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가자, 인생의 참 맛을 보자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7/헌헌장부의 차 자리 초대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봄의 진동은 가히 최고조에 달했다. 미약하기만 했던 양의 기운이 크기를 부풀려 극에 이르자, 계절은 어느덧 여름의 무성한 생명의 기운으로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극양의 시절, 우주의 기운이 가장 무무성성한 하지를 향해 익혀 들어가던 밤새, 그리고 새벽 시간 내내, 뻐꾸기도 이 여름 한철을 위해 제 고운 목청을 다듬었나 보다.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산골 마을에서 청량한 의식을 들이쉬는 새내기 수행자들을 환영하는 듯 두견새와 까치들도 기쁜 인사를 올렸다. 새들 합창소리뿐이랴. 개여울엔  불어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붕어와 미꾸라지들이 못내 아쉬운 개구쟁이들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성급한 조바심만 지키고 있다. 자연의 오케스트라는 그칠 줄 모른다. 산개구리들도 존재감을 과시하듯 높은음자리의 일성을 내지른다. 희부연 안개 너머 사바의 세계가 가물한 사이엔, 여치들과 매미들의 싱싱한 화음이 살갗에 빠알간 소름을 끼쳐들고 있었다.
 
 부연 안개 사이를 뚫고 햇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마을안의 풍경들도 하나둘씩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새벽의 미명을 받아 자신의 속살을 들추어내며 호흡의 자리에 머물던 사람들의 표정들도 하나 둘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태껏 쌓아온 삶의 흔적들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려는 사람들의 표정이 서서히 아침햇살처럼 깨어나고 있었다. 한줄기 청량한 소슬바람이 민낯에 스친다. 바람 되어 날아온 님의 소식이라면 좋을 것이다. 맑다. 햇살 비추자 어둠 걷히듯, 영롱한 이슬방울 영혼의 목마름 적셔오듯, 도반들은 깨어났다.
 
 이아침 숲이 베푼 은덕에 마음마저 풍요롭다. 왠지 귀인이 올 것만 같다. 다리벌리기와 물구나무서기 등속의 요가 동작들을 내키는 대로 한다. 동작 속을 떠나지 않는 마음챙김의 자리가 여실하다.
 언제부터 몸과 마음이 따로였지? 사내의 가슴속은 뻥 뚫린 듯하다. 살아오는 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들도 많았을 것이다.
 ‘몸과 마음’, ‘물질과 정신’도 그 미해결의 숙제들 가운데 하나다. 이원론적 사고와 세계관에 젖어온 세월의 어느 때도 잊은 적이 없었던 근원적인 의문들이 갈피를 잡아가고 있다.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 만나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사내의 심중이 지금 그랬다. 쾌적한 육체를 맑은 정신으로 들여다보고 있던 사내는 속의 심사를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어떤 주시의 낌새를 눈치 챈 마당이다. 
 아까부터 닿는 시선이 있었다. 한 남자, 어제 그 사람이었다. 영락없는 헌헌장부다. 그 장부가 가볍게 웃으면서 물었다. “요가를 잘하시네요, 도사가 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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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생겼다. 기골이 장대한 선비 혹은 무사, 혹은 수행자 같다. 참 별일이군. 칭찬 한마디에 사내는 그쪽으로 벌써 마음 한 자락을 빼앗긴 듯. 같은 남자로서 형언키 어려운 귀티가 있다.
 도사가 되겠다니....., 이건 또 왠 뚱딴지같은 소리람, 사내는 겉으론 태연했으나 속으론 좋다. 두근거린다. 가벼운 흥분 같은 것.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도 아니다.
 도반들과 함께 맛난 조반을 먹었다. 우리는 아까 그 남자, 아니 그 스님으로부터 사랑방에 차 자리 초대를 받았다. 선(禪)과 차(茶)는 본시 한맛이다. 명상 후의 차 한잔은 참맛이다. 그래서 ‘선차일미(禪茶一味)’, 선과 차는 한맛이라고 한다.
 
