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5달, 내 마음의 소리의 끝은 뭘까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8> 부에노스아이레스-어, 민가협이?
여행은 사람? 그보다 타이밍!…뒤통수 얼얼
취한 듯 졸린 듯 날 샌 수다, 그는 홀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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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본 사람과 가보지 못한 사람. 지어낸 말이 아니고 어디선가 들은 말이다. 이렇게 나누자면 서울에 가본 사람 못 가본 사람, 천막 농성을 해본 사람 못 해본 사람, 똥을 손으로 닦아본 사람 못 닦아본 사람 등등 별말을 다 지어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세상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도시, 탱고의 고장, 마라도나의 출생지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 도시에 약 20년 전 남극을 꿈꾸며 지도 속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도시 위에 손가락을 짚던 꼬마가 성인이 되어 오고야 말았다.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 즉 맑은 공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다른 도시에 비해 거대한 이 도시의 공기가 좋을 리 없다. 아르헨티나 전체 인구의 1/3 이상이 이 도시와 근방에 몰려있고 총 면적이 200㎢가 넘으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겠는가?! 뭐, 이런 위키피디아에 치면 나오는 내용들은 여기까지 쓰도록 하겠다.
 

한국행 티켓에 콧등 ‘시큰’…복학, 널 외면하고 싶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눌러앉고 싶었지만 내게는 복학이라는 무시무시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낮에는 시내를 돌아다니고 저녁 즈음해서는 숙소의 ‘똥컴’을 붙잡고 저가 항공 사이트를 누빈 끝에 티켓을 두 장 구입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사랑하던 도시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쿠스코행 비행기를 탄 뒤, 리마에서 LA로, LA에서 인천까지 가는, 다소 복잡한 루트를 택했다.

 
티켓을 결제하고 난 뒤 확인창을 보며 콧등이 시큰거렸다. 정말 떠나는구나. 꿈같았던,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게 지내 온 지난 다섯 달이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같이 다니던 이탈리아 친구까지 8개월간의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터라 그 쓸쓸함이 배가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한국인 숙소가 두 군데 있다. 놀기 좋아하는 나는 밤새 술판이 벌어지기로 유명한 숙소로 갔다.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답게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주옥같은 정보들이 보배처럼 떨어져 있었다. 이 도시에서 여행자들은 탱고를 배우거나 보카쥬니어스의 경기를 보러 간다. 각자 저마다의 방문 목적이 있듯 내가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마요광장의 어머니들을 보기 위해서이다. 

 
마요광장의 어머니들이라….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에겐 무척이나 생소한 이름이다. ‘뭔 어머니들 보러 그 멀리까지 갔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어머니들, 보통 어머니들이 아니다. 벌써 30년도 넘게 매주 목요일마다 대통령궁 앞 광장을 맴돌며 묵언시위를 하는 분들이시다. 30년의 세월과 함께 어머니들은 할머니들이 되었다. 도대체 왜 이 어머니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묵언시위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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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대, 생사도 모르는 자식들의 이름으로 묵언시위
 

남미의 근현대사는 우리나라와 닮았다. 기나긴 식민지 지배를 거쳐 독재정권의 창출, 그리고 그 권력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체제의 수용. 지금은 남미대륙 과반수의 지도자들이 좌파로 분류돼 한국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특히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70~80년대의 악명 높은 군부독재로 유명하다. 남미대륙의 혹독한 군사정권은 미국의 배후지원에 의해 성립되고 유지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남미 전역에서 펼쳐진 콘도르 작전과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이다.

 
콘도르 작전과 더러운 전쟁은 미국 CIA가 배후가 되어 남미의 군부가 아옌데 지지자, 페론주의자, 좌파 지식인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수첩에 이름이 적혀있는 사람들까지 죄다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한 사건이었다. 납치해 온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고문하고 살해했는데, 더 이상 사람들을 묻을 곳이 없어 산 사람들의 눈을 가린 채 비행기에 실어 대서양 한가운데에 떨어트린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수용소에서는 온갖 육체적, 정신적, 성적 고문들이 계속 되었고, 군인들은 임산부를 체포해 와서는 어머니는 살해하고 아이는 군부 관계자나 협력 기업의 가문에 호적을 올렸다. 진짜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손에서 자라게끔 한 것이다. 당시의 군부독재정권은 이런 반인류적인 행태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1977년 4월 30일 어머니들은 군부독재 하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자식들의 이름을 새긴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침묵시위를 시작했다. 당시는 단체행진이 금지되어 있었고, 시위를 하는 어머니들까지 비밀리에 연행해 고문·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사라진 자식들의 행방을 묻는 침묵시위는 30년 동안 계속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르헨티나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정권 무너져도 단죄는 미꾸라지…우리나라 민가협과도 교류
 

