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권에서 서양문화권으로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이스탄불~마르마라 해변/08.08.28~09.02
  해안 따라 터키 루트 질주…곳곳 야외 카페
  바닷가 길 달리며 ‘떠나가는 배’ 듣다 ‘글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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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나라로 들어설 때는 약간의 긴장감이 따른다. 이곳에서는 말이 통할 수 있을까? 물가는 어떨까? 도로 사정은? 사람들은 친절한가? 음식은 잘 맞을까? 숙소는 구하기 쉬운가? 그 나라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없을수록 막연한 걱정이 앞섰다. 이번이 3번째 방문국이지만 방문국이 많아질수록 덤덤하게 약간의 변화를 즐기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카자흐스탄 그리고 터키로 들어서면서 동양문화권에서 서양문화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정(情)의 문화를 느꼈고, 카자흐스탄에선 대체로 손님을 모시는 대접의 문화가 있다는 걸 느꼈다. 터키에서 시작하는 유럽에서는 합리성의 문화를 기대하며 공항을 나섰다.
 
 새로운 나라로 들어설 때면 막연한 걱정에 긴장감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포장한 자전거와 5개의 가방과 텐트를 택시에 실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나는 내가 가야 할 위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이틀 전 인터넷에서 찾은 터키 여행자의 기록에서 그가 블루모스크와 톱카피궁전 사이에 있는 동양호텔에 묵었다는 정보가 다였다. 물론 택시 운전사가 데려다 주는 호텔에 묵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나, 나는 동양호텔로 가자고 하였다.
 “블루모스크와 톱카피궁전 사이에 있는 동양호텔로 갑시다!.”
 “뭐라구요?”
 “오리엔트 호텔이 아니면 오리엔탈 호텔입니다.”
 마르마라해의 해변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어느새 오리엔트 호스텔에 나를 데려다 주었다. 호텔은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숙소 거리에 있었다.
 운전사는 택시 미터요금에서 짐 실은 비용을 추가로 요구하였는데 합리적인 계산방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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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곳에서 이틀을 묵으며 터키란 나라에 적응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김새와 친절도, 상점의 물건 품목, 물의 식용 여부, 음식의 맛, 물가 수준 등이 자연스럽게 파악되었다.
 두번째 날 호스텔의 물품보관실에서 자전거를 가져와 상태를 살펴보니 기어가 고장나 있었고 전날 자전거를 보관할 때 묶어 두었던 짐을 묶는 고무줄 끈이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에 짐을 실을 때 다른 무거운 짐에 눌려서 풀리케이지란 10센티 정도 되는 쇠로 된 기어 부품이 약간 휘어져 있었다. 저단으로 기어 변속이 안되었고 고단에서는 체인이 풀리케이지에 닿아서 드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반나절 동안 수리에 매달려야 했다. 휜 부분을 잡아당기고 조그만 펜치로 비틀고 기어 케이블을 조여주었더니 다행히 기어가 작동이 되었다. 자전거는 비행기에 실을 때 다른 짐들 위에 올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았다. 잃어버린 고무줄 끈은 텐트 플라이 끈 2개로 대체했다. 다른 여행자의 물건을 가져가는 여행자는 반성 좀 하시라! 사소한 물건처럼 보이나 자전거에 실은 짐을 묶는 고무줄 끈이 없으면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다. 
 
 너무 아름다워서인가, 꿈을 이뤄나가고 있기 때문인가?
 
 이스탄불 거리는 많은 인파로 활력이 넘쳤다. 마르마라해를 배경으로 한 유서 깊은 모스크들과 나무숲 공원, 상점가들이 어우러져 관광도시다웠다.
 이스탄불을 출발하려 할 때 야외카페에 나와 있던 60살이 넘어 보이는 마렉((MAREK)이란 폴란드인 노인이 말을 걸어 왔다.
 “나도 막 자전거를 타고 왔지요. 이스탄불에서 보드람까지 1050킬로미터를 21일 걸려 다녀왔답니다.”
 나는 이러한 유럽 문화가 부러웠다.  그는 해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예, 저도 그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 길은 내가 갈 예정인 터키 루트와 일정 부분 중첩되는 코스였다. 나는 마렉의 길을 갈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심신의 젊음을 유지하는, 그 길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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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탄불은 해안 길이가 700킬로미터 정도 되는 에게해의 만(灣)에 있는데 이 만을 마르마라해라고 부른다. 이스탄불에는 에게해(마르마라해)와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2개의 다리가 있다. 나는 서쪽으로 2개의 다리 밑을 지나가며 다리 위로 오르려고 하였으나 자전거는 통행이 안된다고 하여  배를 타고 카디퀘이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게브제, 이즈밋 그리고 부르사까지 270킬로미터를 4일에 걸쳐 달렸다.
 게브제로 가는 길은 해안에 자전거도로가 있고 해변이 공원화가 되어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다른 나라에서 그랬듯이 운전자들이 손을 흔들어 주거나 소년들이 다가와 말을 붙이곤 했다. 가다가 경치 좋은 곳에 카페가 있으면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전에는 카페에 들르면 커피라도 주문해서 마시고 갔지만, 이제는 주문하지 않고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한 후 쉬었다 가는 요령도 생겼다. 물론 이럴 경우 실내보다는 야외카페인 경우가 말하기 좋았다.
 “주변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여성 분들도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며 일어서면 점원들도 그다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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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즈밋을 지나며 잔디와 꽃으로 꾸며놓은 공원을 지날 때 오랜만에 MP3로 한국 노래를 들었다.
 아름다운 바닷가 길로 페달을 밟으며 ‘떠나가는 배’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서인가, 노래에 감동해서인가? 내가 자전거로 여행하는 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가? 나는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아내가 보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곳 바닷물은 한반도의 동해나 서해에서 파도치고 있을 바닷물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 아내도 있을 것이다. 따뜻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등을 밀어줬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는 마르마라 해변을 달렸다. 등이 따뜻해졌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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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