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엄마도 엄마가 그립단다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 지난 한달 동안 제가 참 많이 아팠습니다. 민지는 계속 감기를 달고 살았고, 민규는 계속 밤에 1~2시간마다 잠을 자지 않고 젖을 먹으려 했습니다. 또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비자 문제로 중국에 다녀오시는 동안 애 둘을 혼자 보면서 진이 다 빠진데다, 중국에 다녀오신 시터께서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셔서 최근 일을 그만두셨어요. 민지는 이 와중에 어린이집에 들어가게 됐는데 처음 적응 기간이라 많이 울고 힘들어했지요.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는 아이를 혼내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 적응 기간이 아니라 엄마 적응 기간인 것 같았어요. 한편 민지가 감기에 걸리면서 제가 감기에 걸리고, 제가 감기에 걸리니 민규도 감기에 걸리고, 마지막으로 거의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애들 아빠까지 감기에 걸려 온 집안 식구가 아픈 와중이랍니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답니다. 조금 제 몸이 나아지니 오늘에서야 최근 제가 느꼈던 복잡다단한 심정을 이 코너에 풀어놓습니다. 아프면서 새삼스럽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군요. 민지, 민규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봤습니다. 그동안 제 몸이 아프면서 아이들에게 “피곤하다” “힘들다”라는 내색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 미안한 마음을 편지로 썼습니다. 훗날 아이들이 이 편지를 읽으면서 제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












401551f1b0a55cc099dce62258bd8c66. » 3월부터 어린이집 반일반 다니는 민지. 처음엔 잘 가는 듯 하더니, 몸이 아파 그런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photo by 양선아




사랑하는 민지, 민규야.




요즘처럼 엄마가 아파 보긴 참 오랜만이다. 39도 가까운 고열이 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어. 목은 빨갛게 부어올라 침을 삼키기 힘들고, 밤마다 콜록콜록 기침하느라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민지 낳은 해 겨울, 감기로 많이 아팠던 기억 외에 이렇게 심하게 앓던 일은 근래 없었던 것 같아. 감기에 걸려도 생강차 챙겨 먹고 한숨 푹 자면 금방 건강을 회복하던 엄마였는데 말이야. 지금 엄마는 감기약을 3주 가까이 먹고 있는데도 감기 증세가 여전하구나. 감기엔 쉬는 게 최고인데, 엄마는 쉴 수 없으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엄마로서 살기 참 힘들구나’가 딱 요즘 엄마 심정이란다. 모든 것을 내팽개쳐두고 쿨쿨 잠만 자고 싶은데 날마다 할 일들이 너무 많구나. 엄마이기에 이 모든 것들을 해내고, 더 강해져야 하는 거겠지?

 

 사랑하는 내 딸 민지야. 민지 너에게 특히 미안하구나. 엄마도 아파 보니 최근 네가 왜 그렇게 징징대고 짜증내고 울어댔는지 알겠더라. 민지야. 엄마도 열나고 아프니까 제일 먼저 누가 생각났는지 아니? 우선은 가까이 있는 아빠를 생각했지. 그런데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해 삼겹살에 술 한 잔 하시고 계시던 아빠는 엄마 전화를 받지 않았어.




그래서 다음에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였느냐면 바로 외할머니였어. 엄마의 엄마. 아플 때 외할머니에게 전화해서 외할머니 목소리를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외할머니가 엄마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고, 당장에라도 서울로 올라와 줬으면 좋겠고....엄마도 아이처럼 외할머니에게 보살핌을 받고 싶었단다. 고열이 나서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데, 엄마도 엄마가 너무 그립더구나. 따뜻한 엄마 품에 안겨 마냥 울고만 싶더구나. 아빠도 뒤늦게나마 엄마 응급실 데려가서 주사 맞히고 먹고 싶어하는 음식 해서 먹여줬지만 그래도 엄마 품이 생각나더라. 절대적인 엄마의 사랑, 그 안에서 마음과 몸을 탁 놓고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  그러나 아직도 일을 열정적으로 하시는 외할머니는 너무나 바쁘셔서 서울에 올라오시지 못하시고 전화로 엄마 걱정만 해주셨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서운하고 서럽던지...  




