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어라 응 뭐지? 검은 빙하, 마녀의 장난인가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9> 여기에도 스위스가?
‘우리’가 답답해 ‘혼자’이기 위해 또 짐을 꾸려
붉디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울었다, 참 많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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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숙소에는 ‘우리’는 있었지만 ‘나’는 없었다.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마시고, 모든 걸 ‘같이’ 해야 했다. 문으로 분리된 공간이더라도 개인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개인보다는 ‘우리’를 중요시 하는 우리들은 아무리 홀로 방랑하는 배낭족들이 모였다한들 집단을 추구했다.

 
말이 잘 통하는 한국 사람이 그리웠을 땐 언제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기분은 다르다고 숙소의 친구들은 너무나 잘 맞고 즐거웠지만 2주 동안 실컷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하다 보니 슬슬 이것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혼자 요리를 하고 혼자 여유로움을 느끼고. 그냥 혼자이고 싶어졌다. 어느 정도 ‘같이’의 양이 채워지면 다시금 ‘혼자’를 원하게 된다. 또 ‘혼자’를 만끽하면 다시 ‘같이’를 갈망한다. 그 ‘혼자’의 기간이 길 수도, 아주 짧을 수도 있다. 길고 짧고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여행의 권태
 

혼자이기 위해 버스터미널에서 바릴로체행 버스를 예약했다. 바릴로체부터 파타고니아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호수와 만년설을 곱게 두른 산맥, 그리고 초콜릿으로 유명한 곳이라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인기 휴양지이다. 마침 여름 휴가철이라 버스를 예약하기도, 숙소를 예약하기도 쉽지 않았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라는 추천숙소에 전화해보니 역시나 예약이 꽉 차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가격이 적당한 숙소 몇 군데를 찾아 전화해보았지만 한 곳 빼고는 모두 예약이 차있었다. 한 곳은 바릴로체에 도착하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 숙소는 어쨌든 해결이 됐다.

 
배낭은 숙소에 두고 커다란 종이 백에 간단한 짐을 꾸렸다. 여행자의 배낭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처럼 항상 절반은 꾸려져 있다. 조금 익숙해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낯선 곳에서 며칠 간 다시 혼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묘해졌다.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하게 될 것이고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수도 없이 해왔던 일인데도 느낌이 새로웠다. 몇 주간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를 하고 살았다고 리셋되었나보다.

 
버스 시간에 늦어 정신없이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다. 남미의 버스표에는 목적지, 좌석, 버스의 승차 홈 등이 쓰여 있다. 표에 기재되어 있는대로 플랫홈 앞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되어도 차는 올 생각을 안 했다. 아무런 안내방송 없이 지체되는 버스를 다리를 떨며 기다렸다. 내 주위 몇몇 사람들도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지, 뭐라뭐라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시간 맞춰 오지 않는 버스가 괘씸하기도 했고, 아무리 며칠 간이라고 해도 다시금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혹은 혼자 지내야 할 생각을 하니 갑갑해지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갈까. 여행의 끝자락을 잡고 축 늘어져 있는 당시의 나는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여행에 있어서 가장 방해되는 권태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은 꿈과 현실의 경계 허물어
 

게다가 걸레 썩은 냄새가 온몸에 찌든 노숙자 아저씨까지 내 옆으로 오더니 담배를 피며 사정없이 침을 뱉어댔다. 묽은 침은 일정한 면적의 바닥 색을 짙게 변화시켰다. 짜증이 솟구쳐서 ‘정말로, 가야겠다, 이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나는데 남미의 스위스고 나발이고 푸른 호수와 순결한 산맥을 즐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을 하고 벤치에서 일어서자마자 담뱃불 붙이면 버스가 오는 것처럼 안내방송이 흘렀다. 10분 내로 도착할 예정이며 죄송하다고. 버스가 도착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직 자리가 다 차지 않아 나는 옆자리까지 차지하고는 몸을 뻗어 누웠다.

