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뱃사람들의 성적 판타지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인천공항 인근 장봉도에 세워져 있는 인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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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체로 인어가 서양의 전설이나 동화 속에만 나오는 줄 알지만, 한국이나 중국 등 동양권에서도 전해오는 인어 이야기가 적지 않다. 폭풍의 위험을 노래로 알려주던 거문도의 아름다운 인어 신지끼를 비롯해, 중국의 <산해경>이나 <태평광기> 속 ‘살결이 옥같이 희고 머리털이 치렁치렁한 미녀’ 인어 등이 그렇다. 영종도 인천공항 인근 바다에도 인어의 전설이 전해온다. 공항 바로 옆 섬 장봉도 선착장에는 인어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다. 옛날, 오래 흉어가 계속되던 장봉도 근해 날가지 어장에서 어느 날 최씨 성을 가진 어부가 그물을 올렸는데 기이한 물고기가 잡혔다. 상체는 사람 형상이고 하체는 물고기 모양이었다. 어부는 인어를 측은히 여겨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 후부터 어부는 날가지 어장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인어 이야기는 세계의 섬과 바다에 산재해 있다. 미녀 인어를 봤다는 목격자나 목격담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인어를 직접 잡았다는 사람은 없다. 인어는 환상이지만 환상은 또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더러 남자 인어가 있기도 하지만 전설 속의 인어는 대부분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이다. 그것은 아마도 뱃사람들이 남자들인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오랜 시간 바다를 항해하며 욕정을 참아내야 했던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이나 로렐라이 언덕의 요정 같은 인어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금단의 환상이었다. 성적 욕망의 대상이기는 하되 결합할 수 없는 대상, 그래서 환상은 쉽게 소멸하지 않고 끝도 없이 확대재생산되었다.
 
구전으로 미루어 장봉도의 인어는 미녀라기보다는 <자산어보>의 ‘옥붕어’거나 <산해경>의 능어, 용어 같은 괴물의 범주에 속하는 듯하다. 하지만 장봉도 인어상은 매끈한 서양 미녀상이다. 뻔한 상업성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전설에 시비 걸거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어차피 전설이란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윤색되기 마련이다. 전설에 살이 붙고 뼈가 굵어지는 것은 전설이 생명력이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오늘도 인어는 저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을까.
 
영종도행 철부선이 출항을 준비중이다. 단체관광객들이 줄지어 배에 오른다. 남겨온 김밥을 마저 먹고 캔음료를 마시고 남자들은 장봉도 횟집에서 포장해온 낙지볶음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다. 여자들은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기에 바쁘다. 초로의 관광객들은 부부 동반. 갑판에서는 남자를 질책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주책 좀 부리지 마, 주책 좀 부리지 마.” 여자는 화를 삭이는 표정이 역력하다. 술이 거나해진 남자는 궁색하여 말이 없다. 지은 죄 탓이다. 남자는 부둣가에서부터 혼자 배를 기다리던 중년의 여인에게 ‘작업’을 걸었다. 아내를 내팽개치고 여자를 뒤쫓아 간 남편은 선실에서까지 작업을 걸고 나오다 아내에게 딱 걸렸다. 곁에서 지키고 있어도 틈만 나면 옆길로 새는 남자 때문에 여자는 평생을 무던히도 속이 썩었을 것이다. 초지일관, 여자 문제에 관한 한 남자들은 늙어서도 좀처럼 철들지 못한다. 
 
시인(<올레, 사랑을 만나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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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