아마 너도 그랬을 거야. 아프고 힘들고 하니 엄마가 더 많이 안아줬으면 좋겠고, 네 투정 다 받아줬으면 좋겠고 그랬을 거야. 네 옆에 딱 붙어서 네가 원하는 것 다 해줬으면 좋겠고 말이야. 그런데 엄마는 민규 젖도 줘야 하고, 민규 병원도 가야하고, 민규 약도 먹여야 하고 이것 저것 집안 일도 해야 하고 또 장 본다고 잠깐 나가고 등등 온전히 너와 함께 해주는 시간이 부족했을 거야.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자마 울어대고, 인형 옷이 안 벗겨진다고 짜증내고, 민규처럼 안아달라, 물 먹여달라, 밥 먹여달라 등등을 요구하며 매일 징징댔겠지. 또 밤에는 잠도 자지 않고 민규 젖을 줄 때면 일어나서 보고 있다 잠을 설치고 엄마한테 혼나고 말이야. 그러면서 너도 엄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우리 둘의 몸 상태도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정말 괴로운 나날들이구나. 

 

민지야. 사실 네가 지난 설 연휴 이후로 계속 시름시름 앓고 감기를 달고 살아서 엄마는 걱정 많이 했단다.  오죽했으면 지난 주엔 대학병원 가서 피검사와 소변검사, 엑스레이까지 찍어봤겠니? 다행히 피검사와 소변검사 등에선 아무 이상이 없고, 엑스레이를 보니 축농증 증세가 있어 약을 타와 먹고 있는데, 그 전까지 엄마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단다. 민지는 지금 거의 두 달 가까이 감기에 걸려 있는 것 같아. 아마 너한테 너무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와서 적응하느라 그런 것일 수도 있어. 이번 달부터 어린이집 반일 반에 다니고 있고, 또 그동안 같이 지내던 베이비시터 이모도 몸이 아프셔서 그만두고 말이야.




더군다나 동생이 생겨 엄마의 사랑을 많이 뺏긴 것 같을테고 말야. 환절기인데다 일상의 변화가 많으니 예민하고 섬세한 네가 적응하느라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씩씩한 내 딸은 이 모든 것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이 모든 것이 네가 자라는 과정이고 성장하는 과정일 테니까. 이왕 아플 거라면 우리 즐겁게 아프자. 엄마도 자꾸 몸이 아파 “힘들다” “괴롭다” 생각했더니 더 아픈 것 같구나. “금방 나을거야” “감기란 놈 어서 물리치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힘내보자꾸나. 민지가 노란 콧물을 흘리고 가래가 많아 기침을 많이 해도 동요를 들으면 신나게 노래를 따라부르고 하하 호호 웃을 때면 엄마보다도 더 씩씩하게 보일 때도 있단다.

 

민지가 많이 울고 징징대고 매달릴 때마다 엄마가 포근하게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엄마 몸이 아프니 모든 것이 귀찮아지더구나. 엄마는 너희 둘 돌보느라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구나. 일본에서는 지진이 나 난리고, 리비아에선 전쟁이 나고 있는데도 다 아주 먼 나라 얘기 같구나. 최근 지인들과도 연락을 두절하고 지내는 상태고, 신문이고 뉴스고 책이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구나. 그냥 내 앞에 놓인 현실이 버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야. 그래서 엄마도 네게 짜증도 많이 냈고, 네 앞에서 한숨도 많이 쉬고, "피곤하다"라는 말을 달고 산 것 같구나.




