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그날 그 혁명가도 “이 망할 놈의 비!”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2> 체 게바라와 고양이
허망한 죽음 초라한 흔적, 우울의 긴 그림자
이 외딴 곳에 한복가게? 보리차로 향수 달래

 
 필자 황라연씨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남미 배낭여행’ 후속 연재는 9월 초께 다시 이어질 예정입니다.
 황씨는 7월 중순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 여행 중에 여행기를 컴퓨터로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중 노트북을 떨어뜨려 망가져 쓸 수 없게 되었답니다.

 8월 말 귀국하는대로 다시 독자 여러분을 찾아 뵙게될 거라고 알려왔습니다. 아쉽지만 그때를 기약하고 기대해 주십시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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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행의 동기 중 하나였던 체 게바라의 길(Ruta del che)에 가게 됐다. 체가 여행한 남미 전역, 체의 흔적이 있는 곳을 이렇게 부른다. 하지만 나는 볼리비아에서는 체가 죽은 곳과 주검이 발굴된 곳에, 아르헨티나에서는 생가만 다녀왔다. 체 게바라가 마지막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죽은 곳은 볼리비아 서부의 ‘라이게라’라는 작은 마을이다. 인터넷 여행카페를 통해 알게 된 한국인 언니와 체 게바라 루트를 함께 돌기로 했다. 같은 버스를 예약하고 버스 안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일단은 서부의 부유한 도시 산타크루즈가 거점 도시이다. 저지대인데다가 아마존이 가까워 굉장히 덥다는 말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더위에 정말 약하기 때문이다. 라파스가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덥지 않아서였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은 터키의 이스탄불인데, 여기도 무진장 더워서 정신이 혼미하다. 그나저나 터키에서 쓰는 볼리비아 이야기라니. 곧 더 더운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탄다. 
 
 
그저 그랬던 첫인상, 이야기해보니 죽이 ‘딱딱’
 
보통 체 게바라 루트라고 하면, 산타크루즈-바예그란데-라이게라가 정석이다. 하지만 현지인과 여행자들을 통해 산타크루즈와 바예그란데 사이에 있는 사마이파타라는 마을이 그렇게도 좋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어차피 가는 길, 한번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산타크루즈에 도착해 다음날 바로 사마이파타로 뜨기로 했다. 무엇보다 산타크루즈는 덥고 물가가 비싸다 하기에. 코차밤바에서 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산타크루즈는 으악! 정말 더웠다!! 민소매에 숏팬츠를 입었는데도 땀으로 샤워를 하게 되는 날씨에 어차피 하루만 있을 거였지만 더욱 더 서둘러서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게다가 다른 도시에서는 1볼리비아노면 마실 수 있는 오렌지 주스가 3볼리비아노라니. 아무리 에보 모랄레스가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서 산타크루즈 물가가 비싼 것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해. 아무튼 그래도 우리는 나름 싼 숙소를 잡았다.
 
산타크루즈에서는 딱히 한 일이 없었다, 알렉산더 카페에서 치즈케익과 커피를 홀짝대며 ‘된장녀 놀이’ 좀 하다가 밤에는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한 가지 고백하건데, 동행하기로 한 언니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남을  판단한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그냥 그랬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 정보가 주어진 다음에 타인을 판단하는 것도 딱히 좋다고는 생각하는 건 아니다. 사람은 항상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는 모습만 가지고 그 사람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 할 능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 스타일도 달라 보였고, 이야기도 잘 맞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밤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치 얘기를 하다 보니 이게 마음이 통하는 거라! 원래 정치나 종교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거랬는데, 다행이 성향이 비슷했다. 한참 동안 뜨거운 토크를 하고 알딸딸하니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조금 웃기지만, 이날부터 언니가 좀 좋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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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생긴 동행자, 아기 고양이를 샀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한 가지 설명해야 할 것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전 도시인 코차밤바는 전에 언급한 대로 어마어마한 시장이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시장에는 별 것이 다 있다. 어떤 구역에 갔더니 닭, 토끼, 고양이, 원숭이 등의 동물을 팔고 있었다.
 
