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푼 아끼려다 산 속 ‘소똥 동침’, 얼어 죽을 뻔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5> 첫 히치하이킹
그뿐이랴, 공짜거니 하고 잡아탄 트럭에 덤터기
돈은 돈대로 몸은 몸대로, 도대체 뭔 짓 한 건가

 
 
 트루히요에서 밤 9시 버스를 타고 와라스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 아침 6시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와는 달리, 페루는 종합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버스 회사에서 표를 산다. 그래서 어느 회사의 서비스가 좋고, 가격은 어디가 가장 싼지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페루 여행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했던 버스회사는 cial이다. 딱히 서비스가 좋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가격도 보통, 서비스도 보통이었다. 페루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버스는 cruz del sur 이다. 그 외에도 civa 나 soyuz, movil등이 있다. 그중 soyuz가 가격은 가장 싸고 서비스는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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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시간은 기본, 버스 안에 화장실
 
 꼬불꼬불 안데스 산맥을 넘는데 10시간은 기본이라서, 버스 안에는 화장실이 딸려있다. 또 저녁식사도 제공하는데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는 간단한 과자류가 대부분이다. 버스가 중간 중간에 서면 잡상인들이 들어오는데, 그때 먹을 것을 사먹으면 된다. 땅콩부터 케이크, 닭요리, 아이스크림 등 다양하다. 하지만 볼리비아 버스엔 화장실도 밥도 없다. 그 대신 마렵다고 하면 길거리 아무 데서나 세워준다. 자연을 향해 시원하게 방출!
  와라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먼저 간 일행을 찾았다. 맨 위층에 모닥불과 주방이 있는 숙소에서 재회한 일행들은, 아쉽게도 그날 밤차로 떠난다고 했다. 열심히 쫒아왔는데 또 이렇게 헤어지다니! 할 수 없지, 다들 각자 일정이 있으니. 이다음에 나는 아마존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더는 일행들을 만나지 못했다.
  와라스 하면 트레킹이다. 안데스의 한복판에 위치한 와라스에는 해발 6000m급의 고봉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다. 어떤 이들은 페루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마추피추보다 와라스가 훨씬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떠나는 일행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고, 계속된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숙소에서 이틀 정도 푸~욱 쉬면서 풀었다. 숙소 모닥불 앞에서 음악을 들으며 빈둥대거나, 같은 숙소의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 잡담을 하곤 했다.
  한번은 옥상에서 노을을 감상하다가 남아공에서 온 백인 부부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와 친구가 그 부부에게 넬슨 만델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자,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좋은 대통령이지만 우리 백인들에게는 나쁜 대통령이라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기득권이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는 답변이라 했다. 조금은 씁쓸했지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각자 속해 있는 사회적 지위가 다르고 가치판단의 기준이 다르며 선과 악은 상대적일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도 내심 사회 특권층이 자신보다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대답을 기대했다.
 
 이제나 저제나 애간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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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이틀을 쉬고, 한국서 챙겨간 봄가을용 침낭을 들고 트레킹에 나섰다. 와라스의 빼어난 경치를 보기 위해서는 와라스에서 콜렉티보로 한 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융가이라는 곳으로 가서 또 버스나 택시를 타고 와스카란 국립공원으로 가야한다. 와라스에서 융가이까지는 콜렉티보로 왕복 7-8솔(당시 기준 3솔=약1달러)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융가이에 도착하자마자, 와스카란 국립공원으로 가느냐며 택시기사들이 몰려들었다. 저마다 부르는 왕복 가격은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나중에는 장사를 포기하고 밤 8시에 국립공원을 넘어가는 버스가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게다가 6시 이후에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단다! 이런 고마운 택시기사님들.
   버스가 올 때까지 밥을 먹고 여기저기 산책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8시쯤 버스 정류장에 가보니 안데스 전통의상에 보따리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현지인들이 길바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길에 주저앉아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페루나 볼리비아의 버스들은 정말 랜덤이다. 대체로 98.9%는 출발 예정시간보다 늦고, 아주 가끔은 출발 시간보다 일찍 떠나기도 한다.
  길바닥에 앉아 현지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약 40분 정도를 기다리자 버스가 왔다. 그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우르르 몰려 너도나도 먼저 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한국에서의 습관처럼 차례차례 타길 바라며 소극적으로 행동하다간 장시간 버스를 서서 타고 가야하는 일이 발생한다. 겨우겨우 비집고 올라타니, 역시나 내 자리는 없었다. 좌석이 없어 우물쭈물 하고 있자, 운전기사와 차장이 이쪽에 와서 앉으라며 출입문 바로 옆에 박스를 깔아주었다. 남미의 버스에는 항상 운전기사 옆에 차장 같은 사람들이 몇 명 정도 같이 탄다. 개인적으로 페루나 볼리비아 버스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고르라면 단연 운전석 옆자리다. 시야도 탁 트인 데다 운전기사와 함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얘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화장실이 급하면 바로 세워 달라 할 수도 있고.
 
