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7일간의 동행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모로코 쇼람나~티즈니트/09.01.02-11
뻘건 소고기국에 벌게지면서도 “Very good!”
비행기 예약까지 미루며 배웅하려 따라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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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머물렀던 쇼람나에서 어느덧 친구가 된 유세프와 그의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안장 위에 올랐다. 여행이란 늘 짧은 인연의 만남을 아쉬워하게 된다. 유세프 집의 두 며느리와 그의 처형은 이별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유세프 가족의 정성을 다한 접대에 감동되었다.
 
“정, 너는 챔피온이다.”
“거짓말하지 말라!”
 
모로코식 인사(얼굴 양쪽을 맞대는 인사)를 하고 뭉게구름이 떠오른 파란 하늘을 보며 나는 다시 초원길을 달렸다. 마라케시로 가는 길의 초원 모습은 돌과 흙들이 드러나고 있어서 조금씩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진 피하다가도 찍은 것 보여주면 깔깔깔
 
약 90㎞ 거리의 마라케시에, 오전 9시 반에 출발하여 오후 4시 반에 도착하였다. 마라케시에 들어서자 야자수와 오렌지나무 그리고 호텔이 많이 보였다. 발코니가 있는 한 호텔(360디람)에 체크인 한 후 근처의 대형 슈퍼마켓에 가서 작은 도미 2마리와 포도주 한 병을 사와서 쌀밥을 지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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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도시 구경을 나가 시버(사이버)파크, 모스크, 바자르 등을 둘러보았다. 바자르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춤추는 사람, 코브라 앞에서 피리를 부는 사람, 고슴도치와 비둘기를 가지고 나온 사람,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물을 따라주는 사람 등 있었고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자 피리 부는 사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다가와 돈을 요구하였다.
 
“15디람입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몇 개의 동전을 털어서 주었다.
 
시버파크에 들러 남녀 학생들이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사진을 찍자 여자들은 도망가거나 얼굴을 가렸다. 그들에게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재미있어 서로 깔깔대며 웃었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좋아하는데 왜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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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는 공원과 건물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다음날 75㎞ 거리의 치차오아를 향해 출발하였다. 가는 길은 거의 평지였고 한낮은 초여름 날씨처럼 햇살이 따가웠다. 중간쯤 갔을 때 도로 옆에 한 자전거 여행자가 있어서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45세의 벤트 슬라이버로 독일인이었다. 독일의 슈루트가르트에서 스페인을 거쳐 모로코 아가디르까지 30여일 일정으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모리타니아와 세네갈로 간다고 하였더니 “모리타니아는 위험하다고 들었다”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이 위험합니까?”
“사람.”
“강도가 많은 가요?”
“국도는 괜찮을 겁니다.”
 
그의 자전거 바퀴를 만져보니 바람이 많이 빠져 있었다. 자전거 바퀴는 28인치로 타이어는 1인치 정도로 가늘었다. 그와 잠시 애기를 하다 나는 먼저 출발하였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직접 만들어준 음식 맛있게 같이 먹고 “얼마입니까?”
 
한 시간 정도 달려 한 휴게소에 들러 커피와 빵으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손을 흔들자 그는 내게 다가왔다. 
 
벤트 슬라이버는 커피 두 잔을 마시며, 독일인은 늘 커피를 마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가는 길이 같은 아가디르까지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그는 아가디르로 가는 내륙 쪽 도로는 1,700m의 언덕이 있으며 그곳에 눈이 많이 와서 길이 폐쇄되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치차오아에 도착하여 한 식당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주인에게 호텔 위치를 물어보았다.
 
“우리 가게에 방이 있습니다.”
“이 마을엔 호텔이 여기 한군데인가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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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은 식당 뒤에 있었는데 헛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방은 창문이 없고 맨흙 바닥에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가격을 물으니 50디람을 불러서 10디람을 깎아 숙박하기로 하였다. 심한 곰팡이 냄새가 견디기 어려워 식당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야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다른 식당을 찾으러 가다가 거리에 생선장수가 있어서 작은 생선을 25디람에 샀다. 호텔에 맡기니 숯불에 구워주었다. 제대로 익히지를 않아 비린내가 났으나 둘은 식욕이 반찬이라고 모두 먹어치웠다.
 
그곳의 한 경찰에게 물어보았더니 마침 언덕구간의 교통통제가 풀렸다고 하여 우리는 산쪽 길로 가기로 하였다. 다음날은 44㎞ 거리의 이미앤타노트란 조그만 산마을(고도 884m)에 5시간을 달려 도착하였다. 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었고 그곳에는 호텔이 하나 있었다. 숙박비는 60디람을 불러서 50디람에 숙박하기로 하였다. 더운 물이 나오는 비교적 깨끗한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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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 슬라이버는 동작이 빨랐다. 내가 짐을 호텔방에 풀고 나왔을 때 그는 샤워까지 마치고 나와 있었다. 내가 인터넷 방(시비르 카페)으로 간다고 하자 그는 따라왔다. 인터넷은 속도가 너무 느려 다음카페에 사진 등록이 안되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몇 장의 사진을 이메일로 전송하여 카페 운영자에게 사진등록을 부탁하여야 했다.
 
그날 저녁은 소고기국을 끓여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국에는 고추와 고춧가루를 양념으로 넣었다. 그는 매워서 얼굴이 벌개졌으나,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Very good!” 하며 엄지손가락을 나에게 보였다.
 
