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시간여행 하는 듯한 착각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스페인 알게시라스~모로코 키니트라/08.12.15~20
배 타고 1시간10분 만에 아프리카 첫 발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마음 놨다가…
 
 
스페인의 알게시라스에서 모로코의 탕제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사진을 찍다가 부두의 고가 난간에 페인트칠을 하던 사람에게 내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사진을 찍어주더니, 나에게 그가 타고 있던 사다리차에 타보라고 권했다.
 
“여기서 보면 멀리 잘 보입니다.”
 
사다리차에 오르자 그는 야광 조끼를 주면서 나보고 입으라고 했다. 이 사다리는 작업 복장을 한 사람만 탈 수 있는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조끼를 받아 입고 사다리 위에서 부두와 바다를 둘러봤다. 부두에서 볼 때보다 훨씬 시원한 전망의 경치가 펼쳐졌다. 한동안 둘러본 뒤 밑으로 내려와 조끼를 벗어서 건네주자 그가 웃었다.
 
“자전거 탈 때 눈에 잘 띄는 옷이니 갖고 가세요.”
 
그는 나에게 몇 번이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였다. 그냥 그는 호의를 베풀었고 그냥 나는 고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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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해 주겠다는 친절 뒤에 손 내밀어
 
배는 5시반 출항 예정이었으나 30분 늦게 출항했다. 배 안에서 모로코 입국심사관이 파견나와 입국비자 도장을 찍어주었다. 스페인 출국에 대해서는 아무도 여권을 검사하는 사람이 없는 게 신기했다. 서유럽은 슬로베니아를 입국할 때 입국비자 도장만 찍어준 게 다였다. 가상의 국경만 있고 자유롭게 사람이 통행하는 서유럽은 앞으로 전세계를 비자 없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미래의 모델일 것이다.
 
모로코 입국심사관은 “사우스 코리아입니까?”와 “어디로 갑니까?”를 물었다.
 
“세계 일주 중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모로코의 어디로 가느냐 말입니다”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모로코의 수도 라밧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출항 뒤 1시간10분 정도 지나자 탕제에 도착했다. 부두를 빠져나오는데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거나 휘파람을 불며 내게 인사를 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Hello”와 “봉주르”밖에 없었으나 아프리카의 첫 방문국인 모로코에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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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이라 호텔을 찾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리자,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한 남자가 다가와 “제가 싼 호텔을 안내해 드릴께요. 시내로 조금 더 들어가면 비쌉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한 골목으로 들어가 100디람(8디람=약1달러)의 비교적 깨끗한 호텔로 들어섰다. 그때 안내해준 남자가 나에게 돈을 요구했다.
 
“돈 없습니다. 여기서 나가 다른 호텔을 알아볼까요?”라고 내가 매정하게 말하자 그는 실망해서 가버렸다. 그는 나에게 20디람을 달라고 했는데 돈을 안 줌으로써 내가 그를 이용만 한 결과가 되었다. 입국때 갑작스런 모로코인들의 환대에 어리둥절해져서 호의와 삐끼를 구분 못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거리 구경을 나섰다. 주로 아랍계 사람들과 유럽인들이 많았다. 여자들은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다녔다. 거리엔 낡은 집들이 많기는 했으나 많은 사람들로 활기에 넘쳐 보였다.
 
다음날 아침 늦잠에서 깨어나 오전 11시에 호텔을 나섰다. 탕제의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며 해변에 설치된 대포 앞에서 아프리카 도착 기념 촬영을 한 뒤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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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또 다른 대서양의 바다 빛깔
 
대서양은 지중해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곳은 회색, 먼 곳은 진한 초록색이었고, 전체적으로 색이 진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먼 바다에서부터 잔잔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평소보다 무거워진 자전거를 느끼며 초원과 바다를 번갈아 감상하며 달렸다.
 
점심 때 국도변에 있는 큰 식당이 눈에 띄었다. 정육점과 식당을 같이 하는 곳이었다.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 새우와 오징어가 들어 있는 해산물 메뉴를 골라 주문했다. 가격은 커피를 포함해 60디람,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또 맛도 좋아서 한동안 다른 음식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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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쯤 아시라에 도착해 쇼핑도 할 겸 바자르(시장) 구경을 나갔다. 바자르 입구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일본에서 왔나요?”
 “한국!”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제 아내가 한국인입니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그는 잠시 나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은 매우 아름다운 거리였다. 간혹 유럽의 관광객들도 보였다. 스페인 사람이 만들었다는 성벽과 포르투갈 사람이 만들었다는 거리 등 그는 나름대로 설명을 해주며 나에게 길 안내를 해줬다. 하얀 건물들이 들어찬 골목에는 하얀 담벽을 캔버스삼아 그린 그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여러 나라 화가들이 와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 일본 화가가 그린 것도 있었다. 골목을 둘러보니 모스크·학교·집들과 조그만 상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골목의 끝에는 대서양이 펼쳐졌다. 남자들은 <스타워즈>에서 제다가 입었던, 모자 달린 외투를 입고 다녔고 여자들은 히잡을 두르고 다녔다. 구경을 마치고 헤어질 때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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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을 안내했으니 돈을 주셔야죠?”
 “음~, 돈이라고요?”
 