 
바릴로체까지는 약 20시간. 시간이 촉박한 여행자들은 보통 비행기로 이동하는 거리다. 버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가지를 벗어나 이내 연두색으로 물든 들판 한가운데를 달렸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연두색 들판도 오렌지색으로, 오렌지색은 점점 짙게 물들어 이내 작은 불빛만 보이는 네이비색이 되었다. 버스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자마자 창가 쪽 좌석에 머리가 가도록 다리를 뻗고 가로로 누웠다. 좌석이 이렇게 비어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이대로 자리 주인이 안 나타나기를 빌며 잠들었다. 칠레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다닌 나라 중에서는 매끈한 도로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지만 버스는 이따금씩 흔들렸다. 척추를 간질이는 흔들림 때문에 눈을 뜨니 바로 내 눈앞에 한가득 밤하늘의 별이 보였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은 남미에 와서 사치스러울 정도로 많이 봤다. 안데스에서, 아마존에서, 우유니에서 차가운 공기와 함께하건, 뜨뜻한 공기와 함께하건 별은 항상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잠결에 보는 별빛 가득한 밤하늘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는 특권은 그리 오래 누릴 순 없었다. 여러 정류장에 정차하면서 빈자리의 주인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산발해있던 짐을 치우고 원래 내 자리인 창가 쪽 자리에 찌그러졌다.
 

 
실연의 그것과 꼭 닮은 여행의 끝자락
 

별빛을 가로지르며 버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저 멀리 세찬 비바람을 휘감은 짙은 쥐색의 먹구름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버스도 먹구름 가득한 하늘로 달려갔다. 다가온다. 폭풍우가 다가온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들썩였다. 거리가 가까워짐과 함께 하늘의 별이 먹구름에 번져보였다. 비구름에 번진 별빛을 감상할 틈도 없이 버스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번개가 계속 내리쳤다. 암흑 속에서 번개는 번쩍번쩍 빛을 뿜었고 그 빛은 스위치의 on/off 를 반복하듯 깜빡였다.

 
버스는 영화의 스크린 속을, 가상현실 속을 누비고 있는 것 같았다. 번개가 깜빡일 때마다 버스 안은 훤해졌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 헉헉대며 이 엄청난 광경을 온몸으로 느끼는 나에 비해 아르헨티노들은 잠을 자거나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마치 나태한 오후처럼. 그들에겐 익숙한 것일까. 약 5분간의 쇼가 끝나고 위대한 먹구름은 다음 타자를 노리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버스는 터널을 뚫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을 되찾은 들판을 달렸다.

 
어느새 또 잠깐 잠이 들었다. 잠깐이라 해도 몇 시간 정도 눈을 붙였나보다. 가늘게 눈을 떠보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떠오르는 해가 이렇게까지 하늘을 붉게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석류를 뿌려놓은 것처럼 붉디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끝나가는 이 여행이 곧 나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갑자기 공허함이 밀려와 코끝을 시큼-간질하게 만들었다. 참 많이도 울었다. 지금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 와서 낯선 풍경을 가로지르는 것이 과연 현실일까. 아니면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일까. 긴긴 꿈이 이제 막 끝나려 하고 있다. 끝이 다가옴을 감지할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과연 여행을 떠나기 전의 자신과 비교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꼭 여행이 내 자신을 바꾸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사람은 떠남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바뀌는 법이다.

 
얼마나 달라지고 얼마큼 성장했을까. 오히려 이 여행이 나에게 있어 반작용이 되진 않았을까. 이 꿈에서 깨어나면 무슨 일부터 해야 하나.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갈 뿐일까. 가끔 꺼내어 보며 웃음 짓는 그런.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며 슬퍼졌다. 많이. 여행의 끝도 그 장소와는 이별이랍시고 실연하는 것과 꼭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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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로 울적한 기분을 푼다는 참 자본주의적인 생각
 