혹시 감이 오시나?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작은 우리 안에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제발 나 좀 꺼내달라고 야옹야옹 울고 있는 것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라기 보단 고양이가 무척 예뻐서 한 마리 사고 말았다. 우리 돈 천원에. 낸시랭도 아니고, 배낭여행자가 아기고양이라니. 어쨌든, 이놈이 내 옷에 오줌을 싸지르는 통에 버스 안에서는 잠도 못 잤다. 그래도 고양이는 무지하게 귀여웠고,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마이파타의 숙소에 고양이들이 많다고 해서 그 곳에 풀어줄 생각이었다. 
 
산타크루즈에서 합승택시를 타고 사마이파타로 갔다. 사마이파타도 루타델 체의 한 부분이다. 산속의 작은 마을로, 우리가 묵은 숙소는 캠핑도 같이 하는 숙소였다. 엘 하르딘(정원이라는 뜻) 이라는 이름대로 숙소는 자연으로 뒤덮여 있었고, 곳곳에 오렌지 나무와 온갖 허브들이 널려 있었다. 게다가 숙소 바로 옆에는 젖소가 있어서 아침에 ‘젖소 알람’ 덕분에 깨게 된다. 허브는 마음대로 따다가 허브티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사마이파타에서 1박2일 머무는 동안 시간만 허락한다면 일주일도 더 있고 싶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이 끝없이 펼쳐졌다. 왜 다들 사마이파타를 추천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근처에 대단한 유적이 있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고,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는 공원 비슷한 곳이 있는데, 거기서는 폭포 밑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 입장료 10볼리비아노가 들긴 하지만.

 
할머니가 담근 김치로 볶음밥 만들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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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이파타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를 만났다는 것이다. 숙소 가는 길에 웬 헌옷가게에 한복이 걸려있었다. 엥? 이 외딴 곳에, 그것도 한국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한복이라니? 너무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안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셨다. 헉, 이런 곳에 한국인이라니! 서로 놀랐다.
 
할아버지는 반가이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하며 차가운 보리차를 내어 주셨다. 이게 얼마 만에 마시는 보리차인지,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가장 좋아하는 음료가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보리차인데 꿈에 그리던 보리차가 떡 하니 볼리비아 산골에 있으니 감동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지 않나! 게다가 할머니께서는 한국 밥에 직접 담근 물김치까지 내오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코차밤바에 30년 가까이 사시다가 할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지자 공기 좋고 살기 좋은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게다가 라파스의 한국 식당에 고추장을 납품하는 사람이 바로 이 노부부였다. 할머니는 된장 고추장 등 갖가지 장을 30년 전부터 계속 담그고 계신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을 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고 하시며 조금만 더 일찍 알았어도 당신 집에서 머물게 하는건데 하셨다. 그날 5시에는 우리가 바예그란데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기 때문에 너무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 하셨다.
 
우리는 숙소에서 짐을 챙겨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잠깐 그 집에 다시 들렀다.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옆 마을에 가면 버스가 많으니 밥 먹고 가라는 말에 순순히 응했다. 식사는 내가 준비했다. 메뉴는 오랜만에 먹는 김치볶음밥. 할머니께서 담근 김치로 볶음밥을 만들어 다 같이 식사를 하고 커피믹스를 마시고는 헤어졌다. 어디든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들이 반갑기 마련인데, 그 중에도 사마이파타에서 만난 이분들만큼 반가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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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탄 택시, 조수석에 또 한 남자!
 