 도반들은 신이 났다. 산중에 차 한잔 하자는 이가 있어 반갑고, 악동들의 심사가 되어 수업시간 빼먹는 것도 좋았다. 아침 명상 일정을 빼먹는다니 뜻하지 않은 횡재다.
 장부는 사랑방에 소담한 찻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반긴다. 초대하는 방주인이나 초대받는 우리나 빈집의 손님이긴 마찬가진데.
 예전 바깥양반이 쓰던 사랑방,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쓰던 사랑방, 마을 안팎의 손님들이 수시로 제집 드나들 듯 출입을 일삼던 사랑방, 일가친척들이 집안의 대소사를 일별하던 그 사랑방에, 장부와 우린 주인과 객으로 마주 앉았다. 앉아서 잠시 방안 공기를 재어본다. 사랑방엔, 서로를 연통하는 방안 공기마저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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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으로만 봐선 승려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빡빡 깎은 민머리가 스님임을 짐작케 할 뿐. 개량한복 차림에 훤칠한 키, 부드러운 표정 뒤에 숨겨진 강인한 인상,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동안의 얼굴, 일행은 군침을 삼키며 차탁 앞으로 다가 앉았다.
 
 중국에서 나온 지 며칠 안 되었다고 했다. 북경대학교에서 중국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나온 직후라고 했다. 불교신문에 아는 기자가 있어, 제자를 찾는 광고를 냈다고도 했다.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리지 않은 게 더 문제였다.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자신이 만든 자료파일을 보여준다. 파일은 주로 요가와 태극권, 그리고 차훈명상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책 한권의 분량만큼은 되어 보인다.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잘 편집되어 있다. 아리따운 중국 아가씨(소녀라고 하기엔 성숙미가 돋보인)의 기기묘묘한 요가 사진들이 시선을 끌었고, 스님 자신의 기공 및 요가의 동작을 찍은 사진들도 볼 만했다. 그뿐 아니고 차 문화와 대금연주 등 다양하고 멋스런 사진들이 잘 포장된 선물세트처럼 편집돼있었다.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동영상도 봤다. 한국과 중국의,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여러 종의 명차를 맛본다. 방의 임시 주인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진다. 익숙한 솜씨로 차를 끓이고 우려내는 장부의 손길을 따라 모두 오랜 지기처럼 농담을 주고받는다. 차는 역시 신령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차를 마시는 우린 ‘다선(茶仙)’의 경계를 노닌다. 신령한 물건을 마시며 서로는 신성의 빛에 물들어간다. 
 
 차 자리는 무르익어갔다. 그때였다. 이 스님이 갑자기 일행의 손바닥을 한번 보자고 했다. 
 
 손금을 보자는 것인가. 의중을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소리에, 놀란 토끼눈을 한 좌중은 일순 침묵 속으로 빠졌다. 서로의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저 양반이....., 우리를 시험하러 드는 게야? 운세를 봐주겠다는 거로군, 원래 잘 보는 스님들이 있지. 뭐야, 오복이라도 점쳐주겠다, 이 말이겠지, 수명선이라든가 자식 복, 혹은 연애 운 같은 거 말이야. 에이, 농담일 거야, 썰렁한 분위기 반전을 위해 뒤집기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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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나지간 좌중의 뇌리엔 갖은 생각들이 번득 스친다. 어떤 이는 침을 꼴딱 삼켰고, 어떤 이는 자세를 바짝 당겨 앉았다. 또 다른 이는 이런 유의 일엔 이력이 난 사람처럼 심드렁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호기심이 급 발동한 사내의 입가에도 장난기 서린 웃음기가 피식 번져든다.
 
 이 양반은 좌중의 이런 심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사내를 비롯한 일행의 손마디를 일일이 살핀다. 그런 다음 가볍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손바닥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보자고 한 건, 다만 방편일 뿐입니다.
 