군부독재 몰락 후, 표면적으로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독재정권 주역들은 끔찍하고 반인륜적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군부정권이 끝난 1983년에 종신형이 선고됐지만 군부의 압력으로 4년 뒤 모두 석방되고 사면법까지 제정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2005년 사면법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나고 이 악법은 폐지되었다. 이렇게 법적으로 군부정권의 인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권력과 재력에 의해 아직까지도 처벌받아 마땅할 사람들이 요리조리 피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한국과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도 87년 6월 항쟁 이후 표면적으로는 군부독재가 몰락했지만 그 주역들은 아직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과거를 보며 과거는 항상 현재와 연결되며 정리되지 않은 과거 때문에 수많은 현재가 고통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이 민주화의 상징인 어머니들은 방송국이나 대학에서 일하거나 카페 등을 경영하며 군부독재시절의 잘못뿐만 아니라 수용소에서 태어나 군부관계자의 손에 길러진 아이들의 진짜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비롯해 정치현안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974년의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라는 단체가 있다.
 
헥헥, 길다. 정식명칭보다는 민가협이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한 단체이다. 우리나라의 민가협과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 어머니회는 그 성격과 모토가 비슷하여 서로 교류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94년에는 장기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위에 5월광장 어머니회가 지지방문을 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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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한결 같이, 허리 굽고 백발이 돼도 처음처럼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가게들이 느지막하게 영업을 시작할 목요일 오후 3시 반 무렵 대통령궁 앞의 마요광장을 찾았다. 마요광장 바닥에는 어머니들의 상징인 하얀 손수건이 그려져 있었고 이미 많은 관광객들과 기자들이 웅성대며 어머니들의 행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어머니들이 하얀 봉고차를 타고 도착했다.

 
어머니들은 파란 바탕에 흰 손수건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들고 지금까지 3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공원을 돌았다. 백발의 허리가 굽은 어머니들은 태양이 아직 뜨거운데도 묵묵히 공원을 돌았다. 엄숙한 의식 같은 행진이 끝나자 피라미드 탑 밑에 모였다. 작은 체구지만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회장어머니가 앞에서 연설을 하고 매스컴 관계자들의 촬영과 질문이 이어졌다. 짧은 연설이 끝나고 어머니들은 다시 봉고차를 탔다. 

 
짧은 시간이었다. 30분 정도였을까. 물론 나 같은 관광객 입장에서는 평생 한두 번 볼까말까 한 행사이지만 어머니들은 30여 년 전부터 매주 해왔던 행사다. 아직까지 실종된 자식이 살아있을 거라 믿는 어머니들, 시신만이라도 찾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 왜 자식이 실종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의 소망은 지난 30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사회를 바꿔왔다. 그리고 나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방문하는 관광객의 마음의 샘에도 돌멩이를 던졌을 것이다. 공원에는 어머니들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여성 관광객이 그들이 떠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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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건 바닥이건 이불 펴면 그곳이 누울 자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2주 조금 넘게 머물렀다.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러 우울함과 권태로움에 가득 찬 생활이 계속되었다. 숙소에는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 혹은 여행을 끝내는 사람들이 모였다. 종착점에 이른 여행자들은 출발선에 선 여행자들에게 이곳저곳의 정보를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지금까지의 여행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하게, 때론 격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밤이 꼴딱꼴딱 샜다. 벌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젓가락과 페트병, 밥그릇으로 음악 한답시고 자진모리장단 Feat, 레게비트를 연주하기도 했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당시 다른 호스텔이 하룻밤에 45페소 정도 (한화로 약 2만 원 정도)였던 것에 비해 10페소였다! 이런 어메이징한 숙소 같으니....! 그곳은 돈 없고 한국음식이 그리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침대가 약 10개 정도 있고 거실에 소파가 한 개 있다. 침대에 사람이 꽉 차면 소파에서 재우고, 소파까지 차면 바닥에다 이불을 깔고 자기 때문에 이 숙소의 수용인원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놀기 좋아하기로는 둘째라도 서러울 한국 사람들인지라 밤새 졸리면 대충 술상을 치우고 바닥에 이불 깔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자고 일어나서는 그날 일정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쳐 이곳저곳 놀러 다니거나 조금 오래 있는 사람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초보자들을 데리고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왔다면 산텔모의 일요시장과 플로리다거리, 마라도나의 출생지이자 탱고의 발상지 보카를 가지 않을 수 없다. 산텔모에서는 일요일마다 골동품이나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노점이 늘어서고 길거리에서 탱고나 악기연주 등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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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탱고의 발상지, 한 발짝만 벗어나면 빈민가
 

