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킹 트럭 ‘응큼남’ 수작에 아뿔싸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1> 사하마의 트럭운전수
 PC방에서 끈질긴 초딩 ‘승부남’에 걸려 배틀
 자고 나니 체크아웃이 밤 12시? 꼬인다 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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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하고도 며칠 동안 라파스에서 푹 퍼진 뒤 슬슬 다음 도시로 이동할 채비를 했다. 잠깐 동행이 되었던 오스트리아 친구는 먼저 떠나고 이제부터 다음 동행을 만날 때까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페루 쿠스코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발급받는 동안 본 홍보영상에서 인상 깊던 사하마라는 곳이 다음 목적지였다. 하지만 숙소의 여행자들에게 사하마를 물어도 아는 이가 하나 없었다. 가이드북도 없는 상태로 현지 정보에만 의존해있던 나로선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한국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볼리비아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쳐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본격적으로 합석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내가 사하마에 갈 거라고 하니 여행자들은 잘 모르는 곳인데 어떻게 알았냐며 무척 반가워하면서 내게 정보를 줬다. 사하마에 가려면 먼저 파타카마야라는 마을을 들러야한다고 했다. 그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나중에 모르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주고 먼저 떠났다. 물론 전화는 안 했지만. 
 
 이 놈의 나의 인기란! 동물원 원숭이가 따로 없다
 
 그의 고급정보를 가지고 일단 파타카마야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라파스에서 약 4시간 정도, “파타카마야 파타카마야~” 라는 차장의 말에 짐을 가지고 내렸다. 파타카마야는 상상 이상으로 작고 썰렁한 마을이었다. 큰 길이 하나 있고, 그 길을 따라 500미터 정도 양  옆에 집과 상점이 있는, 그게 끝인 마을이었다. 내가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정도. 바로 사하마 근처 마을로 가는 버스를 찾았지만 버스는 아침에만 있고 지금 시간에 가려면 트럭을 히치하이킹해서 가는 수밖에 없는데, 트럭도 자주 안 온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짐을 짊어지고 마을 중심부를 벗어나 (라고 해봤자 300미터 정도 떨어진) 변두리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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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숙소는 우리 돈 천 원 정도 하는 싸구려였는데, 방에는 침대가 달랑 하나 있고 숙소 밖에 있는 화장실에는 문이 없었다. 뭐, 어쨌든 싸니까.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나섰는데 동양인은커녕 여행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마을이라 내가 신기했던지, 동네 꼬마들이 공을 차다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china, china (중국여자)” 라고 말하며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어댔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간판에 샌드위치라고 적힌 식당에 들어가서 당당히 샌드위치를 주문했으나 메뉴는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스프와 메인 접시(남미에서는 대부분 가련히 흩날리는 맛없는 쌀에 고기 조금, 샐러드가 담긴 것이 메인 접시이다)가 나오는 식사를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식당 밖에서 내가 우걱우걱 먹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 참,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남미에서의 일상은 동물원 원숭이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걸 인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특히 이 마을에서 나의 인기는 엄청났다. 식사를 마치고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무료함을 달래러 들어간 피시방은 인터넷이 안된다고 했다. 에잉, 돈 주고 카드게임을 할 수도 없고. 일단은 숙소로 돌아가 병맥주를 사서 방안에 향을 피우고 침대에 누워 맥주를 마셨다. 그동안 계속 누군가와 함께하다 갑자기 혼자가 되니 어찌나 외롭던지. 어질어질 취기가 돌아 멜랑꼴리해진 마음에 머릿속으로 시 몇 편 쓰다가 잠들었다. 여행하는 동안 혼자 쓸쓸할 때는 시를 지으며 숙소 벽에 남기고 다녔는데, 혹시나 남미를 여행할 기회가 온다면 남미 숙소 어딘가에 적혀있을 나의 시를 찾아보길 바란다.
 