 방편이라, 관상은 기본이고 손금은 그냥 방편으로 보았다는?..... 하아, 이제 그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타심통(상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의 대가를 친견하고 있는 거군.
 좌중의 생각이 어디로 튀고 있는 지엔 관심 밖의 표정인 이 양반은, 이제 눈앞의 대상들로 그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한번 쑤욱 훑어보고 나서 맨 처음 선수로 지목된 선수가 신 선생, 다음이 빈목, 이경, 문옥 순이었고, 맨 나중이 사내다. 이와 같은 순서로 말미를 잡은 다음엔 일사천리로 인생 상담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일행의 좌장인 지도 법사님에 대해선 일절 가타부타 말이 없다.
 
 도심의 절간 밑이나 변두리의 후미진 곳, 혹은 재개발 대상지역 등지의 소로 주변과 이면 도로가에 친숙한 풍경이 있다. ‘점집’이다. 큰 병원 근방에 작은 의원들과 민간의 대체요법 처방소가 즐비하듯, 점집의 입지로는 사찰 아래의 사하촌이나 도심의 포교당 주변이 최적이다. 큰집에서 떨어진 떡고물을 주워 담기에도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런 곳들엔 으레 울긋불긋한 깃발이나 장대 등속이 난무한다. 눈에 띄기  좋아서다.
 
 인생 상담? 흠, 좋지. 사내는 여태껏 그런 곳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낯익은 장면 같은 것이 연상되었을 것이다. 앞길이 훤히 열릴 뭔가 신통방통한 묘약 처방이라도.....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차 자리가 사내의 인생길에서의 대전환의 시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두셋 도반들의 인생의 전기에도, 매우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
 이 장부가 툭툭 던지듯이 해온 상담은 사실 일반적인 상담은 아니었다. 자신의 영감과 혜안에 의지해 상대의 인생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처방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숙제를 내어주듯 던진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당사자의 가슴과 뇌리에 꽂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한 마디 언어의 마력은 대단했다. 상담을 통해 지금까지 삶에서 풀지 못했던 어떤 자기만의 ‘관건(關鍵)’을 여는 결정적 힌트를 얻게 된 것이다.
 
 장난기가 한껏 발동한 나의 표정에 대고 그때 그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보리거사님은 훌륭한 재능을 가지셨군요. 매우 총명한 지혜와 밝은 눈을 가지셨는데, 한 가지만 보충하시면 앞으로 도인으로서 뭇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틀에 박힌 멘트가 아니었다. 그 시점에 나는 삶의 전반을 매우 근원적으로 성찰하고자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비수처럼 나의 심장에 꽂혀들어 왔다.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지셨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인생과 세계, 그리고 그 너머까지를 통관하는 형이상학적 우주관을 갖추고 그것을 깨치신다면, 자신에게도 좋고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큰 나무가 되실 것입니다.” 
 
 나는 그 지점에서 뻑 갔다. 짧은 순간에,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의 치명적 약점을 담담히 지적하고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경외감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형이상학적 우주관’에 관한 문제를 내게 지적하고 가르쳐줄 만한 그런 스승이 눈앞에 계시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 나는 논리나 지적 분야에 관한 한 누군가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사상을 담론하는 일 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스스로에 관한 보루였다. 급 겸손모드로 돌아섰다. 질문이 나도 모르게 빨리 나오고 말았다.
  
 “그러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보리거사님은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태극권 지도자가 되실 것입니다. 요가와 명상의 바탕위에 태극권을 연마해서 수련의 힘을 키우십시오. 그리고 태극과 음양의 오묘한 이치를 깨우쳐야 됩니다. 동시에 우리의 전통사상을 섭렵하고 깨우치도록 하십시오. 노장과 불학, 그리고 유학에 이르는 경전에도 밝은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제 나이가 40대 중반에 들어서는 마당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머리로 하는 공부라면 몰라도, 몸을 갖고 하는 태극권 수련은 너무 늦은 게 아닐까요? 더군다나 몸의 재능을 타고난 바가 없는 사람이요?”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이른 때입니다. 저와 함께 중국에 가시지요.
 