 
택시를 타고 옆 마을로 이동해 바예그란데로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느냐 물어보니 밤 11시란다. 응? 계획대로라면 금방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건데. 뭐 어쩌겠나,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은행 앞에 짐을 풀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 마다 바예그란데로 가냐 물었지만 하나같이 아니라고 했다. 도대체 버스는 언제 오는 것인가. 11시가 넘어도 버스는 올 생각을 안했다. 조급한 마음에 자꾸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한결같이 언젠가는 온다고 했다. 역시 볼리비아!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렸나, 드디어 버스가 왔다. 하지만 좌석은 꽉 꽉 차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운전석 옆 자리도 가득 차 있었다. 이걸 어찌하나, 서서 가야겠다 싶었는데 운전사가 맥주박스 두 개를 가져오더니 복도에 깔고 그 위에 앉으란다. 이런 친절을 베풀어주다니. 우리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박스 위에 앉아 버스 안 모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언니랑 나는 사이좋게 이어폰을 한쪽씩 꽂고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흔들리는 버스와 함께 흔들리며 바예그란데까지 4시간을 타고 갔다.
 
바예그란데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데 가는 수단은 택시밖에 없다. 버스 안에서 잘까도 생각해봤지만 지치고 지친 마음에 빨리 숙소에 가서 침대에 몸을 뉘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위험 할 수도 있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고 터미널 밖에 널리고 깔린 택시 중 하나를 골라 탔다. 우리가 갈 숙소가 얼마나 먼지 모르기 때문에 부르는 대로 탔는데, 택시엔 운전사뿐 아니라 조수석에 또 다른 남자가 탔다. 왠지 모를 위험을 느껴 우리는 잔뜩 긴장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무사히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거리에 비해 가격은 무진장 비쌌지만 아무 일 없이 데려다 준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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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면서 만들어도 더 맛있겠다, 그래도 ‘허겁지겁’

 
그 새벽에 숙소 문을 쾅쾅 두드려서 주인을 깨웠다. 주인은 젊은 남자였는데, 우리를 이층 방으로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방은 침대가 세 개나 있는 넓은 방이었고, 무려 화장실에는 휴지와 핸드소프까지 있었다! (볼리비아의 저렴한 숙소에는 휴지도 없고 비누도 없다.) 가격대비 최상의 숙소였다. 다음날 한시까지 늘어져라 잔 다음,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았는데 도무지 연 곳이 없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는 휑하니 텅텅 비어있었고, 겨우 찾은 식당이라고는 중국 식당밖에 없었다.
 
이거라도 어디냐 싶어서 냉큼 들어가 앉아 메뉴판을 보니 돈 없는 배낭여행자에게는 조금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볶음밥과 고추잡채 같은 것을 시켜서 먹는데, 와, 정말 내가 졸면서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훨씬 잘 만들 거라 장담할 수 있는 맛이었다. 볶음밥은 쌀에 소금밖에 안 들어가 있고 고추잡채라고 내놓은 요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이었다. 그런데도 그릇을 싹싹 비웠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쉽게 상상이 가리라 생각한다. 
 
일요일이라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그날은 그냥 그렇게 작은 마을을 쏘다니며 보냈고, 본격적인 탐방은 그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바예그란데에서의 일정은 2박3일이라 체의 흔적을 찾아다닌 것은 실제는 하루뿐이었다. 아침에 시장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가서 체의 주검이 전시되었던 곳을 보았다. 볼리비아 정부와 미국은 라이게라 마을에서 체를 총살한 뒤, 이 병원까지 그와 그의 동료들의 주검을 옮겨 씻기고 일주일 동안 주검을 전시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주검을 씻긴 간호사는 눈을 뜬 채 죽어있는 그가 체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싸늘한 콘크리트 세탁대에는 누군가의 헌화가 있었고 벽에는 온통 낙서들로 가득했다. 좀처럼 바람이 불지 않는 바예그란데였지만, 체의 주검이 전시되어있던 곳에 가니 음산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한가득 낙서가 되어있는 요란한 벽과는 반대로 내 기분은 우울해졌다. 만약 이곳에 혼자 왔었더라면 우울의 끝을 맛보았을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동행 언니도 기분이 꿀꿀해졌나 보다. 우리는 말없이 병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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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에 한국어가 보이지 않아 한마디 남겨