대충 깎아도 바위를 예술로 만드는 자연의 재주
 
q4.jpg “사하마로 가는 버스가 왔어~!”라는 숙소 할머니의 말에 다음날 아침 번뜩 잠이 깨, 허둥지둥 짐을 챙겨 씻지도 않고 자던 모습 그대로 나왔다. 버스 좌석이 이미 꽉 찬 덕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탁 트인 넓은 시야 속으로 들어온 풍경, 이 땅에 살던 원주민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멋진 고대문명을 이루고 살 수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우뚝우뚝 솟은 안데스의 투박한 암석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제멋대로 깎이고 널브러진 바위지만 그 바위들은 어느 유명한 조각가의 조각 못지않은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안데스의 문양이 기하학적인 이유가 굵직굵직하고 각진 선들로 이루어진 이런 자연을 보고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쏜살같이 달리는 버스는 낮게 깔린 구름을 통과했고, 땅과 바위들은 구름을 머금어 마치 연기가 나듯 그 윤곽에 구름이 붙어있었다. 4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의 호수에는 핑크색 플라밍고들이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저 멀리엔 높은 설산이 우뚝 솟아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예술 감각이 뛰어날 수밖에 없을 것같다. 그만큼 사하마로 가는 길은 나에게 예술 그 자체로 다가왔다. 운전사는 가끔씩 나에게 흐르는 강물은 저 멀리 티티카카에서 흘러나온 물이라는 등의 정보를 주었다. 물론 대부분 못 알아들었지만.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달리다가 사하마라고 내려준 곳은 사하마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어리둥절하며 내렸다. 잠깐만, 난 현금도 얼마 없고 아직 등산이고 뭐고 아무 준비도 안됐는데....? 일단은 마을까지 가야 등산을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을 텐데. 버스는 생뚱맞게 거기에 나를 ‘툭’ 내려주고는 다시 쌩~하니 갈 길을 갔다. 할 수 없이 전날 사둔 비스킷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마을까지 2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니 버스에 내린 때부터 등산이고 국립공원이고 가고 싶은 마음은 이미 사라졌던 것 같다.
 
35살 유부녀라고 해도 막무가내, 결국 죽빵 한 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마을을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트럭이 지나가다가 멈춰섰다. 젊은 남자 운전사가 내려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왔다. 마을까지 간다고 했더니 그는 어차피 가는 길이라며 타라고 했다. 길도 하나밖에 없고 벌건 대낮인데다 지금까지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긴장이 풀어졌는지, 땡잡았다는 생각에 대뜸 올라탔다. (물론 예의상 한번 거절은 했지만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올라탔다.) 운전석과 조수석 뒤편에는 잠을 잘 수 있도록 이불이 깔려있었고, 커튼까지 달려있었다. 운전사는 나에게 뒤쪽에 앉는 것이 편할 거라 했다. 나는 그냥 조수석이라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끈질긴 권유에 결국 뒷쪽 편한 자리에 앉았다.
 한적한 길을 느릿느릿 달려가다가 갑자기 그는 트럭을 세우고 너무 피곤하다며 잠시 30분만 쉬어가자 말했다. 10분만 달려가면 마을인데, 갑자기 왜 여기서 쉬겠다는 건지. 게다가 그는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왔다. 긴장을 풀고 있던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그는 내 손을 잡더니 뭐라뭐라 했는데 나는 계속 못 알아듣는 척하며 빨리 가자고만 했다.
 그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나는 35살이고 한국에 남편도 있고 애까지 있다고 뻥을 쳤다. 이렇게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겠지 싶었다. 그런데 여기엔 없지 않냐며 계속 내 무릎을 쓰다듬고 가까이 오라는 것이다! 아이고 내가 방심했구나, 빨리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리겠다며 움직이자 갑자기 그는 뒤에서 내 두 팔을 세게 잡았다. 어이쿠! 이건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힘이 불끈 솟아 그를 뿌리치고 죽빵을 한 대 갈기며 욕을 하고 냉큼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어도 정말 큰 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다 큰 처녀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애인인 것처럼 냉큼 따라 나선 내가 아~주 한심해졌다. 호사다마라고 아무리 지금까지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고 해도 정신 바짝 차리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선 안 되는 거였는데.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히치하이킹은 여행자의 낭만이지만 내가 여자인 이상 남자도 위험한 히치하이킹을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난 절대로 혼자일 때 히치하이킹 같은 건 꿈도 안 꾸게 되었다.
 
