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통과는 언제나 미로찾기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세르비아~크로아티아/08.10.18-22
실수로 찍은 사진이 때론 아름다운 ‘추상화’
진입로 없는 다리, 강변에서 리프트로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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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신 시에서 묵은 호텔에서는 저녁에 결혼식 피로연 파티가 있었다. 많은 하객들이 정장을 차려입고 와서 로비 옆의 큰 연회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팔수들이 나팔을 불고 하객들은 밤늦게까지 술과 다과를 들며 흥겹게 춤추는 모습은 유럽 문화의 일면이다. 그날 호텔방은 일찍 예약이 끝났고 하마터면 나도 방을 구하지 못할 뻔하였다.
 
숲 사이로 깊고 멀리 흐르는 푸른 다누베강
 
Untitled-6 copy 2.jpg다음날 새벽, 창가에 붉은 빛이 비쳤을 때 아침 노을은 엷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노을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므로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셔터를 몇 번 눌렀다. 그 중에 실수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상태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었는데, 마치 의도된 추상화처럼 아름다웠다. 가끔 실수가 이색적이고도 멋진 사진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대로 공들여 찍은 사진이 맘에 안 들어 삭제해 버릴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 사진은 찍을수록 어렵다고 하는 모양이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여서 필름값 부담 없이 마음대로 셔터를 누를 수 있고 즉시 사진 확인이 가능하지만, 예전에는 수십 통의 필름을 배낭에 넣고 다녀야 하고, 현상이나 인화를 할 때까지는 사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 좋아진 것이다.
 
Untitled-4 copy.jpg파라신에서 벨그레이드로 향하여 가며 한 마켓에 들러 주스를 한 병 사서 마시는데, 마켓 주인이 음료수 한 병을 덤으로 주었다. 나는 고마워서 그에게 음료수를 건네주는 장면을 사진 찍자고 하자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옆에서 대낮부터 맥주 한 잔씩 하고 있던 중년 몇 명이 자기들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였다. 건너편 마켓에서 맥주병을 들고 있던 한 사람도 나를 보고 손짓했다.
 
“나도 한 장 찍어 줘!”
 
그는 술을 좋아하는 세르비아인답게 맥주병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벨그레이드로 가는 도중 또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섰다. 차도는 끊어지고 한동안 도로공사 준비중인 비포장 산길을 지나 외나무다리 같은 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 가다 보니 이번에는 다누베강물 위로 오래된 좁은 철다리가 나타났다. 숲 사이로 흐르는 강은 깊어 보였고 멀리서 누군가 릴낚시를 던지고 있었다. 긴 철교에는 간혹 소형 승용차가 가까스로 건너다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철교 난간에 30㎝쯤 들어간 곳이 있어서, 그곳에 자전거를 바짝 붙여 대놓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다리의 바닥엔 나무판자들을 깔아놨는데 판자가 떨어져나간 곳도 있었고 높이가 고르지 않아 울퉁불퉁하였다. 나무판자가 떨어져나간 곳으로는, 강물이 저 밑에서 햇살에 반짝이며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안장 없이 자전거를 타는 소년
 
저녁 무렵 스메데에보 시에 도착하였다. 시내를 지나며 호텔 간판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몇 사람에게 물어서 호텔 입구까지 찾아갔다. 도로가의 번듯한 호텔 간판을 보고 50m쯤 골목으로 들어가 호텔에 도착해 보니 주변에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문 닫은 호텔이었다. 이곳을 알려준 사람은 분명 이곳 주민이었다. 그 중엔 유모차를 끌고 이 앞 도로를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또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통 중소도시에 호텔이 하나 정도 있거나 도시가 작으면 없는 곳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도로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두 소년에게 호텔을 물었다.
 
“여기서 좀 먼데…. 저를 따라 오세요.”
 
나는 다행히 두 소년을 따라가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두 소년 중 하나는 안장이 없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안장 없이 자전거를 타는 그를 뒤따라가면서 보니, 페달을 밟을 때마다 엉덩이를 들쭉날쭉 하면서 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능숙하게 안장없이 타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기해서 물어 보았다.
 
“안장이 없네?”
“점프를 하기 위해서 안장을 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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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점프하는 포즈를 취해줬다. 그동안 몇 번 이런 장면들을 본 일이 있다. MTB자전거의 앞바퀴를 빼고 자전거여행을 하는 중국인, 학교 가는 길에 한 손에 책을 들고 읽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여자아이, 높이가 자기 키를 넘기는 어른 자전거를 타는 꼬마(그는 갈 때는 안장 앞에서 선 채로 타지만 멈출 때는 자전거를 거의 쓰러뜨려야 했다), 두 팔을 벌리고 새처럼 멋진 포즈를 취했던 중국인 샤밍즈, 우산을 들고 타는 사람들 등.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자체도 신기하지만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와 그것을 부리는 사람이 일체가 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호텔 물었더니 사람마다 달라 뺑뺑이
 
다음날은 복잡한 세르비아 수도인 벨그레이드를 지나가야 했다. 언제나 대도시를 통과할 때는 한두번 길을 잘못 들었다. 사방으로 뻗은 길 한복판에서 내가 가야 할 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몇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크로아티아가 여기서 먼 곳이 아닌데도 가는 길을 잘 몰랐다. 나는 교통경찰에게 물어서야 대략의 방향을 잡고 달렸다. 한참 가면서 GPS에 나타난 경로를 보니 또 엉뚱한 방향이었다. 다시 GPS상의 1번 도로 위치로 돌아와 보니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진입로가 보이지 않았다. 한 주유소에 들러 길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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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리를 어떻게 건넙니까?”
“강변으로 내려가 리프트를 타세요.”
 