어쨌거나 감상의 늪에 푸욱 빠져버린 버스여행은 바릴로체에 도착함과 동시에 일단은 맥이 끊겼다. 머리가 하얗게 샌 산맥이 병풍처럼 넓디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리자마자 바로 4일 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갈 표를 사두었다. 마을버스 같은 버스를 타고 중심지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 내가 현지에 도착해 전화를 해야 했던 숙소의 간판이 보였다. 그 숙소는 중심가에서 조금 거리가 있었다. 내려서 바로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중심가에서 내렸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돈 많은 관광객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길가에 늘어진 고급 레스토랑들 안에는 관광객들이 테이블 하나씩 꿰차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고파진 나는 빨리 숙소부터 찾아야겠다 싶었다. 바캉스 시즌에 대표적 휴양지인 이곳에서 예약 없이 숙소를 찾는다는 건 꽤 무모한 짓이었을 게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숙소를 못 구해 하루 종일 짐을 들고 돌아다니며 방 구걸을 하고 다녔다는 무용담을 하도 많이 들어서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정 안되면 버스 타고 오다가 본 그곳이라도 가지 뭐, 다행히 짐은 종이백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숙박비 마지노선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폭 올렸다. 바릴로체는 물가가 비싸기로도 유명한 곳이라 괜찮은 방을 찾으려면 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행의 끝자락에서 너무나 우울해했던 나는 돈을 써서라도 이 꾸리꾸리한 기분을 풀고 싶었다. 돈을 쓰고 소비를 함으로써 기분을 푼다니, 참 자본주의적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생각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천천히 중심가 근처를 돌기 시작했다. 두 블럭 정도 위로 올라가보니 호텔이며 호스텔 간판을 단 숙박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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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도 좋고 시설도 나쁘지 않은 숙소, 이유가 있었다
 

자리가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쉽게 방은 구해졌다. 위치도 좋고 시설도 나쁘지 않은 숙소를 찾았다. 하룻밤에 40페소 정도인데 6명이 한 방을 쓰는 도미토리 형식이고 주방도 쓸 수 있었다. 아침식사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바릴로체에서 이 가격이면 상당히 괜찮다고 볼 수 있다. 그 호스텔에 대한 정보는 본 적이 없어서 보물을 찾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곳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몇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로비에 붙어있는 알 수 없는 외국 문자, 주방을 한가득 메우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 그렇다, 그 숙소는 이스라엘 여행자들 천지였던 것이다. 어딜 가나 미움 받는 이스라엘리들의 소굴이라면 많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딱히 이스라엘리에 대한 악감정은 없지만 그들이 같은 숙소에 묵는 한 숙면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짐을 풀어놓고 바릴로체 시내구경에 나섰다. 관광지답게 거리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좋은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만큼 초콜릿도 유명한 바릴로체 시내에는 온갖 현란한 초콜릿 가게들이 즐비했다. 초콜릿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초코광인 나에게 이곳은 천국이었다. 돈을 지불해야 맛볼 수 있는 천국이긴 하지만. 에라이, 모든 게 다 돈이다! 어쨌거나 돈을 지불하고 바릴로체에 온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

 
한 가지가 초콜릿이고 또 한 가지는 ‘검은 빙하’ 를 보는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모레노 빙하를 보기 위해 달려온 남미건만 그걸 못 보게 되었으니 검은 빙하라도 봐야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어떻게 가야할까 고민도 안 하고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라면 어쩐지 사기 같아 질색을 하던 나인데 말년병장쯤 되면 편한 것을 찾게 되는 것처럼 더 이상의 고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120페소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나우엘 우아피 공원을 도는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는 바로 그 다음날 아침 8시에 시작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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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 들여 갔는데 케이블카 운행이 끝나버렸단다
 

예약을 끝내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바릴로체에 오는 사람들이 꼭 간다는 깜빠나리오 언덕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말하자면 전망대인 셈인데 정상에 오르면 바릴로체 시내와 나우엘 우아피 호수가 한눈에 보인다고 하여 관광객이라면 빼놓지 않는 필수 관광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게을러터진 베짱이족이라 느릿느릿 버스 정류장을 찾아 걸어가서 깜빠나리오 언덕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도 나처럼 나른하게 달렸다.

 
일몰을 보고 싶어 일부러 늦게 온 것도 있지만 도착해서 보니 사람이 많아야 할 텐데 보이질 않는다. 너무 휑하다. 케이블카에도 매달려 있는 사람 하나 없다. 올라가면 사람이 있겠지 싶어서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웃거리는데 운행이 끝났다고 한다. 으잉? 개미같이 부지런 한 사람들은 케이블카 운행시간을 알고 미리 왔다갔던 것이다. 울상을 지으며 올려 보내줄 수 없냐고 간곡히 부탁하자 케이블카의 운영은 끝나서 안 되지만 저쪽으로 가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다. 아, 오케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케이블카 아저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번엔 급하게 뛰어갔다.