젊은 아티스트들이나 행위 예술가들은 작은 상자를 앞세우고 각자 자신의 특기를 뽐낸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었는데, 음악이 먼저 내 귀에 꽂혔다. 귀에 익숙한 그 음악은 guns and roses의 welcome to the jungle 이었는데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어떤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장발에 반다나를 두른 남자는 온몸에 물감을 묻히고는 노래에 맞춰 자기 키보다 더 큰 캔버스에 물감을 ‘촥~촥’ 뿌려대는 것이었다.

 
그를 병풍처럼 둘러싼 관광객들은 도대체 이 남자가 무슨 그림을 완성시키나 호기심에 찬 또랑또랑한 시선을 캔버스에 집중시켰다. 노래가 끝날 무렵 그림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그가 그리던 것은 다름 아닌 액슬로즈였다. 액슬로즈 코스프레를 하고 건즈 노래를 틀고 온몸으로 액슬로즈를 그리다니. 대단한 빠심이다. 그림이 완성되자 남자는 그림 한 귀퉁이에 자신의 사인을 남기고 그림을 경매에 부쳤지만 구경하던 사람들은 슬슬 그 자리를 뜨고 있었다. 이 야속한 사람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보카쥬니어스는 마라도나의 친정팀이다. 남미 여행 중 우연히 세 번씩 마주친 일본인 친구와 숙소에서 만난 한 살 아래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보카지구를 찾았다. 보카는 마라도나의 출생지이자 탱고의 발상지라고 하는데, 알록달록 예쁘게 칠해놓은 집들과 길거리 탱고 공연이 유명한 곳이다. 보카지구의 길거리에는 테이블을 내놓고 탱고공연을 하는 화려한 레스토랑이 주욱 늘어서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다. 이곳은 현지인들도 위험하다며 출입을 꺼리는 빈민가이다.

 
La  B o c a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마을은 이름부터 입, 항구라는 뜻이다. 19세기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수도로 정해지고 유럽의 하층 계급들이 이민을 와서 둥지를 튼 곳이 바로 보카이다. 항구도시의 특징이 그렇듯 보카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새로운 문물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곳이 그리 썩 편하진 않았다. 알록달록 예쁘게 칠해진 집과 그 집 밖에 널어둔 알록달록한 옷이 마치 너무나도 의도적인 미장센을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수많은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들어차서 자리도 없는 레스토랑의 테라스에 우리도 앉았다. 가장 싼 커피를 시켜놓고 좁은 무대에서 매일 반복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춤꾼들을 보았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종업원들을 보았다. 평소라면 이 활기 넘치는 거리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날따라 내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우악스럽게 보였다.
 

여행의 끝, 그 이별이 아쉬워 거금 들여 탱고 공연 덜컥
 

비 온 뒤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축축한 아스팔트를 걸으며 숙소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다. 물기 맺힌 차창 너머로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내 눈을 찔렀다. 이 친구와는 여행을 시작하던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처음 만났다가 각자 여행을 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그 숙소에서 다시 만났다. 여행자들끼리는 서로 감성 돋는 이야기도 많이 하곤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여행에서 느낀 점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에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나’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만났나’이다. 아무리 좋은 장소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했을 때는 그 장소가 좋게 기억되지 않는 반면, 볼 것이 없어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다면 아름다운 장소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나에게 그 친구는 좋은 여행을 만드는 요소에 ‘타이밍’도 있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지 못한 타이밍에 만난다면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시점 또한 분명히 중요한 요소였을 텐데 그 친구가 말해주고 나서야 깨달았다.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모든 외부로부터의 자극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 주고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해준다. 타이밍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은 보카주니어스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지만 가지 않았다. 축빠가 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아까운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자들을 보며 나 역시 몇 주 후에는 잠에서 깨어나면 내 방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끝은 이별이 다가오는 것과도 비슷한 기분이 든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안타깝기만 한 그런 기분 말이다. 어떻게든 그 기분을 달래보려고 큰돈을 들여 탱고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탱고의 탱 자도 모르고 아는 곡이라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나온 ‘por una cabeza‘ 밖에 없는데 우리 돈 7~8만 원에 해당하는 공연을 덜컥 예약해버렸다. 가장 말끔한 원피스를 차려 입고 밤 9시가 돼서 시내 한복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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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발가락도 잠시, 음악에 푹 잠겨 ‘흔들흔들’
  