식사 후 그는 지갑을 꺼냈다.
“얼마입니까?”
 
나는 깜짝 놀라 “No! No!” 하며 고개를 흔들었고 그는 내일 점심을 사겠다고 하였다.
 
늦잠 자다 폐 끼치기도…스스럼없이 농담 주고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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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언덕구간이 많은 80㎞ 거리의 주행길이라 오전 9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내가 늦잠을 자서 출발시간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늦잠을 자서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빵과 치즈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며 나는 오늘 출발시간이 늦었으니 여기서 하루 더 머물고 내일 출발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그는 “내일은 날씨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우리는 텐트도 있으니 출발하자”고 했다.
 
결국 10시 반의 늦은 시간에 호텔 문을 나서야 했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렸고 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그는 힘이 좋아 언덕구간을 빨리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가기에도 바쁜데 그는 가면서 짬짬이 사진까지 찍었다.
 
“자전거 여행을 많이 해봤습니까?”
“휴가기간에나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장거리는 못 가봤습니다.”
 
그는 내년에는 올해 간 길에 이어서, 아가디르에서 세네갈까지 가고 싶다고 하였다.
“사하라를 지나려면 물을 많이 준비하세요. 먹을 것 없어도 이틀은 버티지만 물 없이는 못 버팁니다.”
 
사하라 구간은 도시간의 거리가 100㎞에서 200㎞가 넘는 구간들이 있는 사막의 길이다.
 
타사뎀트로 가는 길은 흙산 지대로 풍경이 장쾌하고 아름다웠다. 간혹 멀리 2,000~3,000m급의 설산들이 보였다. 이 구간의 최고 고도는 1,300m였다.
 
오후 5시에 타사뎀트에 도착하여 서너 번 호텔 위치를 물으며 절벽 위에 위치한 한 호텔을 찾아 들어섰다.
 
“내일 출발하자고 그랬나요? 아직도 해지기 전이군요….”
“그럼 1,700m의 언덕은 어디에 있나요?”
 
둘은 웃으며 호텔에 들어섰다. 그 호텔은 숙박비가 290디람, 저녁식사로 커피와 함께 먹은 ‘따진’ 식사비가 150디람으로 가격이 비싼 곳이었다. 큰 호텔에 손님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고 종업원은 여러 명이 있었다. 전망 하나는 꽤 좋은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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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사뎀트에서 아가디르까지 73㎞의 길은 내리막과 언덕이 계속되는 구간으로 내리막을 신나게 질주할 수 있었다. 아가디르에 도착하자 아틀랜틱 해가 나타났고, 하얀 건물들과 고급 호텔들이 해변을 끼고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시가지 안쪽의 저렴한 호텔(250디람, 아가디르는 호텔비가 비싼 지역임)을 찾아 들어섰다. 나는 아가디르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고 벤트 슬라이더는 탐리라는 곳까지 해안도로를 타고 다녀왔다. 그가 돌아와 보여준 경치사진은 바위와 절벽이 있는 해안들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이렇게 또 짧은 인연의 만남은 나의 옷깃을 흔들고…
 
다음날 벤트 슬라이더는 95㎞ 거리의 티즈니트까지 동행하였으며 티즈니트에서 다시 아가디르로 돌아가서 귀국한다고 하였다.
 
Untitled-21 copy.jpg그와 함께 한 며칠간의 자전거여행은 재미가 있었다. 그는 맥주를 사려고 도시를 헤매다 돌아오기도 하였고, 서로 찍은 사진들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커피나 식사를 사먹을 때는 그가 한번, 내가 한번 지불하였고 저녁식사로 쌀밥을 해먹을 때는 그가 고깃값을 냈다. 코펠로 할 수 있는 음식이라야 쌀밥과 찌개가 전부였다. 그는 매워서 얼굴이 벌개졌어도 “Very Good!” 하며 잘 먹었다. 그는 배가 나오는 것을 걱정하여 아침과 점심은 아주 조금 먹었으나 코펠밥은 많이 먹었다.
 
그와 마지막 저녁을 위해 슈퍼마켓 쇼핑 때 그는 내가 산 물건에 대한 돈을 지불하였다. 다음날 그는 내가 가는 길의 1,000m 언덕 구간까지 따라오려고 하였으나 우천으로 우리는 호텔에 머물러야 했다. 나는 다시 마지막 한국식 저녁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쌀밥과 찌개에 불과하나 밥상을 한번더 차렸다.
 
다음날 그는 95㎞ 떨어진 아가디르에서 그다음날 오전 9시 출발 비행기가 예약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가 다음 도시까지 나를 배웅하겠다고 하여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인 오전 8시 반에 출발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출발도 하기 전 내 자전거의 앞 타이어 펑크가 확인돼 튜브를 교체하느라 시간을 소비하였다. 그와 얼마쯤 달리다가 주유소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아틀랜틱 해의 바람이 세찹니다.”
“정에게 유리한 바람이군요.”
“벤트는 맞바람 부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하니 여기서 헤어집시다.”
“가다가 텐트에서 자고 내일 비행기를 타면 됩니다.”
 
그는 10여km 떨어진 다음 마을까지 배웅하겠다고 했으나 내가 만류하였다. 그와 나는 이별의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아틀란틱 해의 세찬 바람이 나의 등을 밀어주었다. 반면 벤트 슬라이버는 역풍에 맞서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갈 것이다. 이렇게 또 짧은 인연의 만남은 아틀란틱 해의 바람처럼 나의 옷깃을 흔들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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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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