 
30분이면 다 오를 수 있다는 말에 냉큼 뛰어간 곳이지만 흙길에 매우 경사진 곳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리를 신고 왔는데 졸지에 등산을 하게 생겼다. 한발 디디면 주욱 미끄러지는 45도 얼짱 각도의 산을 풀뿌리 잡아가며 힘들게 올라갔다. 가끔 나무를 베어놓은 그루터기가 있어 흙투성이의 발도 털 겸 쉬어가고 싶었지만 쉬면 힘들어서 포기하게 될까봐 독하게 오르고 또 올랐다. 사실 지금까지 해왔던 트레킹에 비해서는 껌이었다.

 
조리를 신고 있긴 하지만. 올라가는 길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이 한가득 피어있기도 하고 침엽수가 우뚝우뚝 솟아있기도 했다. 식물의 냄새에 집착하는 나는 처음 보는 식물의 잎을 따다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하고 냄새가 좋은 것들은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도 했다. 중간쯤 올라갔을까, 내려오는 관광객 커플이 있어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냐고 물으니 앞으로 20분 정도라고 말해주었다. 게다가 그들은 거의 다 왔으니 힘내라며 짚고 있던 커다란 지팡이를 내주었다. 지팡이를 쓰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들은 20분 정도 걸릴 거라 했지만 그 절반인 10분 정도 만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체 게바라 때문에 남미에 왔다고 하니 자지러진다
 

힘들게 올라온 것에 비해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어디까지 펼쳐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넓은 호수와 그 호수 안의 작은 섬들, 그리고 세모진 지붕을 가진 바릴로체의 건물 위로 콘도르가 휙휙 날아다니고 있었다. 올라는 왔으니 대충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이내 시들시들해져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사실 경치를 계속 감상하기에는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다시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와 마트에서 파스타 한 봉지와 우유, 생크림, 토마토소스, 빵, 과일 조금, 야채 조금을 사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주방은 이스라엘리들의 차지가 되어있었다. 불이란 불은 다 차지하고 있었고 돈가스를 만드는지 열심히 고기를 튀기고 있었는데 연기가 너무 자욱해서 주방의 모든 이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나도 양파를 까며 눈물을 흘렸다. 혼자 양파를 까며 울고 있는 동양 여자애가 신기한지 주방에 있던 여행자들은 어디서 왔느냐고 말을 걸어왔다.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 온 사람은 칠레에서 온 예쁘장한 여자였는데, 다른 곳도 많은데 어째서 남미를 여행하느냐고 물어왔다.

 
그 물음에 나는 니트 안에 입고 있던 체 게바라 티셔츠를 보여주며 ‘체를 좋아해서’라고 대답했더니 이 친구, 아주 자지러진다. 자기 친구들까지 몽땅 데려와서 다시 한 번 왜 남미를 여행하는지 장난 가득한 눈으로 또 물어왔다. 기대에 부응하여 방금 전과 같이 니트를 훌렁 걷어 체 게바라 티셔츠를 보여주니 다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박수를 치며 깔깔댔다. 혼자 장기 여행을 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무리 옆에서 홀로 쓸쓸히 밥을 처묵처묵 하는 것인데 이 개인기 덕분에 그 친구들과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밥을 먹고는 다 함께 소파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색색 가지 실로 팔찌를 땋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원로로 보였다. 그들은 아직 시작 단계여서 가장 기본적인 모양을 따고 있었는데, 옆에서 내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복잡한 무늬를 만들어내자 다들 존경어린 눈빛을 보내며 내 손가락에 주목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우쭐해졌다. 팔찌 따는 스킬이 여행의 나이테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스라엘+칠레 친구들은 팔찌를 따다가 이내 질렸는지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자고 제안해왔다.
  

