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사막, 죽음의 빗속 ‘페달’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모로코 티즈니트~시디악페닐/09.01.11~01.15
한낮인데 마치 저녁처럼 깜깜, 손가락은 ‘얼얼’
“헬프 미!” 하자 운전자는 “I am sorry”하며 ‘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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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 슬라이버와 헤어진 뒤 해발 1,000m의 언덕을 넘어 40㎞쯤 주행하였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Tleta Akhssass란 작은 마을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고기 200g(18디람)을 사, 고기를 갈아 구워서 빵과 같이 먹었다. 모로코에서는 식당에 정육점과 구워주는 곳, 레스토랑이 분리되어 운영되는 곳이 많았다. 빗방울이 점차 굵어져 나는 더 이상 가지 않고 오후 1시 반에 Tleta Akhssass에 있는 한 호텔(50디람)에 머물렀다.
 
여기 사람들 기상 시간은 아침 느즈막히 9시
 
비는 잠시 뒤 갰으나 바람은 여전히 강했다. 모로코는 3월까지 우기라고 한다.
 
호텔 1층은 카페로, 그날 저녁 벌어진 축구 중계를 보려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밤 늦게까지 환호성이 계속 터져나왔다.
다음날은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계속되는 산악 구간을 오르내리며 달렸다. 마지막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 보니 멀리 보이자카르네 시가 황토색 평야 사이로 죽 뻗은 길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도시를 통과할 때 누군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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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여기서부터 사하라다!”
 
이곳은 사하라 사막의 시작점이었다.
 
보이자카르네 시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섰을 때 바람은 다소 약해졌으나 바람을 안고 가게 되어 사하라 사막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였다.
 
날은 66㎞ 주행하여 구엘밈에 들어서 60디람에 숙박하였다. 그런데 호텔 주인이 자전거 보관료로 20디람을 요구하여서 나를 큰 소리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자전거 보관료를 요구한 곳은 없었다. 만약 돈을 달라고 하면 자전거를 호텔방으로 갖고 들어가겠다!”
 
그랬더니 호텔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간혹 호텔에서 외국인이라고 약간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호텔에 들어갈 때 가격을 조금 흥정해보면 깎아주는 곳이 절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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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3일 주행한 구엘밈에서 탄탄까지는 125㎞의 구간으로, 장거리에 대비해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호텔 옥상 문이 잠겨 있어서 널어둔 빨래를 못 걷었고, 옥상에서 버너로 취사를 하지 못해 전날 저녁에 해둔 찬밥과 식어버린 찌개를 먹어야 했다. 모로코 사람들은 대체로 기상 시간이 늦었다. 보통 9시는 되어야 일어났다. 미리 나의 입장을 알리지 못한 내 불찰로 방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7시쯤 누군가 복도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 그에게 물어 호텔 주인방을 노크할 수 있었다.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와 도시를 빠져나오자 도로가에서 한 여행자가 자전거를 뒤집어놓고 손을 보고 있었다.
 
“Hello!”
내가 말을 걸자 그는 나를 보며 놀라워했다.
세상에! 이곳에서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다니. 반갑네. 나는 가레트라고 해.”
 
먼저 지나가며 쪽지 남겨 ‘탄탄에서 만나 식사 같이 하자’
 
그는 42세의 가레트란 미국인으로, 카사블랑카에서 모리타니아까지 간다고 하였다. 가는 도중 프랑스 친구가 차를 가져와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하였다. 자전거 뒷바퀴 림이 휘어져 바퀴를 돌리며 교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와 나는 이메일 ID를 주고 받았다.
 
“갈 길이 멀어 먼저 간다.”
“나도 알아. 125㎞! 내가 곧 따라갈 것이니 먼저 가라.”
 
10여 ㎞쯤 달렸을 때 어느새 가레트가 따라붙었다. 그가 나를 추월하며 말하였다.
“탄탄에서 보자!”
 
나는 그를 쫓아가려고 하였으나 곧 포기하였다. 그는 길 끝의 한 점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나는 1시간 정도 주행 후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자전거를 탔다. 오전 11시20분에 한 카페가 보였다. 그곳에서 카페오레(우유에 커피를 타서 줌)를 마시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카페 주인이 쪽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
 
“I was here at 10:50. See you in Tan Tan. Check your E-mail when you get there. Well, do dinner tonight. - Garrett.”
 
그는 40분 정도 앞서 갔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카페를 출발해 조금 가자 가레트는 도로변에서 자전거를 또 손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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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내 메모 봤나? 탄탄에서 내 이메일 확인하고 식사 같이 하자!”
 
나는 곧 출발하였고 오후 1시 반쯤 한 카페에 들러 카페오레와 빵을 먹고 떠나려고 하는데 가레트가 도착하여 들어왔다.
 
“카레트, 너는 정말 빠르고 힘이 좋다. 몸집이 좋은 걸 보니 보디빌딩이라도 한 것 같다.”
“2년 전까지 보디빌딩을 했다. 나는 목수 일을 하는데 일이 바빠서 휴가를 못 갔다가 7년 만에 휴가를 받았다. 너는 어디서 출발했나?”
“코리아.”
 
그에게 GPS에 나타난 14,500㎞를 보여주었더니 그는 “Surprising!” “Amazing!”을 연발하며 자기는 나의 무릎 정도에 불과하다는 제스처를 하였다.
 
