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와 천기가 밀당을 한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17 /참장공 수련기2

 

  나는 이 참장공 수련을 새벽과 오전 오후에 세 차례를 했다. 매회 1시간씩을 한다.  먼저 자세가 오궁합일(五宮合一)의 요결에 합당한지 확인한다. 전신을 풀어놓는다. ‘방송(放松)의 미학’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실사구시의 꿍푸에서 그 위력을 발휘해야하기 때문이다. 무술이든 양생이든, 실질을 숭상하는 기학, 혹은 기공의 요령은 꾸밈으로부터는 결코 얻어질 수 없다. 
 
 눈을 크게 뜨고 하늘 한번 바라보고, 다시 땅 아래로 지긋하게 시선을 내리 깐다. 눈을 감는다.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을 알아차린다. 전신의 감각을 알아차린다. 깨어있는 지각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위로부터 아래로, 좌우로, 차례차례 훑어 내린다.

1000444.jpg » 태극권 수련하는 민웅기
 
 발바닥의 용천혈에 염두(念頭)를 둔다. 그곳에서 땅의 일기(一氣)를 느낀다. 염두를 따라 땅의 기운이 발목과 다리를 통과해 올라오니, 하단전의 텅 빈 자리가 지기(地氣)를 맞아들여 따스하다. 다시 머리끝 두정(頭頂)으로 올라간다. 각성된 염두를 따라 하늘 기운이 빨리듯이 들어와서 척추를 타고 내려와 하단전에 당도한다.
 
 지기(地氣)가 천기(天氣)를 만나서 얼싸안으니 태극(太極)의 일기가 무극(無極)의 시원으로부터 형성되어 나온다. 하단전을 진동하는 내기가 소용돌이쳐오고, 두 손바닥의 장심에선 배꼽아래의 기운과 상응하여 일으켜진 기의 장력(energy field)이 밀당을 계속한다.
 
 들이쉬는 흡기(吸氣)를 따라 태극의 일기(一氣)가 팽창을 계속해 나간다. 하단전으로부터 몸집을 키우던 일기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확대하여 마침내 전신을 집어 삼킨다. 풍선처럼 가득 찬 기운을 더욱 확장시키니, 일기는 내가 서 있는 공간을 삼키고, 끝내 하늘과 땅의 우주를 삼킨다.
 
 하여, 나는 온몸이다. 나는 온방이다. 나는 온우주다.

참장공 2.jpg » 참장공 자세
 
 내쉬는 호기(呼氣)를 따라, 다시 온우주로부터 온방으로, 온방에서 온몸으로, 온몸에서 하단전으로, 태극의 일기는 스스로의 몸집을 줄이고 줄여 마침내 일점으로 응축된다. 그것마저 종당엔, 무극(無極)으로 산화(散化)한다.
 노자가 말한 ‘復歸於無極(복귀어무극)’이다.
 ‘본래의 그러함(本然)’으로 다시 돌아왔음이다.
 
 호흡의 결을 따라 각성된 의식이 흐르고, 그 속에 나의 기운의 동정(動靜)이 여일하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선계를 노니는 자에게 한 시간이 길 새 없다.
 
 아, 사람의 품이 참으로 너르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융섭하여 하나로 안느니, 그 포용이 너르고 너르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가 태극의 일기 안에서 원융회통한다.
 참장공이여, 위대하도다. 그 꿍푸를 수행하는 자여, 복되도다.
 
 말이 나왔으니, 참장공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본다. 참장공의 전통은 일단 무당산(武當山)의 ‘무당꿍푸’에서 찾는다.
 
 ‘무당꿍푸(武堂功夫)’는 지금도 도교 무당산의 중요 수련전통으로 전수되어 내려온다. 이 무당꿍푸 안에 다시 다종다양의 권법과 창검술 등속이 포함되어 있다.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꿍푸들이 하나같이 ‘내가권’의 진면목을 유술하고 있는 듯, 강함 속 부드럽고, 부드러움 속 강함이 혼연한 배합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내가권(內家券)’이라 한다. 이 내가권은 ‘외가권(外家券)’과 함께 권술의 양대 전승을 이어오고 있다.
 
 외가권이 근육과 뼈를 단련하여 그로부터 나오는 힘(力)을 발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면, 내가권은 내기(內氣)를 배양하고 유통하여 나오는 힘(勁)을 발경함으로써 무술과 양생, 혹은 의료기공 등으로 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소림권이나 태권도, 합기도 등이 외가권의 대표적 꿍푸 라고 한다면, 무당산 전통의 ‘태극권(太極券)’과 ‘형의권(形意券)’, ‘팔괘장(八卦掌)’ 등은 대표적인 내가권의 꿍푸 다. 이 3권을 합해 ‘내가삼권(內家三券’이라 부른다. 참장공은 이 중, 형의권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참장공 1.jpg » 참장공 자세
 
 내가권이 나오고 나서 여성 고수가 남성을 제압하기도 하니, 특히 여성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지 싶다.
 골격과 근력이 열세인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의 그 잘난 크기와 힘을 꺾을 수 있다는 데 이르러서는, ‘내가권’의 패러다임이야말로 지금까지 우리의 낡은 사고와 고정관념을 붙들고 있었던 묵은 패러다임을 뒤엎고, 새로운 세계관과 사고방식으로의 일대전환을 예고하는 신호 같이 읽혀졌다.
 내가권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실마리를 붙들고서, 골똘한 생각에 잠겨 나만의 감흥에 사로잡혔던 때가 바로 엊그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빗줄기가 무당산의 금정봉을 하얗게 적시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장삼풍은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문득 그의 눈빛이 빛났다. 먼발치에 독수리 한 마리와 독사 한 마리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 포착되었다.
 
 천적인 독수리의 발톱이 뱀의 등허리를 향해 맹렬하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 순간, 뱀은 부드럽고 느릿하나 가벼운 몸놀림으로, 맹금 독수리의 날카롭고 빠른 공격을 순식간에 털어내어 무위로 만들어버린다.

정업사 6.jpg » 정업사
   
 둘은 일진일퇴하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공격과 방어의 실랑이를 이어간다. 느긋하게 관전을 즐기던 장삼풍에게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그것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柔勝强)’는 도덕경의 한 구절이 그의 뇌리에 꽂혔다.
 내가권의 탄생설화와도 같은 이 이야기엔 나도 큰 감명을 받았다.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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