 달빛 별빛에 취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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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를 타고 약 두 시간 정도 어둠 속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국립공원 안에 산장이 하나 있다고 들어서 운전기사에게 그 앞에서 세워달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국립공원 안에는 숙소가 없다고 했다. 으응? 난 분명히 산장이 있다고 들었고 그 산장에서 잔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옆에서 차장이 뭐라 뭐라 하니까 운전기사는 알았다는 듯 아~! 라고 했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와서 약 20분 정도 지났을까? 이곳이라며 내려준 곳은 불빛 하나 없는 들판이었다. 어두워서 잘은 안보였지만 커다란 호수 두 개가 양 옆으로 있고, 소들이 음메음메 울고 있었으며, 저 멀리 건물 하나가 보였다. 저곳인가?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아무리 두드려보아도 인기척이 없다. 아무리 봐도 산장으로는 안 보이는 곳이다.
  아주 작은 창문이 있어 들여다보니, 안에는 마른 갈대 같은 것들만 수북하게 쌓여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옆에서 큰 눈을 껌뻑이는 소들을 보고 깨달았다. 아, 외양간이구나. 곳곳엔 소똥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빛이라곤 달빛밖에 없는 산골짜기에서, 우린 그렇게 멍하니 몇 분 정도 서있었다.
  이걸 어째야 하나. 지나가는 차도 없고 잘 곳도 없고. 달빛에 빛나는 눈 덮인 검푸른 안데스의 고봉들은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고, 별들만 깜깜한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일단을 목을 축이자며 호수 쪽으로 가서 물을 한 모금 들이켜니 밀려오는 청량감이란! 갑자기 신이 나서 오늘 밤은 야영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건 봄가을용 침낭밖에 없지만. 적당히 소똥을 피해 침낭을 깔고 누워서 안데스의 밤하늘을 음미했다.
 
 역시 산은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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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 술술 읊어지는 풍경이로구나, 에헤라디야~ 별로 안 춥네, 견딜 만하네. 그렇게 검푸른 안데스와 밤하늘을 찬양하다 잠이 든 지 약 3시간쯤 지나고,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잠이 깼다. 몸이 진도 7도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고 지금까진 없었던 고산병님이 행차하셨는지, 호흡이 힘들고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산은 산이라는 걸 잊고, 산을 너무 무시한 결과였다. 어떤 바보가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산속에서 매트도 없이 봄가을용 침낭에서 잘 생각을 할까. 우리는 정말 생각이 없는 로맨티스트였던 것이다. 그깟 입장료 몇 푼 아낀다고.
  정신을 못 차리는 날 위해 친구가 때마침 지나가던 트럭을 세워주었다. 트럭에 탄 현지인들은 너무나도 고마울 정도로 걱정해주며 히터도 틀어주고, 발도 손으로 녹여주었다. 몇 번이나 괜찮냐, 춥지 않느냐며 신경을 써주고 다시 마을로 내려가는 버스 운전사에게 연락한 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를 버스에 태워주었다. 어찌나, 어찌나 고맙던지.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페루 산속에서 얼어 죽었을 지도 모른다. 버스에 탄 현지인들도 나를 위해 좌석을 양보해 주었다. 아, 페루 사랑한다 T_T
  마을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경, 버스 터미널 근처의 싸구려 숙소에 방을 잡고 깊이 잠들었다. 다음날 기진맥진하여 의욕을 상실한 우리는 상의 끝에 트레킹은 포기하고, 그냥 차로 갈 수 있는 호수에만 다녀오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에게 버스정보를 알려 준 택시기사와 흥정을 해서 편도 10솔을 주고 전날 밤에 갔던 길을 다시 갔다. 결국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다. 아, 우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입장료 안 내보겠다고 그 생난리를 쳤건만.
 