내가 예약한 곳은 ’La ventana’라고 하는 고급 탱고 바였다. 공연을 보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장을 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내 옷차림에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왜 그리도 내 엄지와 검지를 가르는 조리가 부끄럽던지. 그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구락지 같은 내 엄지발가락의 빨간 매니큐어는 빵긋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이힐에 드레스를 차려 입은 늘씬늘씬한 금발 미녀들을 헤치며 소심하게 내 자리를 찾아 앉고는 커피를 주문했다. 이런 곳에 오면 와인이나 샴페인 같은 걸 시켜놓고 간지 나게 다리 꼬며 있어야 하건만. 커피를 주문하는 나를 웨이터는 카페에서 웰치스 시키는 사람 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공연은 춤, 노래, 연주, 그리고 전통음악과 탭댄스 등으로 이루어졌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내 자리를 박차고 무대 옆쪽으로 이동했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음악이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매혹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탱고 음악을 들으며 그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격렬하면서도 관능적이며 색기 넘치는 춤 또한 내 시선을 그대로 무대에 고정시켰다.

 
며칠 전 맨체스터 더비에서의 루니의 오버헤드킥을 보는 느낌이랄까. 공연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입 꼬리가 올라가도록 만들었고, 그동안 남미를 여행하며 수많은 거리 음악가들이 들려준 노래가 무대에서 재현될 때는 잠깐잠깐 따라 부르기도 했다. 나는 항상 음악을 감상할 때 볼륨을 가장 크게 틀어놓고 그 음악 속에 푹, 마치 잠수를 하듯 잠겨버리고 마는데 그날도 역시 푹 잠겨버렸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데도 가만히 무대 앞에서 그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관광객으로 보이는, 아주 좋은 카메라를 가진 아저씨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음악을 온몸으로 즐기는 것 같아서, 너를 보며 덕분에 나도 즐거웠다고. 괜히 칭찬받은 것 같이 기분이 들떠서 숙소로 향하는 내내 오늘부터 탱고 팬 해야지!! 라고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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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밤하늘이 푸르스럼하게, 그리고 곧 연보라로
 
그날 밤도 어김없이 술판이 벌어졌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 다음날이면 2년 동안의 세계 일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차디찬 베란다 돌바닥에 주저앉아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여행한 나라 이야기, 여행에서 느낀 점들과 함께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가치관까지. 술기운과 잠기운이 섞인 몽롱함 탓에 주절주절 수많은 이야기를 뱉어내고 또 뱉어냈다. 수도 없이 바뀌는 화제 가운데서 뇌리에 박힌 한 마디는 ‘마음의 소리’였다. 웹툰 마음의 소리가 아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친구는 지금껏 자신의 마음 속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소리를 더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그대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 되어버리는, 그런 성격이라 정체성이 희미해졌다고. 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오던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타의보다는 전적으로 자의에 의해 살아온, 너무 자신만 아껴온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녀는 나에게 너는 마음 속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마주보며 살아왔구나라고 말해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대로 마음과 마주보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는 나처럼 되고 싶다고. 정작 나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자신이 참 어리석게 느껴지는데. 

 
검푸른 밤하늘은 어느덧 짙은 파랑으로 변해갔고 우리의 수다는 짙은 파랑이 연보라로 바뀔 때까지 계속되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제 자야지라는 말과 함께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을 마음의 소리에 대해 생각하다 잠에 빠졌고 일어나보니 그 친구는 새벽의 대화가 참 즐거웠다는 메모를 남기고 이미 숙소를 나간 후였다. 
 
글 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2010년 여름방학에는 유럽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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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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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