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싫어하는 남편 꼬시기 작전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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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인 나는 역마살이 있나보다. 주말에 집에서 한없이 늘어져 있다보면 괜히 죄짓는 기분이다. 한번 뿐인 내 인생을, 소중한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틈만 나면 밖에 나가 놀 궁리를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집에서 맛있는 요리해 먹고, 집에서 책 읽고 사색하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은 외주제작 피디인데 한때 공중파 방송 교양 프로그램을 맡아 제작했다. 3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남편은 자의반 타의반 전국 방방곡곡을 촬영때문에 많이 돌아다녔다. 그래서일까. 돌아다니는 것에 질려버린 남편은 연애할 때도 먼 곳에 여행 한번 가지 않았고, 주로 서울 시내나 일산 호수공원에서 연애를 했다. 아이들이 생긴 뒤로는 더욱 먼 곳에 여행가기 싫어한다.
 
 
처음엔 이 문제로 남편과 자주 입씨름을 했다. 애가 셋이나 있는 회사 모 선배는 아직 돌도 안된 셋째까지 데리고 남편과 캠핑을 다닌 것을 본 적 있다. 또다른 선배들은 주말에 남편과 함께 애들을 데리고 수목원이나 북한산 자락 등 자연 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봐왔던 터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좀 더 많은 체험도 시켜주고 싶고, 나 역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선배네 가족이 참 부러웠다. 내가 보기엔 남편이 괜히 아이들이 어리다고 핑계만 대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편은 “애들 어릴 때는 가까운 곳이 최고”라며 “멀리 가봐야 애들 고생시키고, 애들이 아플 수도 있고, 체험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적어도 둘째가 4살 정도는 돼야 좀 더 많이 돌아다닐 수 있고 체험도 의미있다고 주장했다.
 
 
만날 나가서 노는 문제로 티격태격하다 결혼 5년차에 접어들면서 나는 남편과 의견충돌 없이 놀러가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바깥 나들이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내가 바꿀 수는 없다. 인간은 그만큼 바뀌기 힘든 존재 아닌가. 자발적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좋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원해서 해야 즐겁다. 따라서 내가 나들이에 관해 적당히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절충점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절충 방안을 생각해보자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혹시라도 멀리 여행을 가고 싶다면 남편을 빼놓고 가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으악, 5살, 3살 아이 둘을 나 혼자 데리고 가는 여행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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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절충 방안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너무 자주는 말고 남편이 허용가능한 횟수만큼 △짧은 시간 나들이를 가는 것이다. 만약 더 자주 가고 싶거나 오랜 시간 나들이를 가고 싶다면, 다른 동지들을 찾아 가도록 한다. 그리고 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남편에게 미리 얘기를 하고 시간을 비워놓도록 예고한다. 나는 갑작스레 어디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엇이든 계획적으로 살기 좋아하는 남편에겐 미리 일정을 알리고 상의하고 협의해야 훨씬 나들이 성공률이 높다. 또 수시로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 리스트를 작성하고, 남편에게 가끔씩 왜 이런 곳이 아이들에게 좋은지 설명해준다. 둘 사이에 공감대가 생기면 주말에 쉬고 싶어도 남편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함께 나선다.
 
 

 
지난 주말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난 아이들에게 누룽지와 고등어구이를 해서 먹이고 나니 바깥 햇살이 눈부시기만 하다. 오전 잠을 충분히 자고 난 뒤 10시 반 정도 일어난 남편은 침대에 누워 아이들과 장난을 하고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남편은 이날 역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해먹으면서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고 싶어하는 분위기였다. 9월의 파아란 가을 하늘은 자꾸만 내게 손짓을 했다.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집안에 가만히 있을거냐고. 남편이 아이들과 장난을 할 때 나는 거실을 서성거렸다.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며. 그때 문득 교보문고에서 반값할인을 해서 사놓은 책 <서울 사계절 걷고 싶은 길>이라는 책이 눈에 번쩍 들어왔다. 나는 책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남편 옆에서 책을 뒤적였다.
 

“여보. 진짜 날씨 너무 좋다. 이렇게 날씨 좋은데 애들 집에만 있으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괜찮은 곳 없나 한번 찾아볼게. 아~ 여기 괜찮겠다. 여의도 순환길. 집에서 차타고 가면 20분 정도 걸리나. 여기 어때?”
“뭐. 가깝긴 하지.”
“아~ 맞아. 베이비트리에 어떤 회원이 여의도에서 자전거 타고 놀았던 것 사진 올려줬던데, 차라리 우리 여의도에 자전거 타러 갈까? 재밌겠다. 민지야~ 민지 자전거 타고 싶지 않아?”
 옆에 있던 민지 “응. 엄마. 자전거 타고 싶어요! 아빠~ 놀러가자~ 자전거 타고 싶어~가자. 나가자~~”
“그래. 알았어. 그럼 점심 먹고 가자. 점심 먹고 놀러 가려면 오전에 잠 좀 자.”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민지의 들뜬 목소리를 듣더니 남편은 선뜻 나들이를 가자고 한다.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정도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다. 와우. 주말이라 자전거를 타려고 늘어선 줄이 장난 아니었다. 민지는 남편이랑, 민규는 나랑 타기 위해 2인용 자전거를 기다렸지만 워낙 사람이 많아 결국 2인용에는 민규와 나만 탔다. 남편과 민지는 각각 1인용 자전거를 탔다. 약 1시간가량 탔고 공원 중간에 정자와 연못이 있어 물고기도 보고 잠시 쉬기도 했다.
 
 IMG_7602.JPG » 남편이 얼굴 공개를 원치 않아 스티커 부착.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도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민지와 민규 역시 너무 좋아했다. 한 시간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공원 광장에 앉아 준비해간 고구마와 물을 마시며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 재밌었어? 난 오랜만에 자전거 타니 정말 재밌더라.”
“응. 재밌어하는 것 같더라. 난 뭐 별로. 내가 재밌었겠냐. 내 표정 안보여?”(모든 것이 귀찮다는 표정이다. TT)
“흥! 도대체 당신한테 재밌는 것은 뭐야? 자전거도 안 재밌으면 뭐가 재밌어? 예전에 운동 좋아했었다라고만 하지 자전거도 재밌게 안 타지, 예전에 기타도 잘 쳤다고 하면서 요즘은 기타도 안치지. 도대체 당신한테 재밌는게 뭐야?”
 
내가 이렇게 묻자 남편이 순간 멈칫한다. 너무 정곡을 찔렀나? 남편이 은은한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허탈한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게. 정말 그러네. 예전엔 운동도 정말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했는데… 요즘은 재밌는 게 없다. 왜 그러지? 왜 이렇게 되버린 걸까?”
“본성을 잃어버린 거야. 당신의 본성. 그걸 찾아야 해.”
“맞아. 본성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르지...네 말이 맞다. 본성을 찾아야지. 인간으로서의 본성.”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나무의자에 앉아 우리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밖에서 마음껏 스트레스를 발산한 아이들은 남편이 정성스럽게 끓여준 닭백숙을 게 눈 감추듯 먹었다. 닭고기 안먹어본 애들처럼.

 

그날 밤, 나는 사회생활로, 또 앞으로 진로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있는 남편이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고 재미를 찾아가기를 기원했다.

아빠가 사는 게 재밌고 행복해야, 엄마가 사는게 재밌고 행복해야, 아이들도 사는게 재밌고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될테니까.

아니 그렇게 살 수 있을테니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재밌게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웃으면서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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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