 
시장에서 전날 먹은 중국음식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맛있고 싼 식사를 한 뒤, 시립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에는 그가 입고 있었던 옷과 신발 등과 함께 당시의 사진이 전시되어있었다. 이 박물관에서 신청할 수 있는 일종의 투어가 있는데, 40볼리비아노를 내면 박물관과 병원, 그의 주검이 발굴된 곳까지 갈 수 있다. 그의 주검이 발견된 곳에 가려면 꼭 이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우린 그런 투어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박물관을 훑어보고 나오자 박물관 사람이 나와서 본인이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검 발견장소에 가려면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투어를 신청하고 좀 전에 갔던 병원을 다시 한 번 본 뒤에 택시를 타고 그의 주검이 발굴된 곳에 갔다. 열쇠를 따고 들어간 그곳에는 체의 얼굴이 그려진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가운데 움푹 파인 곳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가장 왼쪽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아르헨티노-쿠바노” 라고 씌여진 비석이 그의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쿠바의 혁명을 위해 헌신한 그이기에 누군가가 그렇게 썼으리라. 그의 주검은 동료들의 주검과 함께 바예그란데의 외딴 곳에 묻혔고, 발굴된 주검들은 쿠바로 옮겨졌다.

건물에는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방명록이 있었다. 방명록을 훑어보니 한국어가 보이지 않아 한마디 남겨주고 왔다. 나름 여행의 동기가 된 체의 마지막 장소를 둘러보려고 왔는데 기분이 굉장히 우울해졌다. 20대 초반, 그의 평전이나 일기를 읽고 그 사상에 어느 정도 동조했고, 휴머니스트적인 면모에 끌렸다. 어찌 보면 동경의 대상이자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 마음속의 그런 인물이 죽어 전시되고 그 주검이 버려진 한적한 마을에 와서 실제로 보고 있자니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사람이지만 그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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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 주인과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취중진담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다음날이면 또 각자 갈 길을 가야할 나와 언니는 시장에서 과일을 사서 맥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숙소 1층에는 레스토랑 겸 바가 있었다. 싼 숙소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브라보! 그곳에서 파파야에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우리의 행선지는 라이게라 마을이었는데, 나는 그 마을에서 적어도 1박은 할 생각이었고 언니는 마을을 둘러보고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포토시로 가야 했다. 
 
'취중진담’이라고, 술이 들어가면서 평소에 못했던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그동안 어떤 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안 좋은 첫인상은 결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해준 사람이 언니였다. 언제나 사람을 만날 때, 얼마 안 되는 정보로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언니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항상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나를 보며 자기가 잊고 있었던 열정이 되살아났고 자극받았다고. 글쎄,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동서양 불문하고 항상 긍정적이고 잘 웃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도움을 받으며 여행했는데, 힘들게 머나먼 남의 나라까지 와서 화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고, 문제가 생기면 항상 해결 방안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스트레스를 남에게 드러내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남에게 형성된다. 웃고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기고, 찡그리고 다니면 뭐든 불만만 가득해질 뿐이다. 그렇다고 평소에 입 헤~ 벌리며 바보처럼 다닌 건 아니고.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다 하고 언니는 먼저 들어가 잔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트럭을 타고 라이게라에 가야했기 때문에 일찍 자야했지만 나는 남아서 호스텔 주인과 담소를 나누었다. 28살이라는 그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 유부남이었다. 호스텔에는 온갖 체의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있었을 만큼 그는 체의 팬이었다. 그에게 아르헨티나의 체의 정보를 받고, 새벽 2시까지 서로 짧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열심히 현 정치상황에 대해 토론했지만 아쉽게도 메모를 남겨놓지 않아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작 그가 죽은 곳에 와보니 되레 담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까미용(트럭. 남미에서는 이 까미용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을 기다렸지만 6시에 온다는 까미용은 7시가 되어도 올 생각을 안했다. 까미용으로 가면 40볼리비아노이고, 택시로 가면 왕복 200볼리비아노이기 때문에 쉽게 택시를 탈 수는 없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까미용을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올 생각을 안 하는 까미용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현지인들이 오늘은 일요일이라 안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언니와 상의 끝에 할 수 없이 편도 80볼리비아노에 깎아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눈물을 머금고. 라이게라로 가는 길에는 중간 중간 “Ruta del che“ 라는 간판이 서있었고, 약 2시간 정도를 달리자 체의 동상이 나타났다.
 
