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국경 넘어가며 “내 사랑 중국, 짜이지엔”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⑫ 투르판~우루무치/08. 7.14~30

 

커피 주스 물…, 사막 갈증의 공포 ‘꿀꺽꿀꺽’
해발 2000m 언덕 위 호수 풍경 ‘이별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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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에서 우루무치까지는 약 200㎞의 길로 중간에 마을이 소초호, 따반청, 화비청이 있었다. 나는 소초호와 화비청에서 하루씩 묵으면서, 2박3일 걸려서 우루무치에 도착하였다. 투르판의 저지대 지역(일부 지역은 해수면보다 낮다)에서 톈산산맥(천산산맥)의 낮은 구간인 1200m 높이의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다.

 

사막 구간의 끝을 알리는 푸른색 초원이 보이기 시작하는 소초호를 거쳐 화비청이 있는 언덕을 넘어 우루무치에 이르게 된다. 우루무치로 가는 길은 여전한 '바람의 길'로, 세력이 약해지기는 하였으나 간간히 자전거 바퀴의 움직임을 더디게 했다.

 

과일트럭 만나 수박 한통 사 순식간에 해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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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초호에 도작하기 10여㎞ 전쯤, 바람 속의 주행 탓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물도 다 떨어졌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사막의 복사열로 입은 타들어가고 자전거는 생각대로 앞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희망은 소초호까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문제는 목이 너무 빨리 타들어가고 있었다.

 

투르판에서 소초호까지 60㎞의,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하여 물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순간적인 방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자전거 바퀴에 매달려 있는 바람을 탓하며, 기진맥진하여 한 바퀴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저 앞에 과일을 운반하는 트럭 한대가 갓길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트럭은 시동을 걸어 떠나려고 하였다. 나는 다급해져서 손짓하며 소리쳤다.

 

"잠깐만요!" 

 

나는 수박 한 통을 5위안(元)에 사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순식간에 한 통을 거의 다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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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호에 도착하지마자 상가에 들러 커피 한 캔, 500㏄ 주스 한 병, 600㏄ 물 한 병을 입 속에 들이부었다. 사막에서의 갈증의 무서움에 몸서리치면서….

 

서초호에서 보는 저녁 풍경은 아름다웠다. 사막 구간을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바라보는 톈산산맥은 눈에 익은 태백산맥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산줄기 반대편으로는 낮은 구릉의 모래 산들이 저녁 햇살에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소초호는 깨끗한 상점이 있는, 국도변의 작은 휴게소 마을이다. 샤워와 저녁식사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언제 기진맥진했었냐는 듯 나는 회복되어 있었다.

 

마오쩌둥과 시골 처녀의 사랑이 얽힌 곳

 

다음날은 마오쩌둥(모택동)과 시골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유명하다는 따반청까지만 가려고 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낮 12시가 갓 넘은 이른 시간이어서, 내친김에 우루무치 인접 지역인 화비청까지 내달렸다. 그곳엔 언덕 위로 식당 몇 개가 들어서 있었다. 여사(숙소)와 함께 운영하는 한 식당으로 가자 주인이 반갑게 맞아줬다.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칭다오(청도)에서 출발하여 카자흐스탄으로 가려고 합니다."

 

마침 벽에 지도가 걸려 있어, 지도를 보며 지나온 경로를 얘기해 줬다. 바로 주인의 엄지손가락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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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녹차가 든 페트병 하나를 갖다 주며, 숙박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우루무치에 도착한 뒤 나는 몇 가지의 장비 보완을 위해 자전거상점과 등산장비점을 찾았다. 

 

가지고 왔던 콜맨버너의 노즐이 막혀 다른 버너로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한 등산장비점에 MSR버너가 있어서 구입했다. 그동안 주행하면서 타이어 교체도 검토 중이었다. 1.95"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었으나 도로 주행에 좀더 유리한 1.5"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자전거상점에 들러 살펴보니, 튜브의 밸브 모양이 일치하지 않아 타이어를 교체하려면 튜브뿐 아니라 펌프까지 바꿔야 했다. 펌프까지 새로 살 바에야 타이어 교체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교체를 보류했다. 나는 출발할 때 장비의 호환성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생각했으나, 같은 26" 타이어라도 지역에 따라서 호환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브레이크 패드는 분리형이어서 필요할 때 패드만 교환하면 되는데, 중국의 자전거상점엔 브레이크슈와 패드 일체형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엔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 수입한 부품들이 공급되고, 중국엔 대부분 자국의 제품이 공급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같은 V브레이크라고 해도 호환된다고 볼 수는 없었다.

 

잠시 눈앞이 흐려졌다, 그렇다, 사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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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0일엔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내렸다.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다음날 우루무치에서 서쪽으로 700㎞쯤 떨어진 카자흐스탄과의 국경지역인 콜궈스를 향해 출발했다.

 

길가의 들녘엔 해바라기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이 계속돼 무리 없이 주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해발 2000m의 언덕 위에 펼쳐져 있는 세이람호의 경치는 중국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게 해주는 장관이었다. 호숫가에는 양, 말, 염소, 낙타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녔고, 한여름에도 녹지 않은 만년설의 설봉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이람호의 시원한 바람을 쐬며 언덕을 넘어가자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도로공사 중인 곳이 많아 먼지 속을 헤치며 덜컹거려야 하는 길이었다. 이런 먼지 속 길은 국경도시인 칭수이허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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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국경으로 가는 길에 공안 군인이 여권검사를 하면서, '짜이지엔'을 한국말로 뭐라고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여 가르쳐줬더니 서툰 발음으로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했다.

 

"짜이지엔, 차이나!" 

 

국경을 넘어가며 나는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내 자전거 여행의 첫 방문지, 정들었던 중국 땅을 떠나는 것이다.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잠시 눈앞이 흐려졌다. 그렇다. 나는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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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