 원효대사 해골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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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밤 나에게 청량감을 선사한 양가누코 호수를 낮에 보니, 우와,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려 만들어진 에메랄드빛 호수와 고개를 들면 나타나는 백색의 봉우리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정말 아름답구나, 자연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그 아름다운 풍경은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고 자음과 모음의 결합체로도 표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날 밤에 잤던 곳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인증샷을 찍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는데, 이게 의외로 거리가 먼 것이다! 안 그래도 어제의 무리한 ‘뻘짓’ 때문에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닌데. 길이 나있는 것을 따라 걷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에서 내린 곳까지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는 지나가는 차를 세워 마을까지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모퉁이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저 멀리서 덜컹거리며 작은 트럭이 다가왔다. 트럭은 우리를 보고 멈추더니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융가이까지 간다고 하니 뒤에 타란다. 히치하이킹에 성공! 생각해보니 연재목차엔 첫 번째 히치하이킹이라 했지만 에콰도르에서 트레킹을 끝내고 우유 트럭을 얻어 타 우유배달부가 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와라스에서의 히치하이킹은 두 번째이다. 얼씨구나 하고 두꺼운 천으로 둘러싸인 트럭 뒤에 타려고 보니 염소들이 한가득 풀을 먹고 있었고 바닥엔 똥을 지리고 있었다. 날 보며 권태로운 눈빛으로 메에 메에 울어대는 염소들. 뭐, 귀여운 염소들이랑 같이 가자고 생각하고 올라탄 그 공간은 정말 생지옥이었다.
 
 미역국, 아~ 대한민국!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달리는 트럭의 천막 안에서 트럭이 뿜어대는 매연을 다 마시고 게다가 흙먼지까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만 잘 못 쉬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찌나 흔들리는지, 앉아있는데도 공중부양을 하고 서있으면 지붕 뚫고 승천할 기세였다. 게다가 중간 중간 멈춰서 짐을 한 보따리 들고 있는 현지인들을 태워서 갔다.
  그 작은 공간에 수많은 염소들과 사람 7명이 같이 타고 가는데, 염소 똥을 피하자니 자연스레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제한되었다. 까만 바지가 황토색이 되도록 숨도 못 쉬고 달려오면서, 그래도 돈은 절약되니까 라며 마음을 다스렸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고 융가이 마을에 도착하자 운전수는 우리를 내려준 뒤 돈을 요구했다. 얼마를 원하냐고 물어보자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그래서 우리는 2솔을 주었는데, 그게 아니라 20솔을 내놓으란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택시가 10솔인데, 훨씬 편하게 올 수 있었는데!! 말도 안 된다며 못 준다고 버티고 있는데도 계속 돈을 요구했다. 거기서 더 버틸 수도 있었지만 너무 지치고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은 나머지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투덜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비록 인스턴트지만 가지고 있던 한국 음식을 다 꺼내 먹었다. 미역국과 오징어 짬뽕, 꽁치 통조림. 이틀 동안 생고생만 하다 그리운 한국음식을 접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인스턴트인데도 미역국은 어찌나 그리 맛나던지. 역시 외국에 나와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음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지친 심신에 참기름 동동 띄운 미역국이 실핏줄 따라 온 몸에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글.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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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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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