 남미 3대 축제의 고장이지만  X물 화장실에 정이뚝
 
트럭에서 내려 씩씩거리며 배낭을 짊어지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마을에 가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지고 그저 빨리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버스가 지나가길 하염없이 기다렸으나 버스는 전혀 올 생각을 안했다. 아스팔트 도로 한쪽에 배낭을 깔고 앉아 ‘버스는 언제오냐~언제오냐~’ 하는 이상한, 노래도 아닌 것을 흥얼거렸다. 꼴도 보기 싫은 트럭만 자꾸 왔다 갔다 했다.
 사람도 하나 없는, 이 한적하다 못해 화면이 정지되어버린 것 같은 곳에서 죽치고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깔고 있던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호수 쪽으로 가서 플라밍고들이 노는 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래도 풍경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저 산 근처에 가면 온천도 있다는데 내가 여기서 돌아가는 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사기는 꺾였고 한시라도 빨리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다시금 짐을 챙겨 도로 쪽으로 나왔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나. 콜렉티보가 와서 나는 다시 파타카마야 마을로 돌아왔다. 지갑에 꼬깃꼬깃 남아있는 35볼리비아노 정도의 현금으로 밥을 먹고 오루로라는 도시를 향해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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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루로는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오루로의 축제는 브라질의 리오카니발, 페루의 태양제와 함께 남미 3대 축제로 꼽히는 큰 규모의 축제이다. 하지만 오루로에서 축제가 열리는 것은 2월, 내가 오루로에 간 것은 12월이었다. 어떤 일본인 친구는 오루로가 너무 좋아서 두 달이나 있었다지만, 축제가 없는 오루로는 정말 할 것이 없는 동네였다. 게다가 오루로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은 것은 숙소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구렸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대충 택시에 타고 가격이 저렴한 숙소를 물어 내린 골목에는 ‘라파스’라는 이름을 가진 숙소가 있었다.
 라파스가 그리운 마음에 냉큼 그 숙소를 들어갔지만, 오우, 노! 대충 짐을 풀고 보니 주인은 매우 불친절하고 내가 숙소를 고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화장실이 너무 더러웠던 것이다. 방을 잡을 때는 잘 몰랐는데, 저녁이 되니 알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청소를 하는지 안하는지 화장실은 매우 더러웠고, 변기에는 배설물이 지저분하게 붙어있었다. 게다가 볼일을 보고 물을 내렸는데 물살이 너무 세서 그 X물이 바지에 다 튀고 말았다.
 결심했다, 내일 눈을 뜨자마자 다른 도시로 옮겨가야지. 어차피 비자도 연장해야 하고, 일본인 친구가 추가비용 없이 금방 비자를 내줬다던 볼리비아 제3의 도시 코차밤바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간 한 곳에 푸욱 퍼지는 내 여행스타일을 거부하고 광속이동을 한 건 기분도 별로고 계속 안 좋은 일만 생겨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마침 라파스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도 코차밤바로 온다고 했으니 오랜만에 사람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다음날 바로 버스터미널에 가서 코차밤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성들이여, 여행 중에도 꾸밀 땐 꾸미자
 