다누베강 강변에는 자전거가 다리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리프트가 있었다. 1번 도로는 고속도로인데 벨그레이드까지는 자전거 통행이 안되었으나 여기서부터 고속도로 진입을 허용해 주었다. 나는 잠시 후 고속도로로 진입했고, 넓은 갓길을 따라 맘껏 달릴 수 있었다.
 
저녁 때가 가까워져 패신시 IC로 나와서 호텔을 찾았으나, 이곳에는 호텔이 없었다. 여기서 나는 두 사람에게 호텔 위치를 물었었다. 두 사람은 엉뚱하게도 각각 다른 위치에 호텔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두 곳에 찾아가 보니 모두 호텔이 없는 곳이었다. 나는 왔다 갔다 하면서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아야 했다. 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호텔은 다음 IC인 루마에 있습니다.”
 
이미 어둠이 내려와 있었고 나는 어둠 속에서 논밭 사이로 루마로 가는 길을 달렸다. 가면서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왼쪽 팔뚝에 깜박이 불을 장착하고 헤드랜턴을 목에 걸고, 빨간 후미등을 켠 뒤 달렸다. 한동안 달리다가 호텔 위치를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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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마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가 루마인데요.”
 “그럼, 호텔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는 호텔이 없어요. 호텔은 여기서 10㎞ 떨어진 곳에 있어요.”
 “예? 호텔이 없다고요?”
 “아, 카페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도 숙박이 가능할 겁니다.”
 
즉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페로 달려갔고, 카페 간판 중간에 조그맣게 적힌 ‘room’ 자가 보였다. 그곳에서 묵을 수 있었다. 시설은 다른 호텔과 같았고 숙박 손님은 나 혼자였다. 카페 안에는 손님들이 여럿 있었다.
 
참고로 세르비아 수도인 벨그레이드(BELGRADE) 지명이 도로 안내판에는 베오그라드(BEOGRAD)로 되어 있었으나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벨그레이드가 맞다고 하여 여기에서는 벨그레이드로 명칭을 통일하였다.
 
닭고기 맛도 아닌 것이, 돼지고기 맛도 아닌 것이…
 
다음날 10월21일 고속도로를 달리며 국경을 지나 크로아티아 주판자 시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크로아티아 입국심사관은 ‘코카인 같은 마약을 소지하고 있느냐’와 ‘어디로 가느냐’ 두 가지를 물었다. 나는 짐 수색 없이 통과시켜 주었으나 승용차들은 일일이 짐 검사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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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로 들어서 달리자 트랙터로 밭을 갈던 농부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속도로 상태는 매우 좋아서 차량들은 쌩쌩 달렸고, 갓길 상태도 매끄러워 승차감이 좋았다. 해발고도 90m 전후의 길고 긴 일직선 평지 길이었다. 양쪽에는 키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서있었고 종종 도로가 완만하게 언덕을 이룬 곳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있었다. 보이는 풍광도 뭔가 잘 정비된 듯한 느낌이었다. 매처럼 보이는 큰 새가 길을 건너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주판자 시로 들어선 뒤 은행 ATM 머신에서 크로아티아돈 쿠나(1$=약 5쿠나)를 인출해, 이 도시에서 하나뿐인 호텔을 찾아 들어섰다. 하루 숙박비는 240쿠나였고 깎아주지는 않았다.
 
나는 세르비아 파라신에서 크로아티아 주판자까지 GPS 거리인 349㎞를 3일간 달려왔다. 한숨 돌릴 겸 여기서 하루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두 발에게 말하였다.
 
“너희 둘이 힘을 써줘야 계속해서 우리가 갈 수 있다. 내일 하루 너희를 위해 푹 쉬며 단백질도 충분히 보충해 줄게.”
 
그리고 나는 마트로 가서 커다란 닭다리 2개를 사왔는데, 와서 보니 닭다리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고기 색깔도 붉은 빛을 띤 것이 칠면조 다리인 것 같았다. 요리해 먹어보았더니 닭과 돼지고기 중간 정도의 맛이 났다. 먹을 만했고 고기 양이 많았다. 다음날엔 다듬어진 오징어 500g을 사와서 햄과 감자, 양파를 넣어 찌개를 끊여 먹었다. 이곳의 수돗물은 석회 성분이 너무 많아 물빛이 탁했다. 식수로는 부적합해 생수로 밥을 지어먹었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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