그는 노련하게 나에게 접근해 내가 원하지도 않은 안내를 했고 결국 돈을 요구했다. 나는 10디람을 그에게 주었다. 그 돈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적은 돈일 것이다. 나는 그에게 관광객이 아니라 자전거 여행자라고 말해줬고, 그의 접근을 처음엔 호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모로코지만 또한 아프리카였다. 빨리 아프리카에 적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깜깜한 내리막길 “콰당”과 함께 “음메~”
 
다음날은 오전 9시 반에 출발해 112㎞ 달려서, 오후 6시 반에 ‘SOUK EL ARBAA DU RHARB’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보통 5시 반이면 어두워지므로, 가는 동안 나는 오후 3시 쯤부터 숙박할 곳을 찾으며 달렸다. 도로변에 호텔이 보이지 않아 다음 도시에 들어설 때까지 달려야 했다. 도로변엔 몇명씩 모여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도로가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삐쩍 마른 젊은이가 숲에서 나오더니 내게로 걸어왔다. 그리고 손은 내밀었다.
 
“돈 없다!” 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담배를 달라는 시늉을 하였다. 담배 한 가치를 그에게 주자 그는 동전을 꺼내서 다시 나에게 보여주었다. 돈을 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가진 돈이 없다고 말하고 “Bye Bye!” 하면서 그곳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이 바이”라고 말한 뒤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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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주위는 숲이라 검은 아스팔트 길은 더 어두웠고, 잠시 후 캄캄한 어둠 속으로 길이 사라진 것처럼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길가의 흰 페인트 선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끔 차량이 지나가면 길과 흰 페인트 선이 불빛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곧 호텔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 카메라 가방 속에 있는 전조등을 자전거에 설치하지 않았고, 충돌 방지를 위해 차량이 나를 잘 볼 수 있도록 ‘반짝이 밴드’를 어깨에 차고 달렸다. 오후 6시가 넘을 무렵,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나는 어둠 속에서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겠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시로 들어가는 완만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음메~음메~!” 하는 양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뭔가에 부딪쳐 푹신함을 느끼면서 넘어졌다. 자전거에 양 두 마리가 깔려 있는 모습을 보며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캄캄한 밤중에 양떼가 도로를 건너는 중이었다.
 
양치기 가족이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는 괜찮습니다만” 하고 말하자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넘어질 때 무릎이 아스팔트에 닿았는지 조금 까지기는 했으나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다. 양들도 다치진 않은 듯했다. 야간 주행은 위험했다. 나는 충돌이 일어난 뒤에야 양을 볼 수 있었다. 일단 자전거에 전조등을 달지 않고 달린 나의 잘못이 컸다.
 
차량 매연과 공장 연기로 숨이 ‘턱’
 
나는 ‘SOUK EL ARBAA DU RHARB’라는 도시로 들어가 저녁식사로 양고기 요리를 먹었다. 이것을 먹어야 뭔가 액땜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거리는 매연을 뿜는 낡은 차량들, 사람을 가득 태우고 가는 마차, 짐을 싣고 가는 당나귀, 거리에 가득한 양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 낱담배를 팔러 다니는 사람, 구두통을 메고 다니는 사람, 양말이나 옷가지 몇 개를 팔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 악기를 들고 다니며 구걸하는 사람 등으로 북적였고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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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77㎞ 떨어진 키니트라까지 주행했다. 길은 끝없는 평야와 초원지대로 양이나 소가 방목되고 있었다. 양 20~30마리를 데리고 나와 있는 양치기들이 많아 보였다. 가는 도중에 야채 노점상이 있어 자전거를 멈추자, 야채 장수들이 나에게 환영의 손짓을 보냈다.
 
한 사람이 나무상자를 꺼내더니 그 위에 방석을 올려놓고 나보고 앉으라고 권했다. 내가 사진을 찍자 주위에 있던 야채가게 주인들이 몰려와 같이 찍자고 난리였다. 나무상자 의자를 내준 사람은 홍당무의 껍질을 벗겨서 나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야채시장의 정이었다. 한 사람이 나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원이 많아서 다 줄 수는 없어 나는 3 개비의 담배를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은 서로 돌려가며 담배를 나눠 피웠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거나, 오라고 손짓을 하거나,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뭐라고 인사말을 하였다. 간혹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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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니트라 시가 보일 때쯤 한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카만 연기가 도시의 하늘로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키니트라 시에 들어서서 시장 거리에 있는 한 호텔로 들어섰다. 시장 모습은 우리 재래시장과 별반 차이는 없었으나 규모가 컸다. 의류, 그릇, 먹을거리 등을 파는 가게들이 골목마다 가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한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이 삶은 고동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한 접시 달라고 해서 먹어보니 달팽이였다. 맛은 별로였으나 여자들까지도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마지막 한 점까지 먹는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서 목욕수건으로 쓰기 위해 5디람에 조그만 테이블보를 샀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물에 담갔더니 벌건 염색물이 흥건히 배어나왔다. 비누로 몇 번 빨았더니 그때서야 사용할 만했다. 이곳은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식사를 하기에는 편했으나 공기가 너무 안 좋았다. 차량의 매연과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로 탁해진 공기는 아침이 되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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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