 
잠깐 멈춰 사진 찍고 다시 타고…, 외로움이 엄습했다
 

다음날 투어를 위해서는 일찍 자야하는데다가 감기에 걸렸는지 열이 조금 있는 상황에서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은 곧 파멸을 뜻했다. 감기 기운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니 그 중 하나가 민트티를 끓여왔고 다 함께 차를 홀짝였다. 그 친구들은 이스라엘에서는 민트티에 설탕을 넣어 마신다며 내 찻잔에도 설탕을 넣어 줬는데 은근 차 맛이 좋았다. 차를 끓여준 친구는 이 차가 너의 감기를 뚝 떨어지게 할 것이고, 만약 네가 원한다면 밤새 네 옆에서 간호를 해줄 수 있다며 느끼느끼 열매를 삼킨 멘트를 날렸다. 마음만은 고맙지만 노 땡큐였다. 나이트클럽에 간다는 무리들은 숙소를 빠져나갔고 나는 프론트에 알람을 부탁하고는 내 방으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부랴부랴 점심 때 먹을 빵과 과일을 챙기고는 투어회사로 뛰어갔다. 이미 몇 팀은 와있었는데 내 또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노부부이거나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이런 돈을 내고 투어에 참가하는 건 가족, 노부부, 그리고 동양인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봉고차에 15명 정도가 타고 가이드는 스페인어로 진행되었다. 전날에 마신 민트티가 별 효과가 없었는지 몸 상태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집중을 요하는 스페인어 리스닝은 집어치우고 창가에 기대어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래도 꽤 달렸을 텐데 깨보니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해있었다. 감기 기운이 심한 탓에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투어는 잠깐 어딘가에 멈춰 사진 찍는 시간을 5분 정도 가지고 다시 봉고차에 타서 가이드가 설명을 하고 또 뷰포인트에 멈춰 사진을 찍는 것의 반복이었다. 시간은 없고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적격이겠지만 역시나 이런 방식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당연히 투어라는 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허공에 붕 떠있는 마음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신청한 투어에서 다시 한 번 투어형 인간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름다운 풍광과 서로 사진 찍어주기 바쁜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혼자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우울에 잠겨버렸다. 외로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집단이 싫어서, 혼자이고 싶어서 도망치듯 찾아 온 바릴로체에서 다시 혼자가 되니 외로움이 사무친다. 정말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은 다르다. 투명한 호수와 산꼭대기의 하얀 만년설은 외로운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정신 상태가 이러니 엄청난 감동이란 게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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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너무 크다보면 실망도 큰 법, 그냥 그랬다
 

나우엘 우아피 국립공원은 수많은 호수와 크고 작은 폭포들,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메랄드가 녹아있는 것 같은 녹색 호수, 쌍무지개가 뜨는 폭포, 들꽃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또르나도르 산. 당시 스위스를 가본 적이 없어서 진짜 스위스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엽서에서 봐온 스위스의 모습과 확실히 닮아있었다. 왠지 하얀 수염이 나고 동그란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산장을 지키고 있을 것 같은, 그런 풍경. 정신없이 설명 당하고 내려서 사진을 찍고는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검은 빙하였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흑마법을 쓰는 마녀가 생각나는 검은 빙하. 가까이 가면 광풍이 몰아칠 것만 같은 울림을 가진 검은 빙하!! 검은 빙하는 화산재가 빙하에 섞여서 보통의 캔디바 같은 색의 빙하가 아니며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자, 이제 다 같이 검은 빙하를 보러 갑시다! 라고 하는 가이드의 말에 두근두근, 그때까진 시큰둥했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려서는 가까이 다가갔다. 

