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제주도~놀 줄 모르는 친정 엄마와(1) 공지사항

비행기.jpg » 떠나는 비행기, 그 설레임.

 

친정 엄마만 생각하면 나는 울컥 하곤 한다. 쉰 여섯 해 동안의 엄마 인생 역정이 워낙 파란만장한데다 젊은 나이에 이혼하고 나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보셨고, 국외 여행도 다녀오신 적 없다. 내가 보기엔 엄마는 한 번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기에 노는 방법도, 노는 즐거움도 모르신 것 같다. 그토록 사랑하는 손주들과 함께 여행이라도 가자고 하면 “집이 제일 편안하다. 너희들끼리 놀러가라”“할 일이 태산이다”라고 하시며 같이 놀러가기를 거부하셨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엄마를 모시고 꼭 여행을 가겠다 다짐하고는 했다. 손자·손녀와의 여행, 나와 엄마 단 둘이 떠나는 여행, 엄마와 엄마 친구가 함께 하는 여행, 국외 여행 정도는 엄마가 더 나이 드시기 전 꼭 시켜드려야겠다고 일기장에 적어놓았다. 그렇게 해야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올해 상반기 나는 책 두 권을 냈다. 한 권은 초등학생 대상 심리치유 도서 <자존감은 나의 힘>이라는 책이고, 한 권은 공저작인 <나는 일 하는 엄마다>라는 책이다. 베이비트리를 맡으면서 아이들 심리 관련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고 우연한 기회에 지난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존감의 개념, 자존감의 중요성,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출판사로부터 받았다.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틈틈이 책을 썼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생활하면서 열심히 책 원고를 마감했다. 7일 동안의 안식주 기간 동안에도 독서실에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책을 썼다. 몇 번의 원고 수정을 통해서 지난 4월 책이 나왔고, 원고료 나머지를 받았다. 총 원고료는 216만원이었다. 나의 첫 책을 쓰고 받은 이 돈을 나는 온전히 엄마에게 쓰고 싶었다. 남편에게 이런 내 뜻을 밝히니 흔쾌히 동의했다. 장모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내가 시댁 어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자 “우리 부모님은 젊으셨을 때부터 두 분 함께 많이 돌아다니셨어. 장모님은 혼자이시고 여행도 못다니셨으니 부모님들도 충분히 이해할 거야. 걱정마”라고 말해주었다. 아, 이럴 땐 남편이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사위도 자식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남편이 말한대로 시부모님은 “친정 엄마와 여행 잘 다녀오라”며 내가 드린 용돈을 그대로 다시 돌려주셨다.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시부모님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두번째 책은 인세 계약을 한 것은 아니고 원고료 50만원을 받고 공 저자로 참여했다. 10여년 전 <엄마 없어서 슬펐니?>라는 책을 썼던 ‘이프’(여성주의 문화운동 그룹) 주 멤버들이 그동안 아이와 함께 지내온 이야기를 쓰고 새롭게 절반 정도의 저자가 함께 참여해 일하는 엄마들의 삶에 대해 쓴 책이다. 르네상스 출판사 편집장은 내가 <한겨레> 토요판에 썼던 육아 도우미 관련 기사를 이 책에 꼭 넣고 싶다며 조금만 수정해서 넣자는 제안을 했다. 나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이미 썼던 기사를 조금 수정·보충해 원고를 마감했다. 책이 잘 팔리면 인세는 이프재단을 돕는 일에 쓰인다 했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을 돕는 일이니 기부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올해 나온 책을 엄마에게 보내드리며 나는 “책을 써서 번 돈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딸이 책의 저자가 됐다는 자부심과 기쁨 때문인지 이번에는 엄마 역시 여행을 승낙하셨다. 그렇게 해서 지난 7월31일~8월2일까지 3박4일간의 제주 여행을 친정 엄마와 함께 떠날 수 있었다.

할머니와 손자.jpg » 마냥 신난 손자와 비행기가 무서운 할머니

 
비행기를 간만에 타보신 엄마는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셨다. 우황청심환도 준비하시고, 비행기가 흔들릴때면 눈을 꼭 감으셨다. 긴장하는 외할머니와 달리 민지와 민규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할 때마다 “몸이 너무 간지럽다”며 깔깔대고 웃어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은 행복 바이러스 그 자체였다.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와 하늘과 구름, 육지와 바다를 구경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마냥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보다. 아이들 얼굴에도 어른들에 얼굴에도 함박꽃이 활짝 피었다. 아이들 덕분에 외할머니의 긴장감도 완화됐다. 손주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보며 엄마도 여행하는 내내 짜증 한번 내지 않으셨다.

 

제주 비행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반 무렵. 유모차를 대여하고 3박4일 동안 우리의 ‘애마’가 될 렌터카를 빌렸다.  배에선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숙소는 서귀포 근처 친환경·건강을 테마로 바닥이 옥돌로 만들어진 펜션(JJ하우스)이었다. 제주도 여행 정보를 찾으려고 가입한 ‘느영나영’ 까페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겨우 예약한 펜션이었다. 펜션에 전화를 해 숙소 근처에서 가장 가깝고 유명한 흑돼지 전문점을 물었다. 펜션 주인은 ‘한길정’이라는 음식점을 알려주었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음식점을 찾았고, 우리는 흑돼지 오겹살을 맛있게 먹었다. 사위는 장모에게 소주를 권했고, 엄마와 남편, 나는 소주에 흑돼지 오겹살을 맛있게 먹었다. 두꺼우면서 쫄깃쫄깃한 오겹살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식당은 꽤 넓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나간 텅 빈 상태였다. 아이들은 방석을 쭉 나열해놓고 징검다리라며 뛰어놀았다.

 

제주 흑돼지.jpg » 제주도 흑돼지는 두껍고 쫄깃쫄깃한 맛이었다.

 

 

다섯 식구 온전히 함께 있는 그 시간이 그저 행복했다. 시인이자 방송작가인 이병률씨가 그의 여행산문집 <바람이 좋다 당신이 좋다>에서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라고 하더니 정말 나는 가족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있었다. 이병률 시인은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을 하고 있다”고도 했는데,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친정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나는 기어코 사고야 말았다. 운전하느라 피곤해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자는 남편, 노느라 힘들어 잠든 아이들 틈 사이에서 엄마와 나는 밤새 수다를 떨었다. “안씨들 세 명은 어쩌면 저렇게 잠도 잘 자냐”며 흉을 보면서, 가족 이야기부터 앞으로의 엄마 계획, 내 계획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엄마와 그렇게 단 둘만의 시간이 얼마만인지... 엄마와 누워 얼굴을 마주대고 있는 시간이 한없이 소중했다. 엄마의 잠자는 모습을 보니 엄마 눈가 주름, 미간 주름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엄마의 깊은 주름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jpg » 외할머니, 딸, 손주 삼대의 즐거운 시간.

 

“집이 제일 편하다”는 엄마는 여행 끝날 무렵 “다음엔 배 타고 우리 차 끌고 김치랑 쌀 등 먹거리를 싸들고 제주도에 또 오자”고 하셨다. 여행의 상당 비용이 비행기 표와 차를 빌리는 것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시 여행 오자”는 엄마의 말에, 엄마의 변화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우리 엄마도 놀 줄 아는 여자였구나’라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제주도 여행기 2탄은 다음편에 계속...)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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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