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해주는 남편, 육아 도우미 없는 생활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KakaoTalk_20170714_162114572.jpg » 아빠가 만든 주먹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여보, 이제는 애들도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나도 방학 땐 시간이 되니 이젠 이모님 그만 오시게 해보는 것 어떨까? "

 

남편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남편은 대학원에서 박사 공부중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다. 방학 땐 수업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동안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입주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반찬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청소·빨래는 이모가 해주었다. 퇴근하면 아이들과 숙제 챙기고 신나게 놀면 됐다. 남편 역시 틈틈이 도우미가 챙기지 못한 집안 일이나 아이 관련 일들을 챙기면 됐다. 그렇게 생활해왔는데 도우미가 없는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워서 망설여졌다. 한 사람이 도와주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를 알기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생겨 육아 도우미가 3주 전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육아 도우미 없는 생활에 도전했다. 
 
예상과는 달리 지난 3주 동안 육아 도우미 없는 생활은 순조로웠다. 걱정했던 것보다 우리 부부 사이는 더 돈독해졌으며, 아이들은 여전히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편은 원래부터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많이 해왔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아이들이 한 번씩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간식도 주고, 내가 늦은 날에는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고 잠도 재운다.

 

가끔 밥이 질어서 아이들이 맛없다고 밥을 덜 먹기도 하고, 처음 해보는 가지 반찬은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남편이 해주는 집밥은 너무 맛있다. 항상 똑같은 반찬이었던 도우미 반찬과 달리 다채롭고 창조적이며 아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반찬이 나온다.

 

KakaoTalk_20170714_161734723.jpg » 남편이 새로 도전한 반찬들.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를 함께 볶아서 소를 만들어 김가루를 섞은 주먹밥에 쏙 넣는다. 주먹밥에는 일본식 된장국이 어울린다며 마트에서 미소 된장을 사다가 미소 된장국을 곁들여 내놓는다.
 
일주일에 한 번은 토스트를 먹자고 제안해 빵과 계란, 주스 등을 먹어보기도 한다. 이전에는 항상 밥만 고집했던 터라 아침에 먹는 토스트가 그렇게 특별하고 맛있다. 
 
복날에는 닭을 사다가 푹 삶고 쌀과 채소를 넣고 끓여서 맛있게 닭죽을 내놓았다.

 

각종 채소를 아이들이 안먹고 남기니 채소와 참치와 깻잎을 넣은 누드김밥을 만들기도 했다. 김밥 만들기도 힘든데 심지어 누드김밥이라니! 남편의 창조성에 또 한번 놀라 나는 남편을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이들은 채소는 안먹더니 누드김밥 형태로 든 채소는 잘 먹었다.

KakaoTalk_20170714_161736021.jpg » 아빠가 해준 밥이 너무 맛있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딸.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친구들을 데려오면 떡볶이, 감자튀김과 같은 간식을 내놓기도 한다. 딸 친구들에게 남편은 ‘멋진 아빠’ ‘좋은 아빠’로 통한단다. 
 
남편이 가사와 양육을 전담한 뒤, 남편은 한 일주일 정도는 ‘잔소리 대마왕’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라고 하면 재깍재깍 일어나야지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야. 내일부터는 일찍 일어나야 해. 그리고 자기 전에는 자기가 놀았던 장난감, 책 다 제자리에 정리하고 자. 어지르는 사람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제발 좀 옷 벗어서 이렇게 놔두지 말란 말이야. 옷 벗으면 빨래통에 집어넣어!”
“당신 거실이 당신 혼자 쓰는 공간이야? 저게 뭐야? 책상 위에 저렇게 책 쌓아놓으면 책상은 뭐 하려고 산 거야? 그리고 저 상자는 어디서 난 거고? 공용 공간인 거실이 이래서 되겠냐고~”
“무슨 일을 하면 왜 이리 마무리를 못해? 식탁 치우고 나서 식탁 좀 깨끗하게 닦으면 안 돼? 왜 사람 손 두 번 가게 만들어?”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집안 구석구석의 문제점과 아이들과 나의 잘못된 정리정돈 습관을 남편은 발견해냈다. 아이들과 나는 일주일 정도는 계속 남편에게 지적을 받고 행동을 수정해야 했다.
 
잔소리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군소리 없이 남편 말을 들었다. 이언주 국민의당 국회의원은 학교 급식 조리사·영양사에 대해 “밥하는 아줌마”, “그냥 어디 간호조무사보다도 더 못한 그냥 요양사 정도라고 보시면 된다” 등의 막말을 했다지만, 밥도 해보고 반찬 고민도 해보고 아이들도 챙겨본 나는 누구보다도 그 노고를 알기에 밥 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들과 나는 아침에 자명종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난다. 밥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할 때 나는 물티슈로 식탁을 깨끗하게 닦았는지 다시 확인한다. 아이들은 잠자기 전에 반드시 거실에서 자기가 놀았던 장난감과 책 등 물건을 정리한다. 나는 전보다 저녁 약속을 줄였고 집에 들어가 아이들 숙제를 봐주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또 저녁 식사를 먹고 설거지를 한다. 남편이 어떤 반찬을 내놓을지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KakaoTalk_20170714_162113861.jpg » 누드 김밥을 썰고 있는 남편.

 

 
남편이 방학이 끝나면 바빠질 것이고 지금처럼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남편과 나, 아이들이 협력해서 남의 도움없이 하루하루를 생활해보는 경험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아이들도 좀 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었다. 그만큼 우리 가족 모두 한 뼘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남편이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곧 지치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도 했다. 그런데 얼마전 남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졌다.

잠시 그 글을 인용하면 이렇다.

 

"교보문고에 1주일에 한번씩 가는데 이번주는 베스트 셀러인 <언어의 온도>를 읽고 있다. 저자의 <말의 품격>을 읽어선지 선뜻 고르지 않았던 책. 읽다가 다음 구절이 잠시 멈추게 한다. 뒤바뀐 아이들의 두 아버지의 이야기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인용하고 있었다. 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다가
- 유다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 료타: "회사에서 제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 유다이: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거죠."

나또한 유다이같은 아빠로 살고 싶었고 그럴 것이다. 요즘 대학은 방학. 가사도우미도 내보내고 아이들 돌보는 중. 평소 음식만 조금했는데 대학이 아닌 풀타임으로 가사일을 할줄이야. 몸은 힘들어도 행복이 여기 있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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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