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무리에 당나귀, 어쩌면 내꼴?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코르다이~아스파라/08.12~15

 

셔터 팍팍 눌러주고 노래 한곡조 뽑으니 짱!

토지 등기부에 이름 등록해야만 내 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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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2일 코르다이에서 아스파라로 가는 길은 그늘이 없는 평이한 길이었다. 키르기스탄과의 접경지역으로, 가끔 경계를 서는 군인 초소들을 만났다. 가는 도중 카이나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해 카페와 주거용으로 만든 카페촌이 눈에 띄었다. 저녁에 도착한 아스파라에서는 제법 큰 카페촌을 만나 이곳에서 숙박하게 되었다. 도로변 카페들은 운전자들이 들러 식사를 하며 쉬거나 음료수를 구입해 가는 곳이다.

 

“제 딸은 백만불입니다. 백만불을 내고 가져가세요”

 

카이나르를 지날 때 한 카페에서 중년 사내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냉장고에서 환타 한 병을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그의 가족은 양고기와 양파를 다지며 만두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자전거에 부착한 뜨거워진 물통의 물도 시원한 물로 바꿔줬다. 그들은 내가 단지 자전거 여행자란 이유로 호의를 베풀었다. 

 

그의 큰 딸은 얼굴이 예뻤는데, 내가 그녀를 잠시 바라보자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제 딸은 백만불입니다. 백만불을 내고 가져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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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척하자 모두들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환타를 마시면서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쉰 다음 그곳을 출발했다. 


카이나르를 지나서 아스파라에 도착하니 20여개의 컨테이너박스가 있는 제법 큰 카페촌이 나타났다. 처음에 들른 카페에서는 숙박 요청을 거절했으나 그 옆집에서 숙박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컨테이너박스 내부는 주방과 침실로 돼 있었고, 밖의 마루 침상에 식탁들이 배열돼 있었다. 그날도 전과 마찬가지로 식탁 침상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sink.jpg카페 여주인 볼존이 앞마당에서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을 때 나는 물을 길어다 주면서 거들었다. 그녀에게 어디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지를 손짓으로 물었다.

"머리는 안 됩니다. 세면대에서 세수는 가능합니다."

 

카페 뒤쪽에서는 모터로 물을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한 양동이를 몇 초면 채울 정도로 수량이 많은 곳이었다. 나는 약간 섭섭했지만 공동생활을 하는 이곳에서 세수 정도만 허용하는 것이 나름대로의 규율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말을 안 따를 수 없었다. 그 집은 큰 딸과 6살짜리 귀여운 딸, 그리고 5살 난 아들이 있었다. 내가 그들 가족사진을 찍고 있을 때, 한 처녀가 다가왔다. 옆집 사는, 아끼르케란 이름의 장난기 많은 아가씨였다.

 

"어디서 왔어요? 중국?" 

"까레야(코리아)." 

 

카페촌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한번씩은 와서 사진 찍어

 

그녀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보다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녀의 사진을 찍고 있자니 몇 명의 처녀들이 더 나타났다. 그 중 로산이라는 아가씨는 영어가 가능해 통역을 맡아서 나를 소개시켜 주었고, 아끼르케는 나를 데리고 카페촌을 전부 돌며 인사를 시켜주었다.

 

그날 나의 이름은 존이 되었다. 나의 성인 '정'의 발음이 어려운지 카자흐스탄에서는 '존'으로 알아듣곤 하였다.

"존! 존! 이리 와 봐요, 사진 좀 찍어줘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이처럼 반가운 소리가 또 어디 있을까? 나는 셔터를 팍팍 눌러대며 인심을 썼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그들은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그날 카페촌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한번씩은 와서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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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래 좀 불러 주세요." 아끼르케가 나에게 노래를 청했다.

"나더러 노래를 부르라고요?"

 

나는 순번을 정해 앞 소절 정도만 부른 그녀들의 노래를 다 들은 뒤 맨 나중에 '삼포 가는 길' 1절을 불렀다. 모두 박수를 치며 재미있다고 깔깔깔 웃었다.

 

저녁이 되자 모기가 유난히 많아졌다. 나는 모기약을 바르다, 옆에서 노는 카페 주인 딸인 아우트나이의 발을 보니 모기 물린 자국이 많아서 그에게 약을 발라주었다. 그때 통역을 맡은 로산이 나타나 나를 제지했다.

"하지 마세요! 여기서는 약을 안 발라요, 그래야 돼요!"

 

그 말에 아이는 약을 더 바르기를 거부했다. 이 지역 나름의 관습이 있는 듯했다.  

 

밤 1시가 넘어서까지도 왁자지껄

 

akki.jpg나는 식탁 마루 오른쪽에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밤 1시가 넘어 있었다. 왁자지껄한 옆집으로 가보니 젊은이들이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왁!' 하는 소리가 나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끼르케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 뒤에 서 있었다.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오더니 아끼르케를 가리키며 나에게 "내일 갈 때 자전거에 싣고 가다가 아무 데나 버리세요!"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말괄량이 딸 때문에 어지간히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시끄러웠지만 재미도 있었던 카페촌을 뒤로 하고 아스파라를 떠났다. 두세 시간쯤 달리자 이번에는 꿀을 파는 카페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었다. 꿀은 원액으로 팔기도 했으나 음료수를 만들어 페트병에 담아 100팅게에 팔기도 했다. 꿀 음료를 마셔 보니 아주 진하고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jul.jpg꿀카페 아가씨인 줄리에게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나는 카페보다 산을 배경으로 찍을래요" 하며 디스코 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내가 자전거 세계 일주중이라고 하자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며 발은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는 다리가 튼튼해서 아프지 않다"고 하자 그녀는 깔깔대며 웃었다. 내가 다시 출발하기 위해 일어서자,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영어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었다.

 

"Hello, my name Juli, I'm from of Kazakstan. You good man. Very, very beautiful."

 

오타도 있으나, 그녀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19살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음료와 빵 값을 받지 않았다. 

 

꿀카페를 지나 이어진 길은 멋진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덩치 큰 낙타들이 도로를 건너다녔고, 들판에도 낙타들이 무리지어 다니고 있었다. 그 가운데 당나귀 한 마리가 낙타 무리에 섞여 미운 오리새끼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나도 어쩌면 나와는 다른 이질적인 세계에 들어와, 형체도 없는 바람을 따라 당나귀처럼 쫓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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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지나는 길과 바라보는 들과 산이 모두 내 땅

 

세계 일주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태어난 이 땅을 둘러볼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곳은 내 땅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토지 등기부에 소유자로 되어 있으면서도 평생 그 토지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가 이 땅의 주인인가? 내가 자전거로 지나는 길과 내가 바라보는 들과 산이야말로 나의 소유요 내 땅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운 오리새끼인 당나귀도 덩치 큰 낙타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고 있다. 당나귀가 낙타들과 같은 식구라고 생각했다면 식구인 것이요, 그들의 리더라고 생각했다면 리더가 될 것이다. 당나귀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당나귀는 낙타들이 도로를 건너 건너편 넓은 들판으로 이동하자 따라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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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무리를 뒤로 하고 길을 재촉하니 이번에는 양떼와 말들이 도로와 들판을 메우고 있었다. 건장한 두 사내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양떼와 말들을 모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다가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주인님, 이 곳은 우리가 잘 돌보고 있으니 어서 다른 곳을 둘러보십시요.' 

'그래, 오늘은 쿨난이란 마을까지 둘러보아야 하니까, 그럼 이 곳을 잘 지키고 있게나!'

 

땅 주인인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안장 위에 올라 앉았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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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