택시에서 내려 숙소를 찾는데 코딱지만 한 마을에 숙소는 단 두 개. 그나마 한 숙소는 아예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콘크리트 가루 날리는 다른 한 숙소에 짐을 풀고, 체가 총살당한 마을 학교(지금은 박물관이 되어있다)를 둘러보았다. 보통 라이게라 마을에는 당일로 와서 이 학교만 둘러보고 가는지라 여행객이 거의 없었다. 아니, 여행객이 있기엔 너무나도 작은 마을이었다. 집이 10채가 될까 말까 해보이는 마을에, 은행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고 작은 구멍가게 하나만 달랑 있을 뿐이었다. 박물관에는 체가 총살 당한 의자와 그가 입고 있었던 옷(바예그란데에 있는 옷은 짜가였다!)이 있었고, 박물관 문을 열어 준 현지 여인은 관광객에게 티셔츠를 팔았다. 50볼리비아노나 하는 티셔츠를 누가 사나 싶었는데 같이 있던 일본인 관광객은 두 장이나 샀다.
 
바예그란데에서 느낄 수 있는 우울은 다 느꼈는지, 정작 그가 죽은 곳에 왔는데도 전날 같은 울적함은 느끼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라 당황했다. 박물관을 둘러본 언니는 서둘러 나와 작별인사를 한 뒤 떠났고, 나는 고양이와 둘이 남았다. 은행이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가지고 있는 현금은 약 70볼리비아노뿐. 하루 숙박비는 20볼리비아노였다. 먹을 것이라곤 바나나 같지도 않은 맛의 몽키바나나 3개, 귤 3개, 구멍가게에서 산 비스킷 하나가 전부였다. 
 
 
인사를 한다는게 썩소를 날려버렸다
 
아무래도 원래 계획이었던 1주일은 못 채우고 다음날 떠나는 게 현명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일단은 고양이와 함께 낮잠부터 잤는데,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났더니, 옆방에 웬 외국인이 와있었다. 자고 일어난 터라 나름 웃으며 인사한다고 했는데 썩소를 날려버렸다.
 
다시 좀 더 자다가 일어나보니 또 한 명의 털북숭이 외국인이 와 있었다. 한 명은 영국인 스티브.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한 살이 어린 87년생이었다. 또 한 명은 베네수엘라 친구 산티아고. 그 둘은 이 마을 사람들과 축구를 할 거라며 벼르고 있었다. 관광객이 세 명이나 이 마을에서 묵을 거라는 걸 안 구멍가게의 할머니는 신나서 자신이 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며 오래된 신문 기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체의 포스터를 보여주며 50볼리비아노라고 했다. 여긴 모든 체 관련 상품이 50볼리비아노인가. 마을에 식당은 그곳뿐이었는데, 그 가게에도 고기가 다 떨어져 쌀과 계란밖에 없다고 했다. 그때 뭐든 먹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만, 먹을 수 있을 때 먹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현지인과의 축구시합이 시작되고, 나도 함께 공을 신나게 차고 있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폭우가 쏟아졌다. 할 수 없이 다들 집으로 방으로 피했다. 불이 안 들어와 우리는 촛불을 켜놓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슬슬 배가 고파져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렌턴을 들고 방 밖으로 나와 봤지만, 불빛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과 비 때문에 강이 된 길만 우리를 반겨줄 뿐이었다. 하나 있는 그 가게마저도 문을 닫아 아무리 노크를 해도 대답 없는 메아리만 가득했다.
 
