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고 닦으려면 물인지 땀인지 줄줄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6> 죽음보다 더 한 더위
더위 핑계로 빈둥빈둥, 2주일만에 +8kg ‘오 마이 살’
세 아이 혼자 키우는 그, 행복은 가짐 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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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서는 겨우 하루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남미의 선거일은 희한하게도 참으로 고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선거 전날엔 늦게까지 술을 퍼마시거나(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그 다음날엔 놀러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말이다. 선거일이라 가게도 다 문이 닫혀있고 도심에도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가끔가다 들리는 소리라곤 중도우파 정권의 탄생을 기뻐하는 클락션 소리가 전부였다.



이렇게 남미에 있는 6개월 동안 선거를 두 번이나 겪었다. 아쉬웠던 것은 에콰도르에서 딱 한번 본 이후로는 남미의 시위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에 대선이 있는데 남미도 마찬가지로 2012년에는 크고 작은 선거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마얀 캘린더’와 2012년 종말 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2012년에 전 세계적으로 굵직굵직한 선거들이 많이 있고 2008년의 경제위기로 현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이상 지금의 시스템은 언젠가 바뀌게 될 것이고 그때가 바로 2012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하는 것이 아닌, 마얀 캘린더에는 없는 새로운 시대와 그에 맞는 새로운 사회구조가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미있는 헛소리지만 앞으로 2년도 채 안 남았으니 어떻게 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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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기로 악명 높은 칠레 입국심사, 웬일로 ‘설렁설렁’
 
칠레에는 겨우 4박5일 머물렀다. 여권에 도장 종류를 늘려준 칠레를 등지고 아르헨티나 멘도사로 가는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칠레는 가늘고 긴 나라라 남북횡단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만 동서로는 그 시간과 거리가 매우 짧다. 산티아고에서 동쪽으로 평지를 두어 시간 정도 달리다가 이내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는 듯, 크고 작은 차들이 뱅글뱅글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에서 멘도사까지 가려면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때 남미 최고봉인 아콩가구아를 볼 수 있다. 산티아고 시내에서는 너무 더워 땀이 삐질 삐질 났는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누가 안데스 아니랄까봐 햇빛은 따듯한데 강풍이 휘몰아치며 추워졌다. 게다가 망할 출입국심사관은 그 추운 곳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입국심사를 위해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만 했다.

 
그 많은 차들이 서너 줄 정도로 길게 늘어서고는 그 입으로 꾸역꾸역 사람들을 뱉어냈다. 눈 덮인 아콩가구아산을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안데스의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 비싼 곳에서 또 핫도그를 사먹고는(정말이지 칠레에서는 핫도그만 먹었다) 빈둥거리다 보니 어느덧 우리 차례가 되어서 짐 검사를 하는데, 엄격하다고 소문난 칠레 국경의 짐 검사는 황당하리만큼 대충대충 진행되었다. 

 

이쯤에서 국경 짐 검사에 대해 잠시 썰을 풀까 싶다. 우선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국경의 경우, 콜롬비아에서 나갈 때도 경찰들이 개를 데리고 검사를 하고, 에콰도르에서는 중간에 버스를 세우고 짐 검사를 아주 철저히 한다. 아무래도 콜롬비아가 마약으로 유명한 국가여서 인지 가방을 일일이 다 열어보고 노트북도 구석구석 살핀다. 나의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신기했는지 경찰들이 매우 탐을 내기도 했다. 에콰도르와 페루, 볼리비아 사이는 짐 검사를 거의 안 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가장 엄격한 곳은 칠레라고 한다. 칠레 입국 시에는 먹을 것이 있어서는 안 되고 페루나 볼리비아의 고산지대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코카잎도 금지된다. 덕분에 수북하던 코카잎을 볼리비아의 끝에서 만난 여행자에게 다 주었다.
 


남성같은 안데스 넘어 아르헨티나 대학도시에
 
버스는 국경을 지나 안데스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안데스의 기괴한 바위를 보며 또 한 번 남미에 반하고 말았다. 아찔할 정도로 웅장한 자연환경은 보잘 것 없는 개인에게 한층 더 자연으로의 복속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안데스는 굉장히 남성적이다. 굵직굵직하면서도 박력 있는 생김새는, 히말라야에서 느꼈던 동양적인 곡선과 예민한 감수성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떻게 보면 오리엔탈리즘적 감상일 수 있지만 나에게 안데스는 남성으로, 히말라야는 여성으로 느껴졌다.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 바위들이 뜸해지자 이번엔 파란 호수와 넓게 뻗은 초원이 나타났다. 멘도사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와인 생산지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면적에 포도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아까는 안데스로 박력 있게 날 휘어잡더니 이제는 어려서 본 회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남미를 찬양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몽땅 털리고 강도 만나고 가방이 찢겨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런 감동적인 자연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던 포도밭이 끝날 무렵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멘도사에서는 와인 투어를 할 수 있지만 일박만 하고 아르헨티나 제 2의 도시 코르도바에 가기로 했다. 재주 좋은 나의 동행은 또 실력 발휘를 해, 우리는 코르도바에서 일주일 동안 공짜로 묵을 수 있었다. 코르도바에 살고 있는 그의 친구에게 그쪽으로 간다는 한마디만 했는데 바로 자기 집에서 머무르라고 한 것이다. 좋은 사람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나 보다.


