교통문화는 자전거가 국민의 발이 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되었다.
 
한편 경제원리가 지배하는 일면도 보였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보면, 호텔에 인터넷 시설이 있는 경우 그 시설은 고객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되었다. 이탈리아에서의 4박 중 두 번은 무료였다. 한번은 1시간에 2유로를 받아서 사용을 포기했고 한번은 1시간만 사용할 수 있게 시간제한을 두었다.
 
48유로의 호텔에서는 40유로로 숙박비를 깎아달라고 하였더니 안된다고 하여,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안 먹는 조건으로 40유로로 하였었다.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 때 호텔 직원은 정확히 확인하였다. 만토바에서는 1박 뒤 하루를 더 머물겠다고 하였더니, 단체손님이 예약이 되어서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내가 머문 방은 침대가 2개였는데 침대 하나인 방으로 옮겨야 했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 방을 옮기라고 요구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럼, 내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방을 옮겨 드리죠”라고 말하고 나는 방을 옮겨야 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호텔방으로 짐을 나르는데 거의 도와주지 않았다. 그 동안 대부분 호텔 직원이 먼저 나서서 도와주곤 하였다. 비록 며칠간의 여행이었으나 경제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느끼게 하였다.
 
‘수천 마일 달려온 게 아깝지 않은 도시’ 실감
 
11월4일 산 도나 디 피아베. 오전 8시반 호텔에서 나왔을 때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였다. 비가 오기 전까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무릎에 한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시원한 감촉은 나의 뺨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인지 빗방울인지 구분이 잘 안되었다.
 
Untitled-6 copy.jpg잠시 후 한 방울의 비가 다시 얼굴에 떨어졌을 때 비란 걸 깨달았다. 비는 아주 조금씩 내렸고 오히려 주행에 청량감을 주었다. 오전 11시 쯤 메스트레의 한 건널목에서 하늘을 보며 여기서 머물까? 아니면 좀 더 갈까? 잠시 망설이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방글라데시 사람 에나이엣 우라 초들리(35세)였다. 그는 다가와 자전거 여행에 대한 몇가지를 나에게 물었고 나의 여행의 성공을 빌어주었다. 그의 눈에는 진솔함 같은 게 보였다. 이름을 묻자, 그는 호텔 리셉션에서 일한다고 하며 고향의 주소까지 적어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기웃하면 그는 마치 자기 자랑을 하듯 나에게 들은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었다. 나는 그가 돈을 많이 벌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빌었다.
 
메스트레를 지나자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하였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점퍼를 입고 달렸다. 비오는 날 하는 마라톤이 ‘우중주’라는 말이 생각나서 자전거의 경우는 “우주행”이라고 불러보았다. 신발 속까지 빗물에 다 젖었으나 기분은 상쾌하였다. 오후 2시 파도바 시에 도착하여 빗줄기가 쏟아질 때 자전거를 끌고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빈 방 있습니까?”
“자전거를 밖에 두세요!”
“가격을 알아야 여기서 숙박할지 말지 말할 것 아닙니까?”
“싱글룸은 풀이고, 화장실이 공용인 35유로 방이 있습니다.”
“방 먼저 봅시다.”
“자전거부터 밖에 두세요!”
 
방을 본 후 자전거에서 짐을 내리고 있는데,
“자전거! 밖에!!!”
 
그녀는 일어서서 소리쳤다.
“자전거는 그렇더라도 짐도 밖에서 풀란 말입니까?!!!”
이번엔 내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먼저지 호텔의 카펫이 좀 젖는다고 너무 야박하게 하지 말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짐을 내린 후 길 건너 지하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오자 호텔 직원의 말투가 매우 고분고분해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끔은 큰 소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파도바에서 만토바로 갈 때 고대 로마시대의 성들을 보면서 이탈리아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도로에서 마주친 산자락에 위치한 델카타 조(DELCATA JO) 성의 모습은 선명하고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성벽과 조각상들이 원형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옆에 수로를 따라 옛 모습 그대로의 건물이 늘어선 수로의 제방 위를 달리다 보니,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인 레그나고가 나타났다. 다시 몇 개의 오래된 성당을 보면서 가다가 그날 도착하면서 본 만토바는 강 건너 석양의 역광을 받으며 검은 성의 덩어리가 되어 강물에 반사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보기 위하여 수천 마일을 달려오는 수고가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도시”라고 이탈리아의 후기 르네상스시대 시인 타소(Torquato Tasso)는 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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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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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