피시방에서 일본인 친구가 알려준 호스텔을 찾아 방을 잡았다. 그 호스텔은 20볼리비아노에 샤워를 할 때 추가비용을 내야 했다. 코차밤바는 만성 물 부족인 도시라, 싼 숙소에서는 샤워할 때 따로 돈을 받는 곳이 많다. 게다가 그 숙소도 화장실이 매우 더럽고 방에는 침대 하나만 덜렁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다음날 친구가 온다고 했고 여기에 묵는다니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하루를 버티며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코차밤바 하면,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 있는 것보다 5m 더 큰 그리스도상과(나는 귀찮아서 보러 가지 않았다)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유명하다. 걷고 또 걸어도 끝나지 않는 시장에, 이 도시는 무슨 시장으로만 이루어져 있나 싶었을 정도다. 시장이 많으면 길거리 음식도 많다 ^-^. 허기진 배를 생과일주스로 대충 채우고, 시장에서 아이새도우와 매니큐어, 샴푸를 샀다. 한국에서 계속 스모키를 하다가 여행에 무슨 화장품이 필요하겠느냐며 과감하게 색소화장품을 다 두고 온 것을 후회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여행이라고 해도 꾸미고 싶은 날은 있기 마련이다. 또 꾸며야 할 장소에 갈 일도 있고. 개인적으로 하이힐까지는 아니더라도 근사한 원피스 한 벌과 간단한 화장도구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여성들이여, 여행 중에도 꾸밀 땐 꾸미자!
 각설하고, 시장을 한 바퀴 쭉 둘러본 뒤, 어둑어둑 해져서야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코차밤바의 치안은 딱 보기에도 불안 불안해 보였다. 여기저기 취객들이 보이고, 현지인들은 매서운 눈으로 이방인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싸움도 일어났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숙소로 향하던 중, 오락실을 발견했다. 볼리비아의 오락실은 어떤가 싶어서 냉큼 들어가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볼리비아 초딩들이 입을 헤~ 벌리고 집중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할 것도 없는데 오랜만에 철권이나 해보려고 동전을 넣고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는데 어떤 건방진 초딩이 나에게 도전을 해왔다. 잠시 쫄았다. 동네 초딩들은 밥 먹고 오락실에서 손가락 운동으로 배고파질 때까지 죽치고 하는 게 게임이라 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초딩이지만 오랜만에 하는 게임에서 지고 싶지 않아 안 봐주고 했다. 결과는 나의 승. 그러나 순순히 물러갈 줄 알았던 이 녀석이 또 동전을 집어넣었다. 나는 깔끔하게 왕까지 깨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게임을 하며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는 그 초딩을 4번 발라주었다. 이쯤이면 집에 가야 되는데, 이놈이 계속 동전을 집어넣는 것이다. 끈질긴 놈 같으니, 한 달 치 용돈을 여기다 다 쏟아 부을 생각인지…. 더 늦어지면 정말 위험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져주고 초딩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뒤로하고 오락실을 나왔다.
 