코르도바는 학생들의 도시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도 코르도바에 있으며, 60,70년대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도 코르도바의 대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인, 반정부 운동의 중심지이다. 또한 체 게바라가 유년기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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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 없이 집 비워준 친구의 집주인 딸은 보아와 원더걸스 광팬
 

유서 깊은 대학 건물들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코르도바에 도착해서 알려준 주소를 찾아 갔다. 좁은 문의 벨을 울리자 콧수염을 재미있게 기르고 인상이 좋아 보이는 친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니 예사롭지 않은 공간이 펼쳐졌다. 동행친구도, 집을 제공해주는 친구도 길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돈을 받는 저글러이다. 원래 집 주인은 마리엘라라고 하는 여성이었다. 친구는 작은 정원을 지나 창고를 개조한 건물에서 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제멋대로 자라난 풀들, 벽을 한가득 채운 그림들, 곳곳에 걸려있는 잡화들은 딱 보기에도 예술가의 집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줬다.



친구는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방을 비워줬고, 피곤한 몸을 뉘여 잠시 자고 일어나자 집 주인인 마리엘라가 돌아와 있었다. 깡마른 몸에 작은 얼굴, 잘생긴 이목구비를 가진 마리엘라는 두 딸과 한 아들의 어머니였다. 코르도바 특유의 발음으로 말하고 호탕하게 웃는 마리엘라와 양 볼에 키스하는 남미식 인사를 나누고는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리엘라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 친절하고 즐겁게 대해주었다.


그녀는 항상 늦은 오전에 일어나 마떼(아르헨티나에서 물처럼 마시는 차. 체 게바라의 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에 약간의 설탕을 넣어 마시며 코코넛 열매로 만든 재떨이를 옆에 두고 뿌끔뿌끔 담배를 피워댔다. 약간 당황했던 것은 고등학생인 큰딸도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와 담배를 피워대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큰딸은 보아와 원더걸스의 광팬이라 나는 매일매일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집만큼 그 주인도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는 그 집에 머무는 동안 마리엘라의 직업이 무엇인지, 남편은 어디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일까. 게다가 그녀는 작은 화분에 개인용 대마초까지 애지중지 키우고 있었다. 한번은 그녀의 어린 아들이 그 화분을 엎어뜨리자 큰 소리로 “이 망할 놈이 내 소중한 마리화나를!!!”이라고 외쳐서 우리를 폭소케 했다. 민간인의 집에서 묵는 건 처음이었는데 같은 집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신세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 자신의 집에 타인이 와있으면 손님이라고 생각해 이것저것 신경을 쓰는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그러면서도 매일 밤늦게까지 식탁에서 함께 수다를 떠는, 마리엘라 가족과 우리는 그야말로 따로 또 같이 살았다.
 

이런 것들을 먹지 않는 건 ‘죄악’, 먹고 자고 또 먹고…
 

코르도바에서의 목적은 학생들로 활기찬 대학 도시를 느끼는 것이었지만, 때마침 방학이라 거리는 휑하고 학생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날씨는 어찌나 그렇게 더운지, 더위에 약한 나로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 더운 나머지 해가 질 때쯤이야 겨우 행동을 개시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코르도바는 보통 해가 8-9시쯤 지기 시작했는데 나는 잠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는지 4,5시까지 죽은 듯이 자곤 했다. 아주 늦게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좁은 문을 빠져나와 동네 슈퍼에서 초코우유를 사먹고는 해가 지면 코르도바에서 한 시간 거리인 휴양지 카를로스 파스에 가서 길거리 공연을 즐기고 오는 식이었다.


카를로스 파스는 인공호수로 유명한 코르도바 근교의 휴양지이다. 마침 여름 휴가철이라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그만큼 거리 공연이 많이 펼쳐졌다. 새벽 2시가 넘어서도 불빛이 환하고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은 콜롬비아의 메데진 이후로는 처음이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르헨티나에 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밖에 코르도바 근교에는 작은 바다라는 뜻의 마르 치키타, 체가 유년시절을 보낸 알타 그라시아 등등 갈 곳이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샤워 후 물기를 제거하는데 이게 물인지 땀인지 모를 정도로 땀이 줄줄 나는 더위 덕분에 나의 게으름은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저기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게으름을 이길 수 없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의 음식들은 왜 그렇게 맛있는 건지. 엠빠다나서부터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품질의 소고기, 치즈 요구르트 우유 등의 유제품, 입에서 살살 녹는 엘라도(아이스크림), 닭고기 살 마냥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 그리고 그 빵에 발라먹는 둘세 데  레체(캬라멜)…. 돈이 없어 핫도그만 먹고 살던 나에게 아르헨티나는 천국이었다. 물가에 비해 너무나 우수한 품질의 먹을거리들을 소비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 생각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먹고 실컷 수면을 취해주었더니 아르헨티나에 온 지 2주 만에 8키로가 불어버리고 말았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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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가 지나간 길에 내 발자국 겹쳐질 때의 뿌듯함

