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 몰아치는 ‘바람의 언덕’, 결국 걸어서 넘어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⑪ 하미~투르판/08.7.9~13

 

기괴한 조각 같은 거대한 모래산들 사이로

곳곳서 만나는 아낌없는 정의 맛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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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에서 투르판(吐魯番)으로 가는 길은 산다오링(三道嶺), 홍산코(紅山口), 샨샨을 거치는 600㎞의 길이다. 이 중 톈산산맥(천산산맥) 옆을 지나는 산다오링~홍산코 구간은 해발 1600m의 언덕을 넘고 '바람의 언덕'을 넘어야 하는 곳이다. 마을과 마을이 100㎞ 이상씩 떨어져 있는 장거리 구간이기도 하다. 

 

7월의 무더위 속에 사막 지역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해는 오전 5시 반에 떠서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진다. 오후가 되면 바람이 심해지고 역풍인 경우가 많은데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지쳐버리기 쉽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

 

중국 여행 초반, 동부지역으로 가는 길에는 마을이 많아서 아침식사 후 오전 8시에서 9시 정도에 떠나도 충분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막 구간인 서부로 들어서면서 아침식사는 전날 준비한 빵과 커피 한잔 정도로 해결하고 일찍 출발하는 습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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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 숨 들이쉬고 입으로 내뱉는 요령 터득

 

하미에서도 마찬가지로 물 3000cc와 500cc짜리 주스 한 병을 자전거에 싣고 6시 반에 안장 위에 올랐다. 자전거는 잘 닦인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굴러갔고 아침공기는 상쾌해 기분이 좋았다. 

 

오후가 되면서 목이 자주 말랐다. 나는 코와 입으로 동시에 숨을 쉬는 때가 많아 목이 칼칼해지기 일쑤였다. 이 때 입 속의 수분이 다 없어지면 헛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사막 구간을 달리면서 한 가지 요령을 자연스럽게 터득 하게 됐는데,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뱉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입 속의 수분을 좀더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중간쯤 가다가 보니 상가 표시가 있는 허름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 일정의 중간에 상가가 하나 보이면 주스라도 한 병 먹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음료수 있습니까?"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허름한 박스형 집에서 중년의 여자 2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는 상가가 아닌데요…."

 

나를 보더니 의자를 내주며 앉으라고 권했다. '이런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자, "음료수는 없지만 이거라도 좀 들고 가세요" 하며 포장국수를 그릇에 담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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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국수에다 만두까지 곁들여 내 앞에 '한 상'을 차려 주었다. 그들은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체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국수와 만두는 그들이 먹을 점심거리인 것 같았다. 사막 한가운데서 먹는 국수는 맛있었다. 눈시울을 잠시 따뜻하게 해 주는 맛이었다. 자전거 여행자는 이런 따뜻한 맛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도로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포장된 미개통 고속도로 나홀로 맘껏 ‘씽씽’

 

상하이에서 시작돼 우루무치를 거쳐 카자흐스탄까지 이어지는 312번 국도 옆에는 고속도로가 나 있다. 이 고속도로의 신장자치구 일부 구간은 지금도 공사중인데, 아직 미개통 구간 중에 아스팔트로 포장이 된 구간이 있었다. 나는 이 구간을 이용해, 널찍한 고속도로를 혼자 차지하고 잠시나마 마음껏 달려보았다.

 

산다오링(삼도령)이란 마을은 국도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사막의 마을 치고는 제법 큰 규모였다. 삔꽌(여관) 시설도 여느 호텔 못지않게 좋았다.

 

산다오링에서 머문 다음날 아침은 바람이 제법 세찼다. 바람의 방향이 그런대로 좋아 다행이었다. 대각선으로 나의 등쪽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이 도와주면 자전거는 날개를 달게 된다. 웬만한 언덕은 몇 번의 페달링으로 쭉쭉 넘어갈 수 있다.

 

날개가 있을 때 멀리 가야 한다. 바람은 여자의 마음과 같아서 언제 변할지 모른다. 북서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MP3 음악에 맞춰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맛은 최고였다. 시간이 지나자 가벼운 언덕길이 계속되면서 바람은 옆구리 방향으로 불어오기 시작했다. 50㎞ 정도 달려 조금 피로를 느낄 때쯤 이완취엔이란 지역에 도착했다.

 

상점에 들러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한 자전거 여행자가 상점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맞바람을 헤쳐 왔기 때문인지 좀 피곤한 듯이 보였다. 그는 베이징올림픽을 응원하기 위해, 벨기에를 출발해 베이징으로 가고 있는 헬데르 데클레르크(36)라는 사람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6개월간 휴가를 냈다고 했다. 그는 생수를 구입한 뒤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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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마을은 어디쯤에 있나?"

 

내가 "50㎞ 정도 가면 산다오링이란 마을이 있고 숙소도 좋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가까운 곳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그 중간에 리어던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알려줬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라서 산다오링까지는 갈 만할 거다."

"하루에 얼마나 주행하냐"고 묻자 그는 "평균 90㎞ 정도로 왔다"고 했다. 하루 90㎞라면 강행군이다.

 

그는 "벨기에에 오면 연락해 달라"며 이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내가 "일정상 벨기에에는 들르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남긴 채 산다오링을 향해 떠났다.