 일본인 친구는 한식 두루치기 나는 메밀소바
 
 삭막한 숙소에 돌아왔는데, 같은 층 복도에서 딱 봐도 히피 같은 아저씨와 마주쳤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그는 이런저런 말을 걸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훌리오이고, 콜롬비아 출신인데 8년 동안 남미 대륙을 떠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조개껍데기나 돌멩이를 수공해 액세서리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먼저 인사하고 말을 붙여주는 사람을 만나 기쁜 마음에 밖에 나가 맥주 한잔을 했지만 그는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쉴 틈 없이 떠들어댔다. 그러면서 자신은 내일 근처의 정글마을인 비야뚜나리로 떠나니, 함께 가자고 했다. 친구를 기다려야 해서 안 된다고 하니까 비야뚜나리에 가는 방법과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건네주었다. 물론 나는 가지 않았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서 밖에 나가려고 카운터를 지나가는데, 어젯밤 잔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이미 전날 방값은 지불했는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했더니 그 숙소는 체크아웃이 밤 12시이고 (-_-) 반나절이 지났으니 10볼리비아노를 더 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줄 수 없다고 하니 벽 모퉁이에 쓰여 있는 ‘체크아웃타임 12pm’을 가리키며 돈을 요구했다. 내 참, 살다 살다 체크아웃타임이 밤 12시인 숙소는 처음 봤다.
 할 수 없이 돈을 내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도는데, 내가 묵고 있는 숙소와 이름이 같은 숙소를 발견했다. 그렇다, 그 일본인 친구는 또 다른 ‘Aroma’ 라는 이름을 가진 숙소를 알려준 것이었다. 바로 그 숙소에 가서 친구 이름을 대자 주인 할머니는 날 반갑게 맞아주었고, 내일이면 방이 나니 숙소를 여기로 옮기라고 했다. 가격은 15볼리비아노로 내가 묵고 있던 곳보다 5볼리비아노 쌌다. 체크아웃타임은 당연히 낮 12시였고.
 몇 시간 후에는 친구도 도착해서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비자 연장신청도 할 겸, 신시가지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긴 줄을 기다리고, 복잡한 수순을 거쳐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나에게 청구된 돈은 300볼리비아노였다. 엥?! 친구는 공짜로 했다고 했는데? 이게 랜덤인지…. 일단 돈을 내고 비자가 나오길 기다려야지 싶었는데 이틀 뒤에 오란다. 내 계획은 바로 비자를 받아서는 그 다음날 코차밤바를 떠나려고 했는데 계획에 또 차질이 생겼다.
 
체 게바라여 기다려라, 내가 간다
 
 여행이란 건 언제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뭐 어쩌겠나, 여권과를 나와서 친구가 근처에 한식과 일식을 먹을 수 있는 가게에 데려가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 친구가 두루치기 정식을 먹고, 나는 메밀소바를 먹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서로 같이 잘 다닌다. 생김새가 비슷하고 같은 문화권이라 그런지 마음이 편하다.
 인도에서는 한-일 커플의 탄생을 여러 번 목격하기도 했다. 정서가 비슷해 문화충격을 받을 일도 없고, 요즘엔 또 워낙 양국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본인을 보면 그다지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아무튼 이 친구는 혼자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고 있지만 자민당과 고이즈미를 좋아하는 보수적인 일본 청년이었다. 길거리에서 이름  써주고 돈 받는 알바도 이 친구에게서 배웠다.
 숙소를 옮기고 밤에는 숙소 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그 숙소에는 현지인이 대부분이고, 거의 다들 장기체류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아저씨는 예전에 미국에서 살았다며 계속 영어로 이야기를 했는데 나보고 영어를 못한다며 자기 말을 알아듣느냐고 계속 물었다. 아니 아저씨, 발음이 나빠서 못 알아 듣겠다고요! 아저씨는 결국 고주망태가 되어서 먼저 자러 들어가고 나와 친구는 남아서 사람의 말을 듣는 태도와,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반대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지에서부터 정치이야기 등,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다음날, 산타크루즈에 같이 가기로 한 한국 언니의 연락을 받고 버스표를 예약하고는 여권을 찾으러 갔다. 내가 들어서자 2층으로 올라가라고 했고, 2층으로 올라갔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내 여권은 나올 생각을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자 직원이 나에게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내일 찾으러 오라는 거다! 이미 버스표도 사놓았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기에 배 째라며 오늘 무조건 받아야 된다고 했다. 그러자 별 것 아니라며 알았다고, 한 시간 반 후에 오라는 것이다. 쿨하당..,+_+
 한 시간 반 동안 자주 가던 브라질리안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고 맛있는 에스프레소에 진득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 거지 주제에 무슨 된장녀 코스프레냐고 하지만, 난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에스프레소 커피에 케이크를 먹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지도 모른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비자가 연장된 여권을 찾아 다음 도시 산타크루즈로 향했다. 드디어 체 게바라가 죽은 곳으로 간다. 내가 간다!
 글·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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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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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