 
치사하게 혼자 먹겠다고 배신 때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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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하나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 반가워서 흙탕길을 철퍽철퍽 뛰어갔는데, 그 집에서는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라이게라의 인심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베네수엘라 친구가 여기 외국인이 관광을 왔는데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라며 구걸을 했지만 그들은 수줍게 웃으며 먹을 것을 줄 수 없다고만 했다.
 
급기야 베네수엘라 친구는 우리를 배신하며 이 그린고(서양인을 비하하는 말) 와 치나(중국 여자라는 뜻인데, 남미에서는 동양 사람들을 그냥 싸잡아 중국 사람이라 한다)는 다른 대륙 사람이지만 자기는 베네수엘라인이고 볼리비아 대통령과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서로 친구라며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다른 마을에 가서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다른 마을에 가려면 산을 타야하는데.
 
할 수 없이 다시 비가 오는 어둠 속을 뚫고 숙소로 돌아와 촛불을 켜놓고 각자 먹을 것을 다 꺼내보았다. 나는 바나나 세 개, 귤 세 개, 비스킷. 영국친구는 오레오 2봉지, 베네수엘라친구는 빼빼로에 초콜릿 안 묻은 과자 1/3봉지가 있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한정된 식량을 쭈뼛쭈뼛 감사히 먹었다. 마치 게 눈 감추듯. 식량을 탈탈 털어 과자의 가루까지 싹 훑고 그래도 배가 고파 물만 죽어라고 마셨다.
 
밖에는 아직도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전기는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은 12월 20일이었는데, 우리는 체가 볼리비아에 있던 12월 20일의 일기를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20일의 일기는 없었지만 19일의 일기가 있어 읽어보니, 대충 “오늘도 비가 온다. 지긋지긋하다. 식량은 거의 다 떨어졌다”라는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당시 우리의 상황과 딱 들어맞아 우리는 셋이 함께 “망할놈의 비!!!” 라고 외쳤다. 19일 외에도 그 전후의 일기엔 계속 비가 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체가 마지막 게릴라 활동을 한 곳에 와서 제대로 체험하고 가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그나마 우리에겐 비를 피할 숙소와 침대가 있었지만. 
 
 
버스가 없단다, 좋은 핑계거리 찾았다, 라파스로 다시 간다 
 
다음날 아침에는 체가 체포된 계곡에 가려 했지만, 밤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갈 수 없게 되었다. 도로까지 유실되어 우리는 도로에 널린 돌멩이를 치우며 길을 만들어 갔다. 힘겹게 온 곳인데 힘겨운 경험만 하다 가게 되었다. 바예그란데에 도착해 각자 갈 길을 가기 위해 표를 사려는데, 나만 다음 행선지인 수크레로 가는 표가 없었다. 선택은 두 가지, 코차밤바나 라파스로 다시 돌아가거나, 바예그란데에서 며칠을 더 있다가 수크레행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엔 가지고 있는 현금이 딱 버스비밖에 없어 결국 코차밤바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 친구들 중, 베네수엘라 친구인 산티아고가 라파스까지 간다고 해서 같이 표를 사고 스티브를 먼저 보내고는 호스텔에 잠시 들렀다. 호스텔에 들른 이유는 정들었던 고양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보다, 좋은 주인에게 맡겨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귀찮았던 것이 절대 아니다!) 주인은 흔쾌히 고양이를 맡아주었고, 나는 또다시 코차밤바, 그리고 산티아고의 꼬드김에 넘어가 꿈에 그리던 라파스에 다시 가게 되었다.
 
항상 그리운 그곳. 어쩌면 계속해서 라파스로 돌아가길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예그란데에서 수크레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걸 알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라파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라파스를 떠난 뒤 계속 해왔던 것 같다. 마음은 그곳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는데, 갔던 곳에 다시 돌아갈 이상한 용기 같은 것이 없어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가게 되었다. 다시 설렘을 안고 도착한 라파스의 공기는 역시나 차가웠다.

글·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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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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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