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생긴 아들과 엄마의 속마음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IMG_7649.JPG » 여친과 뽀뽀중인 아들.

 

회사에 있는데 핸드폰에 사진 한 장이 뽀로롱~ 도착했다. 헉. 두돌된 우리 아들이 예쁜 여자아이와 다정하게 뽀뽀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사진 속의 ‘아기 커플’은 너무 사랑스러워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처럼 다정해 보였다.
 

“허~영이(서영이를 이렇게 발음한다) 허~영이~”
그날 이후 동네 여자 친구 서영이에 대한 민규의 사랑은 애틋하다. 놀이터에서 만나 자주 노는 서영이라는 아이는 민규보다 5~6개월 늦게 태어났고, 위에 장난꾸러기 오빠가 있어서인지 씩씩한 성격이다. 아직 두돌아 안된 그 아이는 그네도 겁내지 않고 잘 타고, 항상 어떤 놀이기구든 도전하는 편이다. 나도 가끔 주말에 놀이터에서 그 아이를 만나곤 한다.
서영이 엄마도 직장맘이라 두 아이를 수년째 돌봐주신 한국인 육아 도우미가 있다. 그 이모님과 우리 이모님이 서로 뜻이 잘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나 안양천 근처에서 자주 논다고 한다. 민규가 서영이를 만나게 된 계기다. 서영이네 집에 가서 몇 번 놀아보더니 이제는 현관문만 나서면 “허~영이한테 가자”라고 말한다. 한동안 엄마 출근할 때 “엄마 차 타고 가자”라고 우기며 무조건 나를 따라나서며 떼를 쓰던 아들이 “서영이 보러 안갈거야?”라고 이모가 물으면 “허~영이 보러 가야지”라며 한치의 망설임없이 뒤돌아서는 것 아닌가.
 
그때 밀려오는 이상야릇한 기분이란…. 아마 아들 둔 엄마들만 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두돌 된 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기자 엄마에 대한 집착은 싹 사라지고 “엄마~ 안녕”하는 것을 보며 나는 ‘언젠가는 내 아들이 내 품에서 떠나겠구나’‘언젠가는 우리 아들도 엄마보다는 마누라와 자기 자식이 최고가 되는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내 품에 있는 날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자기 세계가 생겨 부모와 뭔가 함께 하지 않으려 한다고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충분히 즐기고 많이 안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돌이 지나면서 민규는 말문이 터져 자기 표현을 더 분명하게 한다.  “싫어”라는 말도 자주 쓰고, “엄마~빨리 와~”“엄마 이건 뭐야?”“엄마~ 서서 안아줘요”“엄마~잘 자요~”“엄마~ 사랑해요~”“엄마~책 읽어줘요”“엄마! 그만 그만!”이라고 말한다. 핸드폰 벨이 울리면 “엄마~ 전화왔다”라고 말하고, 핸드폰 동영상을 보려고 “엄마~전화 줘요~”라고 징징대며 매달린다.
누나가 있어서인지 모방 능력도 뛰어나 누나가 그림을 그리면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고, 누나가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하면 자기도 안아달라고 난리다. 누나한테 뭔가 주겠다고 하면 “나도 나도”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한다. 여전히 번개맨을 사랑하고, 일일 연속극의 주제가 “그대 없이는 못살아~”를 즐겨 부른다. 노래를 좋아해서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고, 노래를 큰소리로 부른 뒤 엄마가 크게 호응해서 박수를 치며 “안민규! 안민규!”하고 소리치면 아주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누나 책상을 펼쳐놓으면 거기 올라가 노래자랑 하듯 노래를 하고, 번개 파워를 쏘아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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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라 그런지 과격한 면도 많고 고집도 세다. 누나 어깨를 잡아 마구 흔들어대서 누나가 우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의자에서 거꾸로 뒤집는 놀이도 즐긴다. 머리를 땅에 대서 몸을 넘어뜨리는 동작도 좋아하고, 사자나 호랑이같은 사나운 동물을 좋아한다. 밤에 유리창에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면서 “엄마~ 호랑이 왔다~”하기도 한다. 잇솔질을 자기 혼자 하겠다고 우기고, 밥을 먹기 싫으면 입을 딱 다물고 “안먹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속도가 빛의 속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두달 새 말문이 터져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아들을 보며 하루하루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첫째 때보다 둘째 키울 때 더 시간이 빨리 간다.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친정 엄마는 지난 추석 때 아들을 바라보는 내 표정이 애인을 바라보는 표정과 같다며 딸에게 편애한다는 느낌 주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당부를 할 정도이다. 나는 딸이든 아들이든 아주 공평하게 사랑을 하고 있고 실제로 마음도 똑같은데, 친정엄마가 보기엔 그렇지 않았나보다. 아무래도 아들이 나이가 더 어린데다, 그 툭 튀어나온 볼살과 엉덩이, 3등신의 뽀로로 같은 신체구조와 내 마음을 녹여버리는 눈웃음은 나도 모르게 나를 아들에게 하트를 뽕뿅 날리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나는 아들의 향기가 좋다. 아가들에게만 특히 세 살 이전 아가들에게만 나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아들의 입에서, 얼굴에서, 몸에서 그런 독특한 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가 너무 좋아 아들에게 ‘부비부비’하고, 아들의 배에 입을 대고 ‘방귀소리’를 낸다. 그러면 아들은 깔깔깔 웃어댄다. 아들과 내가 서로 ‘부비부비’할 때 그 순간이 내게는 행복이다. 생후 8개월부터 아토피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계속 상황이 악화돼 밤잠 못자고 울어만 대던 아들이 6개월 정도의 한의학적 치료를 하고 정성껏 온식구가 보살폈더니 아토피가 싹 사라졌다. 건강하고 잘 웃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들아, 앞으로도 계속 밝고 건강하게 자라다오. 그리고 아무리 ‘여친’이 좋더라도 지금만은 엄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간직해다오. 이것이 아들 가진 엄마의 속마음이다. ^^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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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