 
땡땡 해진 팔뚝과 허벅지를 이끌고 체의 생가가 있는 알타그라시아에 갔다. 코르도바 버스터미널에서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알타그라시아는 부유층이 사는 조용하고 예쁜 동네였다. 체의 생가는 버스 터미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내부에는 체의 자필 엽서와 일기, 여권 사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나오는 모터사이클과 오토바이, 여행 루트 등 유년기와 청년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이 전시되어있다.


남미 여행의 동기가 되었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그” 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을 치며 그가 갔던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가끔 몇 십 년 전 그가 갔고, 그 몇 십 년 후 내가 갔던 곳의 지명을 지도상에서 발견하면 괜스레 같은 곳을 공유했다는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마지막 방에는 라틴아메리카 좌파 양대 산맥인 카스트로와 차베스가 이곳을 방문한 사진이 벽 한 면을 채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차베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크기로 보는 차베스의 얼굴은…,더 이상 말하진 않겠다.


두 시간 정도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는 다시 코르도바로 돌아왔는데 지금 와서는 굉장히 후회가 된다. 기왕 그곳까지 간 거, 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도 좋았을 텐데 뭐가 바쁘다고 그렇게 부랴부랴 그 마을을 떠났는지 모르겠다.


코르도바에서의 나날들은 하도 잠을 많이 자서인지 항상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마리엘라의 집 조명은 약간 어두울 정도의 오렌지색 백열등이었고, 우리가 느지막하게 나가서는 느지막하게 돌아오면 새벽 2시인데도 그녀는 아이들과 그다지 밝지 않은 그 등 밑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그녀는 매일 뭔가 한 개씩 만들어 냈는데, 팔찌나 목걸이 등의 장신구부터 딸들의 옷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드르륵 드르륵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동행인 이탈리아 친구와는 달리 스페인어가 능숙하지 못한 나는 그들과 눈빛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기에 우리 사이에는 약간의 수줍음 비슷한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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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팩 한 장에도 ‘꺄르르’…그가 선물한 목걸이는 내 머리 ‘거부’

 
어떻게든 가까워지고 싶어서 한국에서 사간 마스크시트팩을 한 장 주었더니 아르헨티나에는 마스크시트가 별로 없는지 굉장히 신기해했다. 오랜만에 피부 생각 좀 할 겸 나도 한 장 꺼내서 이렇게 하는 거라고 얼굴에 붙이고는 설명해주니 나 외에 모든 사람이 폭소를 한다. 그게 그렇게 웃긴가? 마리엘라도 나를 따라 팩을 붙였다. 하도 얼굴이 작아서 팩이 마구 남았다. 나는 모자랐는데!! 하얀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이고는 신이 난 마리엘라는 어디선가 가발이고 깃털이고 별별 것들을 다 꺼내와 엽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백열등 아래 공간은 늘 이런 식이었다. 약간은 몽환적이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일주일 가량 그곳에 머물면서 나는 마리엘라가 화내는 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 그녀의 철부지 아들이 대마초 화분을 엎었을 때 빼고는. 도무지 무슨 일을 하고 애 아빠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는 그 집의, 까만 머리와 눈썹을 가진 주인은 늘 눈꼬리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그다지 넉넉한 삶은 아닌데도 마음의 여유가 확실히 드러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삶이 행복 하느냐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런 질문을 던질만한 성격도 아니지만 굳이 물음을 던지지 않아도 저절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좋은 차를 타고 넓은 집에 살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만인 공통의 행복임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라면 과연 그 표정을 머금을 수 있었을까? 아니, 한국인인 내가 그녀라면 혼자서 세 아이를 키우고 곳곳의 유리창이 깨진 집에서 사는 이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금전적 행복이 아닌 진짜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는 뻔하디 뻔한, 다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그녀를 보며 생각한 것은, 과연 한국사회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것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다수가 좇는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마리엘라는 우리가 코르도바를 떠나는 날, 나무를 깎아 직접 만든 달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내 머리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사이즈대로 만들었나 보다. 줄이 짧은 탓에 목걸이는 머리통에 걸려 목까지 내려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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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2010년 여름방학에는 유럽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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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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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