 

숙소 뒤쪽 화장실은 온통 ‘지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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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하면서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편안하게 목적지인 홍산코까지 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바람의 거대한 에너지는 나의 소박한 기대를 산산이 깨뜨려버렸다. 바람은 앞서 달아주었던 날개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내 몸 속의 에너지까지 모조리 흡수해버리며 광야를 난폭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는 엄청난 힘으로 몰아붙이며 나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나는 마침내 백기를 들고 천마에서 내려와 바람 속을 걸어가야 했다.

 

홍산코 가기 전 곳곳에 '바람의 지역'임을 알리는 팻말이 여러 개 보였다. 바람은 오른쪽 옆구리로 들이닥쳐 몸에 딱 붙은 티마저도 벗겨버릴 듯 펄렁거리게 하였다. 저단 기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천마 틀어잡고 걸어서 2~3개의 언덕을 넘어야 했다. 언덕을 넘어 홍산코란 마을이 보였을 때에야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늘은 100㎞를 오는 데 거의 12시간이나 걸렸다.

 

이 마을은 트럭 운전자들이 주로 식사하고 가는 곳으로, 벽에 '숙(宿)' 자를 써 붙인 집이 2~3곳 있었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 한 집을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니하오, 하루 묵고 가겠습니다."

 

주인은 식당 뒤쪽의 방을 보여 주었다. 한 방에 침상이 3개이고, 침상 하나당 숙박비는 10위안이었다. 문에는 잠금장치가 아예 없는 방이었다. 나는 그 방을 다 쓰는 조건으로 20원을 주었다.

 

세수대야 2개 분량의 물로 머리를 감고 수건샤워로 몸의 땀을 씻었다. 침상에 누우니 창문 틈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들어 왔다. 

 

"화장실은 어디에 있습니까?"

"집 뒤쪽으로 가세요."

집 뒤쪽으로 가도 화장실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집 뒤쪽이 온통 '지뢰밭'이었다.

 

다음날 해가 뜬 뒤 출발하기 위해 잠겨진 식당문을 열고 나왔다. 주인은 내가 일어나 설치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 나를 배웅해 줬다.

 

“별말씀을요”라고 할 걸 “미안합니다”라고 말해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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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샨샨까지는 쉬운 내리막길이라고 생각됐지만, 오후의 바람과 더위 속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는 일찍 출발했다. 내리막길이 이어졌고, 이번엔 바람이 다시 날개까지 달아주어 130㎞의 길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후 3시께 샨샨에 도착해, 목이 말라 한 과일노점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다가가니 주인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수박을 한 조각 주며 먹으라고 권했다. 한 조각을 먹고 나자 아주머니는 나머지 작은 수박 반통을 잘라서 더 주었다. 그것을 먹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답례를 하고 싶었다. '하미과' 하나를 달라고 하여 잘라서 아주머니와 그의 딸에게 한 쪽씩 권했다. "이건 제가 사서 드리는 겁니다."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손에 쥐어주자 받아 들었다.

"쎼쎼(감사합니다)."

"뚜이부치!"

 

모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뿌커치(별말씀을요)'로 말을 받았어야 하는데 '뚜이부치(미안합니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신장지역 사람들은 어떤가요?"

"아주 좋습니다!" 내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말하자 모녀는 좋아하였다.

 

과일을 다 먹은 뒤 나는 일어서며 계산하기 위해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안 받겠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오히려 하미과 하나를 비닐봉투에 넣어서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샨샨에서 하루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그 과일노점 있던 곳에 가보니 그 곳은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과일가게 주인들은 하나같이 돈 받지 않고 하미과 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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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샨에서 투르판으로 가는 길은 장관이었다. 거대한 모래산들이 이어졌고, 그 사이로 길이 빠져나갔다. 어떤 모래산은 조각을 해놓은 듯이 기괴한 모양을 한 것도 있었다. 

 

그늘에서 쉴 겸 길 옆에 늘어선 한 과일가게에 들렀다. 더위로 따끈해진 물통 속의 물을 한 모금 마시자, 가게 주인은 언제 하미과 한 쪽을 잘랐는지 주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칭다오에서 왔습니다." 그는 나의 대답에 놀라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4200㎞인데, 두 달 걸려서 왔습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올라왔다. 그 집 하미과는 크고 바삭바삭한 게 맛있었다.

 

다시 출발해 달리다 또 다른 과일가게에 들렀을 때 한 무리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손을 들었더니 자전거를 세우고 다가왔다. 그들은 츄이야레이 등 4명으로 베이징과 산둥성까지 간다고 하였다. 추이야레이는 가방에서 하미과 말린 과육을 꺼내더니 간식거리로 좋다며 꽤 많은 양을 나에게 주었다. 서로 기념촬영을 한 뒤 그들은 손을 흔들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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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나자 과일가게 아저씨가 나에게 어서 와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큼직한 하미과 한쪽을 권했다.

 

샨샨에서 투르판까지 오는 길에 여러 곳에서 하미과를 먹었지만, 나는 하미과 값을 모른다. 과일가게에 들르면 주인들은 하나같이 돈을 받지 않고 하미과를 주었기 때문이다. 신장자치구의 천사표 사장님들이었다. 그뿐인가. 그곳 경치 또한 그 사장님들의 마음만큼이나 아름다워 자전거 여행자는 내내 흐뭇하였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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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