 
 음? 어라?? 응??? 뭐지? 이 커피우유에 떠다니는 커피 젤리 같은 물체는???? 그리고 젤리 뒤편에 있는 카카오 99% 초콜릿 같은 덩어리는????? 흑마법을 쓰는 마녀고, 광풍이고 자시고 그것은 커피우유+커피 젤리였다. 진심으로 커피우유에 커피 젤리가 먹고 싶어졌다. 항상 기대가 너무 크다보면 실망도 그만큼 큰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진리임을 깜빡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검은 빙하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유일무이한 것을 보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눈동자의 줌을 땡겨서 빙하를 유심히 살펴보니 결이 보였다. 미묘한 검은색의 그라데이션. 그 뒤로 저 멀리까지 이어진 카카오덩어리들. 오늘은 꼭 초콜릿을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투어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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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태연한 척, 정말 제대로 사치를 누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 다음날에는 바릴로체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한 엘 볼손이라는 마을에 가는 것이었다. 엘 볼손은 아르헨티나의 히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유롭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평화로운 마을이라 한다. 엘 볼손에서 뚱땅뚱땅 기타반주에 맞춰 또 밤새 노래나 부를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사람이 고팠다. 지금 생각해보면 끝까지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다 즐겼어야 하는데 그때는 엄마에게 반항하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심술이 가득했나보다.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버스 티켓을 바꾸기 위해 버스회사 오피스를 찾았다. 이미 버스티켓을 위해 먼저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나는 문 밖까지 난 줄의 가장 끝에 매달리듯 줄을 섰다. 약 4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겨우 내 티켓을 바꿀 수 있었다. 그 다음날 당장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가는 것으로. 바캉스시즌 끝물이라 배낭족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이용하는 세미까마는 이미 좌석이 동난 상태였다.

 
뭐든 좋았다. 바릴로체에는 돈을 쓰러 왔으니까! 게다가 남미 여행하면서 한 번쯤은 까마를 타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어서 약 두 배의 요금을 지불하고 좀 더 좋은 좌석을 예약했다. 이제 초콜릿을 살 차례다. 실로 수많은 초콜릿가게가 있었지만 내가 자연스레 그 기묘하고 키치함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온통 빨간색으로 도배되고 러시아인형이 그려진 정신없는 가게였다. 이번에도 배가 고파져서 여러 군데 가게를 들어가 구경하는 것도 귀찮아 빨리 사서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수많은 종류의 초콜릿이 진열되어있고 나는 생각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다 골랐다. 고른 것의 목록을 받아 따로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는 상품을 받는 식이었는데 계산대에 선 나는 깜짝 놀라버렸다. 내가 고른 것들은 한국 돈으로 약 3만원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헐. 미친. 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태연 한 척 돈을 지불했다. 투어에, 버스 좌석에 초콜릿까지. 정말 제대로 사치를 누렸다! 지금까지 아끼고 아끼던 돈을 이곳에서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돈을 씀으로 기분을 전환시키고 싶어 했던 ‘자본주의 돋는’ 생각은 그대로 실행되었으나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여든셋에 세계 일주한다는 할아버지, 나는 뭘까
 

숙소에 와서 전날 남긴 파스타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 침대 밑은 머리가 반쯤 까진 백발의 할아버지의 침대였다. 할아버지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 노인이었다. 귀에는 보청기를 꽂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이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나이를 물어보니 글쎄 여든셋이란다. 나이 여든셋에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는 그는 나의 질문과는 정 반대의 엉뚱한 대답을 하고 물어보지 않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보청기를 끼고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여행을 계속하는 그 열정은 계속 우울해하면서 투정만 부리던 나를 반성케 했다. 동문서답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똑바로 바라본 그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으며 신나게 이야기하던 할아버지는 이제 그만 자야겠다고 누운 지 5분도 채 되기 전에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이 아닌 일종의 경외심이 깃든 웃음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은 아주 편안했다. 비싼 좌석은 비싼 값을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온갖 과자와 차, 와인이 제공되었고 저녁식사는 스테이크가 나왔다. 따듯한 이불과 폭신한 배게도 제공되어 버스에서는 좀처럼 푹 잠들지 못하는 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정말 잘 잤다.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숙소로 돌아왔다. 미친 듯이 질러버린 초콜릿을 꺼내 숙소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데 누군가가 말해주어서 깨달았다. 그날이 마침 2월14일이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모두에게 발렌타인 초콜릿을 선물했다. 숙소의 가이드북을 읽어보니 바릴로체에서는 초콜릿을 정신없이 담다가 돈을 엄청나게 써버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쓰여 있었다.
 
 
글 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2010년 여름방학에는 유럽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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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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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