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문성이 희생 당하는 이상한 국방개혁 국방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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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2011년 4월 4일자 

 

다음은 이상우 전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이 지난 3월 21일 한 유력 보수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원래 서해북부사령부는 군단급으로 해병대사령관(중장) 지휘하에 육군 1개 사단,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 공군 2개 비행대대를 예하에 두는 것으로 구상됐다. 그러나 육·해·공 3군의 이기주의와 저항 때문에 결국 축소됐다."

이 발언이 나가자 육․해․공군의 장군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지난 3월 8일 발표된 국방부의 ‘국방개혁 307계획’에 이상우 위원장이 주장한 서해북부사령부 창설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애초 비현실적이고 실효성도 없는 구상을 내놓은 이 위원장 본인의 탓이  아니라 각 군의 ‘자군 이기주의’ 탓으로 전가하는데 대한 냉소적 반응이었다. 이와 더불어 많은 장교들은 “해병대사령관이 공군 비행 대대를 지휘한다는 구상은 군사적 아마추어리즘에 다름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이 위원장이 군을 자극하는 발언은 이뿐만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군의 고질적인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다. 군 간부들이 지난 60여년간 공기업 임원처럼 대과(大過) 없이 (임기) 2년만 마칠 생각을 해왔다. 미군에 지나치게 의존해 무책임해진 측면도 있다고 본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고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서 죽도록 고생하는 현역 장교들은 이 말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해군의 한 대령은 지난해 천안함 사건 직후 화병을 얻어 올해 사망했다. 그가 병을 얻은 이유는 천안함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감사원 감사와 각종 조사에서 해군의 억울한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은폐․조작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자 이에 깊이 좌절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이 나오고 나서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국방개혁 307계획’에 다른 의견이 나오면 ‘자군 이기주의’라며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2월 23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임원들을 초청하여 국방개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야유와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현역 장교단까지 국방개혁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조성되자 “예비역들이 현역을 선동한다”며 이를 차단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이런 흐름은 3월 7일 대통령에게 국방개혁안이 보고될 당시에도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예비역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개혁을 추진하라”고 김관진 장관에게 지시한 것이다.

이어 3월 29일에는 정부 고위관계자가 “국방개혁에 저항하는 현역들을 ‘항명’으로 간주하고 인사조치한다”는 초강경발언까지 나오자 바야흐로 국방개혁은 감정과 자존심의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러면 청와대가 말하듯이 각 군이 밥그릇 싸움에만 매달린 것인가? 자세히 살펴보면 군 개혁에 대한 논란은 합참의장이 각 군 총장을 지휘하며 일부 인사와 군수와 같은 군정권까지 행사하는 군 상부구조 개편안을 비판하는데 모아져 있다. 여기에는 해군과 공군뿐만 아니라 육군 출신인 전직 국방장관인 K씨, J씨도 가세했다.

한 해군 예비역 제독이 필자에게 밝힌 내용이다.

“천안함 사건이 벌어지고 몇 일 후 백령도 근방으로 중국 어선에 섞여 북한 경비정이 남하하기 시작했다. 합참의장은 해군에 실탄으로 격파할 것을 지시했다. 해군은 ‘중국어선 격파는 작전예규에 맞지 않는다’며 저항했다. 이에 합참의장은 재차 사격을 지시했으나, 때마침 이 사실을 안 김태영 국방장관이 황급히 ‘쏘지 말라’고 진화하여 사태는 진정되었다. 만일 그 때 사격이 벌어졌다면 천안함 위기는 더 큰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바다에서는 오직 해군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이처럼 부지기수다.”

전문성 없는 육군 위주의 합참이 천안함 사건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해상작전에서 부적절한 지시와 간섭을 하여 우리의 전투원들을 위험에 빠뜨린 사례는 여럿 있었다고 그는 증언한다. 게다가 천안함 사건은 합동작전의 경험이 결여된 육군 출신 작전직위자들이 ‘무면허 운전’을 한 것과 같고, 여기에다가 당일 날 합참 지휘부의 ‘음주 운전’까지 더해진 경우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작전지휘부에 가장 요구되는 현대전쟁을 제대로 통찰할 수 있는 전문성 보강이 시급한 것인데, 이런 내용은 개혁안에서 쏙 빠져 있고 오직 각 군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하는 ‘조직의 논리’로 접근한 것이 이번 국방개혁 307계획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이런 항변조차 ‘자군 이기주의’로 매도되는 상황에 대해 “해․공군 장교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는 증언이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우리가 2012년 전작권 전환을 2015년으로 미룬 이유가 안보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군의 지휘체계를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안다. 군제개편의 충격은 전작권 전환 문제 못지않다. 그런데 전작권은 미루면서 군 상부구조 개혁안을 앞당겨 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이 씨는 이번 국방개혁의 시기, 방법, 내용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사실 이번 307 계획에서 표방한 군의 ‘합동성 강화’는 각 군의 전문성의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각 군의 교육과 군수기능을 통합하여 새로운 기능사령부를 창설하고 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을 지휘를 받도록 한 처사는 전문성 존중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주장이다. 합동의 문화를 창출하는 가운데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는 긍정적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국방개혁은 국방개혁이 아니다. 그걸 못하고 나서 군을 탓하는 건 정직하지도 못하고 비겁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점은 1990년에 정부가 통합군제도를 지향한 국군조직법 개정이 실패한 교훈을 이 정부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조선시대에도 “전하, 아니되옵니다”라며 간언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지금은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안 거쳤는데 반대하면 ‘항명’으로 다스리겠다는 엄포는 개혁의 추진과정을 크게 왜곡하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마치 전봇대 하나 뽑아버리듯이 단칼에 해치우는 ‘MB식 밀어부치기’의 전형이라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이 307계획은 김관진 장관이 애초 구상했던 ‘합동군사령부 창설’안과도 거리가 있는 청와대 구상에 가깝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상우 위원장,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국방개혁안 구상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군에 대해 비전문가인 이들 손에서 국방개혁이 좌지우지되었다는 점은 현역들로부터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월 23일 설명회에서 일부 예비역들이 이상우 위원장과 김태효 비서관을 면전에 두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러한 심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청와대와 국방부가 현역 군인과 예비역들을 직접 설득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볼 때 폭넓은 의견수렴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홍보나 전달 정도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방개혁은 20년, 30년을 내다보는 장기계획이고 포괄적인 계획이다. 어떤 정부도 군사제도를 바꾸는 일은 헌법적 차원의 과업이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친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와 같이 공론화가 생략된 밀어붙이는 식의 국방개혁은 이미 절반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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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