이젠 엄마 기침도 조금 덜 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으니 좀 더 밝게 너를 대하도록 노력할게. 네게 짜증낸 뒤 죄책감 느끼고 후회하면서도 또 네가 엄마에게 매달리면 엄마도 모르게 인상부터 찡그리고 그랬단다. 엄마는 아직 엄마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어. 이번에 다시 한번 느낀 건 엄마에겐 아플 자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아프면 가족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지. 엄마가 아프니 온 가족이 다 아프고, 집안 분위기도 어둡고 칙칙하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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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b913f2c1ad749644017d405de0f3ae. » 7개월에 접어든 민규. 기어다니고 이젠 붙잡고 걷는 것을 즐긴다. 1~2시간마다 깨던 잠버릇은 조금 잡혔으나 여전히 3시간 마다 한번씩 깨서 젖을 먹으려 한다. photo by 양선아




사랑하는 내 아들 민규!




엄마를 피곤하게 만든 주범 중의 한명. ‘밤의 악마’ 민규 덕분에 밤잠을 수개월간 제대로 못 자니 엄마가 만성 피로에 시달려 감기에 꼼짝 못하는 것 같다. 또 모유수유 하느라 어른 감기약을 먹지 못하니 감기도 쉽게 잡히지 않는 것 같고... 그래도 요새 들어 민규가 1~2시간 마다 깨던 잠버릇이 잡힌 것 같아 다행스러워. 이젠 밤에 9시 정도에 자서 3~4시간마다 한 번씩 깨서 젖을 먹으려 하는데 그 정도만 해도 엄마는 수월하구나. 다른 아이들은 7시간 연속 잠을 잔다고도 하던데, 우리 민규는 언제쯤 그렇게 밤잠을 푹 자주려나... 어서 그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너무 큰 기대인가? 낮에 보이는 천사의 모습을 밤에도 보여다오. 아들. 




 민규야. 벌써 네가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고 7개월에 들어섰구나.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슨 물건이든 보면 기어가서 입에 넣으려 하는 넌 호기심 왕성한 사내 아이야. 감기 환자가 집안에 득실득실한 데도 감기 심하게 앓지 않고 그런대로 잘 버텨내고 있는 널 보면 대견하구나. 엄마는 그것이 모유 덕분이라 생각한다. 최근 엄마가 너무 많이 아프면서 `모유를 끊어야 하나'라는 유혹을 느꼈지만 네가 건강한 것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모유를 먹일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많이 먹이자고 말야. 엄마 몸이 힘들더라도 널 위해서 말야.  콧물과 가래가 조금 있지만 그래도 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잘 자라고 있으니 건강한 것 같구나. 아무나 보면 방긋방긋 잘도 웃는 우리 아들. 낯가림도 덜해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이유식도 꿀떡꿀떡 잘 먹고 잘도 크는구나. 이제까지 잘 자라줘서 고맙고, 누나 치다꺼리 하느라 널 많이 안아주지 못하고 네게 신경 많이 못써 줘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우리 아들은 순탄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기만 하구나. 

 

 민지, 민규야. 2월에 너희가 많이 아프더니 3월엔 엄마가 많이 아팠어. 아파 보니 너희 심정이 이해가 되고 너희에게 더 따뜻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플 땐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이 최고니까 말야. 엄마는 감기 이겨내려고 억지로 잘 먹으려 애쓰고 틈틈이 잠을 청하려 애쓰고 있어. 또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 어서 이 감기가 엄마와 우리 아이들에게서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구나. 봄은 온 듯한데 아직 바람도 너무 쌀쌀하고 몸도 회복이 더디고 답답하구나. 그래도 민지와 민규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구나. 3월이 지나면 이 무서운 감기 폭풍도 지나가겠지? 감기를 물리치고 우리 기쁜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자꾸나. 사랑한다. 우리 아가들. 너희의 엄마이기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더 건강해야 한다고 다짐해본다. 너희도 아무쪼록 건강하게 커다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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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