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앞으로!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③ 남양주~중국 마짠/2008.5.1~6

 

20~30Km마다 전통시장, 에너지 공급의 ‘오아시스’

대륙 매운 바람 ‘신고식’ 다음날 ‘바람샤워’로 씽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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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일 오전 남양주시청 앞. 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장갑을 끼면서 자전거의 클립페달에 오른발을 올렸다. 자전거에만 집중하면서 천천히 안장 위에 올라앉았다. 페달을 밟아 바퀴를 굴리자 "이제 출발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차도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들었을 때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세계일주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분 전 나는 걱정하며 여행을 극구 말리던 사람들과 '너는 할 수 있다'며 격려하던 사람들이 뒤섞인 가운데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남양주시 쪽에서 안겨준 장미 꽃다발을 아내에게 건네줄 때까지만 해도 세계일주는 나에게 꿈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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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 17시간30분…트레킹족 무용담, MTB동지 정보 귀띔에 후딱

 

인천 여객터미널까지 자전거로 배웅하겠다고 따라 나선 3명의 친구들이 앞뒤로 붙어 에스코트하면서, 우정의 표시로 환한 미소와 손짓을 보내왔다. 구리를 지나 천호대교를 건너 강변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자, 노동절 휴일을 맞아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는 가족, 강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 풀밭에 한창인 민들레와 토끼풀꽃들, 모든 풍경이 평화로워 보였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와 거리에 주차된 자동차까지 정겨웠다.

 

출발이 늦어진 까닭에 인천 부두에 오후 3시까지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여의도 63빌딩 앞에서부터는 남양주시의 지원차량을 이용해 인천 제2여객터미널까지 이동했다. 다소 여유 있게 인천에 도착해 배웅 나온 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정종호 파이팅!" 소리를 들으며  중국 칭다오(청도)로 가는 출국장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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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칭다오 거리는 인천~제주보다 짧다. 그러나 항해에 17시간30분이나 걸렸다. 배가 직진항로를 잡지 않고 군산 앞바다쯤 내려가서 칭다오로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배는 연휴라서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여러 날 행군해야 하는 중국의 고산 등반도 마다 않는 트레킹 여행자들이 많았다. 저녁시간은 그들의 무용담을 듣느라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승객 중에 자전거여행자가 한 명 있었다. 오지를 찾아다니며 MTB를 타는 사람(닉네임 치악산)으로, 그는 나를 걱정하며 중국에서 필요한 자전거여행 정보들을 챙겨주었다.

 

칭다오 거리 곳곳 한글 간판, 중국 속의 ‘작은 한국’ 실감

 
칭다오는 안개 속에서 희뿌옇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칭다오에 사는 유명한 자전거여행자(닉네임 탱이)에게 몇 가지 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 '탱이'님이 청도 여객터미널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겁없이 세계일주에 나선 나와 자전거여행의 베테랑인 '탱이' 그리고 '치악산' 셋은 함께 칭다오에서 이틀간 머물며 다양한 정보들을 구하고 계획을 점검했다.

 

5월 4일 아침, 부슬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안개 낀 칭다오를 출발했다. 중국 대륙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아 나갔다.  950만명이 거주하는 칭다오는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도시답게 한글 간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중국어를 몰라도 관광이 가능하다고 하니, 칭다오에 '작은 한국'이 있다는 말도 과장은 아닌 듯했다. 신시가지는 고층건물과 잘 지어진 아파트, 깨끗한 거리 등으로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도 5월 1일부터 사흘간 연휴기간이어서 수많은 인파가 5·4광장과 해변가로 몰려들었다. 도로는 차량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땅덩어리가 큰 중국에서는 평생 바다 한번 보는 게 소원인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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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칭다오 시내를 벗어나자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페달을 밟을수록 거세지는 맞바람은 마치 나에게 중국대륙을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을 알리고자 하는 듯했다. 나는 그럴수록 허벅지에 힘을 주고, 흔들리는 핸들을 꽉 붙잡은 채 바람 속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이 날의 이동거리는 30Km에 불과했다. 가로수에 기대놓은 자전거가 바람에 넘어져 핸들에 새로 감았던 테이프가 찢어졌다. 중국은 나에게 황사를 한국에까지 실어 나르는 대륙 바람의 매운 맛을 살짝 보여주었다.

 

광활한 밀밭 사이 한적한 도로 라이딩엔 안성맞춤

 

칭다오 주변은 공장지대였으나 100km 정도 벗어나자 광활한 밀밭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폭 3~5m의 도로 상태는 비교적 괜찮았고, 무엇보다 한적해서 라이딩엔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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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Km마다 나타나는 우리의 5일장 같은 재래시장이 흥미로웠다. 여기서 농수산물이나 공산품 같은 생필품이 공급되고 있었다.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키운 가축 등을 내다 팔기 때문에 가격은 쌌다. 특히 밀가루빵은 1위안(약 150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저울추로 물건의 근수를 달아 파는 좌판과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수레에 각종 생필품을 쌓아놓고 파는 모습은 정겨웠다. 과일 파는 아가씨가 하미과라는 과일을 들고는, 2위안이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모습이 재미있어 사진 한 장 찍어보았다. 이런 전통시장들이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에너지와 물을 공급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칭다오를 벗어난 지 이틀째. 바람이 많이 잦아들어서, 첫날 부진했던 이동거리를 좀 만회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도착한 쭈청이라는 도시에서 GPS를 보니 99Km를 달려왔다. 이런 질주가 가능했던 건 '바람 샤워'를 즐긴 덕분이다. 이 길은 구릉길이 많아 열심히 언덕을 올라선 뒤 내리막에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갈 수가 있었다.

 

더운 날은 2리터, 구름낀 시원한 날에는 0.5리터 마셔

 

산둥성에는 비교적 구릉 구간이 많았다. 쭈청(도성)시에서 평이까지 230Km 구간에 구릉지대들이 잦았다. 특히 마짠가는 길에선 250~300여m의 작은 언덕들이 10여개가 나타났고, 도로 곳곳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대형 덤프트럭들이 지나가면, 갈라진 틈에서 흙먼지가 일어나서 잠시 호흡을 멈춰야 했다. 심하게 깨어진 도로를 피해 지그재그로 시멘트포장 위를 쿨렁거리며 나가는 것이 마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마짠시 초입의 여관(삔관)에서 숙소를 정했다. 숙박비는 10위안(1500원)에 불과했다. 숙박비는 도심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고 한적한 시골로 갈수록 값이 쌌다. 가격은 80위안에서 10위안 정도였다.

 

며칠간 라이딩한 결과 먹는 물의 양을 잴 수 있었다. 날씨가 더운 날은 2리터를 마셨고 구름낀 시원한 날에는 0.5리터를 마셨다. 물론 가면서 과일 같은 것을 먹어 비타민과 수분을 보충하곤 했다.
  
 글·사진 정종호 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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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