그리곤 “탄탄에 도착하면 이메일을 확인 해보라”며 나보고 먼저 출발하라고 하였다.
 
“나는 뱃살, 너는 짐, 같은 조건” 익살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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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없는 사막 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황토색의 모래산들이 많은 구간으로 풍경이 아름다웠다. 잔잔한 옆바람이 불고 있어 쉽지 않은 길이었다. 몇 시간을 주행한 뒤에도 가레트가 쫓아오지 않아 나는 중간중간 여러 번 그를 기다렸다. 모래산들이 수묵화처럼 펼쳐진 구간을 지나 탄탄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간식을 먹으며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어둡기 전에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탄탄에 들어섰을 때 입구에서 군인들의 검문이 있었다. 나는 패스포트를 군인에게 보여주고 나서 출발하려고 할 때 드디어 가레트가 나타났다.
 
“헤이 정, 너 언제 왔나?” 하며 그는 검문소 앞에 벌렁 누워버렸다.
“와우~ 네가 더 빠르다.”
“아니야, 너야말로 빠르고 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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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뱃살을 보이며 “나는 뱃살이 있고 너는 짐이 많아 같은 조건이었다”면서 익살스럽게 자신의 뱃살을 쥐어 보였다.
 
탄탄에서 나는 밥을 지어먹었고 그는 사먹었다. 그리고 그는 하루 이틀 쉬다가 출발하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26㎞의 짧은 구간인 엘오티아로 가서 차 한잔 마시고 있을 때 쉬겠다던 가레트가 자전거를 타고 또 나타났다. 이번엔 내가 “I am Surprised!”라고 외쳤다. 그는 내가 출발한 후 곧 나를 따라 온 것이었다.
 
엘오티아는 대서양 해변가의 조그만 항구도시였다. 그곳에는 코리아 하우스라는 제법 큰 규모의 한국 레스토랑이 있었다. 우리 둘은 그곳으로 가서 문어볶음, 볶음밥, 총각김치 등을 먹었다. 음식이 매웠는데도 가레트는 잘 먹었다. 나도 모처럼 한국음식으로 포식을 하였고 식당의 한국인 식구들과 함께 있으니 마치 한국에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코리아 하우스는 이강희씨가 18년 전 모로코에 들어와 정착한 뒤 최근에 건물을 신축하여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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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9시에 출발 준비를 마쳤을 때 가레트가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나의 사진을 찍겠다고 그는 전날 얘기했었다. 그의 블로그의 사진들은 아름다웠다. 그는 사진 공부를 3년간 하였으며 그의 카메라에는 피사체를 둥글게 보이게 하는 렌즈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는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약속하였다.
 
“BBC 방송에서 오늘 비가 온다고 하던데….”
나는 맑은 하늘을 보고 속으로 말했다.
‘내가 언제 일기예보를 보고 출발하였느냐고.’
 
천신만고 끝에 도시에 들어서자 ‘때맞춰 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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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레트와 이별의 악수를 하고 90㎞ 떨어진 시디악페닐(Sidi Akhfennir)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바람을 안고 달리는 길이었다. 맑은 하늘에 구름들이 점점 몰려들고 있었다. 길의 오른쪽은 대서양 바닷물이 넘실대었고 왼쪽은 막막한 사막이었다. 11시 반 차가운 첫 빗방울이 떨어졌다. 바람이 점차 거세졌고 빗방울은 우박처럼 차갑게 나를 때리며 쏟아졌다. 한낮인데 마치 저녁처럼 갑자기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튀었다.
 
천마(자전거)는 강풍에 못 이겨 중앙선 너머 반대편 길을 침범했다. 몸이 부르르 떨리며 “으~” 소리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우비를 꺼내 입었으나 강풍에 “따따따따” 소리를 내며 펄럭여서 오히려 더 위험할 것 같아 벗어버렸다. 바람과 비 때문에 주행중 휴식을 취할 수도 없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차가운 빗물에 점차 체온이 떨어졌다. 아프리카에서 얼어죽을 것만 같았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지나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차 한대가 멈추어 섰다.
 
“헬프 미! 나 좀 태워주시오.”
 
운전자는 “I am sorry” 하며 자나가버렸다.
 
나는 앞으로 가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여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았다. 손가락이 얼어 감각이 없어져 기어 변속에 애를 먹었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점차 약해졌으나 바람은 여전하여 시속 10~15㎞로 힘겹게 주행하였다.
 
시디악페닐(Sidi Akhfennir) 전방 20㎞ 지점에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저절로 부르르 몸이 떨렸다. 군인은 내게 주스 한 잔을 마시라고 주었다.
 
검문소 옆에는 주유소가 있었다. 그곳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자 카페 점원은 뜨거운 물 한통을 주면서 손을 담그라고 했다. 나는 뜨거운 카페오레 2잔과 삶은계란 한 개를 먹고 Sidi Akhfennir로 향했다. 거의 도착할 때쯤 비가 그치며 햇살이 잠시 나타났다. 그때 자전거 뒷바퀴가 펑크가 났다.
 
‘그래, 펑크야 고맙다. 비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 때를 피해줘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튜브를 교체했다. 오후 6시쯤 몇 집 살지 않는 도시에 딱 하나 있는 호텔, 그 고마운 이름의 호텔 아틀라스(숙박료 80디람)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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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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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