 그런 다음, 나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얘기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근대 중국의 대기공사가 한분 계셨는데, 그분이 환갑을 세던 날이었어요. 남루한 옷차림을 한 도인 한 사람이 집 앞을 지나다가 들렀답니다. 그리곤 한창 환갑잔치에 무르익은 잔치의 주인을 찾더라는 거예요. 그리고선 대뜸 그 주인장에게, 당신은 이제 세간에서의 할 일이 끝났으므로 나를 따라서 ‘입산수도’ 하러 가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도인의 말을 듣자마자 주인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고 길을 나섰어요. 바로 그가 훗날 대륙의 위대한 기공의 스승이 되었지요.”
 
 그 일이 있은 다음, 몇 차례 더 스님을 만났다. 그리고 확신에 확신을 거듭했다. 스님으로부터 입국 날짜를 통보 받았다. 가족들과 상의를 했다. 가족들은 내가 워낙 강경한 태도라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재 시의 집안일에 대한 요령을 세운 다음엔 일사천리로 중국행을 진행했다.      

 비온 뒤끝이라 그런지 소요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거세다.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격랑을 치는 때도 있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겠다. 현대문명의 한복판에서 그 문명의 모순으로 양산된 제반 문제들과 싸웠었다. 초반에는 젊은 혈기와 열정을 무기로 시스템과 한판 싸움을 감행했었다. 자본과 노동, 독재와 민주, 외세와 민족의 전선에 뛰어든 다음엔, 생태와 자연, 그리고 삶의 질과 행복을 위한 길의 여정이 뒤를 이었다.
 
 유토피아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대결과 투쟁을 능기로 삼고 곤궁과 결핍의 터널을 통과하다 얻은 상흔들이, 몸과 마음 곳곳을 주름지게 했을 것이다. 귀농을 결행했고, 산골마을에서 생태적, 농업적 삶의 양식과 단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누리기도 했다. 유기자연 농의 이상에 흠씬한 매력을 느끼고 관련 농법과 사람을 만나보고 시도해보았다.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로 즐거움을 삼기도 했고, 나물이나 약초를 캐는 것을 재미 삼아 산야를 헤매기도 했다.

501.jpg » 태극권 수련하는 민웅기
 
 버리고, 바꾸고, 내려놓았다. 그예 몇 년을 벗들과 어울려 놀았다. 마치 풍류객을 방불케 하듯, 날이면 날마다 인근의 산골마을들을 떠돌며 심심풀이 마실을 다녔다. 세상 타령과 인생 타령을 안주 삼아 잘 먹지 못하는 곡차로 날밤을 새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흘리고 있었던 것일까.
 아직 한창 나이인 30대 중반의 독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내 인생에 후회나 회한은 결코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 대학원엘 가볼까, 가서 무슨 공부를 해야 되지?
 미래학도, 사회학도, 영문학도, 철학이나 심리학도 염사가 없었다. 시간도 경제적 여력도 있을 즈음엔, 마음과 열정이 없었다. 시절 인연의 사슬이 그토록 헛헛하게 나타났던 것일까?
 
 사내는 마치 준비된 사람처럼 결단하고 행동했다. 주변의 지인들도 사내의 출행을 응원했다.
 그렇다. 사람은 한번 나고 한번 살다가 간다. 후회를 남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살아오면서, 돈이나 명예, 혹은 권력 같은 것에 목을 메달아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낯선 출행 길에 혹여 따라붙을지도 모를 어떤 목표나 욕망도 사내에겐 군더더기일 뿐이었다.
 
 다만, 사내도 한번뿐인 이번 생에는 별빛이 제 빛으로 반짝거리듯, 그렇게 반짝 하늘이 품부한 제 삶의 빛깔을 다 발휘하고 싶었다. ‘나’다운 인생의 한맛, 그 맛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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